두보杜甫의 술에 취하여醉時歌

 

 

 

 

諸公袞袞登臺省제공곤곤등대성; 관료들 줄줄이 높은 벼슬 오르는데

廣文先生官獨冷광문선생관독냉; 광문선생 벼슬만이 홀로 쓸쓸하고

甲第紛紛厭粱肉갑제분분염량육; 즐비한 고급 저택 고량진미 넘치는데

廣文先生飯不足광문선생반부족; 광문선생 끼니조차 잇기 어렵구나.

先生有道出羲皇선생유도출희황; 선생의 덕 복희씨 보다 뛰어나고

先生有才過屈宋선생유재과굴송; 재주는 굴원과 송옥을 뛰어 넘는데

德尊一代常坎軻덕존일대상감가; 덕은 일세 제일이나 항상 불우하니

名垂萬古知何用명수만고지하용; 이름만 만고에 날린들 무엇하리.

杜陵野老人更嗤두릉야노인경치; 두릉의 촌 늙은이 사람들이 비웃으니

被褐短窄鬢如絲피갈단착빈여사; 베옷마저 초라하고 머리칼은 헝클어져

日糴太倉五升米일적태창오승미; 태창미 닷 되를 사 하루하루 연명하며

時赴鄭老同襟期시부정노동금기; 때때로 정노인과 마음을 나누네.

得錢卽相覓득전즉상멱; 돈이라도 생기면 서로를 찾고

沽酒不復疑고주부복의; 술을 사는 데는 눈치 보는 일이 없이

忘形到爾汝망형도이여; 겉치레를 버리고 너 나 하는 사이지만

痛飮眞吾師통음진오사; 흠뻑 취함에는 진정 나의 스승이네.

淸夜沈沈動春酌청야침침동춘작; 밤은 깊어 가는데 술잔을 나누니

燈前細雨簷花落등전세우첨화락; 등잔 앞에 가랑비 처마 아래 지는 꽃

但覺高歌有鬼神단각고가유귀신; 소리 높여 노래하니 귀신이 흥 돋우고

焉知餓死塡溝壑언지아사전구학; 굶어 죽어 구덩이에 묻힐 걱정 잊었네.

相如逸才親滌器상여일재친척기; 재주 있는 사마상여 잔 씻는 일을 했고

子雲識字終投閣자운식자종투각; 유식한 자운은 몸을 던져 죽었으니

先生早賦歸去來선생조부귀거내; 선생도 일찌감치 귀거래사 읊으시게.

石田茅屋荒蒼苔석전모옥황창태; 자갈밭 황폐하고 이끼 띠 집 덮기 전에

儒術於我何有哉유술어아하유재; 유학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인가.

孔丘盜蹠俱塵埃공구도척구진애; 공자도 도척도 모두 티끌 먼지 된 걸

不須聞此意慘慘부수문차의참참; 이 말 듣고 슬퍼할 것은 없으니

生前相遇且銜杯생전상우차함배; 살아 만나는 동안 술잔이나 나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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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윤리학의 동기

 

 

 

 

