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과 무업巫業
‘샤먼 shaman’은 퉁구스어에서부터 러시아어를 통해 유래한 말로 우리말 무당巫堂에 해당합니다.
샤머니즘Shamanism은 시베리아Siberia와 중앙아시아Central Asia에서 특히 두드러진 종교현상입니다.
무당을 중심으로 주술적呪術的, 종교적宗敎的 생활이 중앙 및 북아시아의 광대한 지역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무당이 유일한 성사聖事the sacrament의 담당자였다거나 그 사회의 종교생활을 장악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부족部族의 족장族長이 곧 부족 의례儀禮의 사제priest였으며, 많은 부족들의 경우 공희사제供犧司祭sacrificing priest가 무당과 공존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당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탈혼망아脫魂忘我(ecstasy) 체험이야말로 고귀한 종교적 체험으로 인정되는 지역에서 무당만이 접신接神being possessed of a spirit의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샤머니즘이란 접신술接神術을 말하는 것입니다.
탈혼망아의 전문가인 무당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천상계天上界로 올라가거나 지하계地下界로 내려가는 것으로 사람들은 믿어왔습니다.
7천天 혹은 9천을 넘나들듯이 7계階 혹은 9계의 지하계를 넘나들고도 살아서 돌이올 수 있는 자는 오직 무당뿐이란 뜻입니다.
무당이 영신靈神(spirit)에 들릴 때가 있지만, 영신에 들린 빙령자憑靈者(a person who possessed)를 무당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당은 사자死者, 악령惡靈, 그리고 자연의 영신들과 친교親交를 하더라도 이들의 도구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기의 영들을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무당은 “택함을 받은 사람”이란 뜻이며, 바로 이 때문에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가까이 갈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무당들의 이런 접신 체험이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성층成層, 신화나 의례 구조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극권北極圈이나 시베리아 그리고 아시아 여러 민족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신화와 의례는 이들 민족 무당들의 창작품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일반적인 종교적 체험의 산물이지 특별한 자질을 지닌 인물이나 접신술을 행할 수 있는 특권계급特權階級의 산물이 아닙니다. 무당은 종교적 체험을 남달리 강렬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그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과 구별됩니다.
무당은 탈혼망아의 체험을 통해 사람들을 치료하고 사자死者를 명계冥界(the nether world)로 인도하고 그들과 천상계天上界 및 지하계地下界에 있는 크고 작은 신들 사이에서 중보자仲保者(mediator)로 봉사奉仕하는 사람입니다.
무당은 공동체의 종교생활에서 길잡이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영혼靈魂을 수호守護하는 일까지 담당합니다.
무당만이 영혼을 볼 수 있는 까닭은 그만이 영혼의 모습과 영혼의 운명을 알기 때문입니다.
북극권,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주로 수렵이나 어업, 목축업이나 유목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어느 정도 유목에 종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종족적, 언어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더라도 종교에는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퉁구스족Tungus(최대 종족은 만주족), 사모예드족Samoyed 혹은 터키-타타르족Turkey-Tatar(서西 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주민의 총칭) 등 주요 종족들은 대개 천상계의 대신大神, 전능한 창조신創造神을 알고 있으며 이들을 섬깁니다.
이 대신의 이름은 때로는 ‘천공天空’ 혹은 ‘천상계天上界’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시베리아 북서부에 거주하며, 사모디족으로도 불리는 사모예드족의 눔Num, 동쪽 사할린으로부터 서쪽으로 예니세이 강을 걸치고, 또 북쪽은 야쿠티아 자치공화국의 극한極寒 툰드라 지대로부터 남쪽으로는 중국 동북(만주)지방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하여 만주-퉁구스어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인 퉁구스족의 부가Buga 혹은 몽고족Mongols의 텡그리Tengri, 시베리아 동부의 몽고족인 브랴트족Buryat의 텡게리Tengeri, 볼가 타타르족Volga Tatars의 텡게레Tangere, 벨티르족Beltir의 팅기르Tingir, 동부 시베리아의 터키 종족의 일파인 야쿠트족Yakut의 탕가라Tangara 등이 바로 이런 신들입니다.
이런 신들은 명칭이 구체적으로 ‘천공’이 아니더라도 그 명칭에는 하늘의 특징적인 성격을 표상하는 말, 예를 들면 ‘높은’, ‘우뚝 솟은’, ‘찬란한’ 등의 말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르티시Irtysh의 오스티야크족Ostyak이 섬기는 천신天神의 이름은 생케Sanke이며, 이는 ‘찬란하다, 빛나다, 밝다’의 뜻입니다.
생케를 두고 야쿠트족은 “세계의 추장이신 아버지 주님”이라 부르고, 알타이 타타르족은 “흰빛Ak Ayas”, 코리야크족Koryak은 “높은 곳에 계시는 분”, “높은 곳에 계시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터키-타타르족은 북방과 동북방의 인접 민족들 이상으로 천상의 대신을 지극히 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천상의 대신을 ‘추장’, ‘주인’, ‘주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천상天上에 사는 이 천신天神에게는 몇몇 아들과 사자使者가 있습니다.
이들은 천신에게 딸린 한편 천신의 처소處所보다는 낮은 천공天空에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이나 숫자는 민족民族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곱이나 아홉 ‘아들 신神’ 혹은 ‘딸 신神’이 등장하는데, 무당은 바로 이들과 예사롭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 천신의 아들 신, 사자 혹은 종들은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인간을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이들의 수는 민족에 따라 많아지기도 합니다.
브랴트족, 야쿠트족, 몽고족의 경우 두드러지는데, 브랴트족의 경우 55위의 선신善神과 44위의 악신惡神이 있으며 그들은 영원히 대립합니다.
터키-타타르족에게 여신女神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지신地神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쿠트족에게는 대지大地의 여신상도 없으며 따라서 대지의 여신에게는 제물도 바치지 않습니다.
터키-타타르와 시베리아 민족에게 몇몇의 여신들이 있으나, 이들은 여성만을 위한 신들이고 이들이 맡아서 참섭參涉하는 분야도 출산이나 아기들의 질병을 돌보는 일 정도입니다.
여성의 역할이 샤머니즘 혹은 접신술 전통에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지만, 신화神話에서 여성의 역할은 미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