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족과 조선족朝鮮族
고대 아시아 동부의 종족은 핀우그르어파와 사모예드어파의 두 관련된 언어들로 구성된 우랄어족Uralic languages과 중국티베트어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핀우그르어파에는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랩어 등을 포함하는 핀어군과 헝가리어 등을 포함하는 우그르어군이 있으며, 사모예드어파에는 네네츠어, 에네츠어, 셀쿠프어, 가나산어 등이 포함됩니다. 이 두 어파는 7000∼1만 년 전에 우랄산백 북쪽지방에서 쓰였던 한 공통 우랄조어에서 발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 년 넘게 핀우그르어와 사모예드어는 하위 언어군으로 다양하게 분기되었으나 그들 공통 근원의 특징들을 얼마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티베트어족은 동쪽에 분포하는 중국타이어파와 서쪽의 티베트버마제어로 대별됩니다. 중국민족 가운데 중국티베트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민족은 중국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입니다. 한족은 세계 최대의 민족으로 2000년에 총인구가 13억을 넘었습니다. 형질적으로는 인도에서 동아시아 대륙, 태평양제도 및 아메리카대륙에 분포한 몽골로이드Mongoloid(Mongolide라고도 하며 황색인종을 말한다)에 속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키가 크고 머리가 큰 화북華北형, 그보다 몸이 작고 머리가 작은 화남華南형 등 지방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언어도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와 한자가 사용되고 있지만, 지방에 따라 언어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한족은 황허黃河의 중ㆍ하류 유역인 화북華北 일대에 분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서쪽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황허 강 유역에서 대하大河 문명을 개화시킨 이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점차 중국 중ㆍ남부 지역을 뜻하는 화중華中, 화남華南 지역까지 그 세력을 뻗쳐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지방 선주민들을 한문화에 동화시켰습니다. 특히 양쯔 강 유역 이남은 기원 전후의 한대漢代까지 선주민의 세력이 강해서, 중국어 이외의 언어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선주민의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먀오족苗族, 야오족瑤族, 리족彛族 등 소수민족으로서 특색 있는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남부에 주로 거주하는 약 250만의 소수민족 먀오족苗族은 한족이 부른 명칭으로 苗 혹은 苗族이라고도 쓰이지만 그 기원은 오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남부의 만족蠻族을 가리킨 명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몽Mhong, 멩Mheng, 아마오Ah-Hmao, 믈란Hmlan 등으로 자칭하고 있습니다. 먀오족의 역사와 민족이동의 경로는 명백하지 않지만, 일찍이 양쯔 강 이북에 있었으나 한족의 진출에 밀려 남하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먀오어語 계통은 정설이 없으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계의 몬크메르어語와 관련이 있습니다. 먀오는 헤이먀오黑苗, 화먀오花苗, 바이먀오白苗, 홍먀오紅苗, 칭먀오靑苗의 다섯 종으로 대별되며, 복장의 빛깔에 따라 구별됩니다.
중국 남부의 산지에 주로 거주하는 야오족瑤族을 중국에서는 야오瑤로 표기하는데, 푸젠福建, 저장浙江의 서畬도 이 민족의 분파입니다. 베트남에서는 만蠻이라고 부릅니다. 언어의 계통은 여러 설이 있어 확정된 바 없습니다. 원주지는 둥팅호洞庭湖 부근이며, 12, 13세기경 현재의 거주지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전火田 경작을 하며, 작물은 밭벼, 옥수수, 기장, 타로토란 등이 있는데 광둥, 광시에서는 계단식 관개전灌漑田에 의한 논벼경작도 많이 합니다.
먀오족苗族, 야오족瑤族, 리족彛族 등은 중국티베트어족으로 분류되지만 흉노족匈奴族과 조선족朝鮮族은 우랄어족으로 분류됩니다. 중국 고대 북방 초원지역의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인 흉노족은 기원전 3세기부터 몽고고원과 중원지구에서 약 300년 동안 활동하면서 중국의 북방 변경을 개척하고 중국의 찬란한 역사문화를 창조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흉노를 순유淳維라고도 합니다. 춘추시대 말기에 흉노족과 중원 한족의 교류가 점차 증가하여 그들은 한족의 농업기술을 배웠으며, 특히 중원의 철기문화를 수입하여 흉노사회의 발전을 더욱 촉진시켰습니다. 전국시대 후기에 흉노족은 원시씨족제에서 노예제 단계로 넘어가면서 약탈성이 날로 증강되어 흉노 귀족의 기병들이 자주 변경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했습니다. 이에 진秦나라, 조趙나라, 연燕나라는 지형에 따라 장성을 수축하여 흉노족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진나라는 통일을 이룩한 후 모든 장성을 연결시켰는데, 후세에는 그것을 일러 바로 만리장성이라 합니다.
흉노족 일부가 동유럽으로 들어갔으며, 그 지역 사람들은 그들을 흉인匈人이라 불렀습니다. 후에 그 지역 토착민족과 융화되어 지금의 헝가리인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고비사막 북부의 초원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남으로 이주하여 국경 안으로 들어온 흉노족은 동한 말기에 일부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조가 되는 조조曹操에게 일부는 원소袁紹에게 각각 붙어 북중국의 할거 전쟁에 가담했습니다. 그 후 고대 남만주에서 몽골지방에 걸쳐 산 유목민족인 선비족鮮卑族과 선비족과 마찬가지로 고대 동호 계통에 속하며 선비족과 근원이 동일한 유연족柔然族이 연이어 일어나 고비사막의 남북으로 들어와 흉노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일부는 완전히 선비족이나 유연족에 융화되고, 일부는 새로운 부족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정권 교체가 빈번하고 계급갈등과 민족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 과정 속에서 흉노족은 직접 한족에 융화되기도 하고, 혹은 먼저 다른 소수민족에 융화되었다가 다시 한족과 뒤에 일어난 북방 소수민족에 융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융화를 거치면서 흉노라는 이름은 남북조 이후 사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흉노족과 함께 우랄어족으로 분류되는 조선족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東北三省과 그 밖의 중국 땅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을 말합니다. 조선족 공동체가 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1860년대로 보는 것이 일반입니다. 1870년 만주에 거주한 조선족의 수는 77,000명에 달했고, 1900년에는 220,000명으로 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1,700,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해방 후 79만 명의 조선인이 귀국했고, 1953년 센서스 보고에 따르면 중국 내의 조선족의 수는 1,120,000명으로 보고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2,762,160명으로 늘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조선족의 민족자치권을 인정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