덕 윤리학은 플라톤이나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전 이론가들에게서 전해진 유산으로 종종 설명된다. 그렇지만 도덕이론 분야에서는 새로운 연구 영역으로 알려졌다. 19세기와 20세기에(아마 훨씬 이전부터) 걸쳐, 영어권에서는 공리주의와 의무론 사이의 논쟁이 도덕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여기서 의무론을 대변한 것은 기독교 윤리나 칸트주의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일부 철학자들이 이 논쟁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논쟁이 도덕적 고려에 마땅히 포함해야 할 커다란 영역을 빼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도덕연구의 전통을 되살리려고 시도한다. 독자들은 도덕철학의 발전과정을 되짚어 올라가는 이 운동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을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204 제2부 도덕이론의 세 가지 출발점 덕 윤리학이 오늘의 윤리문제를 조명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하지만 무엇을 지지하는가보다 무엇에 반대하는가를 설명하기가 훨씬 쉬우므로, 덕 윤리학의 재등장에 관한 논의는 가치가 있다. 덕 윤리학은 공리주의나 칸트주의보다 훨씬 더 많은 청중을 거느린다. 하지만 현대의 덕 윤리학을 가꾸어놓은 가까운 선배들과는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가정을 지닌 초창기 원조들의 이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 장에서는 덕이론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특징들을 두루 살펴보고, 이 폭넓은 이론을 향해 제기된 몇몇 비평을 검토하려고 한다. 먼저 일부의 철학자들을 덕 윤리학으로 돌아서게 한 도덕이론의 결함부터 살펴본다.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같은 이론에 제기된 한 가지 비평은 우정이나 사랑 같은 고귀한 인간관계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흔히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공정한 이론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일상에서 공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친구와 가족이 있고,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다른 어느 누구보다 친구, 자녀, 부모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 물론 친구를 좋아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하여 그들을 전적으로 도외시하는 것 또한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마피아 스타일의 ‘우리’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친구와 가족을 특별히 배려하며,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삶에서 큰 보람의 하나로 여긴다. 달리 말하면, 개인을 향한 충심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이렇게 보면, 공리주의와 칸트주의가 인간의 삶 가운데 매우 가치 있는 것에 대하여, 좋게 말하면 무관심했고 나쁘게 말하면 적대적이었음은 참으로 이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흔히 공정한 도덕론은 그 이론을 충실히 따르는 행위자를 버린다고 한다. 그 이론을 따르다 보면 자신의 삶이 곤경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어떤 도덕론이라도 그 이론을 충실히 받드는 이상적인 행위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범적인 공리주의자나 칸트주의자는 그 이론의 공정성만을 따르고 받들다가 정작 자신의 삶을 살찌워줄 개인적인 계획을 소홀히 다루어, 마침내는 자기 희생적인 의무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모범적인 추종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안겨주면서 그들 자신이 기획하는 일을 버리고 오직 전체의 복지를 최대화하는 일에 매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칸트주의자는 늘 의무에 매달려 개인적인 계획이 도덕적 원칙에 들어맞는지를 점검하고 감시하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어떤 경우를 보더라도 순발력 있고, 활기에 넘치고, 스스로 쾌락을 찾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행위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 또는 자식들이 모름지기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이들 도덕론의 어느 것도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지 못하기에, 이 사상들은 우리의 사고에 대하여, 나아가서는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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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자신의 고통 때문에 가족에게 베푼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작 중년의 융은 자신의 고통 때문에 가족에게 베푼 것이 별로 없었다. 여전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쪽은 융이었다. 당시 그는 정신적 고통과 함께 불면증과 위장병까지 겪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계속되면서 꿈속의 무의식에서는 새로운 환상 속의 인물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가상의 인물들이 그의 개인적인 삶을 투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같은 푸른 하늘은 … 납작한 갈색 흙덩이로 덮여 있었다 … 그 흙덩이는 갈라져 있었는데 … 갑자기 … 날개 달린 존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 그것은 황소의 뿔을 단 노인이었다. 그에게는 열쇠 꾸러미가 네 개 있었는데 … 그는 어떤 자물쇠를 열려는 듯 그 중 열쇠 하나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특이한 색의 물총새 날개를 달고 있었다. 필레몬은 이교도였으며 그에게서는 영지주의적인 색채와 함께 이집트와 고대 그
리스의 분위기가 풍겼다.

 

이 꿈을 그림으로 그리던 융은 그의 정원에서 외상의 흔적이 없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물총새를 발견하고는 “번개에 맞은 듯” 놀랐다. 취리히에서 물총새를 보기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같은 의미심장한 우연을 그는 “동시성synchronicity”이라 불렀다.

