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맥주 마시러 가자!” 
 

1944년 여름의 어느 날 미국의 위대한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폴록의 화실을 찾아왔다.
폴록은 윌리엄스와 함께 자주 술집에 가곤 했는데, 리는 지난 해 폴록에게 생겼던 동성애 감정 때문에 두 사람의 잦은 외출을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다.
윌리엄스는 동성연애자로 알려져 있었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동성연애자 전용 술집에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폴록은 그를 만나자 신이 나서 매일 그와 동행하여 술을 마시러 다녔고 리는 폴록을 찾느라고 이 술집 저 술집을 기웃거리며 온 여름을 보내야 했다.
리가 폴록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깨끗하게 씻긴 후 잠을 재우면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외출했다.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의 일이 반복되었다.
폴록은 친구들을 만나면 으례 먼저 하는 말이 “자, 맥주 마시러 가자!”였다고 한다.
마침내 바텐더들은 폴록의 출입을 사양하기 시작했다. 그는 술에 취하면 술집 분위기를 망쳐놓아 다른 손님들에게까지 피해를 주었으므로 바텐더들은 폴록이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다.
어느 날 리틀이 폴록과 함께 알버트 호텔 술집에 들어가 막 앉는데 바텐더가 폴록에게 오더니 “여기서 썩 꺼지지 않는다면 경찰관을 부르겠다!”고 소리쳤다.
밖으로 나온 후 리틀이 폴록에게 “그 친구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냐?”고 물었다.
폴록은 “글쎄, 어제도 난 그곳에 있었는데”라고만 대답했다.
두 사람은 길 건너에 있는 나이트클럽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리틀에 따르면 그들은 폴록을 보더니 “오, 아냐. 당신은 여기에 올 수 없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일이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이나 일어났으니 잭슨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서도 폴록은 계속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게다가 폴록은 첫눈이 오면 밖으로 나가서 더러운 바닥에 뒹굴었고, 지나가는 차들을 정지시켰으며, 행인들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것은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불량배 같은 소행이었다.
한 친구는 폴록이 눈에 오줌을 싸는 것을 보았다면서 “잭슨은 김이 나는 오줌을 여기저기에 마구 싸면서 ‘난 전세계에 오줌을 쌀 수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전했다.
겨울이 오자 낮이 짧아지고 대신 밤이 길어졌으므로 그가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었다.
“잭슨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는데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동안 사라지기도 했다”고 카디시는 말한다.
그럴 때면 리는 폴록에게 몹시 화를 내고 히스테리를 부렸으며 어떤 때는 폴록을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늦도록 폴록이 귀가하지 않으면 리는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잭슨이 올 때가 됐는데…”라고 중얼거리는, 그런 여자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지성적인 익살


뒤샹은 재담가였다. 그에게는 지성적인 익살이 있었으며, 삽화를 그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해학적 요소를 그림에 더할 줄 알았다.
<기차를 탄 슬픈 젊은이>에서는 이런 요소가 드러나 있다.
“<기차를 탄 슬픈 젊은이>에서 이미 유머를 그림에 삽입하려는 나의 의도가 드러났다.
아폴리네르가 그것을 ‘기차에 있는 우울함’이라고 부른 것으로 생각된다.
젊은이가 슬픈 이유는 기차가 뒤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뒤샹은 곧이어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그렸는데 마찬가지로 유머가 삽입된 그림이었다.
미술사학자 윌리엄 루빈은 그 그림은 대작이 못되는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제목만큼은 문제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과거에도 누드를 주제로 그린 화가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 누드를 그릴 때는 영웅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여 신성이나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위상을 나타낸 반면 여자 누드를 그릴 때는 비스듬히 기대어 있거나, 목욕을 하거나, 미모를 뽐내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누드모델에게 선정적인 동작을 취하도록 요구했지만 누드를 운동의 모습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누드가 계단을 내려간다는 것은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지 순수미술에서는 가당치 않은 발상이었다.
뒤샹은 코믹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유머를 순수미술에 도입했으며, 이런 점이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에 관해 뒤샹은 말했다.
“그것은(습작 드로잉을 말함) 그저 모호하게 연필로 계단을 오르는 누드를 그린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그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뮤지컬 코미디를 보면 많은 계단들이 있지 않은가.”

