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회화에서 은퇴하겠다고 하면서
1965년 5월 워홀은 에디, 말랑가, 척 와인과 함께 소나벤드(Sonnabend) 화랑에서 열릴 전람회를 위해 파리로 갔다.
소나벤드는 워홀 일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사서 보냈고 워홀 일행 4명은 파리로 가서 화랑 근처 레프트뱅크 호텔에 묵었다(그림 136, 137).
소나벤드 화랑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피카소가 살던 집 근처에 있었는데 워홀은 이 20세기의 대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 했다.
여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워홀도 피카소를 좋아하면서 “피카소의 모습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워홀이 대가들에 관해 말할 때는 미학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좋다” 또는 “대단하다”라고만 말했는데, 과연 그가 대가들의 미학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할 만하다.
이 무렵 워홀은 회화에서 은퇴하겠다고 하면서 “헐리우드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 아주 미쳐 있었다.
특히 헐리우드 영화에 매료되어 “미국 영화가 최고다.
미국 영화는 분명하며 실제 같고 영상이 놀랍도록 훌륭하다.
미국 영화는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다.
말을 적게 할수록 더욱 완벽해진다”고 말했다.
워홀이 제작한 영화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에 따로 관람객을 확보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이익도 없었다.
여태까지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도 안 되었지만 그는 자부심을 가지고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헐리우드에 가서 제작자들을 만났지만 헐리우드로 진출하고 싶은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워홀이 파리에서 돌아오자 친구들이 공장에서 ‘가장 훌륭한 50명(Fifty Most Beautiful People)’을 위한 파티를 열어 환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워홀은 누가 들어오는지 바라보았는데 유명가수 주디 갈란드,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차례로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워홀이 우상처럼 여기던 스타들인데 그의 파티에 참석한 것을 보면 그들이 워홀을 중요한 예술가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워홀은 명사로 인식되고 있었다.
에디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워홀을 따랐으며 워홀의 영화 〈음탕한 계집〉(1965), 〈레스토랑〉(1965), 〈부엌〉(1965) 등에 출연했다.
워홀은 〈부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아주 비논리적인 영화로 성격과 동기가 없는 완전히 웃기는 영화다.”
유성영화 시대에 접어든 후 시나리오를 썼던 타벨은 “내가 할 일은 무의미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으며 의미 없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 앤디가 ‘줄거리를 없애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성격이 없는 배역들을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워홀은 생김새만 남자였지 하는 짓은 영락없는 여자였다.
워홀의 영화에 출연했던 비바(Viva)는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앤디의 몸에 손을 대면 앤디는 정말로 싫어한다.
움츠리면서 칭얼거린다는 뜻이다.
나는 여러 차례 앤디를 붙들고 장난을 치거나 그를 만졌는데 앤디는 정말로 겁을 내면서 움찔했다.
앤디는 ‘아, 비바, 아아아’ 하고 소리쳤다.
우리는 앤디가 움츠리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기 위해 늘 그의 몸을 만지며 놀았다.”
에디와 워홀은 뉴욕의 가장 이상적인 연인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함께 외출하는 일이 잦았으며 함께 파티에 나타나기 보통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T셔츠에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파티에 간 적도 있었다.
워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에디가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바랬던 것이 아니고 에디가 바랬던 것인데 내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잡지 《에스콰이어 Esquire》가 워홀에게 인생의 동반자로 누구를 꼽겠냐고 물었을 때 “에디다.
그녀는 나보다 내게 더 잘 해준다”고 답했다.
그러나 9월 에디가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워홀이 슈퍼스타로 알려진 만큼 자신은 유명하지 못하다고 투덜거리면서 워홀과 헤어져야겠다고 말했다.
에디의 친구들은 워홀과 헤어지면 배우로서의 위상이 하락하고 말 것이라면서 워홀 옆에 바짝 붙어있으라고 말해주었다.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이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에디의 요구들이란 워홀이 들어줄 수 없는 일들이라 다툴 수밖에 없었는데, 에디는 자신이 워홀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워홀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에디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워홀의 다음 영화에는 아예 에디의 역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나빴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주일에 5~ 6백달러를 지불하면서 영화를 제작하는 워홀은 아직 제작비도 못 건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에디를 주인공으로 쓰는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니 둘의 관계는 자연히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