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인은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다 

 
수메르는 기원전 2400년과 2350년 사이에 셈족이 이끄는 이웃 도시국가 아카드Akkad의 왕 사르곤Sargon에 의해 패망했다.
사르곤의 군대는 원정을 가서 이집트와 이디오피아를 침략한 강성한 군대였는데 사르곤의 궁정이 얼마나 컸던지 군인 5400명이 그의 궁정에서 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수메르인이 독립을 쟁취한 것은 기원전 2200년경이었다.
우르의 제3왕국의 첫 왕은 자신이 수메르와 아카드 모두의 왕임을 선포했다.
이렇듯 이라크의 조상들은 멸망 후에 재건할 수 있었던 훌륭한 족속이었다.
수메르인의 미술품에서 왕의 권력이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우르 지방에 있는 왕릉에서 수금, 오보, 그리고 하프가 발굴되었는데 기원전 2500년에 제작된 것들로 수메르인이 이런 악기를 켜서 음악을 즐긴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사원을 대규모로 지었으며 그들의 유적에서 아카드인의 문명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물들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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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우르인으로 부족장

 
기원전 2000년경 이람인들이 우르를 점령했다.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아직은 아브람)은 우르인으로 부족장이었는데 그가 우르를 떠나 정처없이 방랑의 길을 떠난 것은 아마 이람인들의 침공을 두려워해서 미리 피난의 길에 올랐던 것 같다.

하무라비Hammurabi(기원전 1792-1750년)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것은 기원전 1792년의 일이었으며 그의 바빌론 왕국이 멸망한 것은 기원전 1600년 이후였다.
하무라비는 과거로부터 지켜져온 법을 집대성하여 282개의 법령을 돌에 새겼는데 이 법령에는 임금, 이혼, 의료비 등에 관한 해결책이 있다.
이런 문제는 현대인들에게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인데 당시 법령으로 해결했다.

루브르 뮤지엄에 있는 높이 2.25m의 법령이 새겨진 기념비Law-Codex of Hammurabi는 바빌론의 도시에 세워졌던 것으로 이람인들이 12세기에 기념비를 전리품으로 삼아 수사Susa로 옮겼고 훗날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루브르에 오게 되었다.
기념비는 기원전 1760년에 제작된 것으로 꼭대기 28인치 높이에는 바빌론 제1왕국의 여섯 번째 왕 하무라비가 태양의 신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하무라비의 머리에는 두건이 쓰여져 있는데 구데아Gudea로 보이고, 왼팔로 오른팔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명상에 잠긴 듯 하다.
태양의 신 사마스Shamash는 정의를 상징하는 신으로 그의 어께에 있는 화염이 그의 권위를 말해준다.
사마스가 쓴 관을 보면 네 쌍의 뿔이 있는데 신성을 상징하며 사마스가 신들 가운데 가장 권위가 있음을 시위하는 것이다.

신들 중 가장 권위가 있다는 말은
도시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되고 정복한 나라의 신은 자연히 피정복 나라 신보다 권위를 갖게 된다.
남신을 섬기는 나라와 여신을 섬기는 나라가 싸운 경우에는 두 신은 결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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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가나의 혼례잔치>


보스의 초기 작품들에서 사본장식화의 영향이 현저함을 보며 이런 요소들은 후기 작품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므로 그가 사본장식화가의 작업장에서 회화를 수학했을 것이란 추측을 낳게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회화를 수학한 도시는 대가 에베르트 반 수덴발흐와 추종자들이 1450년대와 60년대 왕성하게 활약한 위트레흐트였을 것이다.

초기 작품에는 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도 있다.
베니스 총독 궁전에 있는 <성 율리아노의 십자가 처형>의 경우 보스는 중앙 패널 일부만 그렸다.
그 밖의 초기 작품들로 <율법학자들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 <간음으로 붙잡힌 여인과 그리스도>, 그리고 <이 사람을 보라>를 위한 습작 드로잉으로 짐작되는 뉴욕의 모간 도서관 소재 <오른편을 바라보는 남자들> 등이 있다.
전통에서 멀어진 작품이 좀더 후에 제작한 <가나의 혼례잔치>이다.
이 작품은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이며 상단 모퉁이가 잘렸고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다시금 채색되었다.
아래 두 마리 개는 18세기에 누군가가 삽입한 것이다.
원작에 충실한 파리의 루브르 뮤지엄 소재 드로잉을 보면 두 마리 개는 보이지 않고 하단 왼쪽에 두 사람이 그려져 있었음을 본다.

