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반론을 고려하라, 표절하지 마라

반론을 고려하라
알다시피 철학 글쓰기에서는 결론을 위한 주장을 전개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때마다 반론을 예측하고 선제공격에 나서라. 자신의 견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 그것의 부당성을 입증하라. 지금 내세우는 견해의 이면을 충분히 고려했음을, 반론과 반례를 모두 검토했음을 보여주어라. 결론에 유리한 주장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안일한 태도다. 왜냐하면 에세이 채점자(적극적인 읽기가 익숙한 사람)는 답안을 꼼꼼히 읽으며 틀림없이 반론을 고려할 것이고 에세이 작성자가 그런 반론에 대응할 수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세이 작성자는 독단적인 주장을 열렬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골고루 감안하고 나서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표절하지 마라

표절: (타인의 글이나 생각을) 훔치는 행위
✚ 『체임버스 영어사전Chambers Dictionary』

 

표절은 절대금물이다. 의도적으로 타인의 저작을 자기 것인 양 내놓는 건 명백하게 비도덕적인 기만행위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그런 인상을 주는 행위도 표절로 간주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술기관은 표절행위를 매우 엄격하게 처벌한다.
이처럼 표절을 엄하게 다스리는 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다. 첫째, 표절이 의심되는 행위를 용인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둘째, 고의로 표절을 저지르고 나서 우발적인 행위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철학적 관점에서는 두 번째 이유가 더욱 흥미롭다. 이는 학생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말이다. 의사와 교수가 각자의 직업과 관련해서 책임을 지듯 학생도 과제물 제출과 관련해서 채점자와 일종의 암묵적 계약을 맺게 된다. 따라서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은 의도적 표절을 피해야 할 뿐 아니라 타인의 저작을 자기 것인 양 유포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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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이슬람주의에 끼친 영향

 

 


 

 

