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근대성의 세속적・합리적 원칙

문화적 근대성의 세속적・합리적 원칙은 모든 인류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서방세계의 패권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이를 현 세계질서에 내재된 원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반면, 정치적 이슬람교가 국제주의로 옮긴 전통적 보편주의는 모든 무슬림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주의는 패권주의를 또 다른 패권주의로 대체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천성이 열등한 유일신을 믿는 소수집단dhimmi(딤미) 취급을 받는 비무슬림에게 이슬람교의 우월성은 수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근대성과 패권주의의 차이는 한 가지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테면, 패권을 누리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어느 정도 정당할지라도) 인권의 사용을 두고는 합리적으로 비난할 수 있으나 그와 동시에 인권의 가치를 거부할 수는 없다. 특정 미국 정책이 권리를 유린하는 것과 권리의 보편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이와 유사한 가치관 및 관행의 차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슬람교의 우월성 원칙은 이슬람교의 지배를 명백히 보여주는, 이슬람주의자들의 근본 가치관이다.
새뮤얼 헌팅턴과 그가 쓴 『문명의 충돌』에 이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많지만, “근대 민주정치는… 민족국가의 민주정치를 가리키며 그것이 출현하게 된 경위는 민족국가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고 한 것은 옳은 지적이다. 민주정치 국가의 이 같은 양상을 도모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흑자의 말마따나— “동양주의” 를 표출한 것은 아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바로 이 세계질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질서— 를 거부하고 있다. 나는 세계를 베스트팔렌 시스템에 편승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다룬 찰스 틸리의 저작(1975)을 앞서 인용했는데, 그로부터 20년 후에 출간된 책에서 틸리는 “유럽의 국가 시스템이 세계로 확산되면서 뭔가가 달라졌다” 고 밝혔다.
유럽은 팽창 과정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현재 가동 중인— 국제적 국가 시스템을 창출해냈다. 그러나 유럽 바깥 세계는 유럽과 닮은 데가 없다. 이 근대식 국가 패턴이 대부분의 비서양 국가들에서 구조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확립되지 못한 점을 이해하려면 세속 민주주의 민족국가에 맞선 이슬람주의의 도전을 알아야만 한다. 이슬람세계의 민족국가는 대부분 사이비주권의 유명무실한 국가인 데다 기껏해야 피상적인 민주국가에 불과하다. 또한 현 세계질서가 서방세계 밖에서는 실체가 결여된 민족국가
패턴에 의존한다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이슬람국가는 부실한 기반에 의존하는, 허울뿐인 민족국가를 뒤엎는 데 목표를 둔다.
아랍의 국가 시스템은 애당초 고전을 면치 못했다.48 서방세계의 모델에 따라 설계된 범아랍주의, 이를테면 이집트와 시리아가 3년간 합병되었던 아랍연합공화국처럼 수명이 짧은 실체로 이어지는 세속 아랍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첫 난관을 겪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기존의 영토국가와 범아랍국가의 민족주의 비전이 충돌했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인 이슬람주의와 범이슬람교(이 둘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에 관련된 갈등을 꼽는다. 이 국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명실상부한 국가의 기초 자격조건인 정치조직과 시민 사회, 시민권 및 국가 정체성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약점 탓에 그들은 세계를 재편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충동에 쉽사리 현혹되었다.
처음 제기한 질문— 정치적 이슬람교의 국제주의에 대립되는, 서방세계의 보편사상을 지지해야 하는 까닭— 을 되짚어보려면 서양식 민족국가의 합법성을 살펴봐야 한다. 유수프 알카라다위는 『이슬람교식 해결책의 필연성』에서 그 단점을 거론했다. 그는 이슬람주의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라 서방세계에서 비롯된 건 무엇이든, 예컨대 민주정치도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hulul mustawrada(훌룰 무스타우라다)이라고 거부하며 순결을 강조했다. 소위 “이슬람주의식 해결책과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은 이슬람세계의 병폐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서방세계를 비난하기 위해 썼던 관용어였다. (에드워드 사이드도 그런 식으로 “동양주의” 를 비판했다.) 알카라다위는 전면적인 탈서양화는 세계의 이슬람주의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이슬람교를 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알자지라 방송 가운데 선동적인 민중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TV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무프티)가 “진보주의 이슬람교” 명단에 등재되어 있고, 현대 이슬람교의 관련 서적에는 “온건파 무슬림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알카라다위의 사례는 서양 모델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무에서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즉 “서방세계의 해결책” 이 필요 없다면 무엇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뒤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슬람주의자들 집단이 집권한 이후의 실적은 어떤지 논의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진술은 국제적인 민족국가 시스템을 뜯어 고친다는, 여느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보다는 민주적인 평화가 이슬람문명의 미래에 더 유익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슬람주의 아젠다는 본디 무슬림과 인류 전체에 여느 종교적 절대주의보다도 더 이슬람주의와 나은 대안인 다원주의와 대립된다. 이슬람주의가 장려하는 국제주의는 세속 민족국가에 맞선 새로운 냉전을 초래하여 갈등과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베스트팔렌 질서를 선호하는 것은— 단점도 있겠지만— 유럽중심주의의 표현이 아니라 보편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정당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