<가나의 혼례잔치>는 예수가 처음 기적을 행한 성서의 기록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례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
유다인들에게는 정결예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 예식에 쓰이는 두세 동이들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예수께서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하셨다.
하인들이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을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 일이오!” 하고 감탄하였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갈릴래아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한복음 2:1~11)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성서에는 수덴발흐의 조수가 묘사한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 행위 장면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모습이 있다.
독특한 유머 감각을 가진 이 화가는 포도주 단지를 단숨에 비우는 사람을 삽입했다.
그러나 보스는 구성을 복잡하게 하면서 성서를 달리 해석했다.
성서에 기술된 가나의 혼례잔치는 예수의 친척 혹은 마리아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집에서 열린 것이지만 네덜란드인에게는 커다란 술집에서 일어난 일로 이해되었다.
당시 네덜란드 부활절 드라마들 중 최소한 한 편이 가나의 혼례잔치를 술집으로 무대에 장치했다. 보스는 실내를 화려하게 꾸며 술집 혹은 대저택에서 벌어진 향연으로 묘사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은 화면 아래 오른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성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보스는 테이블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장면으로 구성하기 위해 기역자 모양의 기다란 테이블을 사용하면서 회화적 구성을 위해 30도 정도 틀었다.
그리스도는 오른편 가장자리에 앉아 있으며 그리스도 뒤 벽에는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아름다운 무늬를 짠 직물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스도 양편에는 당시의 의상을 한 두 남자 축하객이 앉아 있다.
테이블 중앙 성모 왼편에 신랑 신부가 있으며 신랑의 모습이 보스의 <복음서 저자 성 요한>을 닮아 요한의 혼례임을 시사한다.
성서에는 신랑이 누구라고 밝혀져 있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한 제자 요한으로 알려졌다.
전설에 의하면 혼례잔치가 끝나자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아내를 두고 나를 따르라. 더욱 더 숭고한 혼례식으로 인도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더러는 신부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보스의 작품은 일상적인 혼례잔치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숭고라는 중세의 이상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화면 중앙 관람자에게 등을 돌리고 선 아이가 성찬배를 들고 있는 것이 숭고에 대한 의식으로 보여진다.
일부 학자들은 보스가 혼례잔치를 술집에서 벌어진 것으로 묘사함으로서 순수한 혼인식을 세속적 방탕과 대비시켰다고 주장한다.

<마술사>에서도 보았듯이 이 작품 또한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보스가 단순한 동기에서 작품을 제작하지 않고 교훈적·종교적·사회적으로 많은 점을 시사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의 이상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병렬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교화시키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상단 왼편 두 하인은 하객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내오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불을 내뿜는 멧돼지 머리와 백조를 접시에 받쳐들고 있으며 이를 보고 오른편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백조는 고대 비너스의 화신으로 부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멀리 뒤에는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지휘봉을 들고 연주를 리드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일부 하객들은 술을 마시며 잡담한다.
보스가 세속을 악의 세계로 은유했음이 틀림 없다.
금욕주의적 이상 세계와 세속 이 두 세계는 후기 작품 대부분에서 은유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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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회화에서 은퇴하겠다고 하면서


1965년 5월 워홀은 에디, 말랑가, 척 와인과 함께 소나벤드(Sonnabend) 화랑에서 열릴 전람회를 위해 파리로 갔다.
소나벤드는 워홀 일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사서 보냈고 워홀 일행 4명은 파리로 가서 화랑 근처 레프트뱅크 호텔에 묵었다(그림 136, 137).
소나벤드 화랑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피카소가 살던 집 근처에 있었는데 워홀은 이 20세기의 대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 했다.
여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워홀도 피카소를 좋아하면서 “피카소의 모습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워홀이 대가들에 관해 말할 때는 미학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좋다” 또는 “대단하다”라고만 말했는데, 과연 그가 대가들의 미학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할 만하다.

