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지성적인 익살
뒤샹은 재담가였다. 그에게는 지성적인 익살이 있었으며, 삽화를 그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해학적 요소를 그림에 더할 줄 알았다.
<기차를 탄 슬픈 젊은이>에서는 이런 요소가 드러나 있다.
“<기차를 탄 슬픈 젊은이>에서 이미 유머를 그림에 삽입하려는 나의 의도가 드러났다.
아폴리네르가 그것을 ‘기차에 있는 우울함’이라고 부른 것으로 생각된다.
젊은이가 슬픈 이유는 기차가 뒤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뒤샹은 곧이어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그렸는데 마찬가지로 유머가 삽입된 그림이었다.
미술사학자 윌리엄 루빈은 그 그림은 대작이 못되는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제목만큼은 문제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과거에도 누드를 주제로 그린 화가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 누드를 그릴 때는 영웅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여 신성이나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위상을 나타낸 반면 여자 누드를 그릴 때는 비스듬히 기대어 있거나, 목욕을 하거나, 미모를 뽐내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누드모델에게 선정적인 동작을 취하도록 요구했지만 누드를 운동의 모습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누드가 계단을 내려간다는 것은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지 순수미술에서는 가당치 않은 발상이었다.
뒤샹은 코믹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유머를 순수미술에 도입했으며, 이런 점이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에 관해 뒤샹은 말했다.
“그것은(습작 드로잉을 말함) 그저 모호하게 연필로 계단을 오르는 누드를 그린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그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뮤지컬 코미디를 보면 많은 계단들이 있지 않은가.”
그가 1911년 12월에 처음 그린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1>에 나타난 계단은 어린 시절을 보낸 블랭빌의 집 계단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가 이듬해 1월에 그린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는 먼저 것에 비해 사람의 모습이 더욱 생략되었다.
스무 장면이 넘는 여인의 스타카토 같은 장면은 여인이라기보다는 로봇처럼 보였다.
그는 브라운색, 회색, 푸른색을 입체주의 예술가들의 분석적 방법으로 서로 겹치게 사용했다.
그는 유머 외에도 입체주의 그림에 애욕적인 요소를 보탰는데 이는 처음 시도한 것이었다.
퓌토의 입체주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유머스럽고 애욕적인 요소가 정숙한 자기들의 입체주의 그림에 비해서 질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그의 그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