그러면 미디어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이 장을 마칠까 한다. 우선 무슬림이 일부 장악한 보스니아가 이슬람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경위를 보도한 기사부터 거론해야겠다. 보스니아에서 이슬람교가 겪은 운명은 서방세계가 이슬람주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본보기가 된다.
보스니아도 한때는— 인도네시아의 민간 이슬람교나 세네갈의 아프리카계 이슬람교처럼— 토속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종교생활을 실천해왔으나, 1992~95년 내전에서 유럽계 이슬람교도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물론 세르비아인만 인종청소에 가담한 건 아니었다. 보스니아의 유럽계 이슬람교도들은 “십자군” 을 대적한다는 신념으로 형제를 구한다던 아랍계 무슬림에게 희생되었다. 유럽 이슬람교를 살라피의 와하비주의로 대체한 아랍계 아프간인 및 와하비 사우디인으로 알려진 성전주의자들도 일부 포함되었다. 오늘날, 초기 이슬람교는 소수 지역에서만 잔존해 있는 반면, 이슬람주의와 와하비주의는 보스니아와 코소보를 장악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보스니아에 와하비 이슬람교를 장려하기 위해 5억 유로를 투입했다. 사라예보에서 으뜸가는 사원은 사우디 왕 파드의 이름을 딴 것이며, 전쟁 후 포교의 일환으로 건립된 마드라사٩ 신앙학교와 유치원은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서방세계의 언론은 이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2008년 12월 27~28일자 주말 에디션에서 “이슬람교의 부흥기를 맞은 보스니아” 라는 머리기사를 실었다. 이슬람교화 아젠다에서 전통의 창조가 “이슬람교의 부흥” 과 상통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부흥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본지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전신을 가린 여성이나 긴 턱수염을 한 남성은 듣도 보도 못했지만, 요즘은 흔히 눈에 띈다.” 기자는 그 이유를 “정체성을 건전하게 주장하게 된 무슬림의 부흥” 에서 찾았으나, 실은 사우디 와하비주의가 추구하는 이슬람화의 결과라고 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이런 점을 축소하고 “이슬람교의 원리주의는 기우에 불과하다” 고 밝힌, 보스니아의 친사우디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mufti(무프티) 무스타파 세리스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보스니아 문화 및 정치의 이슬람화” 를 “전쟁 당시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무슬림을 잔인하게 진압했던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기도한 것” 이라고 일축한 “무슬림 지도자와 서양 분석가” 의 말도 인용・보도했다. 그러고 난 후 기자는 “미국, 당신네는 무슬림을 죽일 작정인가?” 라는 슬로건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기사는— 그 밖에도 고를 만한 기사는 얼마든지 있지만— “이념의 전쟁” 이 벌어지고 있는 현 실정에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솔직히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케 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논객들을 “이슬람혐오증 환자” 로 몰아세우는가 하면 포위된 이슬람교와 무고하게 희생된 무슬림을 들먹이기도 했다. 이는 일부 서양 학자와 여론주도자들이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이 발동한 나머지 이런 중상모략에 가담한 결과로, 기독교인의 죄책감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와하비주의와 이슬람주의를 지지하면서 보스니아의 유럽계 이슬람교가 말살될 것을 걱정한다면 여러분 역시 세르비아인의 대량살상에 가담한 동맹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위험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 기만 여부를 떠나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신앙관이 다른 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 데다, 서방 논객들과 의견이 다른 무슬림들을 각각 “십자군” 과 “불신자(쿠파르)” 라고 폄하하고 있다. 물론 서방세계에도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므로 그들 역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혐오증” 은 이슬람주의의 손아귀에 넘어간 무기가 되어 이성적 담화나, 이슬람교의 편견을 제거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이슬람혐오증을 “이
슬람 때리기” 로 바꾸고 싶다. 이슬람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이슬람교의 명예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예컨대, 이슬람교를 신봉하지 않는 무슬림도 정치색을 띤 이슬람교를 더 잘 이해하거나 격렬히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은 독자가 이슬람주의를 고찰하여 이슬람주의자들의 전체주의 사상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쓴 것이다. 나는 “온건파 이슬람주의자” 와 “테러리스트” 가 구별된다는 그릇된 가정에 근거한 이슬람주의를 좌절시키고 싶다. 이 같은 오류는 진보・민간 이슬람교 및 이슬람주의의 차이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진보・민간 이슬람교는 “무슬림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므로 비중이 적다고 지적한 『포린 어페어스』지의 기사는 옳지 않다. 서양 전문가들은 이슬람주의의 기만전술을 의식하고 그들의 발언을 무조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서방세계는 이슬람주의자들을 상대할 때 안보에 중점을 두되 진보주의 이슬람교와는 대화를 우선시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이슬람교와의 전쟁으로 변질되어 버린 “테러와의 전쟁” 을 폐지했으니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이슬람주의자들은 “포위된 이슬람교” 라는 인상을 널리 심어주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미 행정부는 무슬림의 관심사에 더 관심을 두고 있어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 “온건파 이슬람교” 로 가장한 이슬람주의를 달래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제쳐두는 것” 50은 “테러와의 전쟁” 못지않게 위험하다. 그런 까닭에 패트릭 프렌치가 『뉴욕 타임스』지에 기고한 사설을 읽으니 좀 안심이 된다.
이슬람세계를 몸소 체험한 프렌치는 오바마 행정부가 “현실로 임박할 이슬람주의의 위협을 감지해야 한다” 며 “천년왕국을 신봉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은 현재 민족국가인 파키스탄을 파괴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이미 전략에서 승리했다고 믿는다. … 오바마 대통령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온건파의 세력이 기울기를 바라겠지만 파키스탄계 탈레반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으므로 그의 뜻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따라서 그들과 상대하려면 당근을 건네는 것이 상책” 이라고 역설했다.51 이는 이슬람세계를 통틀어 이슬람주의가 겨냥하고 있는 민족국가라면 모두 적용될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이 이슬람주의의 담화 조건에 굴복하지 않고 그들과 인연을 맺는다면 이슬람세계에 대한 서방세계의 입장은 전도유망하리라 본다. 이슬람교와 서방세계의 교량을 건설하려면 먼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정책입안자와 학자들은 이슬람혐오증을 운운하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협박을 받아온 탓에 학자들은 모호한 입장으로 자신들을 보호했다. 『이슬람주의: 정치적 이슬람교를 둘러싼 쟁점Islamism: Contested Perspectives on Political Islam』(2009)의 공동 저자인 리처드 마틴과 아바스 바르제가르는 그들의 저서가 “이슬람주의에 대한 논쟁을 해결” 한다거나 “이슬람주의의 효용” 을 둘러싼 논쟁에서 어떤 입장도 취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슬람주의를 버린 두 저자, 이를테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에 “불쾌하다” 는 토를 단 도널드 에머슨과, “이슬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고 역설한 다니엘 바리스코를 설득했다. 『이슬람주의: 정치적 이슬람교를 둘러싼 쟁점』은 폴 버먼이 이슬람주의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책에 나타난 의혹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했다. “이슬람주의 조직은… 제삼자가 의당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 카테고리를 제 나름대로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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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의 기氣

 

 

기氣는 하나의 생명 철학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여덟 나라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책으로 주周나라 좌구명左丘明이『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쓰기 위하여 각국의 역사를 모아 찬술撰述한『국어國語』「주어周語」에 기가 처음 나타납니다. 서주西周 말기 주유왕周幽王 2년, 즉 기원전 780년에 서주 시대의 경수, 위수, 낙수 세 하천 모두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주나라 태사太史 백양보佰陽父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무릇 천지의 기는 그 질서를 잃지 않는다. 그 질서를 잃으면 백성이 어지러워진다. 양기가 웅크려 있어 나오지 못하고 음이 닥쳐왔으나 쪄 올리지 못한 때문에 지진이 나게 되었다.

