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장액맥락망막병증이 무엇입니까?

 

 

안구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신경조직으로 안구 내로 들어온 빛이 망막의 내층을 지나 망막의 시세포에 감지됩니다. 시세포는 빛 정보를 다시 전기적 정보로 전환하고 이 정보는 망막 내층의 세포를 통해 시신경을 지나서 뇌로 전달됩니다. 이런 과정으로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안구의 가장 바깥쪽은 무혈관성 섬유층(각막, 공막), 중간층은 혈관성 조직인 포도막(홍채, 섬모체, 맥락막)으로 중간층인 맥락막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신경조직이 망막retina입니다. 사람의 망막은 약 1억 개의 막대세포와 6백만 개의 원뿔세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망막에서 나오는 대사물질은 망막의 가장 바깥층인 색소상피층을 통해 배출됩니다. 망막의 안쪽은 망막에 분포하는 망막혈관을 통해, 바깥쪽은 맥락막의 모세혈관을 통해 필요로 하는 영양분 및 산소를 공급받으므로 망막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두 혈관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과 유사한 작용을 하나 실제로는 카메라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빛 에너지가 망막 시세포의 시색소에 흡수되면 전기적 에너지가 발생하고 이는 망막 내층에서 증폭되어 뇌로 전달됩니다. 광수용체층 중 원뿔세포는 비교적 밝은 빛에 반응하고 빛의 여러 파장을 탐지할 수 있고 막대세포는 어두운 빛에서 기능을 하며 초록색의 단일파장에서 최대로 반응합니다.

중심장액맥락망막병증CSC(Central Serous Chorioretinopathy)이란 망막의 중심부에 투명한 액체가 고임으로써 경계가 분명한 원형의 망막박리가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주로 망막과 망막 색소상피층 사이에 액체가 고이게 됩니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8-9배 많이 발병하며, 30-40대의 젊은 연령층에 잘 생기는 질환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스트레스에 민감한 성격의 환자에게서 많이 발견되며, 스트레스와 관련된 혈액성분이 기본적으로 증가되었다는 보고를 근거로 과로와 스트레스가 관여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피부과약이나 관절염약, 한약 등에 많이 들어가는 스테로이드라는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도 생길 수 있으므로 이런 약물을 투여 중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질 코르티코이드(글루코 코르티코이드)의 생성을 자극하는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이 과도하게 많이 분비되거나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과 상관없이 부신에서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너무 많이 생산하는 쿠싱 증후군Cushing’s syndrome,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 임신 동안에 혈중 스테로이드 수치가 증가함으로 발병할 수도 있습니다.

중심장액맥락망막병증의 증상으로는 망막 밑에 고이는 액체의 양과 범위에 따라 1.0에서 0.1까지 다양한 정도의 시력저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눈앞에 둥근 동전 같은 것으로 가려진 것 같은 증상이 생기며, 사물이 어둡게 보이거나, 작게 보이거나, 멀리 보이는 증상을 느끼기도 합니다.

예후는 좋은 편으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면 3개월 내에 대부분 호전을 보입니다. 그러나 재발이 흔한 병으로서 약 반수의 환자가 살면서 이 병의 재발을 경험하게 되므로 생활 중에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개월 이상 만성경과를 밟는 경우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영구적인 시력손상을 남기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광역학 레이저치료나 유리체강내 항체 주사술로 좋은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므로 주치의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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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족과 조선족朝鮮族

 

 

