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적, 상징적, 추상적 기호들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클레는 칸딘스키의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읽고 색채에 대한 이해가 증대되었다.
칸딘스키가 가지고 있던 색채에 대한 심리적 효과는 클레가 추구하던 점이기도 했으므로 그는 칸딘스키의 색 이론에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 이입>과 <고딕 미술에서의 형태의 문제 Formprobleme der Gotik>(1912)는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클레는 1916년 3월 11일 독일군으로 징집되었다.
세계대전 중 부자유스러운 상태에서 그는 표현수단으로 숫자, 알파벳, 느낌표, 정지부호, 화살표, 별, 깃발, 눈, 심장 같은 형상적, 상징적, 추상적 기호들을 주로 사용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는 자연 형태들 대신에 십자가, 활, 창살, 점 모양 등을 사용했다.
이런 기호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연과 결부된 한계에서 벗어나 무한한 표현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예술가의 손은 “낯선 존재 의지의 전적인 도구”라고 했다.
기호와 상징은 다의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논리적인 하나의 의미로 확정지어지지 않는다.
그가 작품에 시적인 제목을 붙였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창조에의 고백 Schopferische Konfession>(1919)에서 자신이 표현한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다.
<급강하하는 새와 화살표>(1919)에서 급강하하는 새는 비행기처럼 보이는데 그는 한 해 전에 <새-비행기>를 이런 형태로 연필로 드로잉한 적이 있다.
연필 드로잉은 비행학교에 복무할 때 그린 것으로 자신의 머리 위를 떠다니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새라는 생각이 든 것으로 짐작된다.
직사각형들을 연결시키면서 연결되는 부분에 점을 찍고 새 다리와 머리를 그려 넣어 새처럼 보이는 비행기구가 되게 했다.
드로잉에서는 하단에 작은 화살표를 두 개 그려 넣었지만 수채화에서는 큰 화살표 세 개를 그려 넣어 하강의 방향을 가리켰으며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드로잉을 작품을 완성하는 준비과정으로 삼았으며, 한 점의 드로잉에서 여러 점의 작품을 고안해내기도 했고, 때로는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다시 작품의 출처가 되게 사용했다.
<하강하는 새>는 드로잉 <하강하고 활주하는 새>를 그린 후 구성을 정리하여 완성시킨 작품이다.
그는 1918년 3월 8일 비행학교에서 폭격수 게오르그 슈미트의 비행기가 추락하여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 날 목격한 충격이 <하강하는 새>를 그리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일기에 적었다.
“이번 주 나는 세 차례에 걸친 치명적인 사건을 목격했는데 한 사람은 프로펠러에 부딪혔고 두 사람은 공중에서 충돌했다. 어제는 네 번째의 사람이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지붕 위로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일 년 후 클레는 그 날의 사건을 머리에 떠올리며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하강하는 새 모양을 모사하면서 비행기에 13이란 숫자를 적어 넣고 오른편에 하강하는 방향을 화살표로 크게 그려 넣어 하강의 속도가 매우 빨랐음을 시사했다.
숫자 13은 비행기에 적힌 넘버일 수도 있고 불운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화살표는 이후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