그가 1911년 12월에 처음 그린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1>에 나타난 계단은 어린 시절을 보낸 블랭빌의 집 계단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가 이듬해 1월에 그린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는 먼저 것에 비해 사람의 모습이 더욱 생략되었다.
스무 장면이 넘는 여인의 스타카토 같은 장면은 여인이라기보다는 로봇처럼 보였다.
그는 브라운색, 회색, 푸른색을 입체주의 예술가들의 분석적 방법으로 서로 겹치게 사용했다.
그는 유머 외에도 입체주의 그림에 애욕적인 요소를 보탰는데 이는 처음 시도한 것이었다.
퓌토의 입체주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유머스럽고 애욕적인 요소가 정숙한 자기들의 입체주의 그림에 비해서 질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그의 그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이 시기에 폴록에게 성(性)에 대한 혼돈이 생겼다

그는 존 리틀을 자주 만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리틀의 친구 와드 베넷을 소개받았다.
폴록이 만났던 베넷은 한스 호프만의 제자로서 잘생긴 스물다섯 살의 동성연애자였다.
베넷과 폴록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은 믿을 만할 정도로 알려졌지만 베넷에게 직접 그 사실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묻는 사람은 은근히 그가 사실을 시인해주기를 바랬지만 베넷은 “난 잭슨과 함께 침대로 간 적은 없었어요.
그는 내게 정말 관심이 대단했었죠.
난 그와 섹스를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성적으로는 잭슨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는 다정했고 난 그를 좋아했지만 섹스 파트너로 그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부사가 지적해준 어느 사내를 인터뷰했을 때 그 사내는 자신이 폴록과 키스를 한 번 내지는 두 번 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폴록을 잘 아는 부사는 그 사내가 말을 우아하게 하느라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그가 폴록과 성관계를 가졌음을 자신 있게 지적했다.
카디시는 자신만만하게 “난 잭슨이 여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처럼 사내들과 성관계를 가졌던 것을 알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폴록의 동성애 감정은 1944년 늦가을과 이듬해 봄에 자학의 증세로 나타나기도 했다.
폴록은 술집에서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건장한 사내에게 대들었고, 그 사내는 폴록을 한손에 움켜쥐고서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를 바라느냐?”고 말한 뒤 그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도록 거리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고 리틀은 전한다.
폴록은 이 시기에 술을 자주, 또 많이 마셨고 말끝마다 ‘시팔’이라고 했다.
그는 위스키 한 병을 단숨에 비우기가 예사였으며, 그래도 모자라서 더 마시곤 했다.
어느 날은 다리뼈가 부서지도록 술집의 의자와 탁자들을 부수면서 난동을 부렸다가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폴록이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동안 그의 그림들에 대한 평론가들의 언급은 여러 잡지에서 보도되었고 리는 은근히 자신의 그림들도 그러한 영광을 받기를 기대했다.
1944년 6월 초에 벤턴이 뉴욕에 왔다가 폴록의 화실을 찾았다.

