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개요를 작성하라,생각할 준비를 갖춰라
 

개요를 작성하라
연습용 논술을 작성할 만한 상황이 아닐 경우에는 특정 문제에 대한 답안의 개요를 작성해보는 것도 아는 것을 점검해보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는 어떤 주제에 관한 견해를 체계적으로 배열해보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연습용 답안의 개요를 작성할 때는 그 주제에 관한 견해를 요약하는 것을 실제로 문제에 답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 안에서 견해를 제시하는 데 그치면 곤란하다.

연습용 문제를 출제하라
출제자의 입장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어떤 주제든 제기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기출문제를 참고하여 직접 시험문제를 출제해보라. 연습용 논술과 시험용 답안의 개요를 작성할 때 사용한 문제도 괜찮다. 출제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만들어보면 각 주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연습용 논술이나 연습용 답안의 개요를 작성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해도를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할 준비를 갖춰라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험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직 소화시키지 못한 지식을 성급하게 게워내려 하지 마라. 주어진 문제에 적합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일관성 있는 주장을 전개하려면 이미 배운 지식을 적절하게 조합해야 한다. 암기한 인용문과 예상 질문만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시험에 임하면, 출제된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철학 시험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험이다. 실전에서 생각할 준비를 갖추어라. 출제자들은 학생들의 사고력과 응용력을 검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학생들이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고안해낼 것이다. 평소 생각하는 훈련을 해두면 그런 뜻밖의 문제에도 당황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제의 목적은,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체계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두면 오히려 철학 시험이 즐거워질 수 있고, 시간의 압박을 받으면서 어떤 주제에 관해 명확하게 생각하는 과정은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철학 시험에서는 답안을 작성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철학 시험에서 논술을 작성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철학이라는 학문의 진가를 깨달은 학생들도 있다. 철학 교육은 스스로 사고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학문적 연구에서 얻는 것은 단지 성적표나 빛바랜 노트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설명한 여러 원칙들을 실천하면, 여러분은 이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훌륭한 사상가와 훨씬 뛰어난 저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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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 환생과 무아

 

 

