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정말 나쁜 일인가

 

 

 

 

먼저 죽음이 정말 나쁜 일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렇게 암울한 주제에서 출발하는 까닭은 죽음이 왜 나쁜 일이며, 죽음을 왜 두려워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야말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죽어가는 자에게 나쁜 일인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사람이 죽을 때면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충격과 더불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죽음이 왜 나쁜 일인지는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죽어가는 자에게 그 죽음이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슬퍼해봐야 별 수 없다는 변명은 그래봤자 너무 늦은 일이라는 순리적인 사고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왔다. 윌리엄 던바1가 1504년에 발표한 위대한 시 「시인의 죽음을 슬퍼하노라Lament for the Makaris」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생각해보자.

 

 

나 건강했고 즐거움에 넘쳤건만
이제 큰 병을 얻어 괴로움을 안고
무기력에 빠진 채 창백한 얼굴로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네


 

이 시에서 던바는 자신이 사랑하던, 그동안 알고 지냈던 시인들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들은 차례로 죽어갔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시인은 자신이 한때는 건강했고 행복했건만 이제는 병들고 쇠약해져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심란해한다. 늙은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터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초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이상 죽음은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이다.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후의 삶을 그려보기도 한다.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확실하지만, 삶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면 극단적인 파멸을 내다볼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여기서는 사후에 또 다른 삶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을 터이다. 또한, 죽음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논의 목적에 맞게 ‘죽음’이 극단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절멸을 뜻한다고 가정할 터이다. 사후에는 삶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후에 삶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정한 관심은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가다. 결국, 우리 존재가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맞이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이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의 두 철인 에피쿠로스2와 루크레티우스3가 내세운 주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두 사람은 인간이 죽음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일단 자신의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면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파괴적인 정서에 휩쓸릴 필요가 없음을 이내 깨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고요한 사색의 삶을 추구했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대표하는 몇몇 구절을 살펴보자.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네 자신을 스스로 길들이라. 선과 악을 구별하는 건 인간의 지각이지만, 죽음은 모든 지각을 앗아 가느니. 그러므로 죽음이란 모든 악 가운데 가장 두려운 악이로되, 우리가 존재한다면 죽음이 오지 않은 것이고,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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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구주弘範九疇란 무엇입니까?

 

 

 

기자箕子는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은 지 13년에 무왕武王에게 홍범구주弘範九疇, 즉 세상을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의 연원과 효용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기자는 오행五行에 관해 언급했는데,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이 오행에 의해서 자연현상이나 인사현상의 일체가 발생한다는 주장입니다. 오행의 성질을 말하면 수水는 윤하潤下(물질을 윤택하게 해서 낮게 흐른다), 화火는 염상炎上(타서 위로 올라간다), 목木은 곡직曲直(휘거나 똑바로 된다), 금金은 종혁從革(자유롭게 변형한다), 토土는 가색稼穡(파종과 수확)입니다. 오행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것이 오사五事로 모(용모), 말, 시(눈의 작용), 청(귀의 작용), 사(사고)를 말하고, 하늘의 징조인 서징庶徵은 비, 창(가뭄), 오(더위), 추위, 바람을 말합니다. 다섯 가지 도덕을 오행이라 하기도 하는데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오상이 해당되는 것이 보통이나 인, 의, 예, 지, 성聖을 오행이라 하기도 합니다. 기자는 팔정八政에 관해서도 언급했는데 정사(政事의 여덟 가지 일로 식食(식생활), 화貨(재화財貨), 사祠(제사), 사공司空(농지農地 개간), 사도司徒(교육), 사구司寇(치안), 빈賓(외교), 사師(국방)을 말합니다. 기자가 말한 오기五紀는 다섯 가지 시간을 재는 계산법으로 세歲, 월月, 일日, 성신星辰, 역수曆數를 말하며 1기紀가 12년으로 오기五紀는60년을 합니다. 기자가 말한 황극皇極은 왕이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정한 대도大道로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의 도를 말합니다. 기자가 말한 삼덕三德은 wjsa하는 내용마다 조금 다른데,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이라고도 하고, 지智, 인仁, 용勇이라고도 하며, 지덕至德, 민덕敏德, 효덕孝德이라고도 합니다. 기자가 말한 계의稽疑는 의문나는 것을 상고하여 끝까지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기자가 말한 서징庶徵은 여러 가지 하늘의 징험을 말합니다. 기자가 말한 오복五福은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 다섯 가지로 장수長壽, 부富, 강녕康寧),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 있는 봉사를 하는 유호덕攸好德, 자기 집에서 깨끗이 죽음을 맞는 고종명考終命을 말합니다. 기자가 말한 육극六極은 매우 불길하게 여기는 여섯 가지 일로 변사變死와 요사夭死, 질疾, 우憂, 빈貧, 악惡, 약弱을 말합니다.