고대 아시아 동부의 종족은 핀우그르어파와 사모예드어파의 두 관련된 언어들로 구성된 우랄어족Uralic languages과 중국티베트어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핀우그르어파에는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랩어 등을 포함하는 핀어군과 헝가리어 등을 포함하는 우그르어군이 있으며, 사모예드어파에는 네네츠어, 에네츠어, 셀쿠프어, 가나산어 등이 포함됩니다. 이 두 어파는 7000∼1만 년 전에 우랄산백 북쪽지방에서 쓰였던 한 공통 우랄조어에서 발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 년 넘게 핀우그르어와 사모예드어는 하위 언어군으로 다양하게 분기되었으나 그들 공통 근원의 특징들을 얼마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티베트어족은 동쪽에 분포하는 중국타이어파와 서쪽의 티베트버마제어로 대별됩니다. 중국민족 가운데 중국티베트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민족은 중국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입니다. 한족은 세계 최대의 민족으로 2000년에 총인구가 13억을 넘었습니다. 형질적으로는 인도에서 동아시아 대륙, 태평양제도 및 아메리카대륙에 분포한 몽골로이드Mongoloid(Mongolide라고도 하며 황색인종을 말한다)에 속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키가 크고 머리가 큰 화북華北형, 그보다 몸이 작고 머리가 작은 화남華南형 등 지방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언어도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와 한자가 사용되고 있지만, 지방에 따라 언어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한족은 황허黃河의 중ㆍ하류 유역인 화북華北 일대에 분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서쪽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황허 강 유역에서 대하大河 문명을 개화시킨 이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점차 중국 중ㆍ남부 지역을 뜻하는 화중華中, 화남華南 지역까지 그 세력을 뻗쳐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지방 선주민들을 한문화에 동화시켰습니다. 특히 양쯔 강 유역 이남은 기원 전후의 한대漢代까지 선주민의 세력이 강해서, 중국어 이외의 언어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선주민의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먀오족苗族, 야오족瑤族, 리족彛族 등 소수민족으로서 특색 있는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남부에 주로 거주하는 약 250만의 소수민족 먀오족苗族은 한족이 부른 명칭으로 苗 혹은 苗族이라고도 쓰이지만 그 기원은 오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남부의 만족蠻族을 가리킨 명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몽Mhong, 멩Mheng, 아마오Ah-Hmao, 믈란Hmlan 등으로 자칭하고 있습니다. 먀오족의 역사와 민족이동의 경로는 명백하지 않지만, 일찍이 양쯔 강 이북에 있었으나 한족의 진출에 밀려 남하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먀오어語 계통은 정설이 없으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계의 몬크메르어語와 관련이 있습니다. 먀오는 헤이먀오黑苗, 화먀오花苗, 바이먀오白苗, 홍먀오紅苗, 칭먀오靑苗의 다섯 종으로 대별되며, 복장의 빛깔에 따라 구별됩니다.

중국 남부의 산지에 주로 거주하는 야오족瑤族을 중국에서는 야오瑤로 표기하는데, 푸젠福建, 저장浙江의 서畬도 이 민족의 분파입니다. 베트남에서는 만蠻이라고 부릅니다. 언어의 계통은 여러 설이 있어 확정된 바 없습니다. 원주지는 둥팅호洞庭湖 부근이며, 12, 13세기경 현재의 거주지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전火田 경작을 하며, 작물은 밭벼, 옥수수, 기장, 타로토란 등이 있는데 광둥, 광시에서는 계단식 관개전灌漑田에 의한 논벼경작도 많이 합니다.

먀오족苗族, 야오족瑤族, 리족彛族 등은 중국티베트어족으로 분류되지만 흉노족匈奴族과 조선족朝鮮族은 우랄어족으로 분류됩니다. 중국 고대 북방 초원지역의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인 흉노족은 기원전 3세기부터 몽고고원과 중원지구에서 약 300년 동안 활동하면서 중국의 북방 변경을 개척하고 중국의 찬란한 역사문화를 창조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흉노를 순유淳維라고도 합니다. 춘추시대 말기에 흉노족과 중원 한족의 교류가 점차 증가하여 그들은 한족의 농업기술을 배웠으며, 특히 중원의 철기문화를 수입하여 흉노사회의 발전을 더욱 촉진시켰습니다. 전국시대 후기에 흉노족은 원시씨족제에서 노예제 단계로 넘어가면서 약탈성이 날로 증강되어 흉노 귀족의 기병들이 자주 변경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했습니다. 이에 진秦나라, 조趙나라, 연燕나라는 지형에 따라 장성을 수축하여 흉노족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진나라는 통일을 이룩한 후 모든 장성을 연결시켰는데, 후세에는 그것을 일러 바로 만리장성이라 합니다.

