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 있어서 예술관의 기초로 기능하는 것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헤겔의 말에 주목하면서 적었다.
헤겔의 말에 대한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의 배후에는 그리스 이래의 서양적 사유가 놓여 있기 때문인데, 그러한 서양의 사유는 이미 발생한 존재자의 진리에 상응한다.
만약 이 말에 대한 결정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것은 이러한 존재자의 진리로부터, 그리고 존재자의 진리를 넘어서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이 말은 효력이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 명제가 말하고 있는 진리가 궁극적인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50)
헤겔에 있어서 예술관의 기초로 기능하는 것은 예술미가 자연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예술미란 ‘정신으로부터 태어나고 다시 태어난’ 미인 바, 정신과 그 산물이 자연과 그 현상들보다 높이 위치하는 만큼 예술미 역시 자연미보다 높기 때문이다.”
헤겔은 미술품을 다음 세 가지 규정 하에 파악한다.51)
1 미술품은 결코 자연의 산물이 아니며 인간의 활동을 통해 산출된다.
2 그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지며, 그것도 인간의 감성을 위하여 어느 정도이든 감성적인 것으로부터 뽑아낸다.
3 그것은 자신 안에 목적을 지니고 있다.
쿨터만은 이런 세 가지 전제 하에 헤겔은 예술이 유한성의 내용과 형식들로부터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감성적인 것과 현상하는 것 속에서의 절대(정신)의 현존이자 화해이며, 또한 궁극적으로는 진리의 전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면서 헤겔의 말을 인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감성적인 것은 예술에서 정신화된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은 예술 속에서 감성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52)
헤겔은 미가 감각적 외관을 한 절대정신의 현현이라고 했는데 미를 관념의 현시로 본 옛이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같아 폭넓게 받아들여졌고, 그의 이론은 유럽의 여러 나라로 알려졌다.
꾸쟁V. Cousin(1792-1867)은 “사물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어떤 관념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한 번 더 분명히 하기 위해 헤겔은 위대한 상에 호소했다.
우리가 인간의 모습에 대해, 짐승의 몸과는 달리 인간의 겉모습에서는 어디서나 생동하는 마음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예술에 대해서는 예술이 현상하는 것을 그 겉모습의 모든 지점에서 가시화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다.
… 따라서 예술에 대해서는, 내적 영혼과 정신성이 현상의 모든 지점에서 보여짐으로써 예술은 각각의 형태들을 천 개의 머리를 가진 거인으로 만들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53)
예술 안에 놓여 있는 목적에 관해 말했다.
“예술은 감성적 예술형상물의 형식 속에서 진리를 밝히며, 화해된 대립을 제시하도록 부름 받고 있으며, 그 자신 안에 있는 궁극목적을 이렇게 제시하고 밝히는 가운데 있다고 주장될 수 있다.”54)
쿨터만의 말대로 헤겔은 분명, 외적인 예술의 목적은 결코 예술의 본질과 들어맞지 않는다는 확신, 그리고 교훈, 순화, 개선, 영리, 명성과 명예를 위한 노력 등이 모두 외적인 예술의 동기로 평가되지 않으면 안 되며, 예술적인 것의 본질에는 부적합하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헤겔학파의 사상가 피셔Friedrich Theodor Vischer(1807-87)가 예술에 의한 실재의 모방을 반박하는 글을 1846년에 출간한 『미학 Asthetik』에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예술의 목적은 결코 예술의 본질과 들어맞지 않는다는 헤겔의 미학을 구체적으로 해석한 느낌이다.
실재는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없다는 피셔의 추론을 타타르키비츠는 다섯 항목으로 요약했다.
1 실재는 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2 실재가 조정되지 않는 무수한 물체들로 구성되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이상, 실재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3 실재는 생의 과정에 종속되어 있고 미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갖고 있으므로 아름다울 수가 없다.
4 만약 실재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일시적이고 비영구적인 미이다.
5 실재가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가 미학자의 눈으로 실재를 주목하기 때문인 것이다.55)
피셔는 예술의 목적이 미를 창조하는 것, 즉 실재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도달하는 것이므로 예술이 실재의 모방이라는 오래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타당하지 않음을 주장했다.
피셔는 인간의 욕구에 맞춰진 인간적인 미를 창조하는 것을 예술의 목적으로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