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가나의 혼례잔치>
보스의 초기 작품들에서 사본장식화의 영향이 현저함을 보며 이런 요소들은 후기 작품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므로 그가 사본장식화가의 작업장에서 회화를 수학했을 것이란 추측을 낳게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회화를 수학한 도시는 대가 에베르트 반 수덴발흐와 추종자들이 1450년대와 60년대 왕성하게 활약한 위트레흐트였을 것이다.
초기 작품에는 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도 있다.
베니스 총독 궁전에 있는 <성 율리아노의 십자가 처형>의 경우 보스는 중앙 패널 일부만 그렸다.
그 밖의 초기 작품들로 <율법학자들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 <간음으로 붙잡힌 여인과 그리스도>, 그리고 <이 사람을 보라>를 위한 습작 드로잉으로 짐작되는 뉴욕의 모간 도서관 소재 <오른편을 바라보는 남자들> 등이 있다.
전통에서 멀어진 작품이 좀더 후에 제작한 <가나의 혼례잔치>이다.
이 작품은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이며 상단 모퉁이가 잘렸고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다시금 채색되었다.
아래 두 마리 개는 18세기에 누군가가 삽입한 것이다.
원작에 충실한 파리의 루브르 뮤지엄 소재 드로잉을 보면 두 마리 개는 보이지 않고 하단 왼쪽에 두 사람이 그려져 있었음을 본다.
<가나의 혼례잔치>는 예수가 처음 기적을 행한 성서의 기록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례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
유다인들에게는 정결예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 예식에 쓰이는 두세 동이들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예수께서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하셨다.
하인들이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을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 일이오!” 하고 감탄하였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갈릴래아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한복음 2:1~11)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성서에는 수덴발흐의 조수가 묘사한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 행위 장면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모습이 있다.
독특한 유머 감각을 가진 이 화가는 포도주 단지를 단숨에 비우는 사람을 삽입했다.
그러나 보스는 구성을 복잡하게 하면서 성서를 달리 해석했다.
성서에 기술된 가나의 혼례잔치는 예수의 친척 혹은 마리아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집에서 열린 것이지만 네덜란드인에게는 커다란 술집에서 일어난 일로 이해되었다.
당시 네덜란드 부활절 드라마들 중 최소한 한 편이 가나의 혼례잔치를 술집으로 무대에 장치했다. 보스는 실내를 화려하게 꾸며 술집 혹은 대저택에서 벌어진 향연으로 묘사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은 화면 아래 오른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성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보스는 테이블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장면으로 구성하기 위해 기역자 모양의 기다란 테이블을 사용하면서 회화적 구성을 위해 30도 정도 틀었다.
그리스도는 오른편 가장자리에 앉아 있으며 그리스도 뒤 벽에는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아름다운 무늬를 짠 직물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스도 양편에는 당시의 의상을 한 두 남자 축하객이 앉아 있다.
테이블 중앙 성모 왼편에 신랑 신부가 있으며 신랑의 모습이 보스의 <복음서 저자 성 요한>을 닮아 요한의 혼례임을 시사한다.
성서에는 신랑이 누구라고 밝혀져 있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한 제자 요한으로 알려졌다.
전설에 의하면 혼례잔치가 끝나자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아내를 두고 나를 따르라. 더욱 더 숭고한 혼례식으로 인도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더러는 신부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보스의 작품은 일상적인 혼례잔치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숭고라는 중세의 이상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화면 중앙 관람자에게 등을 돌리고 선 아이가 성찬배를 들고 있는 것이 숭고에 대한 의식으로 보여진다.
일부 학자들은 보스가 혼례잔치를 술집에서 벌어진 것으로 묘사함으로서 순수한 혼인식을 세속적 방탕과 대비시켰다고 주장한다.
<마술사>에서도 보았듯이 이 작품 또한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보스가 단순한 동기에서 작품을 제작하지 않고 교훈적·종교적·사회적으로 많은 점을 시사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의 이상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병렬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교화시키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상단 왼편 두 하인은 하객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내오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불을 내뿜는 멧돼지 머리와 백조를 접시에 받쳐들고 있으며 이를 보고 오른편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백조는 고대 비너스의 화신으로 부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멀리 뒤에는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지휘봉을 들고 연주를 리드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일부 하객들은 술을 마시며 잡담한다.
보스가 세속을 악의 세계로 은유했음이 틀림 없다.
금욕주의적 이상 세계와 세속 이 두 세계는 후기 작품 대부분에서 은유적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