 

환상 속에서 본 필레몬과 다른 인물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 자신들만의 인생을 사는 내 정신 속의 존재들이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어떤 힘을 의미했다 … 그는 나에게 정신의 객체성, 정신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심리학적으로 필레몬은 우월한 통찰을 상징했다 … 그는 나에게 인도인들의 구루guru(힌두교와 시크교에서 스승이나 지도자)와 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는 나에게 수많은 혜안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환상은 융이 “카Ka”라고 부른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카는 왕의 이승에서의 형체, 즉 그의 “육체화된 영혼embodied soul”에 붙여진 명칭이었다.

 

나는 현세에 있는 그의 모습을 그리면서 하체는 돌로, 상체는 청동으로 표현했다 … 카의 모습에는 악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 그는“ 내가 바로 신들을 금과 보석 속에 묻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필레몬은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날개 달린 영혼이었다. 반면 카는 지상에 있는 악마의 일종이었다 … 필레몬은 영혼의 측면, 즉“ 의미”를 상징했다. 카는 … 자연의 영혼이었다 … 카는 모든 것을 실재하도록 만들었지만“ 의미”, 즉 물총새의 영혼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 이윽고 나는 연금술 연구를 통해 두 존재를 통합할 수 있었다.

 

융는 자서전을 쓰면서 당시의 일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정신과 의사인 내가 거의 모든 단계의 실험에서 정신병을 규정하며 정신병원에서 볼 수 있는 정신적 현상을 똑같이 겪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수많은 무의식의 이미지들은 정신병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혼란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의 시대를 살면서 사라진 신화적 상상의 모체이기도 하다. 그런 상상이 도처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금지하고 두려워한다.

 

50만 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성의 시대인 1916년, 융에게 점진적으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필레몬의 가르침을 창의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다.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의 첫머리에는 융의 가족 전체가 귀신을 경험한 듯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일요일 오후 5시경 앞문의 초인종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맑은 여름날이었다. 그때 하녀 둘은 부엌에 있었는데 그들은 중앙의 트인 공간 너머로 밖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즉시 밖을 내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초인종 가까이에 앉아 있어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 모두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실내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 집 전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온 것처럼 영혼들이 빽빽하게 공간을 채웠다. 문이 있는 곳까지 영혼들이 붐볐고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숨 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나는 벌벌 떨며“ 도대체 무슨 일일까?”라는 의문에 빠졌다. 그러자 영혼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우리는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왔소. 우리는 그곳에서 찾던 것을 찾지 못했소.” 이것이『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의 시작이다. 이후 나에게서 저절로 생각이 흘러나왔으며 사흘 밤이 지난 후 글의 첫머리가 완성되었다. 내가 펜을 잡자 그때서야 유령들이 모두 사라졌다 … 유령 소동이 끝난 것이다 … 죽은 자와의 이 같은 대화는 내가 무의식에 관해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순서의 형태와 내용의 해석을 알려주는 일종의 서막이 되었다.

 

이 책은 옛 문체로 쓴 일종의 시집이다.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는 원래 익명의 한정판으로 출간되었으며 그의 요청으로 『융 전집Jung’s Collected Works』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대극들의 대립과 개성화의 개념 등 그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의 틀을 보여준다.

 

 


인류가 망각한, 그대들이 모르는 신이 있다. 우리는 그 신을 아브락사스라 부른다. 아브락사스는 보통의 신과 악마보다 훨씬 더 정형화되지 않은 존재이다 … 그것은 개연성 없는 개연성이며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플레로마가 실재한다면 그 표현이 바로 아브락사스일 것이다 … 그것은 플레로마와는 구분되는 크레아투라[창의적 인간]이기도 하다 … 아브락사스의 힘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그 힘은 그대들의 눈앞에서 그 힘의 충돌하는 대극들이 사라져서 그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태양신이 말하는 것은 삶이다. 악마가 말하는 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아브락사스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신성하고 저주받은 단어를 말한다. 아브락사스는 하나의 단어와 행동으로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을 낳는다. 아브락사스는 왜 끔찍한 것일까 …