기자가 무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홍범구주의 첫째는 오행五行입니다. 둘째는 오사五事를 엄숙하게 운용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팔정八政에 힘쓰는 것입니다. 넷째는 오기五紀에 의지해서 천시天時를 조화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황극皇極을 세우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삼덕三德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계의稽疑하여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서징庶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오복五福으로 백성을 고무시키며 육극六極으로 백성을 훈계하는 것입니다.

 

오사五事에 대해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사五事는 용모貌와 언어言와 보는 것視과 듣는 것聽과 사려함思의 다섯 가지를 가리킵니다. 용모는 공손해야 하며, 언어는 조리가 있어야 하고, 보는 것은 밝아야 하며, 듣는 것은 명료해야 하고, 사려는 슬기로워야 합니다. 공손하면 엄숙할 수 있고, 조리가 있으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으며, 밝으면 일체를 분별할 수 있고, 명료하면 그 도모함에 어긋남이 없게 되며, 슬기로우면 모든 일에 통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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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이 드러난 사람 방광이 허하다

 

 

“방광 때문에 왔어요. 15년 전부터 방광염을 앓고 있어요. 그런데 부부관계만 가졌다 하면 배가 남산같이 불러오면서 소변이 자주 마려운 거예요. 소변이 꼭 거구로 치솟는 것 같구요. 아랫배도 많이 아픈데, 염증이 생기는 걸 제가 금방 느낄 수 있어요.”

40대 후반의 아내가 이렇게 말하자 비슷한 나이의 남편이 다음의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원래는 아주 건강했던 사람인데 요새는 어깨가 아파서 통 일을 못합니다. 작년 3월인가 아침에 일어나면서 어지럽다고 하길래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죠. 한데 그때 이후로 기운도 빠지고 찬바람만 쐬면 살이 마치 칼로 저미는 것 같대요. 뒷목도 뻣뻣해서 꼼짝도 못하구요.”

환자는 “산부인과 약이랑 방광염 약이랑 두 가지를 다 먹고 있는데, 약을 자꾸 먹다보니까 위가 나빠졌어요. 또 주사를 하도 맞아서 그런지 엉덩이도 딱딱하구요” 하고 말했습니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환자의 증상을 임질의 일종으로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임질과는 종류가 다른 노림勞淋으로 판단했습니다. 노림은 소변의 배설이 순조롭지 않고 방울로 떨어지며 배뇨 후에는 음부가 은근히 아프고 팔다리가 나른한 임증淋症의 하나입니다. 노림은 하를 잘 내거나 성생활이 과다할 경우, 소변을 오랴 참는다든지 술과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었을 때, 그리고 습열에 의해서 생기는 병입니다. 조성태는 환자에게 가미팔물탕加味八物湯을 처방했습니다.

가미팔물탕은 명나라 사람 공신龔信이 지은 <만병회춘萬病回春>에 수록되어 있는 팔물탕에 가감한 것으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 있는 팔물군자탕八物君子湯,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도 이 팔물탕에 가미한 것입니다. 가미팔물탕은 소음인의 기혈을 돕는 것으로 허로증虛勞症을 치료하는 처방입니다. 허로증이란 전신이 허약하여 뼈마디가 쑤시고 아프며, 가끔 열이 오르고 허리가 아프며 잠을 자면 땀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놀란 사람같이 가슴이 뛰고 불안초조하며 기운이 없어 눕고만 싶어지거나,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며 피부근육에 탄력성이 없거나, 자주 기침을 하고 가래가 끓으며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볼에 홍조를 띠고 정신이 혼미하며 식욕이 없거나 하는 증세에 기혈을 돕는 가미팔물탕을 처방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소음인에 한해서 써야 합니다.

콧구멍이 드러난 것은 관상학적으로도 재물이 새나간다 하여 좋지 않은데, 건강상으로도 이런 사람은 방광이 좋지 않아서 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냅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서부터 소변 쪽에 이상 현상을 보이는데, 유뇨증遺尿症이라 하여 소변을 잘 참지 못해 자주 보거나 늦게까지 소변을 가리지 못합니다. 서양의학에서는 유뇨증enuresis을 3~5세에 많이 나타나는 정신적 문제로 보고 요실금과 달리 기질적 장애로 보지 않습니다. 유뇨증은 체질과도 관련이 있으며, 치료에는 정신요법 외에 방광벽 긴장을 완화하는 부교감신경차단제도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방광이 좋지 않아 소변보는 데 이상이 생기면 아랫배가 불쾌하고 허리에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소변을 보고 나서도 뒤끝이 개운치 않으며 소변색이 뿌옇다가 말갛다가 누렇게 변하는 등 색깔이 자주 바뀝니다. 한의학에서는 소변이 변색되는 것을 소변황탁小便黃濁이라 하는데, 소변황탁은 소변을 통해 몸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말합니다. 이런 증상을 오래 방치하면 당뇨와 같은 성인병으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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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다

 

 

 

 