흉노족 일부가 동유럽으로 들어갔으며, 그 지역 사람들은 그들을 흉인匈人이라 불렀습니다. 후에 그 지역 토착민족과 융화되어 지금의 헝가리인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고비사막 북부의 초원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남으로 이주하여 국경 안으로 들어온 흉노족은 동한 말기에 일부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조가 되는 조조曹操에게 일부는 원소袁紹에게 각각 붙어 북중국의 할거 전쟁에 가담했습니다. 그 후 고대 남만주에서 몽골지방에 걸쳐 산 유목민족인 선비족鮮卑族과 선비족과 마찬가지로 고대 동호 계통에 속하며 선비족과 근원이 동일한 유연족柔然族이 연이어 일어나 고비사막의 남북으로 들어와 흉노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일부는 완전히 선비족이나 유연족에 융화되고, 일부는 새로운 부족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정권 교체가 빈번하고 계급갈등과 민족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 과정 속에서 흉노족은 직접 한족에 융화되기도 하고, 혹은 먼저 다른 소수민족에 융화되었다가 다시 한족과 뒤에 일어난 북방 소수민족에 융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융화를 거치면서 흉노라는 이름은 남북조 이후 사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흉노족과 함께 우랄어족으로 분류되는 조선족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東北三省과 그 밖의 중국 땅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을 말합니다. 조선족 공동체가 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1860년대로 보는 것이 일반입니다. 1870년 만주에 거주한 조선족의 수는 77,000명에 달했고, 1900년에는 220,000명으로 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1,700,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해방 후 79만 명의 조선인이 귀국했고, 1953년 센서스 보고에 따르면 중국 내의 조선족의 수는 1,120,000명으로 보고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2,762,160명으로 늘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조선족의 민족자치권을 인정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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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검하수ptosis(눈꺼풀처짐)가 무엇입니까?

 

 

안검하수ptosis(눈꺼풀처짐)는 눈꺼풀을 올리는 눈꺼풀올림근의 힘이 약해서 눈거풀이 아래로 처지고 눈꺼풀 틈새가 작은 상태를 말합니다. 안검하수는 태어날 때부터 있는 선천성 눈꺼풀처짐과 여러 원인들에 의해 발생하는 후천성 눈꺼풀처짐이 있습니다. 안검하수의 정의는 눈꺼풀이 충분히 떠지지 않아 눈이 원위치에 있을 때 (정면을 바라볼 때) 눈의 중심 위치인 중심각막되비침midcorneal reflection과 윗눈꺼풀 가장자리 사이의 거리가 2mm 이하이거나 두 눈의 이 거리의 차이가 2mm 이상인 경우입니다.

실행증이 나타나면 말초신경과 근육에는 이상이 없지만 대뇌로부터 적절한 명령이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에 눈꺼풀처짐이 발생합니다. 일부 뇌간(뇌줄기)에서 삼차신경과 눈돌림신경의 이상연접이 발생하면서 입을 벌리거나 턱을 한 쪽으로 움직일 때 눈꺼풀처짐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꺼풀처짐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눈꺼풀이 처져서 검은 눈동자의 1/3이상을 가리고 있다. 졸린 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양쪽 눈의 크기가 차이가 많이 난다. 눈을 뜰 때 눈썹을 위로 치켜뜨는 버릇이 있다. 한쪽 눈썹이 많이 올라가 있어 양쪽 눈썹의 위치가 다르다. 눈썹을 위로 치켜떠서 이마 주름이 심하다.

 

후천성 눈꺼풀처짐은 노인성 변화, 외상이나 수술 후 눈꺼풀올림근의 손상 혹은 악화, 신경성질환, 종양, 그리고 전신성 질환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눈꺼풀올림근의 기능 약화나 눈꺼풀에 붙어있던 눈꺼풀올림근이 떨어져서 눈거풀이 아래로 처지는 노인성 눈거풀처짐이 가장 많습니다. 치료는 눈꺼풀올림근의 기능에 따라서 수술 방법이 정해집니다. 나이 든 환자에게서 발생하기 때문에 늘어진 피부를 제거하는 눈거풀성형술을 함께 합니다.