그것은 공허함과 결합하려는 풍부함이다.
그것은 자식을 갖는 신성한 일이다.
그것은 사랑이며 사랑의 살해이다.
그것은 성인이며 그 성인의 배신자이다.
그것은 가장 밝은 낮의 빛이며 가장 어두운 광기의 밤이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생명체이며 그 안의 생명체는 자신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플레로마와 그것의 공허함에 대한 크레아투라의 명백한 대립이다 …
그것은 크레아투라의 생명이다.
그것은 분명함의 작용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다 …
그것은 인간의 모습과 그림자이다.
그것은 환상 속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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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법칙의 절차에 대한 비판

 

 

 

 

 

 

지금까지 보편법칙 절차의 배경에 깔린 사상을 조명해보았는데 (칸트가 이 사상을 제기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여기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그중 몇 가지 문제들은 그 자체로는 비도덕적이지 않음에도 보편화하기 어려운 행위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화요일 1시 강의 때마다 꼭 걸상에 앉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그 걸상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면 앉을 자리가 비좁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를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사례로,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문을 빠져나가려 할 때, 자신이 기사도를 발휘하여 사람들을 모두 내 앞에 세우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때 사람들이 같은 행위를 한다면 그 문을 빠져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결과는 칸트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칸트의 보편법칙에 오류가 없는 한 이런 정도의 문제는 실상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넘겨버릴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결과 앞에서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도덕한 행위가 명백히 보편화할 수 있는 예를 살펴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강의하러 가는 길에 어린아이가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광경을 보게 된다. 나는 어린아이를 건져주지 않은 채 곧장 강의실로 향한다. 칸트는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돕지 않는 행위를 보편화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할 법하다. 칸트가 인간은 미약하고 유한한 존재이기에 그가 기획하는 일이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누구도 어느 누군가를 도와줘서는 안 된다면, 어떤 기획이나 야망 또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칸트는 이것이야말로 자기 모순이고 불합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기획이나 야망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무런 기획도 이뤄질 수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말이 안 된다. 도와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편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은 남을 도울 의무를 지고 있으며, 연못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건져주어야 한다. 자신의 행위가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건져낼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는 정도였다 하더라도 칸트는 이에 대하여 허용할 수 없는 행위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행위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예컨대, ‘시간에 늦지 않게 강의실에 들어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보편화하거나 허용할 수 있음 직한 구실이 될지 모른다. 여기서
