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된 이슬람교” 이미지

 

 

 

만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정치적 이슬람교도 예외는 아니며 반유대주의도 그렇다. 이를 두고 월터 라커는 “얼굴 바꾸기” 라고 했는데 적절한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에서는 무엇이 바뀌었을까? 변화 가능성을 규명하려면 세 가지 분석영역인 유럽(소수 이교도 집단)과 아랍(중동) 및 이슬람(이슬람문명)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셋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법은 없다.
세계화는 규범과 가치관 및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이슬람주의는 이 같은 상황을 상상 속의 원수, 즉 모략에 능한 유대인이 이끄는 서방세계라는 문화적 개념으로 바꾸어놓았다. 세속 민주주의와 지하드운동의 갈등을 서술하는 데 “이념의 전쟁(하릅 알아프카르)” 38이 서방세계에서 사용되기 훨씬 전부터 이슬람주의자들과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살라피스트들)은 “포위된 이슬람교” 라는, 세계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벌어진 무슬림 공동체의 희생을 두고 이념의 전쟁을 거론했다. 이 전쟁의 기틀을 유대인이 선동했다는 지적 침략ghazu fikri(가주 피크리) 사상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사우디계 이슬람주의자들인 알리 자리샤와 무함마드 자이바크의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메디나의 이슬람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두 현직 교수는, 공저 『이슬람세계에 대한 지적 침략법』에서 종래의 “무장 전쟁” 양상이 이념의 전쟁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전쟁은 무슬림 공동체에 더 치명적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지론이다.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를 상대로 모략을 꾸미고 있다고 각인된 “유대인” 과 더불어 유대인의 마스터플랜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온주의 의정서』에 의존한다. 물론 이 책은 근대의 반유대주의와 “유대인의 모략” 에 집착한 주요 문헌인데, 전통적인 이슬람교 문헌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을 재차 언급하는 것보다는 이슬람주의가 이 같은 음모론에 서방세계를 끌어들인 경위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는 쿠틉의 “추론 을”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
서방세계는 세속주의 깃발을 흔들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이슬람교의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 이슬람 사회에 침입했다. …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려는 관련 비밀집단의 마스터플랜에 대응하기 위해 시온주의, 즉 세계의 유대인을 거론해야 한다. 그러니까 두 교수는 유대인이 비겁하고 사악하다는 쿠틉의 주장에 동감했다는 이야기다. 쿠틉에 따르면, 유대인은 “전장에서 칼과 활로 싸우지 않고, 적으로 하여금 의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지략을 발휘하여 싸운다” 고 한다. 이는 교과서에 수록된 것으로, 유대인의 범세계적인 파괴음모를 각인시키려는 반유대주의 사례 중 하나다. 시온주의와 세계의 유대인을 둘러싼 이슬람주의식 사상은 “반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라는 서방세계의 명제가 모순임을 드러냈다. 이러한 주장을 개진한 자들은 반유대주의를 시온주의의 정치적 반론으로 위장함으로써 이를 합법화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자리샤와 자이바크는 이를 좀 더 분명히 규정했다.
세기에 세계의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부각되었을 뿐이다. 사실,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정신에 두루 퍼진 구태의연한 도그마로, 유대교가 태동한 이후 줄곧 존재했으며 세대를 거쳐 전수되어 왔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서방세계의 청중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 이처럼 솔직한 발언은 듣기가 힘들다. 즉 반시온주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둘러싼 불만으로 표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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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우스는 말한다

 

 

 

네 앞날에 고통과 번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네가 존재하는 것으로, 때가 되면 차례로 겪게 되느니. 하지만 죽음은 모든 수난을 견뎌온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러한 운명의 굴레에서 우리를 구출한다. 그로부터 우리에게 안식이 찾아오고 죽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어진다. 사라지지 않는 죽음이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인 삶을 앗아가는 순간, 더는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고통이 있을리 없으며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은 자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린 영원함을 돌아보라.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얼마나 철저하게 여기는지를 새겨 보라. 이것이야말로 대자연이 우리를 비춰 주는 거울인 것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사후에 이어질 시간을 보게 된다. 그 속에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거나 우리의 기를 꺾는 그 무엇이 있을
까? 깊은 수면보다 편안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이 그 속에 있을까?