눈꺼풀처짐 수술 후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수술 후 정면을 볼 때에는 정상이지만, 아래를 쳐다볼 때에는 수술로 위로 당긴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 눈 위의 흰자위가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한쪽 눈만 수술한 경우에는 아래쪽을 보면 양쪽 눈의 높이가 차이 납니다. 아래를 볼 때 턱을 내리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여 대인관계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눈꺼풀처짐 수술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조금씩 다시 작아지는 재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보통 눈꺼풀올림근의 기능이 나쁠수록, 눈꺼풀처짐의 정도가 심할수록 재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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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의 최후

 

 

안창호의 입원 소식을 듣고 미국의 동지들이 치료비를 송금해왔습니다. 그를 스승처럼 따르던 이광수는 고급 한약을 보냈지만 합병증으로 인해 병세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창호는 경성제국대학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엄중한 경계를 무릅쓰고 병실로 그를 위문하고, 혹은 식료품을, 혹은 금전을 두고 간 독지가도 있었습니다. 안창호의 제자인 박정호 등 그의 입원 중 시중을 들었으며 나중에는 그의 독립 운동 동지인 이갑의 딸 이정희가 거들면서 번갈아가며 그의 시중을 들며 끝까지 지성껏 병간호를 했다고 합니다. 윤치호와 이광수, 김성수 등이 병원비를 지불했고 수시로 그를 찾아 문안했습니다.

이광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도산의 병상에 임종까지 붙어있던 이는 그의 생질 김순원과 또 청년 박정호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미움을 받아가면서 도산의 병실에 매일 출입하여 비밀히 외계와 연락하는 일을 한 것은 오吳 모某였다. 오씨는 이번 수양동우회사건에 기소유예로 석방된 이로서 도산을 아직도 찾아다닌다 하여 경찰에서 여려 번 다시 잡아넣는다는 위협을 받았다. 조각가 이국전李國銓이 도산의 데스마스크를 떴으나 그것은 빼앗기고, 이국전과 그의 선생 김복진金復鎭은 경찰의 추포追捕를 당하였으나 하룻밤의 유치와 후욕만으로 면하였다.

 

훗날 전하는 말로는 안창호는 타계 전날인 3월 9일에도 어디 조용한 집을 하나 얻어 거기서 정양하기를 원하여 방문한 사람들에게 집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무의식 상태에 빠졌고, “목인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 하고 웅장한 음성으로 복도에까지 울리도록 몇 차례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유언도 없이 자정이 넘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명은 간경화와 폐렴 등의 합병증이었습니다. 머리맡에는 외조카 김원순과 조카딸 안성결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순원金順元은 이듬해에 보통전문학교 학생으로서 사상사건으로 검거되어 2년 후에 옥사했다고 합니다.

안창호의 유해는 시체실로 옮겨졌습니다. 이광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도산의 친형 치호와 친매 김성탁 목사 부인과 질녀 맥결 등이 오고, 평양에서는 도산의 평생의 친우요 동지인 오윤선, 조만식, 김지간 등이 왔다. 장례에 관하여서는 경찰의 간섭이 심하고 또 주장할 사람이 없어서 2, 3일 장지를 결정치 못하다가 마침내 동대문 밖 망우리 묘지로 정하고 20인 이내에 한하여 장지까지 가기를 허락한다는 경찰의 명령으로 극히 적막하게 장송하였다. 묘지 들어가는 데는 그 뒤 수주일이나 양주 경찰서원이 파수하여 묘지에 들어가는 사람을 수하誰何(누구냐고 불러서 물어 보는 일)하였고, 그 후에도 1년간이나 묘직墓直(남의 뫼를 지키고 거기에 딸린 일을 보살피는 사람)에게 도산의 분묘를 묻는 사람이면 주소 씨명을 적게 하여서 도산의 산소를 찾는 이는 경찰이 모르게 정로로 가지 아니하고 길 아닌 데로 산을 올라야 하였다. 도산이 돌아가매, 미국 그 유족에게는 전보로 부고를 보내고 아무도 오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기록에는 안창호의 장례식을 흥사단과 수양동지회 회원들의 주도로 거행되었고, 윤치호, 이광수, 김성수, 여운형, 여운홍, 윤치영, 장택상 등이 참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만일의 소요사태를 막는다는 이유로 헌병을 보내 망우리 묘소 장지의 출입을 통제, 감시했습니다. 후에 강남구 신사동의 도산공원으로 이장되면서 그의 구 묘소가 있던 묘터(애제자 유상규의 묘소 뒷편)는 원형 보존되고 있습니다.

