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온주의” 를 “세계의 유대교” 로 통용하다 보니

 

 

 

 

 

종교화된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의 무슬림 공동체를 겨냥한 “유대인으로서의 기독교인” 아젠다에 도전할 전략으로 비화되었다. 기독교인은 “진짜배기 선동자”인 유대인의 대리인으로서 십자군 역할을 도맡았다. 이에 쿠틉은 “이슬람교의 근간을 흔들기 위해 십자군-시온주의 전쟁이 벌어졌다” 고 주장했다. 한편, “시온주의자” 를 “유대인” 으로, “세계의 시온주의” 를 “세계의 유대교” 로 통용하다 보니 그에게는 세계의 유대인과 세계의 시온주의 개념이 동일했다. 쿠틉은 시온주의를 근대의 현상이 아니라 십자
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확대했다. “유대인은 애당초 선동자였으며, 이어 십자군이 등장했다.” 32 이슬람주의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내재된 정치적 의미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의 역사적 견해는 광범위한 방침을 제시했다.
오늘날의 이슬람주의식 반미주의는 미국을 십자군주의로 비난한 쿠틉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역사를 감안해볼 때, 십자군은 유럽인이었으나 그들을 미국으로 이전시킨 세력은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살라 A. 알할리디가 쓴 이슬람주의 저작 『사이드 쿠틉의 시각으로 본 미국』33은 쿠틉의 반유대주의를 미국과 결부시켰다. 알할리디는 유대인이 미국을 장악한 후 세계를 지배한다고 서술했다. 이런 맥락에서 “포위된 이슬람교” 는 반미주의와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를 통일시킨 셈이다. 미국은 시온주의자들의 주요 대리자인지라 쿠틉이 벌인 제로섬게임٥의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이 같은 반유대주의 및 반미주의의 커넥션은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사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젊은 무슬림만 그 같은 사상에 취약한 건 아니었다. 여기에는 쿠틉의 사상을 해방신학이라고 극찬했던 유럽 좌파의 호기심도 자극했다. 이슬람주의식 반미주의에 공감한 유럽 좌파의 문제는 반유대주의와 반미주의가 얽히고설켜 때로는 서로 융화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두 이데올로기는 유대인이 로비활동을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무를 것이라는 편견에 집착했고, 혹자는 유대인이 뉴욕 월스트리트에 설치해둔 요새에서 미국을 간접적으로 지배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이 같은 선입견은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쿠틉이 본,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와 반서양주의의 관계에는 하마스와 알카에다의 반시온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 하마스는 유대인을 이슬람교와 대립한 “하나의 실체” 로 선언했는데, 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국지적 분쟁이 종교화되어 다루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유대인과의 평화가 샤리아와 대립하므로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치부했다. 1998년 창설 당시 알카에다는 “유대인과 십자군에 투쟁하라” 는 사명을 천명했다.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를 구별하는 진술은 거의 없었다. 한편, 기독교인을 십자군이라 불렀는데, 그 또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유일신을 믿는 소수집단(딤미)으로 존중했던 이슬람교의 전통을 무시한 처사였다. 이들은 평등보다는 보호대상이었다. 자기만족에 빠진 무슬림은 이를 톨레랑스라며 너스레를 떤다. 신앙의 등급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 같은 계급화가 알카에다의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반유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볼 사실은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후, 오사마 빈라덴의 오른팔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오바마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는 동영상을 알카에다가 공개했다는 것이다. 알자와히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무슬림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무슬림의 원수 중에서도 윗자리를 택하고 유대인의 기도문을 기도로 삼았소. 미국의 수반에까지 오르기 위해 기독교인을 자처했지만 말이오.
오바마는 흔쾌히 무슬림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으나 알카에다에게도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4월, 무슬림 국가를 처음 방문한 그는 터키 국회 앞에서 “미국은 이슬람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지도 않거니와, 앞으로도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 임을 천명했다. 오바마는 당시 앙카라에서나, 2개월 후 카이로에서나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구분하지는 않았으나, 반유대주의를 두고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는 의식하지 못했다. 알자와히리는 대량살상적인 반유대주의 메시지를 유포할 때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역설했는데, 이 메시지가 이슬람교와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려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유입된, 쿠틉의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저명한 역사가인 월터 라커가 주목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는 “유럽은 예로부터 반유대주의의 뿌리가 강했고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륙이었다” 고 밝혔다. 이처럼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이슬람세계에 이식되자, 현재 유럽에 회귀하고 있는 새로운 주제가 도입되었다. 라커에 따르면, “유럽의 반유대주의 사상의 부흥은 성격상 무슬림과 관계가 깊다” 고 한다. 이 새로운 반유대주의는 현재 EU 회원국에 산재된 이슬람
소수민족에게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가난한 무슬림 이민자들은 경제적 성 공을 위해 유럽을 찾으며, 현지에서 민족・종교적인 하류계층을 조성하고 나면 민족이나 문화, 언어 및 경제적 장벽으로 주류에서 분리된 사회에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자기종족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에 취약해졌다. 일부 사원에서는 쿠틉의 『유대인과의 투쟁』을 낭독한다. 라커는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자들은 좌파 성향을 띤, 유럽의 반유대주의자 및 파시스트 반유대주의자와 손을 잡았다. … 이슬람주의의 주된 공로는 모략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고
역설했다. 유럽에서 쿠틉의 세계관은 이슬람주의자를 넘어 무슬림 소수민족 외부에까지 “유대인의 모략” 에 집착하는 성향을 전파했다. 베를린에 사는 무슬림 이민자들은 독일의 유대인 중앙이사회Deutscher Zentralrat der Juden가 실제 정부 조직이라는 “사실” 에 소수 이교도 집단의 고충을 느낀다고 하소연한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쿠틉과 『시온주의 의정서』를 꺼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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