칸트는 자신의 행위를 참되게 나타내는 표현이 무엇인가를 다시 문제 삼을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우리의 도덕적 상식에 비추어) 명백히 첫 번째 표현이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타당한 표현이었다고 하더라도, 칸트의 이론은 형식주의적이어서 상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는 우리의 행위에 관한 어떤 표현이 과연 타당한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우리의 행위가 보편성을 검증받으려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설명이 그의 이론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 한, 보편법칙의 절차는 사실상 공허한 것에 머물 것이다. 어떤 행위건 간에 다시 표현하기만 하면 보편성 검토를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제쳐 놓더라도, 합리성에 대한 칸트의 주장에 또 다른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는 어떤 사람이 이성적 행위자로서 어떤 행위를 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곧 다른 누군가가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좀 더 기술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칸트주의자들은 인간이 하나하나의 행위를 통해 보편적인 입법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우리는 모든 인간 혹은 모든 이성적 존재를 위해 법을 세우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모든 사람의 법이 될 수 있도록 아니면 모든 사람이 행위해야 할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성적인 존재로 사는 길이라고 칸트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이 논의를 더 깊이 살펴볼 여유는 없지만, 이러한 합리성의 개념이야말로 몹시 획기적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 개념은 잘 알려진 다른 개념들과는 무척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이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합리성의 개념에 따르면, 개인의 기대효용을 최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개인의 선호나 욕구를 최대한으로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견해는 실제로 적용 가능한 합리성은 다만 도구적 역할을 할 뿐이라는 데이비드 흄의 견해에 바탕을 둔다. 흄에 따르면, 이성은 우리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하고 욕구충족을 어떻게 최대화하는가에 관련되며, 다른 것일 수 없다. 흄에게 이성은 ‘감정의 노예’일 뿐이다. 합리성에 관한 흄의 견해는 칸트의 견해보다 훨씬 단순해보인다. 흄의 견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견해가 인간이란 존재에 관해 이미 알려진 일부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너무 단순하다거나, 인간의 행위에 대한 환원적 견해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히 불합리한 일이기에 흄의 견해는 적어도 우리가 합리성이라 부르는 것의 일부를 파악하고 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직관적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이와 달리 칸트의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록 탈세한 돈을 쥐고 달아날 수 있다 하더라도, 탈세는 불합리하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설득력을 강화해야만 한다.
칸트의 견해에 대한 마지막 비평은 비단 보편법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칸트 윤리학의 전반에 관한 것이다. 그 취지는 대체로 칸트의 윤리학이 나쁜 것으로 지목하지 않은 나쁜 행위들이 적지 않으며, 나쁜 것으로 지목한 행위라 하더라도 옳은 이유를 들어 지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폭력범죄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고통을 주는 행위는 특히 나쁜 행위다. 그런 행위를 단순히 보편화할 수 없기에 나쁜 행위라고 기술하는 것은 그런 행위가 왜 나쁜지에 대한 설명에서 중요한 측면을 빼놓은 셈이다. 이런 생각이 옳건 그르건 간에 내가 이 침해행위에 속상해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칸트는 차라리 자신이 실제로 주장한 것을 조금 수정하여 사람을 목적 자체로 대우하지 않았기에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폭력행위는 개인적인 영역에 쳐들어와서 무엇을 강압하는 행위다. 행위의 공격성이 그 행위를 나쁘다고 지목하게 할 뿐 아니라 나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한층 나쁘다. 그런데도 칸트의 견해에는 공리주의자들이 도덕문제에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하고 타당한 기준으로 생각하는 고통과 고생을 타당한 도덕적 기준으로 고려하는 내용의 언급이 전혀 없다. 칸트는 인간을 순전히 이성적인 행위자로 바라보았기에 육체적 괴로움 따위는 하나의 우연으로만 다룬다는 비평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비평이 옳건 그르건 나쁜 행위를 지목하는 데 괴로움이나 고통이라는 중요한 기준을 도외시한 것은 도덕이론으로서 큰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하게 평결하자면, 칸트의 윤리학은 (기만이나 강압 같은) 일부 행위들의 나쁨을 훌륭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그것만이 도덕의 전부인 듯 여기는 미흡한 점이 있다. 그 결과 칸트의 윤리학은 공정하게 말해서, 하나의 포괄적인 도덕이론이 될 수 없다는 비평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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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곡선미는 환비연수에 따른다