안창호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이승만은 그를 추도하는 한자로 된 만시晩詩를 지어 보내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 뒤 윤치호와 이광수, 김성수 등에 의해 추도식이 지속되었고, 해방 후에도 김구의 귀국 이후, 김구, 김성수, 이광수 등에 의해 추도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제1공화국 기간 중에도 흥사단과, 그를 존경하던 김성수, 장택상, 그리고 한때 그의 수양동우회 회원이었던 조병옥 등에 의해 계속 추모 사업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1962년 안창호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훈 1등)이 추서되었습니다. 그 뒤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으로 미국에 매장된 아내 이혜련의 시신과 함께 이장, 안장되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인터체인지(2002년)와 우체국(2004년)이 세워졌으며, 2012년 1월에는 애틀랜타에 있는 마틴 루터 킹 센터 내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헌액獻額(공을 인정받아 명예로운 자리에 올려지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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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증vitreous floaters(혹은 날파리증)이 무엇입니까?

 

 

비문증vitreous floaters(혹은 날파리증)은 눈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으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점이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위를 보면 위에 있고, 우측을 보면 우측에 있는 등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이물질의 위치도 따라서 함께 변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우리 눈에는 눈의 용적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유리체라는 맑은 액체가 눈 안으로 들어오는 시각적 자극을 거의 그대로 투과시켜 망막으로 전달합니다. 그러나 유리체에 작은 혼탁이 있을 경우 빛이 통과하다가 망막 위에 그림자를 만들게 되며 파리나 모기 같은 곤충 모양, 점 모양, 동그란 모양, 아지랑이 모양, 실오라기 같은 줄 모양 등 다양한 형태들이 보이게 됩니다. 동시에 여러 개가 보일 수도 있고, 수시로 여러 형태들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눈을 감아도 보일 수 있으며, 눈을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며 보이고, 특히 만ㄹㄱ은 하늘이나 하얀 벽, 하연 종이를 배경으로 보았을 때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비문증은 대부분 연령의 증가에 따른 유리체의 변화에 의해서 생깁니다. 대부분 노화과정에 의한 것입니다. 눈 속의 유리체는 나이가 들수록 수축되어 덩어리지거나 주름이 생기게 되어 부유물을 만듭니다. 하지만 근시가 있는 경우에는 젊은 사람에게서도 이런 변화가 빨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노화 외에 비문증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으로는 백내장 수술 후, 후 유리체 박리, 유리체 출혈, 포도막염, 망막열공, 망막박리 등이 있습니다.

비문증과 비슷한 것으로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느끼는 현상인 번갯불 현상photopsia(광시증)이 있는데 눈을 세게 부딪쳤을 때에 눈앞에 불이 번쩍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유리체가 수축하면서 망막을 당기게 되면 이것이 눈 속에서 불이 번쩍하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기도 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 흔히 나타납니다. 광시증은 편두통이 있는 경우에도 나타나며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증상만 가지고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문증을 확인하기 위해 산동(동공을 확대시키는 것) 후 도상검안경으로 망막을 살펴보는데, 이때 후유리체박리의 경우 시신경 근처에서 시신경과 떨어진 유리체를 볼 수 있으며, 그 밖에 작은 유리체 부유물이 보이기도 하지만 육안으로 전혀 관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망막박리retinal detachment에 의한 비문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망막 주변부까지 관찰합니다.

단순비문증일 경우 눈앞에서 어른거려 불편을 느낄 때에 잠시 위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주시하면 일시적으로 시선에서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일부는 계속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게는 옅어지며 적응이 됩니다.

비문증은 안약이나 먹는 약으로 치료되지 않으며 수술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으나, 경우에 다라 시야를 가리는 큰 혼탁으로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비문증과 같은 증상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망막질환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발견시기에 다라서 시력의 유지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조속한 진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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