『반야심경般若心經』은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실은 실제로 무아이며, 분리될 수 없고, 무상하며 계속 변화하는 ‘저것’이다. ‘저것’은 본질적으로 명칭을 붙일 수가 없으며 알 수도 없다. 불교 신자들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저것’에 이름을 붙이려 하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저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안다는 망상에 빠질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것’이 우리의 것이고 우리에게 ‘저것’이 있으며 다른 단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저것’을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유대 신앙은 이런 통찰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유대인은 ‘저것’에 해당하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하느님의 참된 이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된 유명한 네 자음 문자다(YHWH 또는 YHVH). 이 이름은 너무나 성스러워 신앙심이 깊은 많은 유대인들은 이 문자를 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이 네 자음 문자를 소리 내 말하는 대신 단순히 아도나이Adonai(주主)나하셈Hashem(네 자음 문자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야훼의 네 자음 문자는 보통 영어로도 완전히 쓰이지 않으며 ‘저것’을 말할 때 근본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실제로 알 수 없다. 결국 침묵을 지키고, 마음을 챙기고, 숨을 쉬고, 미소짓는 편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불교의 사후세계는 영어로 ‘환생’보다는 ‘부활’에 가깝다. 환생을 의미하는 단어 Reincarnation은 문자 그대로는 ‘육체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무아의 통찰에 비추어 볼 때, 갔다가 돌아온다는 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가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저것’의 보이지 않는 발현이라면 도대체 어디로 갈 수 있으며 도대체 어떻게 돌아온단 말인가? 게다가 ‘당신’이라는 존재는 또 무엇인가? 영어로 Rebirth는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점에서 환생보다는 조금 나아보이지만 우리의 존재를 떠나고 돌아오는 일종의 분리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여전히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환생과 무아
우리는 분리되고, 소외되고, 길을 잃은,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나 사물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일부가 아니다. 우리는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보통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 있는 존재인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물과 무기질 몇 킬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실체는 한 순간도 동일하지 않은 변형과 변화의 과정, 즉 어떤 유형이 있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건 실제로 우주의 그 밖의 모든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실체라면 무엇이 환생하고 부활한단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환생에 대해 숙고해보면, 쉽게 말해서 우리가 과거에 클레오파트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바흐나 베토벤이었다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묘한 에너지 유형이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 넘어가고 심지어 어떤 상황에서는 전생의 기억까지 넘어가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 유형을 보통 우리라고 생각하는 방식에서 ‘우리’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각으로 할 수 있는 멋진 게임 중 하나는 ‘만약에’라고 가정하고 사실에 반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에 들어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예일대의 비밀 조직 ‘해골과 뼈’에 들어가 조지 부시와 존 케리와 어울려 다녔다면 나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 어떤 기회가 있었을까? 또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게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완벽하고 다정다감한 부모를 만났더라면? 또는 리버풀에서 존, 폴, 조지, 링고와 막역한 친구로 지냈더라면, 그리고 그들이 내게 비틀즈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등을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흥미로운 질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의 뛰어난 뇌가 이런 정신적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예일대학에 입학했다면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를 있게 만든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했던 경험이지 다른 경험이 아니다. 우리가 좀 더 탄탄한 체격이었다면 어땠을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몸과 의식은 하나다. 다른 몸이었다면 의식도 달라졌을 것이다. 탄탄한 몸이었다면 우리의 체험과 의식도 바꿔놓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닐 것이다. 비틀즈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되었더라도 그것 역시 우리를 바꾸어놓았을 것이므로 우리가 아닌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한때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 살던 다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돌아와 현재 시간과 환경에서 이 몸으로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무슨 의미일까? 특정 유전자를 갖고 특정 경험을 하면서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 몸으로서 존재함이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모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도 지금쯤이면, 우리 머리는 핑핑 돌아 어지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어지러움 속에서 사후에 일어날 일은 모른다고 말한 노선사에 대한 존경심이 들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자신이 집착했던 개념을 조금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붓다는 항상 현실을 똑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개념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다.
환생을 초 두 자루에 빗대어 설명한 이야기가 있다. 내게 불 켜진 초가 하나 있고 그것으로 다른 초에 불을 붙이고는 꺼버린다고 하자. 그러면 두 번째 초의 불꽃은 첫 번째 초의 불꽃과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우리의 생각은 어떤가? 사람들은 흔히 같은 불꽃이나 다른 불꽃 둘 중의 하나로 재빨리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두 가지 모두 사실이거나 또는 두 가지 모두 아니라고도 답할 수 있다. 같은 불꽃인가? 답은 그렇다. 어느 정도는 그렇다. 두 번째 불꽃은 첫 번째 불꽃의 연속인 셈이므로 넓은 의미에서 같은 불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불꽃인가? 역시 답은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두 번째 초의 불꽃은 첫 번째 초와는 다른 밀랍과 심지에서 다른 산소를 태워 생겨났다. 예리한 칼날 같은 불교의 이론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진술이 모두 타당해 보인다. 그것은 이전과 같은 불꽃이다. 그것은 다른 불꽃이다. 그것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불꽃이다. 또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불꽃이다. 그렇다면 사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지닌 생명 에너지의 불꽃이 다른 생명으로 옮겨간다면 우리는 동일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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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근대성의 세속적・합리적 원칙

 

 

 

 