 

백양보는 양기陽氣가 숨어서 나오지 못하면, 음기陰氣가 눌려서 증발할 수 없으므로 지진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어원으로 보면 음陰과 양陽이란 두 문자는 각각 어둠과 밝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음이라는 글자는 언덕 구丘와 구름 운雲의 상형象形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이라는 글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백양보는 기 즉, 음양이기陰陽二氣로 지진 발생의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천지의 기는 음양의 기를 가리키는데, 구체적인 존재물을 표시하던 것이 추상의 개념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가 천지운동을 결정하는 힘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노자老子』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도는 일을 낳고, 일은 이를 낳고, 이는 삼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고 있으며 충기가 화합을 이룬다.

 

여기서 일은 혼돈 상태의 기이며, 이는 음양의 기를 가리키니, 일기一氣가 음양 두 부분으로 나뉜 것이며, 삼은 음양 두 기의 교합을 가리키니 곧 화和를 말한 것입니다. 충기衝氣는 음기와 양기의 조화와 화합을 의미합니다. 기에는 다중의 의미가 있는데, 물질의 원초적 상태이고 또한 사물의 운동 상태이면서 음양이 교합하는 상태입니다.

춘추시대의 제齊나라 재상宰相 관중이 지은『관자管子』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무릇 만물의 정기는 생명을 만드는데 아래로 땅에서는 오곡을 낳고 위로 하늘에서는 뭇별이 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흘러 다니는 것을 귀신이라 하고, 사람의 가슴 속에 갈무리되면 그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氣라고 부른다.

 

8괘八卦 중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양과 음의 특별함을 상징하고, 나머지 6괘는 음양의 효가 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음·양 교역交易의 과정을 상징화한 것으로 천지만물의 생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계사에 “천지의 기운이 서로 감응 합일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번영하며 남녀의 정기가 결합되어 인간이 화생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천지와 인간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대우주-소우주의 상관관계로서 서로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주역』 전체가 음양이기陰陽二氣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주역』의 64괘는 음양이기가 감응하여 변화하는 64종의 상태이며, 64괘의 과정은 곧 음양이기가 화생하는 과정입니다. 건곤乾坤이 바로 음양이기입니다. 괘卦를 음양으로 나누고 효爻를 강유剛柔로 구분하니, 음양과 강유가 바로 이기二氣인 것입니다.『주역』은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 이른다”고 하여 음양이기를 우주의 본체이자 인간과 만물을 화생하는 근본으로 보았습니다. 인온氤氳은 음양이기가 교합하고 결합한 상태입니다.

음양을 이기로 해석하는 관점은 서한西漢의 맹희孟喜, 경방京房 등이 대표적인 상수역학파象數易學派와『주역』해석에서의 의리역학파義理易學派 일부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북송北宋 중기의 성리학자 장재張載(장횡거, 1077년에 타계)와 노장사상과 불교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섭취하는 한편, 기독도교와 유럽의 근대과학까지 접근했던 명말 청초의 사상가 왕부지王夫之입니다. 장재는 우주공간에는 기가 충만(장재의 말로는 태허太虛)하며, 기는 끊임없이 응집과 확산의 자기운동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기가 응집하면 물이 생기고 확산하면 물은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는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태허로 복귀할 뿐입니다. 따라서 기의 총량에는 증감이 없이 늘 일정합니다. 장재의 이런 사상은 남송의 주희(주자)에 섭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왕정상, 청나라 초기의 왕부지(선산),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서경덕(화담), 일본의 대염 평팔랑(중제)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64괘와 24절기를 결합시킨 괘기설卦氣說을 주장한 맹희孟喜는 “역은 기에 근본한다”고 했고, 전한前漢 말의 사람으로 음악이론가이기도 해서 현絃에 의한 음률측정기인 준準을 발명함으로써 60률을 산정한 경방京房(기원전 77~37)은 “음양이기가 서로 감응해서 본체를 이룬다”고 했으며, 전한前漢 말기의 유학자 유흠劉歆(기원전 53?~25)은 1년을 365.25000일로 하던 역 대신 365.25016일로 하는 태초력太初曆으로 바꾼『삼통력三統曆』에서 태극太極을 원기元氣로 해석하여 “태극 원기는 셋을 포함하여 하나가 된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송나라의 유학자로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한 주돈이周敦頤(1017~73)의『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기로 입론하여, 움직임이 없는 태극이 음양이기를 낳고, 이기二氣의 변동이 오행五行의 기운을 낳고, 이기와 오기五氣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주돈이는 우주의 근원인 태극太極(無極)으로부터 만물이 생성하는 과정을 도해圖解하여 태극도太極圖를 그리고 태극→음양陰陽의 이기二氣→오행五行(金·木·水 ·火·土의 五元素)→남녀→만물의 순서로 세계가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중정中正 인의仁義의 도를 지키고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했으며,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는 본래 하나라는 이론을 제시햇습니다.