특히 진정성에 대한 주장이 매우 중요하다. 7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진정성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다. 쿠틉은 유대인의 “악성” 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온주의 의정서』를 인용할 때는 이념 전쟁의 근원이 유럽에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반유대주의를 이슬람 역사에 편입시켜 그것에 이슬람의 모양새를 부여했다. 이를 반유대주의의 이슬람화라 한다. 쿠틉에 따르면, 이념의 전쟁은 622년 이슬람교가 태동할 무렵에 시작되었으며, 메디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슬람 역사에서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랍계 기독교인이나 종교색을 띠지 않는 범아랍 민족주의 무슬림과는 달리, 쿠틉은 유럽식 반유대주의 사상을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라는 꾸며낸 역사의 기원을 추가하기도 했다.
코란은 신자로 인정되는 경전의 사람,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ahl-alkitab(아흘 알키타브)과 불신자(쿠파르)의 차이를 규정했다. 쿠틉은 엘리트 무슬림이므로 그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유대인 불신자al-kuffar alyahud(알쿠파르 알야후드)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이처럼 종교적 독트린에서 벗어난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은 본디 공동체에 들었으나 처음부터 이러한 권리가 박탈되었다. … 그들은 스스로 믿음을 버렸고 신앙인의 숙적이 되었다” 고 한다. 유대인을 둘러싼 적개심은 “메디나에 이슬람국가가 확립될 당시, 단일 무슬림 공동체에 통합되었던 첫날부터 유대인이 무슬림의 심기를 건드렸던 때” 로 거슬러 올라간다는데,28 쿠틉은 국가(다울라)를 거론하면서 메디나 조직의 근간을 잘못 언급하고 말았다. 당시 이슬람 문헌에 국가(다울라)가 쓰인 적은 없다. 이슬람 역사상 유대인과의 투쟁은 쉴 새 없이 계속되었다. 쿠틉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는데, 웅변조는 남아 있으나 정확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메디나에 정착한 초기 이슬람국가를 저해하고, 메카의 명족인 쿠라이시족을 비롯한 부족들을 선동하여 이슬람교의 근간을 흔들려고 했던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유대인이다. 내란을 일으키고, 3대 칼리프인 오스만을 시해해 비극을 초래한 세력의 배후에 누가 있는가? 유대인이 있다. 게다가 마지막 칼리프에 대항하여 국가의 분열을 부추기고 소요를 일으켜 샤리아 폐지를 유도한 아타튀르크는 누구인가? 역시 유대인이다. 그들이 오늘날까지 이슬람교와 분쟁을 벌여온 탓에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교의 부흥이 가로막혔다. 유대인의 역사도 모자라, 유대인과 이슬람과의 관계까지도 꾸며낸 쿠틉은 반유대주의적 뉘앙스가 강한 유대인의 기본 특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루이스가 반유대주의의 특징으로 규정한 “보편화된, 사탄의 악성” 이 등장한다.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는 유대인과는 합의나 화해나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강조하는 반유대주의적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쿠틉은 유대인이 악한 계략을 위해 “모든 무기와 수단뿐 아니라, 유대인다운 술책을 동원하리라” 믿었다. 보편화된 전쟁을 일으킨 쪽은 무슬림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이슬람교를 “공격”하려는 까닭을 묻고 싶을 것인데, 답변은 매번 “그네들의 성질 탓” 이었다. 그는 “유대인”이 “사악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비록 나치처럼 유대인의 전멸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기록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입장이 살짝 배어 있다. 쿠틉에 따르면, 유대인은 “동족 선지자들을 학살하고, 톱을 켜서 죽이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선지자들에게도 그런 짓을 했으니 온 인류를 겨냥한 유혈사태 외에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것이다.” 31 그는 이 같은 “악”에서
“인류를 해방시키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이는 단순한 유대인혐오증이라기보다는 그들을 “피에 굶주린 데다, 사악하고 극악무도하며” 인류에게 악을 행하려는 괴물로 규정하여 아주 멸절해야 마땅하다는 잔인한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이 이전의 반유대주의보다 더 위험한 까닭은 종교화된 정치의 표현수단인 이슬람 언어로 반유대주의 사상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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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삶의 의미

 

 

 

사람은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왜 그리 끈질기게 삶에 집착할까?

왜 어떤 이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구하려 할까?

왜 우리는 자식을 낳아 세대를 이어가려 할까?

끔찍스러운 자살은 왜 일어날까?

이들 물음에 대한 답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본능을 말한다. 인간이 삶에 집착하거나 생식을 하는 데는 본래 까닭이란 없다. 단순히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답은 만족스럽지 않다. 이런 식의 답은 사람들이 일시적인 광기에 휩쓸린 나머지, 살기 위해 투쟁하거나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이 될 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인간이 늘 비이성적으로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원초적인 본능에 사로잡혀 삶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삶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 사려 깊고 분별 있게 행동할 줄 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삶에 부여하는 분명한 가치에 관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삶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우리가 앞으로 평가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삶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집착을 달리 설명하는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는 삶을 하나의 주어진 선물이나 특혜로 보려는 견해이기도 하다. 이런 견해를 지닌 사람들은 삶을 막중한 그 무엇의 근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삶을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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