문화적 근대성의 세속적・합리적 원칙은 모든 인류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서방세계의 패권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이를 현 세계질서에 내재된 원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반면, 정치적 이슬람교가 국제주의로 옮긴 전통적 보편주의는 모든 무슬림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주의는 패권주의를 또 다른 패권주의로 대체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천성이 열등한 유일신을 믿는 소수집단dhimmi(딤미) 취급을 받는 비무슬림에게 이슬람교의 우월성은 수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근대성과 패권주의의 차이는 한 가지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테면, 패권을 누리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어느 정도 정당할지라도) 인권의 사용을 두고는 합리적으로 비난할 수 있으나 그와 동시에 인권의 가치를 거부할 수는 없다. 특정 미국 정책이 권리를 유린하는 것과 권리의 보편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이와 유사한 가치관 및 관행의 차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슬람교의 우월성 원칙은 이슬람교의 지배를 명백히 보여주는, 이슬람주의자들의 근본 가치관이다.
새뮤얼 헌팅턴과 그가 쓴 『문명의 충돌』에 이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많지만, “근대 민주정치는… 민족국가의 민주정치를 가리키며 그것이 출현하게 된 경위는 민족국가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고 한 것은 옳은 지적이다. 민주정치 국가의 이 같은 양상을 도모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흑자의 말마따나— “동양주의” 를 표출한 것은 아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바로 이 세계질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질서— 를 거부하고 있다. 나는 세계를 베스트팔렌 시스템에 편승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다룬 찰스 틸리의 저작(1975)을 앞서 인용했는데, 그로부터 20년 후에 출간된 책에서 틸리는 “유럽의 국가 시스템이 세계로 확산되면서 뭔가가 달라졌다” 고 밝혔다.
유럽은 팽창 과정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현재 가동 중인— 국제적 국가 시스템을 창출해냈다. 그러나 유럽 바깥 세계는 유럽과 닮은 데가 없다. 이 근대식 국가 패턴이 대부분의 비서양 국가들에서 구조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확립되지 못한 점을 이해하려면 세속 민주주의 민족국가에 맞선 이슬람주의의 도전을 알아야만 한다. 이슬람세계의 민족국가는 대부분 사이비주권의 유명무실한 국가인 데다 기껏해야 피상적인 민주국가에 불과하다. 또한 현 세계질서가 서방세계 밖에서는 실체가 결여된 민족국가
패턴에 의존한다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이슬람국가는 부실한 기반에 의존하는, 허울뿐인 민족국가를 뒤엎는 데 목표를 둔다.
아랍의 국가 시스템은 애당초 고전을 면치 못했다.48 서방세계의 모델에 따라 설계된 범아랍주의, 이를테면 이집트와 시리아가 3년간 합병되었던 아랍연합공화국처럼 수명이 짧은 실체로 이어지는 세속 아랍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첫 난관을 겪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기존의 영토국가와 범아랍국가의 민족주의 비전이 충돌했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인 이슬람주의와 범이슬람교(이 둘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에 관련된 갈등을 꼽는다. 이 국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명실상부한 국가의 기초 자격조건인 정치조직과 시민 사회, 시민권 및 국가 정체성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약점 탓에 그들은 세계를 재편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충동에 쉽사리 현혹되었다.
처음 제기한 질문— 정치적 이슬람교의 국제주의에 대립되는, 서방세계의 보편사상을 지지해야 하는 까닭— 을 되짚어보려면 서양식 민족국가의 합법성을 살펴봐야 한다. 유수프 알카라다위는 『이슬람교식 해결책의 필연성』에서 그 단점을 거론했다. 그는 이슬람주의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라 서방세계에서 비롯된 건 무엇이든, 예컨대 민주정치도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hulul mustawrada(훌룰 무스타우라다)이라고 거부하며 순결을 강조했다. 소위 “이슬람주의식 해결책과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은 이슬람세계의 병폐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서방세계를 비난하기 위해 썼던 관용어였다. (에드워드 사이드도 그런 식으로 “동양주의” 를 비판했다.) 알카라다위는 전면적인 탈서양화는 세계의 이슬람주의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이슬람교를 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알자지라 방송 가운데 선동적인 민중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TV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무프티)가 “진보주의 이슬람교” 명단에 등재되어 있고, 현대 이슬람교의 관련 서적에는 “온건파 무슬림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알카라다위의 사례는 서양 모델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무에서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즉 “서방세계의 해결책” 이 필요 없다면 무엇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뒤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슬람주의자들 집단이 집권한 이후의 실적은 어떤지 논의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진술은 국제적인 민족국가 시스템을 뜯어 고친다는, 여느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보다는 민주적인 평화가 이슬람문명의 미래에 더 유익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슬람주의 아젠다는 본디 무슬림과 인류 전체에 여느 종교적 절대주의보다도 더 이슬람주의와 나은 대안인 다원주의와 대립된다. 이슬람주의가 장려하는 국제주의는 세속 민족국가에 맞선 새로운 냉전을 초래하여 갈등과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베스트팔렌 질서를 선호하는 것은— 단점도 있겠지만— 유럽중심주의의 표현이 아니라 보편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정당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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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연습용 논술을 작성하라

 

