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이 시기에 폴록에게 성(性)에 대한 혼돈이 생겼다
그는 존 리틀을 자주 만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리틀의 친구 와드 베넷을 소개받았다.
폴록이 만났던 베넷은 한스 호프만의 제자로서 잘생긴 스물다섯 살의 동성연애자였다.
베넷과 폴록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은 믿을 만할 정도로 알려졌지만 베넷에게 직접 그 사실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묻는 사람은 은근히 그가 사실을 시인해주기를 바랬지만 베넷은 “난 잭슨과 함께 침대로 간 적은 없었어요.
그는 내게 정말 관심이 대단했었죠.
난 그와 섹스를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성적으로는 잭슨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는 다정했고 난 그를 좋아했지만 섹스 파트너로 그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부사가 지적해준 어느 사내를 인터뷰했을 때 그 사내는 자신이 폴록과 키스를 한 번 내지는 두 번 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폴록을 잘 아는 부사는 그 사내가 말을 우아하게 하느라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그가 폴록과 성관계를 가졌음을 자신 있게 지적했다.
카디시는 자신만만하게 “난 잭슨이 여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처럼 사내들과 성관계를 가졌던 것을 알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폴록의 동성애 감정은 1944년 늦가을과 이듬해 봄에 자학의 증세로 나타나기도 했다.
폴록은 술집에서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건장한 사내에게 대들었고, 그 사내는 폴록을 한손에 움켜쥐고서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를 바라느냐?”고 말한 뒤 그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도록 거리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고 리틀은 전한다.
폴록은 이 시기에 술을 자주, 또 많이 마셨고 말끝마다 ‘시팔’이라고 했다.
그는 위스키 한 병을 단숨에 비우기가 예사였으며, 그래도 모자라서 더 마시곤 했다.
어느 날은 다리뼈가 부서지도록 술집의 의자와 탁자들을 부수면서 난동을 부렸다가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폴록이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동안 그의 그림들에 대한 평론가들의 언급은 여러 잡지에서 보도되었고 리는 은근히 자신의 그림들도 그러한 영광을 받기를 기대했다.
1944년 6월 초에 벤턴이 뉴욕에 왔다가 폴록의 화실을 찾았다.
폴록은 5층 층계를 단숨에 내려가 스승을 맞았는데 그것은 3년 만의 재회였다.
벤턴은 리의 그림들을 보자고 했지만 그녀의 그림들을 둘러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리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를 알아채고 폴록은 맥주 마시러 가자며 벤턴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리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던 그녀의 그림들을 폴록이 완성시켜놓은 것이었다.
그때부터 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 폴록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카디시는 두 사람이 한 방에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리는 프로빈스타운에 있는 한스 호프만의 집에서 여름 화실을 갖기로 작정했다.
당시 호프만은 그곳에서 여름학교를 열고 있었다.
리가 호프만에게로 간다고 하자 폴록은 호프만의 식민지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그곳의 풍경이 하도 좋아서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호프만은 역에 마중나와 있었다.
그는 집으로 곧장 가기 전에 몇 군데 들러서 훌륭한 장관들을 보여주겠다면서 차를 몰았는데 차가 모래에 빠지고 말았으므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는 모래를 빠져나오려고 가스 페달을 힘껏 밟았지만 타이어는 더욱 모래에 묻히고 말았다.
호프만은 독일어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폴록은 말없이 차에서 내려 차를 들어 모래 밖으로 밀어내었다.
호프만은 여름 내내 폴록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폴록? 그는 힘이 세지. 그는 차를 번쩍 들었어”라고 말했다.
리는 바닷가에 있는 집에 세들었다.
두 사람은 수영도 하고 조개도 줍고 그림도 그리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리는 풋젤을 그곳으로 초대했다. 풋젤은 그해 가을에 자신의 화랑을 열 계획을 갖고 있었다.
리는 여느 예술가들의 아낙들과 마찬가지로 화랑 주인, 평론가, 그리고 예술가를 돕는 사람들에게 의식적인 친절을 베풀 줄 알았다.
폴록과 호프만은 만나면 곧잘 논쟁에 빠졌다.
폴록은 호프만과 논쟁하면서 호프만에게 그의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말하도록 시도했다.
호프만은 “만일 네가 네 자신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넌 풍경화보다 더 커다란 이미지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으며 또 그는 폴록이 자연으로부터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고, 폴록은 데카르트의 이원론 철학을 주장했다고 한다.
호프만은 마지막에 폴록에게 “아하, 네가 만일 너의 내면으로부터 작업한다면 넌 네 자신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고 했으며, 폴록은 그의 말이 예언처럼 들렸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