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의 기氣

 

 

기氣는 하나의 생명 철학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여덟 나라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책으로 주周나라 좌구명左丘明이『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쓰기 위하여 각국의 역사를 모아 찬술撰述한『국어國語』「주어周語」에 기가 처음 나타납니다. 서주西周 말기 주유왕周幽王 2년, 즉 기원전 780년에 서주 시대의 경수, 위수, 낙수 세 하천 모두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주나라 태사太史 백양보佰陽父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무릇 천지의 기는 그 질서를 잃지 않는다. 그 질서를 잃으면 백성이 어지러워진다. 양기가 웅크려 있어 나오지 못하고 음이 닥쳐왔으나 쪄 올리지 못한 때문에 지진이 나게 되었다.

 

백양보는 양기陽氣가 숨어서 나오지 못하면, 음기陰氣가 눌려서 증발할 수 없으므로 지진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어원으로 보면 음陰과 양陽이란 두 문자는 각각 어둠과 밝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음이라는 글자는 언덕 구丘와 구름 운雲의 상형象形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이라는 글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백양보는 기 즉, 음양이기陰陽二氣로 지진 발생의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천지의 기는 음양의 기를 가리키는데, 구체적인 존재물을 표시하던 것이 추상의 개념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가 천지운동을 결정하는 힘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노자老子』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도는 일을 낳고, 일은 이를 낳고, 이는 삼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고 있으며 충기가 화합을 이룬다.

 

여기서 일은 혼돈 상태의 기이며, 이는 음양의 기를 가리키니, 일기一氣가 음양 두 부분으로 나뉜 것이며, 삼은 음양 두 기의 교합을 가리키니 곧 화和를 말한 것입니다. 충기衝氣는 음기와 양기의 조화와 화합을 의미합니다. 기에는 다중의 의미가 있는데, 물질의 원초적 상태이고 또한 사물의 운동 상태이면서 음양이 교합하는 상태입니다.

춘추시대의 제齊나라 재상宰相 관중이 지은『관자管子』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무릇 만물의 정기는 생명을 만드는데 아래로 땅에서는 오곡을 낳고 위로 하늘에서는 뭇별이 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흘러 다니는 것을 귀신이라 하고, 사람의 가슴 속에 갈무리되면 그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氣라고 부른다.

 

8괘八卦 중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양과 음의 특별함을 상징하고, 나머지 6괘는 음양의 효가 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음·양 교역交易의 과정을 상징화한 것으로 천지만물의 생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계사에 “천지의 기운이 서로 감응 합일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번영하며 남녀의 정기가 결합되어 인간이 화생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천지와 인간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대우주-소우주의 상관관계로서 서로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주역』 전체가 음양이기陰陽二氣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주역』의 64괘는 음양이기가 감응하여 변화하는 64종의 상태이며, 64괘의 과정은 곧 음양이기가 화생하는 과정입니다. 건곤乾坤이 바로 음양이기입니다. 괘卦를 음양으로 나누고 효爻를 강유剛柔로 구분하니, 음양과 강유가 바로 이기二氣인 것입니다.『주역』은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 이른다”고 하여 음양이기를 우주의 본체이자 인간과 만물을 화생하는 근본으로 보았습니다. 인온氤氳은 음양이기가 교합하고 결합한 상태입니다.

음양을 이기로 해석하는 관점은 서한西漢의 맹희孟喜, 경방京房 등이 대표적인 상수역학파象數易學派와『주역』해석에서의 의리역학파義理易學派 일부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북송北宋 중기의 성리학자 장재張載(장횡거, 1077년에 타계)와 노장사상과 불교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섭취하는 한편, 기독도교와 유럽의 근대과학까지 접근했던 명말 청초의 사상가 왕부지王夫之입니다. 장재는 우주공간에는 기가 충만(장재의 말로는 태허太虛)하며, 기는 끊임없이 응집과 확산의 자기운동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기가 응집하면 물이 생기고 확산하면 물은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는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태허로 복귀할 뿐입니다. 따라서 기의 총량에는 증감이 없이 늘 일정합니다. 장재의 이런 사상은 남송의 주희(주자)에 섭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왕정상, 청나라 초기의 왕부지(선산),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서경덕(화담), 일본의 대염 평팔랑(중제)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64괘와 24절기를 결합시킨 괘기설卦氣說을 주장한 맹희孟喜는 “역은 기에 근본한다”고 했고, 전한前漢 말의 사람으로 음악이론가이기도 해서 현絃에 의한 음률측정기인 준準을 발명함으로써 60률을 산정한 경방京房(기원전 77~37)은 “음양이기가 서로 감응해서 본체를 이룬다”고 했으며, 전한前漢 말기의 유학자 유흠劉歆(기원전 53?~25)은 1년을 365.25000일로 하던 역 대신 365.25016일로 하는 태초력太初曆으로 바꾼『삼통력三統曆』에서 태극太極을 원기元氣로 해석하여 “태극 원기는 셋을 포함하여 하나가 된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송나라의 유학자로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한 주돈이周敦頤(1017~73)의『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기로 입론하여, 움직임이 없는 태극이 음양이기를 낳고, 이기二氣의 변동이 오행五行의 기운을 낳고, 이기와 오기五氣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주돈이는 우주의 근원인 태극太極(無極)으로부터 만물이 생성하는 과정을 도해圖解하여 태극도太極圖를 그리고 태극→음양陰陽의 이기二氣→오행五行(金·木·水 ·火·土의 五元素)→남녀→만물의 순서로 세계가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중정中正 인의仁義의 도를 지키고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했으며,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는 본래 하나라는 이론을 제시햇습니다.

기학파의 대표인 장재張載는 “일체의 상이 다 기다”라고 하여 기가 우주만물의 본체임을 분명하게 제시했습니다. 그의 기본체론은『주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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