이 무렵 워홀은 회화에서 은퇴하겠다고 하면서 “헐리우드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 아주 미쳐 있었다.
특히 헐리우드 영화에 매료되어 “미국 영화가 최고다.
미국 영화는 분명하며 실제 같고 영상이 놀랍도록 훌륭하다.
미국 영화는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다.
말을 적게 할수록 더욱 완벽해진다”고 말했다.
워홀이 제작한 영화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에 따로 관람객을 확보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이익도 없었다.
여태까지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도 안 되었지만 그는 자부심을 가지고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헐리우드에 가서 제작자들을 만났지만 헐리우드로 진출하고 싶은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워홀이 파리에서 돌아오자 친구들이 공장에서 ‘가장 훌륭한 50명(Fifty Most Beautiful People)’을 위한 파티를 열어 환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워홀은 누가 들어오는지 바라보았는데 유명가수 주디 갈란드,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차례로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워홀이 우상처럼 여기던 스타들인데 그의 파티에 참석한 것을 보면 그들이 워홀을 중요한 예술가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워홀은 명사로 인식되고 있었다.

에디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워홀을 따랐으며 워홀의 영화 〈음탕한 계집〉(1965), 〈레스토랑〉(1965), 〈부엌〉(1965) 등에 출연했다.
워홀은 〈부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아주 비논리적인 영화로 성격과 동기가 없는 완전히 웃기는 영화다.”

유성영화 시대에 접어든 후 시나리오를 썼던 타벨은 “내가 할 일은 무의미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으며 의미 없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 앤디가 ‘줄거리를 없애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성격이 없는 배역들을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워홀은 생김새만 남자였지 하는 짓은 영락없는 여자였다.
워홀의 영화에 출연했던 비바(Viva)는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앤디의 몸에 손을 대면 앤디는 정말로 싫어한다.
움츠리면서 칭얼거린다는 뜻이다.
나는 여러 차례 앤디를 붙들고 장난을 치거나 그를 만졌는데 앤디는 정말로 겁을 내면서 움찔했다.
앤디는 ‘아, 비바, 아아아’ 하고 소리쳤다.
우리는 앤디가 움츠리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기 위해 늘 그의 몸을 만지며 놀았다.”

에디와 워홀은 뉴욕의 가장 이상적인 연인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함께 외출하는 일이 잦았으며 함께 파티에 나타나기 보통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T셔츠에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파티에 간 적도 있었다.
워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에디가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바랬던 것이 아니고 에디가 바랬던 것인데 내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잡지 《에스콰이어 Esquire》가 워홀에게 인생의 동반자로 누구를 꼽겠냐고 물었을 때 “에디다.
그녀는 나보다 내게 더 잘 해준다”고 답했다.

그러나 9월 에디가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워홀이 슈퍼스타로 알려진 만큼 자신은 유명하지 못하다고 투덜거리면서 워홀과 헤어져야겠다고 말했다.
에디의 친구들은 워홀과 헤어지면 배우로서의 위상이 하락하고 말 것이라면서 워홀 옆에 바짝 붙어있으라고 말해주었다.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이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에디의 요구들이란 워홀이 들어줄 수 없는 일들이라 다툴 수밖에 없었는데, 에디는 자신이 워홀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워홀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에디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워홀의 다음 영화에는 아예 에디의 역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나빴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주일에 5~ 6백달러를 지불하면서 영화를 제작하는 워홀은 아직 제작비도 못 건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에디를 주인공으로 쓰는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니 둘의 관계는 자연히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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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과 여신의 신방꾸미기 

 
바빌론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지만 마덕Marduk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바빌론이 한 나라로 통일되기 전 각 도시국가에는 그곳 주민들이 섬기던 신들을 각각 있었다.
하무라비가 모든 국가들을 통일하여 한 나라를 건립하자 각 신들 또한 하무라비가 섬기던 마덕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마덕은 그리스인들이 섬긴 제우스Zeus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신들의 간음인데 남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신들도 있었으므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하게 되면 남신과 여신의 신방을 꾸미게 된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2세 신들 가운데는 철없는 재벌 2세들처럼 개구장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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