논술 시험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험 전에 시간을 정해놓고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에게 최고의 훈련은 오래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오래달리기는 마라톤 선수가 해야 할 유일한 훈련은 아니지만, 오래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을 정해놓고 글쓰기를 연습하는 건 노트를 대충 훑어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에 대다수 학생들이 꺼린다. 하지만 연습 없이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선 기존 기출문제에서 문제를 하나 골라라. 그런 다음 한 시간 동안 직접 에세이를 써라. 에세이는 채점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일관성과 치밀한 논증과정을 갖춰야 하지만, 연습할 때는 형편없는 에세이를 써도 괜찮다. 실전에서 그런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습 삼아 에세이를 미리 써 봄으로써 시험과 비슷한 조건에서 에세이를 설계하고 작성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마라. 개념을 설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사례를 생각해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반론에 대처
119 철학 시험을 준비하는 방법
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을 진행하면서 직접 손으로 글을 써야 한다. 동시에 채점자가 답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가독성이 떨어지면 채점자가 답안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지 파악하기 힘들다. 시험 답안은 직접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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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장상陰陽藏象

 

 

음양은 철학 개념일 뿐 아니라 인체의 동태적 속성을 둘로 나눠 개괄한 象 부호이기도 하다. 태양(太陽), 소양(少陽), 태음(太陰), 소음(少陰)은 『주역』의 사상(四象)이다. 태양은 여름날 양기의 장성함을 상징하며 심장의 양성陽盛한 기능과 서로 유사하다. 소음은 가을에 양이 내리고 음이 오르는 것을 상징하며 폐(肺)의 숙강(肅降)하는 기능과 사로 유사하다. 태음은 겨울에 음기가 장성한 것을 상징하며 신(腎)의 폐장(閉藏)하는 기능과 유사하다. 소양은 봄에 음이 내려오고 양이 올라가는 것을 상징하며 간(肝)의 소설(疏泄, 뭉쳐 있는 기운을 풀어서 소통시키는 기능)하는 기능과 유사하다. 지음(至陰)의 至 자에는 왕복하면서 움직인다는 듯이 들어있으므로 사계(四季)가 되고, 오장 중에서는 비(脾)의 운화(運化, 음식물의 소화와 영양물질(精氣)의 수송을 담당하는 비(脾)의 생리기능) 기능과 서로 유사하다.

한의학에서는 오행귀류(五行歸類)를 채용하여 장상藏象의 체계를 구축했다. 간(肝)은 목(木)에, 심(心)은 화(火)에, 비(脾)는 토(土)에, 폐(肺)는 금(金)에 신(腎)은 수(水)에 속한다. 한의학의 오장은 오행을 운용해서 분석한 것으로 육부(六腑, 담(膽)ㆍ위(胃)ㆍ대장(大腸)ㆍ소장(小腸)ㆍ삼초(三焦)ㆍ방광(膀胱)), 오관(五官,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오체(五體, 사람의 머리와 팔다리), 오지(五志, 희노사우공喜怒思憂恐), 오성(五聲,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 오정(五情, 기쁨, 노여움, 슬픔, 욕심, 증오)과 연결된 다섯 가지의 象 체계이다.

오행(五行) 개념은 음양 개념과는 또 다른 자연철학이론이다. 팔괘(八卦) 개념은 음양을 세 단계로 획분한 것으로, 결국 음양과 같은 부류의 자연철학이론이다. 형성된 역사로 보면 음양학설이 오행학설보다 빠르다. 오행 분류와 팔괘 분류는 춘추전국시대에 동시에 형성되었다. 춘추전국 후기에 출현한 음양오행파는 추연(鄒衍)이 대표가 되어 음양론과 오행론의 결합을 시도했으며 서한(西漢) 시대에 크게 융성했다. 이로부터 음양(팔괘)과 오행이 중국 전통 사유방식이 되었다.

오행은 두 쌍의 음양에 중개하는 것을 더한 것으로 목木과 금金이 한 쌍의 음양이고, 화火와 수水가 한 쌍의 음양이며, 토土가 이를 중개한다. 예컨대 태극도의 음양어(陰陽魚)에 S곡선을 더하는 것과 같다. 음양은 단지 이분과 대립의 개념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대립면의 상호 의존과 상호 전화(轉化)라는 개념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음양(八卦)과 오행은 사유이념 측면에서 같은 것이다.

음양학설이 발전한 오행학설의 장점은 오행 사이의 착종관계(錯綜關係, 오행의 상생(相生), 상극(相克), 상승(相乘), 상모(相侮), 제화(制化), 승복(勝復))를 수립하여 사물과 사물 사이 또 사물 내부에서의 상호 제약과 상호 의존의 관계를 표현한 점이다.

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은 신체가 협조와 통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생리현상으로 나타나며, 오행승모(五行乘侮)는 협조와 통일의 정상적인 관계가 파괴된 상태이므로 병리현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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