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다

특히 진정성에 대한 주장이 매우 중요하다. 7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진정성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다. 쿠틉은 유대인의 “악성” 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온주의 의정서』를 인용할 때는 이념 전쟁의 근원이 유럽에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반유대주의를 이슬람 역사에 편입시켜 그것에 이슬람의 모양새를 부여했다. 이를 반유대주의의 이슬람화라 한다. 쿠틉에 따르면, 이념의 전쟁은 622년 이슬람교가 태동할 무렵에 시작되었으며, 메디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슬람 역사에서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랍계 기독교인이나 종교색을 띠지 않는 범아랍 민족주의 무슬림과는 달리, 쿠틉은 유럽식 반유대주의 사상을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라는 꾸며낸 역사의 기원을 추가하기도 했다.
코란은 신자로 인정되는 경전의 사람,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ahl-alkitab(아흘 알키타브)과 불신자(쿠파르)의 차이를 규정했다. 쿠틉은 엘리트 무슬림이므로 그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유대인 불신자al-kuffar alyahud(알쿠파르 알야후드)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이처럼 종교적 독트린에서 벗어난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은 본디 공동체에 들었으나 처음부터 이러한 권리가 박탈되었다. … 그들은 스스로 믿음을 버렸고 신앙인의 숙적이 되었다” 고 한다. 유대인을 둘러싼 적개심은 “메디나에 이슬람국가가 확립될 당시, 단일 무슬림 공동체에 통합되었던 첫날부터 유대인이 무슬림의 심기를 건드렸던 때” 로 거슬러 올라간다는데,28 쿠틉은 국가(다울라)를 거론하면서 메디나 조직의 근간을 잘못 언급하고 말았다. 당시 이슬람 문헌에 국가(다울라)가 쓰인 적은 없다. 이슬람 역사상 유대인과의 투쟁은 쉴 새 없이 계속되었다. 쿠틉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는데, 웅변조는 남아 있으나 정확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메디나에 정착한 초기 이슬람국가를 저해하고, 메카의 명족인 쿠라이시족을 비롯한 부족들을 선동하여 이슬람교의 근간을 흔들려고 했던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유대인이다. 내란을 일으키고, 3대 칼리프인 오스만을 시해해 비극을 초래한 세력의 배후에 누가 있는가? 유대인이 있다. 게다가 마지막 칼리프에 대항하여 국가의 분열을 부추기고 소요를 일으켜 샤리아 폐지를 유도한 아타튀르크는 누구인가? 역시 유대인이다. 그들이 오늘날까지 이슬람교와 분쟁을 벌여온 탓에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교의 부흥이 가로막혔다. 유대인의 역사도 모자라, 유대인과 이슬람과의 관계까지도 꾸며낸 쿠틉은 반유대주의적 뉘앙스가 강한 유대인의 기본 특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루이스가 반유대주의의 특징으로 규정한 “보편화된, 사탄의 악성” 이 등장한다.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는 유대인과는 합의나 화해나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강조하는 반유대주의적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쿠틉은 유대인이 악한 계략을 위해 “모든 무기와 수단뿐 아니라, 유대인다운 술책을 동원하리라” 믿었다. 보편화된 전쟁을 일으킨 쪽은 무슬림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이슬람교를 “공격”하려는 까닭을 묻고 싶을 것인데, 답변은 매번 “그네들의 성질 탓” 이었다. 그는 “유대인”이 “사악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비록 나치처럼 유대인의 전멸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기록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입장이 살짝 배어 있다. 쿠틉에 따르면, 유대인은 “동족 선지자들을 학살하고, 톱을 켜서 죽이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선지자들에게도 그런 짓을 했으니 온 인류를 겨냥한 유혈사태 외에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것이다.” 31 그는 이 같은 “악”에서
“인류를 해방시키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이는 단순한 유대인혐오증이라기보다는 그들을 “피에 굶주린 데다, 사악하고 극악무도하며” 인류에게 악을 행하려는 괴물로 규정하여 아주 멸절해야 마땅하다는 잔인한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이 이전의 반유대주의보다 더 위험한 까닭은 종교화된 정치의 표현수단인 이슬람 언어로 반유대주의 사상을 설파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