 

이들 주장에는 두 갈래의 큰 줄기가 있다. 첫 번째 주장은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두 사람이 다 같이 내세운 것으로, 고통은 살아 있기 때문에 겪는 것으로 죽음이 고통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즉 ‘죽음이 운명의 굴레에서 우리를 구출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 주장은 루크레티우스의 말 가운데 두 번째 문단에 나오는데, 태어나기 이전의 존
재하지 않음과 사후의 존재하지 않음이 정확하게 닮은 꼴이란 사실이다.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았거늘, 사후에 존재하지 않을 것을 왜 걱정하는가. 결국, 두 가지 주장은 매우 유사하며, 존재하지 않음은 더도 덜도 아닌 그냥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의 주장은 정말로 죽음이 나쁜 일만은 아님을 입증할까? 사실 이들의 주장에는 숨겨진 가정이 있으며 이를 파헤쳐보면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음은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첫 번째 주장은 옳은 주장이다. 고통은 의식이 있고 또 살아 있어야 느끼는 것인데, 죽음은 그럴 가능성을 없애준다. 하지만 이 주장의 밑바탕에 흐르는 가정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나쁜 것이며 죽음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므로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주장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정을 뒤집어서 말하면 ‘알지 못하는 것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로, 곧 ‘모르는 게 약’이란 뜻이다. 솔직히 이런 주장은 고작해야 절반만 옳을 뿐이다. 한 여인의 친구들이 그녀의 뒤에서 헐뜯기를 일삼는다고 상상해보자.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다정한 체할 뿐이다. 다정한 체하는 친구들인 줄 모르고 아무런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여인을 딱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다쳐 지적 수준이 어린아이 정도로 낮아졌다고 하자. 이 사람은 별다른 고통을 느
끼지 못한다.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내는 한 마냥 행복할 터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처지를 보고 안됐다고 여긴다. 따라서 우리에게 고통을 자아내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죽음이 고통을 멈춰준다는 루크레티우스와 에피쿠로스의 주장이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음이 나쁜 일은 아니란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루크레티우스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 말은 죽음이 나쁜 일이 아니란 뜻인가? 이 주장에 대한 우리의 답은 앞서 의문에 대한 답과 비슷하다. 비존재의 상태는 그 자체로서 전혀 나쁠 게 없다. 루크레티우스가 말했듯이, 태어나기 전의 비존재에 대해서는 걱정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죽음을 나쁜 일로 보는 까닭이 순전히 비존재의 상태가 나쁜 것이기 때문인가다. 지금까지 살펴본 주장에는 이러한 가정이 숨어 있는데, 다시 돌아보면, 그 가정의 타당성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죽는 일 자체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사실 죽음 자체는 별것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시는 친구들을 볼 수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며, 생각하고 느끼고 계획을 짜고,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기가 죽는 건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내가 이 순간 가치 있게 여기며 실행하던 모든 일을 사후에는 영영 할 수가 없어서다.
루크레티우스와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죽음에 관한 우려의 참된 근원을 다루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죽으면 그때까지 누리던 모든 것을 잃는다. 죽음을 나쁜 일로 여기는 이유는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는 것 자체야 고통스럽지 않을지 모르고, 죽음 뒤에 꼭 나쁜 상황에 놓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
만 삶을 잃어버리는 일을 나쁜 일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뇌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이 잃은 것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을뿐더러 지금의 처지가 불쾌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의 처지가 안타까운 사실은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의 처지와 비교해서 잃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떤 이의 죽음이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었는지 판단하려 할 때 우리는 죽지 않았더라면 그가 어찌 되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사람이 누릴 뻔 했던 삶의 혜택을 죽음이 앗아갔다면, 그의 죽음은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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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 제사관을 말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태사太史인 좌구명左丘明이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풀이한 책冊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계량季良의 인본주의 제사관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수나라의 제후가 계량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제사에 바친 희생제물은 순색이었고 살찐 놈이었으며 곡물 또한 풍성히 갖추었는데 어찌하여 신령에게서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가?

 

 

이에 계량이 답했습니다.

