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하룻밤에 완성한 벽화
전람회를 마치고 12월 폴록은 페기가 부탁했던 610㎝ 길이의 벽화를 그리려고 했지만 막상 캔버스 앞에 서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재학할 때 벤턴이 벽화를 그리는 것을 보았고, 멕시코 예술가 시쿠에이로스의 조수로 그의 일을 도우면서 그가 커다란 벽화를 쉽게 그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벽화를 그리고 싶어했었는데 막상 그리려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야 좋을지 착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폴록의 작은 그림들은 훌륭했지만 커다란 그림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그린버그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수주 전에는 『네이션』지에서도 폴록이 그림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 예술가는 주문하는 것들을 모두 채우지는 못하고 있으며 … 한 번에 너무 많은 방향으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의 공간은 팽팽하지만 그림으로 폭발하지는 못한다”고 기술했다.
폴록은 리에게 “네가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어디 가서 며칠 있다가 오라”고 했고 리는 모처럼 부모를 만나러 헌팅턴에 있는 친정으로 갔다. 사흘 후 리가 돌아와보니 캔버스는 여전히 하얗게 비어 있는 상태였다.
어느 날 오후 리의 친구 존 리틀이 두 사람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리가 우울한 표정으로 있는 것을 보았다. 리는 리틀에게 벽화를 내일까지 배달해주기로 페기와 약속했다고 말하면서 “잭슨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투덜거렸다. 며칠 후 리틀이 다시 그녀를 방문했을 때 리는 밝은 얼굴로 “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믿을 수 없을 거야. 잭슨이 저 그림을 어젯 밤에 완성했다”고 말했다. 하룻밤에 완성할 그림을 폴록은 한 달에 걸쳐 망설인 것이었다.
폴록의 기교를 자세히 보자. 그는 붓과 막대기를 함께 사용하여 내려덮친 듯한 검은 선과 소용돌이치는 형태들로 그림 전체를 구성하면서 올 오버(all over) 방법으로 벽화를 그렸다. 올 오버 방법을 먼저 창조한 예술가는 클로드 모네였다. 모네는 말년에 정원 연못에 떠다니는 수련들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빛이 수면과 수련 잎들에 반사되어 일으키는 색조들을 흐리게 묘사했다. 그는 어떤 형태가 주제로 부각되게 그리지 않고 캔버스 전체를 하나의 주제가 되게 그려냈다. 폴록의 소용돌이치는 듯한 올 오버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완전추상처럼 보이지만 내려덮친 많은 검은 선들은 토템적인 꼿꼿한 모습들로 나타나 모호한 형태가 되었다.
페기가 폴록의 화실로 트럭을 보내와 폴록은 그림을 갖고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도착해보니 그녀는 없었고 대신 뒤샹과 헤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걸기에는 폴록의 그림이 8인치가 길다는 것을 보고, 뒤샹이 그림을 그만큼 잘라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폴록은 “O.K.”라고 대답한 후 2층 거실로 올라가 두 사람이 그림을 벽에 걸 동안 술을 마셨다. 어지간히 취하자 폴록은 화랑으로 전화를 걸어 페기더러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페기는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다고 했다. 폴록은 다시 전화를 걸었고 페기는 화를 내며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녀가 집으로 와야 한다고 우겼다. 페기의 자서전에는 그날 오후 폴록이 옷을 모두 벗어버린 알몸으로 페기의 룸메이트 진 코놀리가 연 파티에 나타나는 바람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아주 불쾌해 했으며 폴록은 벽난로로 가더니 오줌을 쌌다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