폴록은 5층 층계를 단숨에 내려가 스승을 맞았는데 그것은 3년 만의 재회였다.
벤턴은 리의 그림들을 보자고 했지만 그녀의 그림들을 둘러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리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를 알아채고 폴록은 맥주 마시러 가자며 벤턴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리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던 그녀의 그림들을 폴록이 완성시켜놓은 것이었다.
그때부터 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 폴록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카디시는 두 사람이 한 방에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리는 프로빈스타운에 있는 한스 호프만의 집에서 여름 화실을 갖기로 작정했다.
당시 호프만은 그곳에서 여름학교를 열고 있었다.
리가 호프만에게로 간다고 하자 폴록은 호프만의 식민지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그곳의 풍경이 하도 좋아서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호프만은 역에 마중나와 있었다.
그는 집으로 곧장 가기 전에 몇 군데 들러서 훌륭한 장관들을 보여주겠다면서 차를 몰았는데 차가 모래에 빠지고 말았으므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는 모래를 빠져나오려고 가스 페달을 힘껏 밟았지만 타이어는 더욱 모래에 묻히고 말았다.
호프만은 독일어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폴록은 말없이 차에서 내려 차를 들어 모래 밖으로 밀어내었다.
호프만은 여름 내내 폴록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폴록? 그는 힘이 세지. 그는 차를 번쩍 들었어”라고 말했다.

리는 바닷가에 있는 집에 세들었다.
두 사람은 수영도 하고 조개도 줍고 그림도 그리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리는 풋젤을 그곳으로 초대했다. 풋젤은 그해 가을에 자신의 화랑을 열 계획을 갖고 있었다.
리는 여느 예술가들의 아낙들과 마찬가지로 화랑 주인, 평론가, 그리고 예술가를 돕는 사람들에게 의식적인 친절을 베풀 줄 알았다.

폴록과 호프만은 만나면 곧잘 논쟁에 빠졌다.
폴록은 호프만과 논쟁하면서 호프만에게 그의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말하도록 시도했다.
호프만은 “만일 네가 네 자신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넌 풍경화보다 더 커다란 이미지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으며 또 그는 폴록이 자연으로부터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고, 폴록은 데카르트의 이원론 철학을 주장했다고 한다.
호프만은 마지막에 폴록에게 “아하, 네가 만일 너의 내면으로부터 작업한다면 넌 네 자신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고 했으며, 폴록은 그의 말이 예언처럼 들렸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우울증과 동성애 감정은 깊어만 가고

벽화를 배달한 후 폴록은 심한 우울증에 빠진 채 화실에 틀어박혀 술만 마시고 있었다.
호프만은 제자 둘을 폴록에게 소개하려고 그의 아파트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4층 계단에 올랐을 때 윗층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폴록의 이젤이 4층 층계로 굴렀다.
놀란 호프만이 그것을 주워 화실에 들어서니 폴록은 몹시 공포에 떨고 있었다.
호프만이 그에게 왜 이젤을 집어던졌느냐고 물으니 그는 울기 시작하면서 “난 내 이젤이 싫어졌다. 난 예술을 증오한다”고 소리쳤다.
오랜만에 그의 정신분열 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날 이후 폴록이 허구한 날 술만 마시자 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에 대한 징벌로 폴록이 소외감을 느끼도록 일부러 무관심한 척했다.
어느 날 밤 리의 친구 벳시 족바움(Betsy Zogbaum)이 저녁 파티에 가기 위해 그녀를 데리러 왔는데 리는 그녀에게 폴록을 소개하지 않았다.
족바움이 폴록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야?”라고 묻자 리는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냐”라고 대답했다.
해롤드 로젠버그와 아내 메이가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와서 리를 만나기 위해 잠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메이는 “난 그(폴록)가 잡일을 하는 사람으로 리의 캔버스를 늘이는 일을 하거나 그녀의 그림 액자를 만드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폴록은 리의 벌을 감당할 수 없었고 더욱 심한 우울증에 빠져버리고 말았으므로 리는 할 수 없이 그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리의 말로는 과거에 폴록을 치료했던 드 라즐로는 치료비만 비싸게 요구할 뿐 폴록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드 라즐로는 “리는 소유욕이 아주 강하므로 잭슨이 어느 누구에게라도 의존하게 되면 자신이 협박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리는 폴록을 자신의 단골 의사에게 데리고 갔는데 그녀는 이스트 73번가에 진료소를 두고 있는 엘리자베스 허바드(Elizabeth Hubbard)였다.
폴록은 곧 그녀를 좋아했다. 여느 정신분열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폴록도 그녀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폴록은 자주 그녀의 치료를 받았으며 그녀가 다른 환자들을 돌볼 때에는 윗층에 있는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곤 했다.