 

 

백성이 신령의 주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왕聖王은 먼저 백성의 이익을 도모한 후에 신령에 대해 정성을 다합니다. 그가 희생제물을 바칠 때에는 신령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삼가 이 온전하고 살찐 제물을 바치나이다.’ 이는 백성의 경제력이 일반적으로 충실해서 그 희생제물이 크고 살쪘으며 피부병에 걸리지 않았음이요 그 각기 좋은 품종임을 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기장 등의 곡물을 신령에게 바칠 때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삼가 이 깨끗하고 풍성한 곡물을 바치나이다.’ 이는 그 곡물이 봄, 여름, 가을 모두 해를 입지 않고 백성이 화목하고 풍년이 들었음을 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술을 바칠 때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성과 공경을 다해 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술을 바치나이다.’ 이는 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아름다운 덕이 있어 사심이 없음을 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른바 제물 등이 풍성하고 향기롭다는 것은 사특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된 자는 세 계절의 농사일을 주관하고, 다섯 가지 가르침五敎을 닦으며, 아홉 친족九族에게 친하게 함으로써 귀신을 공경해야만 백성이 화목하게 되고 신령이 복을 내려주는 것이며 무슨 일을 해도 다 공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백성은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며 귀신은 그 주인을 잃었으니 임금께서 비록 홀로 제물을 풍성하게 해도 그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임금께서는 우선 내정을 잘 돌보시고 형제의 나라들을 친하게 대하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 가지 가르침五敎이란 오륜五倫의 가르침으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서 말하는 부의父義, 모자母慈, 형우兄友, 제공弟恭, 자효子孝를 말합니다. 아홉 친족九族이란 고조, 증조, 조부, 부친父親, 자기自己, 아들, 손자孫子, 증손曾孫, 현손玄孫까지의 직계直系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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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등에 기미가 낀 사람은 비위가 허하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콧등에 기미가 낀 것처럼 그늘이 생긴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이 젊었다면 비위가 좋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소화 장애, 변비, 설사, 속 쓰림, 트림, 더부룩한 증상들이 나타나므로 이때 비위의 기능을 다스려주면 좋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콧등에 기미가 낀 사람이 50대 이상일 경우에는 허로증虛勞證으로 인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허虛란 피모皮毛, 힘살肌肉, 힘줄筋脈, 골수骨髓, 기혈氣血, 진액津液 등이 부족해진 것을 말하며, 대체로 식사량이 줄고 정신이 어렴풋하며 유정遺精(무의식중에 정액淨液이 흐르는 증상)과 몽설夢泄(잠을 자는 중에 성적인 쾌감을 얻는 꿈으로 인해 정액을 내는 일)이 있고 허리, 잔등, 가슴, 옆구리의 힘줄과 뼈들이 켕기면서 아프게 됩니다. 조열이 나고 저절로 땀이 나며 가래가 성해서 기침이 나는 것은 허로증의 일반적인 증상입니다. 온몸의 뼈마디가 시고 아프며 밤에 식은땀이 많이 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잘 놀라며 목구멍이 마르고 입술이 타며 힘이 없어 눕기를 좋아합니다. 심할 때에는 입술이 타들어가고 뼛속에서 열이 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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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온주의” 를 “세계의 유대교” 로 통용하다 보니

 

 

 

 

 