 

 

 

<시경詩經국풍國風>에 부여응지膚如凝脂 수여유이手如柔荑라 하였다. “응고된 하얀 기름처럼 살결이 하얗고 매끄러운 아름다운 피부와 금방 새로 돋아난 어린 나무의 잎새처럼 보드라운 손이란 뜻이다.

고대의 미적 표준에 신체곡선미준순환비연수身體曲線美遵循環肥燕瘦 각유편호各有偏好 대면부요구교위강구對面部要求較爲講究 액이액두관활額以額頭寬闊 미여유엽신월眉如柳葉新月 안사함소용안眼似含笑龍眼 비약총관鼻若蔥管 이대장수耳大長垂 구약앵도口若櫻桃 치여편패齒如扁貝 면여압당面如鴨蛋이라 하였다.

신체의 곡선미는 환비연수에 따른다. 환비연수란 양귀비는 뚱뚱했으나 미인이었고 조비연은 바싹 말랐으나 미인이었다는 뜻이다. 즉 신체의 곡선미는 각양각색이나 모두 나름대로 독특한 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마는 넓어야 미인이고 눈썹은 수양버드나무 잎처럼 가늘거나 초생달처럼 생겨야 하며, 눈은 웃음을 띠고 있는 용의 눈과 같아야 한다. 코는 파의 밑둥처럼 생겨야 하며, 귀는 크고 늘어 뜨려져 있어야 하고, 입술은 앵두와 같아야 하며, 이빨은 납작한 패모貝母 같아야 하고, 얼굴 전체 모양은 오리알 ,처럼 생겨야 미인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송옥宋玉의 저서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에 미인의 표준을 증지일푼즉태장增之一分則太長 감지일푼즉태단減之一分則太短 저분즉태백著粉則太白 시주즉태적施朱則太赤 미여취우眉如翠羽 기여백설肌如白雪 요여속소腰如束素 치여함패齒如含貝라 하였다.

일 푼을 더하면 너무 길고 일 푼을 감하면 너무 짧은 적당한 크기이며 분을 바르면 너무 희고 연지를 바르면 너무 붉고 눈썹은 물총새의 깃과 같고 살은 백설과 같이 희고 허리는 가늘어서 없는 것 같고 이빨은 패모貝母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아야 한다.”

고대인들은 화장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였다. 부족한 점을 가리고 수식하는 화장술이 발달하였다. 양귀비는 겨드랑이에서 악취가 많이 났다. 그래서 양귀비는 항상 향탕香湯에 목욕했다. 그리고 양귀비의 의상에서는 항상 짙은 향기가 물씬 풍겼다. 그러므로 양귀비의 몸에서 풍기는 짙은 향수 냄새는 양귀비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코를 찔렀다.

나라 장폐張敝의 부인은 눈썹에 큰 흉터가 있어 보기 싫었다. 장폐는 부인의 눈썹에 있는 큰 흉터를 엄폐하기 위해 매일 아침 부인의 눈썹을 그려 흉터를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 말이 한나라 8대 왕 선제宣帝(기원전 73기원전 49)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선제는 장폐에게 애처가라는 칭호를 달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나라 때 사용된 화장의 명칭을 보면 낙매장落梅粧, 제장啼粧, 최장催粧, 홍장紅粧, 효장曉粧, 취장醉粧, 루장淚粧, 도화장桃花粧 등이 있다. 눈 화장을 보면 원앙미鴛鴦眉, 소산미小山眉, 오악미五岳眉, 삼봉미三峯眉, 수주미垂珠眉, 월능미月棱眉, 불운미拂雲眉 등이 있으며, 귀걸이를 달기 위해 귓불에 구멍을 뚫는 천이법穿耳法이 발달하여 당나라 때 이미 금, , 진주珍珠, 등으로 만든 귀걸이를 여자들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분속에 연분鉛粉을 포함시키는 화장술도 알고 있었다. 둥그렇게 틀어 올린 쪽머리를 숭상했으므로 옥잠玉簪, 금화金花 등을 두발 장식에 사용했다. 여성들은 크고 길고 넓은 옷소매가 달린 옷을 즐겨 입었다.

나라 때의 민요民謠에 성중호고계城中好高髻 사향고일척四向高一尺 성중호광미城中好廣眉 사방차반액四方且半額 성중호광수城中好廣袖 사방차필백四方且匹帛이란 노래가 있다. “성안에 사는 부녀자들이 높은 쪽머리를 좋아하여 쪽머리의 전후좌우에 한 자 쯤 솟아 올라와 뿔이 달린 것처럼 쪽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으며 성안에 사는 부녀자들은 넓은 눈썹을 좋아했으므로 이마의 절반쯤 차지하는 네모난 눈썹을 그리고 다녔다. 성중의 부녀자들은 넓은 옷소매를 좋아했으므로 네모난 옷소매에 대략 한 필의 비단이 들어갔다.”