허바드의 딸은 학교에서 돌아와보면 폴록이 거실에서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분을 잡쳤다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하룻밤에 완성한 벽화

전람회를 마치고 12월 폴록은 페기가 부탁했던 610㎝ 길이의 벽화를 그리려고 했지만 막상 캔버스 앞에 서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재학할 때 벤턴이 벽화를 그리는 것을 보았고, 멕시코 예술가 시쿠에이로스의 조수로 그의 일을 도우면서 그가 커다란 벽화를 쉽게 그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벽화를 그리고 싶어했었는데 막상 그리려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야 좋을지 착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폴록의 작은 그림들은 훌륭했지만 커다란 그림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그린버그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수주 전에는 『네이션』지에서도 폴록이 그림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 예술가는 주문하는 것들을 모두 채우지는 못하고 있으며 … 한 번에 너무 많은 방향으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의 공간은 팽팽하지만 그림으로 폭발하지는 못한다”고 기술했다.

폴록은 리에게 “네가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어디 가서 며칠 있다가 오라”고 했고 리는 모처럼 부모를 만나러 헌팅턴에 있는 친정으로 갔다. 사흘 후 리가 돌아와보니 캔버스는 여전히 하얗게 비어 있는 상태였다.

어느 날 오후 리의 친구 존 리틀이 두 사람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리가 우울한 표정으로 있는 것을 보았다. 리는 리틀에게 벽화를 내일까지 배달해주기로 페기와 약속했다고 말하면서 “잭슨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투덜거렸다. 며칠 후 리틀이 다시 그녀를 방문했을 때 리는 밝은 얼굴로 “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믿을 수 없을 거야. 잭슨이 저 그림을 어젯 밤에 완성했다”고 말했다. 하룻밤에 완성할 그림을 폴록은 한 달에 걸쳐 망설인 것이었다.

폴록의 기교를 자세히 보자. 그는 붓과 막대기를 함께 사용하여 내려덮친 듯한 검은 선과 소용돌이치는 형태들로 그림 전체를 구성하면서 올 오버(all over) 방법으로 벽화를 그렸다. 올 오버 방법을 먼저 창조한 예술가는 클로드 모네였다. 모네는 말년에 정원 연못에 떠다니는 수련들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빛이 수면과 수련 잎들에 반사되어 일으키는 색조들을 흐리게 묘사했다. 그는 어떤 형태가 주제로 부각되게 그리지 않고 캔버스 전체를 하나의 주제가 되게 그려냈다. 폴록의 소용돌이치는 듯한 올 오버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완전추상처럼 보이지만 내려덮친 많은 검은 선들은 토템적인 꼿꼿한 모습들로 나타나 모호한 형태가 되었다.

페기가 폴록의 화실로 트럭을 보내와 폴록은 그림을 갖고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도착해보니 그녀는 없었고 대신 뒤샹과 헤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걸기에는 폴록의 그림이 8인치가 길다는 것을 보고, 뒤샹이 그림을 그만큼 잘라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폴록은 “O.K.”라고 대답한 후 2층 거실로 올라가 두 사람이 그림을 벽에 걸 동안 술을 마셨다. 어지간히 취하자 폴록은 화랑으로 전화를 걸어 페기더러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페기는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다고 했다. 폴록은 다시 전화를 걸었고 페기는 화를 내며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녀가 집으로 와야 한다고 우겼다. 페기의 자서전에는 그날 오후 폴록이 옷을 모두 벗어버린 알몸으로 페기의 룸메이트 진 코놀리가 연 파티에 나타나는 바람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아주 불쾌해 했으며 폴록은 벽난로로 가더니 오줌을 쌌다고 적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