종교화된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의 무슬림 공동체를 겨냥한 “유대인으로서의 기독교인” 아젠다에 도전할 전략으로 비화되었다. 기독교인은 “진짜배기 선동자”인 유대인의 대리인으로서 십자군 역할을 도맡았다. 이에 쿠틉은 “이슬람교의 근간을 흔들기 위해 십자군-시온주의 전쟁이 벌어졌다” 고 주장했다. 한편, “시온주의자” 를 “유대인” 으로, “세계의 시온주의” 를 “세계의 유대교” 로 통용하다 보니 그에게는 세계의 유대인과 세계의 시온주의 개념이 동일했다. 쿠틉은 시온주의를 근대의 현상이 아니라 십자
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확대했다. “유대인은 애당초 선동자였으며, 이어 십자군이 등장했다.” 32 이슬람주의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내재된 정치적 의미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의 역사적 견해는 광범위한 방침을 제시했다.
오늘날의 이슬람주의식 반미주의는 미국을 십자군주의로 비난한 쿠틉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역사를 감안해볼 때, 십자군은 유럽인이었으나 그들을 미국으로 이전시킨 세력은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살라 A. 알할리디가 쓴 이슬람주의 저작 『사이드 쿠틉의 시각으로 본 미국』33은 쿠틉의 반유대주의를 미국과 결부시켰다. 알할리디는 유대인이 미국을 장악한 후 세계를 지배한다고 서술했다. 이런 맥락에서 “포위된 이슬람교” 는 반미주의와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를 통일시킨 셈이다. 미국은 시온주의자들의 주요 대리자인지라 쿠틉이 벌인 제로섬게임٥의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이 같은 반유대주의 및 반미주의의 커넥션은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사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젊은 무슬림만 그 같은 사상에 취약한 건 아니었다. 여기에는 쿠틉의 사상을 해방신학이라고 극찬했던 유럽 좌파의 호기심도 자극했다. 이슬람주의식 반미주의에 공감한 유럽 좌파의 문제는 반유대주의와 반미주의가 얽히고설켜 때로는 서로 융화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두 이데올로기는 유대인이 로비활동을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무를 것이라는 편견에 집착했고, 혹자는 유대인이 뉴욕 월스트리트에 설치해둔 요새에서 미국을 간접적으로 지배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이 같은 선입견은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쿠틉이 본,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와 반서양주의의 관계에는 하마스와 알카에다의 반시온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 하마스는 유대인을 이슬람교와 대립한 “하나의 실체” 로 선언했는데, 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국지적 분쟁이 종교화되어 다루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유대인과의 평화가 샤리아와 대립하므로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치부했다. 1998년 창설 당시 알카에다는 “유대인과 십자군에 투쟁하라” 는 사명을 천명했다.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를 구별하는 진술은 거의 없었다. 한편, 기독교인을 십자군이라 불렀는데, 그 또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유일신을 믿는 소수집단(딤미)으로 존중했던 이슬람교의 전통을 무시한 처사였다. 이들은 평등보다는 보호대상이었다. 자기만족에 빠진 무슬림은 이를 톨레랑스라며 너스레를 떤다. 신앙의 등급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 같은 계급화가 알카에다의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반유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볼 사실은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후, 오사마 빈라덴의 오른팔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오바마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는 동영상을 알카에다가 공개했다는 것이다. 알자와히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무슬림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무슬림의 원수 중에서도 윗자리를 택하고 유대인의 기도문을 기도로 삼았소. 미국의 수반에까지 오르기 위해 기독교인을 자처했지만 말이오.
오바마는 흔쾌히 무슬림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으나 알카에다에게도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4월, 무슬림 국가를 처음 방문한 그는 터키 국회 앞에서 “미국은 이슬람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지도 않거니와, 앞으로도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 임을 천명했다. 오바마는 당시 앙카라에서나, 2개월 후 카이로에서나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구분하지는 않았으나, 반유대주의를 두고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는 의식하지 못했다. 알자와히리는 대량살상적인 반유대주의 메시지를 유포할 때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역설했는데, 이 메시지가 이슬람교와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려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유입된, 쿠틉의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저명한 역사가인 월터 라커가 주목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는 “유럽은 예로부터 반유대주의의 뿌리가 강했고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륙이었다” 고 밝혔다. 이처럼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이슬람세계에 이식되자, 현재 유럽에 회귀하고 있는 새로운 주제가 도입되었다. 라커에 따르면, “유럽의 반유대주의 사상의 부흥은 성격상 무슬림과 관계가 깊다” 고 한다. 이 새로운 반유대주의는 현재 EU 회원국에 산재된 이슬람
소수민족에게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가난한 무슬림 이민자들은 경제적 성 공을 위해 유럽을 찾으며, 현지에서 민족・종교적인 하류계층을 조성하고 나면 민족이나 문화, 언어 및 경제적 장벽으로 주류에서 분리된 사회에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자기종족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에 취약해졌다. 일부 사원에서는 쿠틉의 『유대인과의 투쟁』을 낭독한다. 라커는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자들은 좌파 성향을 띤, 유럽의 반유대주의자 및 파시스트 반유대주의자와 손을 잡았다. … 이슬람주의의 주된 공로는 모략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고
역설했다. 유럽에서 쿠틉의 세계관은 이슬람주의자를 넘어 무슬림 소수민족 외부에까지 “유대인의 모략” 에 집착하는 성향을 전파했다. 베를린에 사는 무슬림 이민자들은 독일의 유대인 중앙이사회Deutscher Zentralrat der Juden가 실제 정부 조직이라는 “사실” 에 소수 이교도 집단의 고충을 느낀다고 하소연한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쿠틉과 『시온주의 의정서』를 꺼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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