전국시대의 미인 서시西施는 삼층 쪽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으며, 나라 때의 미인 왕소군王昭君은 둥근 구름처럼 쪽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고, 한나라 말기의 미인 초선貂嬋은 쌍환형雙環形 쪽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으며, 당나라 때의 미인 양귀비楊貴妃는 높은 구름 같은 쪽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다고 한다.

중국 고대의 시가詩歌 중에 미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특히 당나라 때에는 시가가 한창 성행하던 시기였다. 당나라의 시인 주경여朱慶餘<규의헌장수부閨意獻張水部>에 갓 결혼한 새색시의 화장에 관한 시 한 수가 있다.

 

작야동방정홍촉昨夜洞房停紅燭 대효당전배구고待曉堂前拜舅姑 장파저성문부서粧罷低聲問夫婿 화미심천입시무畵眉深淺入時無

어제 밤 신혼 초야의 붉은 촛불을 끄고 나서, 아침 일찍 시부모님께 배알하려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네! 화장을 하다 중지하고 남편의 귓가에 입을 대고 귓속말로 여보! 시부모님을 뵈러 갈 때 눈썹을 진하게 그려야 하는지 약하게 그려야 하는지 어떤 것이 예의상 맞는 것인가를 물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납일臘日>이란 시에서 여성 화장품을 찬미하였다.

 

납일상년난상요臘日常年暖尙遙 금년납일동전소今年臘日凍全消 침능운색환훤초侵凌雲色還萱草 누설춘광유유조漏泄春光有柳條 종주욕모양야음縱酒欲謀良夜飮 환가초산자신조還家初散紫宸朝 구지면약수사택口脂面藥隨思澤 취관은앵하구소聚管銀罌下九宵

평년에 보면 일반적으로 납일臘日(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로 납평臘平, 가평嘉平, 가평절嘉平節, 납향일臘享日이라고도 한다) 경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었는데, 금년에도 납일엔 얼음이 모두 녹아버렸구나! 원추리가 일찍 돋아나와 구름 빛을 무색케 하고 버들가지는 봄소식을 미리 암시하여 남모르게 알려주고 있구나! 즐겁고 기쁜 밤을 기대해보니 술을 맘껏 마시고 싶구나! 부인과 처음 헤어졌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궁궐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 같구나! 화장을 하고 있는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애정이 싹트는구나! 부인이 은색 술 항아리를 내 앞에 가져다 놓으니 선계仙界에 온 것만 같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장한가長恨歌>에 다음의 시가 있다.

 

한황중색사경국漢皇重色思傾國 어우다년구부득御宇多年求不得 양가유녀초장성楊家有女初長成 양재심규인미식養在深閨人未識 천생여질난자기天生麗質難自棄 일조선재군왕측一朝選在君王側 회모일소백미생回眸一笑百媚生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춘한사욕화청지春寒賜欲華淸池 온천수활세응지溫泉水滑洗凝脂 운빈화안금보요雲鬢花顔金步搖 부용장난도춘소芙蓉帳暖度春宵 춘소고단일고기春宵苦短日高起 종차군왕부조조從此君王不早朝

한나라 황제 여자를 좋아하여 절세미인 찾았으나 임금된 지 오랫동안 얻지 못하였네! 양씨 집안의 딸 성장하여 예쁜 처녀가 되었으나 규방에 깊이 묻혀 사니 아는 이 없어라! 타고난 아름다움 어디 갈소냐. 어느 날 아침 황제 곁에 가게 되었구나! 아름다운 눈동자 한 번 굴려 웃으면 백 가지 아름다움이 솟아나니, 육궁의 미녀들을 무색케 하였구나! 싸늘한 봄날 화청궁에 목욕시켜 매끄러운 온천수 속에서 올라오니 백옥처럼 빛나는 살결! 귀밑에 머리카락 아름답게 흩날리고 꽃과 같은 그 얼굴에 금보용은 흔들흔들, 부용꽃 커튼 속에 봄밤이 무르익어 가네! 봄밤은 너무 짧아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 있고, 저 임금 오늘부터 오전 근무 없애버렸다네!”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와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읊은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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