기학파의 대표인 장재張載는 “일체의 상이 다 기다”라고 하여 기가 우주만물의 본체임을 분명하게 제시했습니다. 그의 기본체론은『주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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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체水體 형의 사람은 신장이 실하다

 

 

39세 된 환자로 2년 전에 혼자가 되어 독신으로 살고 있는 여성이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에게 요즘 들어 땀을 많이 흘리며 몸이 굉장히 무겁고 나른해서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을 정도라고 호소했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입병이 자주 난다고 했습니다. “집에만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요. 심장이 두근두근 뛸 때도 있고, 특별히 걱정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불안하고 초조하구요. 게다가 오른쪽 무릎에 몽우리 같은 게 잡히는데 왜 그렇죠?” 조성태는 그녀를 수체水體 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녀의 머리는 몸체에 비해 컸으며 골격도 크고 단단했고, 입이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마와 광대뼈 부위에는 기미가 많이 끼어 있었으며 눈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조성태는 수체 형이면서 기혈의 운행이 나쁘고 얼굴에 기미가 끼어 있음을 볼 때 한습寒濕에 상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수체 형의 사람을 어류魚類라고도 하는데, 생김새나 성격이 물고기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얼굴색이 검고, 입이 앞으로 튀어나온 듯이 보입니다. 걸을 때 엉덩이를 약간 흔들면 걷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체 형의 사람은 무척 영특하여 똑똑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행동이 느린 듯하면서도 재빠르며 겁이 많고 잘 놀라는데, 물고기의 행동 특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행동이 느린 것처럼 보여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또한 수체 형의 사람은 성격이 매우 냉정합니다. 자신과 관계가 없다 싶으면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일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일처리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오행의 원리상 수체는 신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장의 허실에 따르는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헛배가 부르고 소화가 제대로 안 되며, 대변을 누기가 힘들어 변비로 고생합니다. 평소보다 일을 조금 지나치게 했다 싶으면 금방 피곤해지면서 허리에 통증을 느낍니다. 뒷목과 어깻죽지가 아프고 입에서 냄새가 날 때도 많으며 불면증으로 고생합니다. 어지럼증을 호소할 때도 많습니다.

신장이 상하기 쉬운 수체 형의 사람은 지나친 성생활과 힘겨운 일을 피해야 합니다. 또 땀이 났을 때 찬물에 목욕하거나 습기 있는 땅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장을 상해 병이 생깁니다. 신장을 따뜻하게 하여 신장의 기운, 즉 신수기腎水氣를 보하려면 신장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오미자를 달여 먹으면 효과적입니다. 소의 콩팥도 신장을 보해줍니다. 밤을 구워서 수시로 먹는 것도 좋으며, 검정콩을 소금을 넣고 삶아 먹어도 좋습니다. 산수유를 달여 먹거나 굴, 조갯살을 삶아 먹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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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으로 자애로움 알기, 우리의 몸과 마음 보호하기

 

 

 

● ● 마음챙김으로 자애로움 알기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자애로움을 베푼다. 누군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우리를 위해 문을 잡아주며 같은 차선에 끼워준다. 배우자나 친구가 우리와 함께 해주는 것이나, 직업이라서 하는 일이지만 누군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우편물을 배달하고 전화로 친절하게 도움을 주는 일까지도 자애로운 행동이다.
사람의 뇌에는 부정적 성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일에는 아주 쉽게 집중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베푸는 선행에 집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의 선행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 우리의 몸과 마음 보호하기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를 통해서도 매일 수없이 많은 독소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것들을 완벽하게 차단하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몸과 마음에 좋은 것만 소비하는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라. 어둡고 절망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읽을거리 등을 가능하면 피하라. 이런 매체들을 접하는 건 우리 의식의 정원에 있는 슬픔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뉴스는 흔히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므로 뉴스 시청을 제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뉴스를 보게 되더라도 비무량심과 사무량심의 방패로 자신을 보호하라. 뉴스의 고통스런 장면들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추상적인 사건이 아니라 여러분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한다. 냉소주의와 절망을 담고 있는 책과 영화가 더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여전히 오염시키고 우리의 행복을 좀먹는다.
운동 역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이다. 운동은 몸에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건강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마음챙김에도 도움이 된다. 하이킹이나 조깅 또는 요가나 태극권 등 그 어떤 운동이라도 좋다. 충분히 운동을 한 후에는 평온하고 정화되며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마음을 챙기기가 훨씬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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