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틉에서 하마스까지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는 불만의 표상이 아니다. 일부 유럽인들이 세계적인 전쟁을 반시온주의라는 정치적인 난동쯤으로 낮추어 부르려는 것은 은근슬쩍 반인륜 범죄의 싹을 위장하는 데 보탬이 된다. 유럽인들은 하마스를 해방운동으로 간주함으로써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묵인하고 있다.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연구하여 금기를 깬 마티아스 쿤첼 등 인본주의 학자들은 독일에서도 하마스에 열중했다. 다음은 쿤첼이 하마스 헌장을 두고 서술한 내용이다.

어느 모로 보나, 하마스의 신규 문헌은1 968년 PLO 헌장을 무색하게 했다. … 아마도 하마스 헌장은 동시대의 이슬람주의가 내놓은 주요 문건 중 하나로 간주되며 그 중요성은 팔레스타인 분쟁과는 족히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서 예전에 서로 융합된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를 다시 일으키기도 했다. 헌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가동시키기 때문이다.
헌장은 1988년 4월에 공포되었고 조직체는 1987년 12월 14일에 창설되었다.58 헌장은 그 의의를 팔레스타인 분쟁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쿤첼의 지적을 윤곽으로 잡았다. 예컨대, 2조항 2는 하마스를 가리켜, 수니파 이슬람주의의 기원을 상징하며 국제주의식 이슬람주의 네트워크들 가운데 하나인 무슬림 형제단의 연장선으로 규정했고, 32조항은 하마스의 주적을 이스라엘이 아닌 “세계의 시온주의” 라고 밝혔다. 또한 하마스는 세계 시온주의와의 전쟁에서 자칭 창끝ra's hurbah(라스 후르바)이라 하여 “지하드를 감행하는 데 필요한 무슬림 형제단의 무기”를 자처했다. 헌장에 따르면, “시온주의의 마스터플랜” 은 경계가 없으니 “오늘은 팔레스타인이고 내일은 그 너머가 될 것” 이라고 한다. 헌장은 무슬림이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종교적 근거하에— 즉, 샤리아라는 미명하에— 위법으로 간주했다. 여기에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비롯한 관련 협정이 포함되는데, 평화협정에 동참하려는 무슬림은 대역죄의 혐의로 정죄를 받게 된다. 헌장과 쿠틉의 소책자를 비교해보면, 두 사상과 선전에서 차용된 점이 상당수 발견된다. 예컨대, 여느 이슬람주의 문헌과 같이, 헌장도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를 구분하지 않았고 그들을 적으로 싸잡았다. 22조항은 유대인을 악의 원천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다음의 발췌문을 앞서 인용한 쿠틉의 소책자와 비교해보라. 그들은 프랑스 혁명과 공산주의 혁명의 배후세력으로 우뚝 서고… 시온주
의의 이익을 추구한다. … 그들은 칼리프 제도를 폐지하게 된 1차 세계대전과도 관계가 깊다. … 밸푸어 선언٨을 유도하기 위해… 그러고는 이로써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국제연맹을 UN과 안보리로 대체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배후에서 책동했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 배후조종을 일삼는 유대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이란 단 한 건도 없다.
이것이 예언이 담긴 반유대주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의문점이 몇 가지 떠오른다. 하마스의 반유대주의와 『시온주의 의정서』에 등장하는 반유대주의는 어떻게 다르며, 그것이 유대인혐오증 이상의 의미를 지닌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하마스의 이슬람교다운 점이 무엇인가?
하마스는 종교 조직체로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는 구별된다고 조심스레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헌장 15조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종교적 특성을 감안하여 이를 다뤄야 한다” 고 명시했으며, 27조항에서는 “세속사상은 종교적인 것과 완전히 대립된다. … 우리는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종교적 입지를 비하하지 않으며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지지사상Islamiyyat(이슬라미야트)을 주장할 것이다. 이를 세속사상으로 바꿀 뜻은 전혀 없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성은 종교의 본질이기도 하다” 고 밝혔다. 즉 타
협점을 찾아 분쟁을 해결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세속적인 권력이나 도덕적인 주장이 아닌, 신이 이스라엘을 파괴하라고 주문한 탓에 이 같은 정치적 목적은 협상이 불가능한 것이다. 신에게 타협을 종용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쾌락주의: 쾌락의 요구 원칙

 

 

 

 

일부 사상가들은 인간의 삶이 기본적으로는 동물의 그것과 똑같은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제 살펴보려는 쾌락주의 이론이 힘을 얻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인간의 쾌락pleasure에 초점을 두는 ‘쾌락주의hedonism’는 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철학 이론으로 등장한다. 심리학적 쾌락주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쾌락을 누리려는 욕망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움직인다고 본다. 이것은 인간의 동기, 즉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에 관한 경험론적 가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동물의 행태에 관한 연구에서 발상을 얻었거나 다른 동물의 생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인간에게도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었을지 모른다. 윤리학적 쾌락주의쾌락주의의 또 다른 형태다. 경험론적 가설이라기보다는 규범론에 가
까우며, 인간은 다만 쾌락을 쫓거나 괴로움을 피하고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윤리학적 쾌락주의자들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는 일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윤리학적 쾌락주의자들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구와의 충돌을 무릅쓰면서까지 다른 사람에 대한 도덕적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열성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런가 하면 또한 갈래의 쾌락주의는 동물의 행동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 규범론의 테두리에 들어간다. 이 이론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에 관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인간에게 최상의 이익과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논한다. 공리주의적 도덕론의 고전적 형태에 가까운 쾌락주의다. 공리주의자들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가 자신만의 행복이 아닌 전체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옹호해 마지않은 공리주의 이론은 행복을 쾌락으로 이해하는 편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런 형태의 쾌락주의에 따르면, 쾌락이 클수록 더 행복하고 괴로움이 클수록 덜 행복하며 인간의 선과 악은 오직 이것에 좌우된다. 이제부터 이 세 번째 쾌락주의를 살펴보자.
쾌락주의 견해의 이점 하나는 시시포스의 모습에서 느껴야 했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선이 오로지 쾌락에 있다면 인간의 삶은 시시포스의 경험과는 다르며, 설령 비슷해보인다 해도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지독하게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시포스의 삶처럼 끝없이 불행하지만은 않
을 것이다. 시시포스의 삶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고 오직 끝없는 노역만 있을 뿐이다. 한편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쾌락의 근원이 있다. 내가 잘쓰는 표현으로 지독히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가는 동안 성생활, 맛있는 음식, 수면, 운동, 경기 등 수많은 쾌락을 누린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삶은 대체로 그리 나쁘지 않으며 시시포스의 삶보다 훨씬 낫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삶이 시시포스의 삶과 닮았음을 쾌락주의자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쾌락 특히 강도가 높은 쾌락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의 삶은 연속적이면서 반복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우리가 찾는 쾌락은 다양한데, 이 다양함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인간의 삶을 끝없이 쾌락만 추구하는 것으로 그려낼 수 있음을 쾌락주의자들은 인정해야 한다. 쾌락주의의 견해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깊이 있는 대답을 마련하지 않은 채, 그저 쾌락을 누리고 괴로움을 피하는 것만 목적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쾌락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단순미가 있다. 인간의 삶에 무엇인가가 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다’는 경쾌한 대답만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즉 쾌락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
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쾌락주의에는 나름의 이점이 있음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이 견해는 인간의 삶과 노력이 동물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무척 비슷함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삶에는 쾌락을 추구하고 괴로움을 피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시시포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과 허망함에 관해 전혀 마음 쓸
필요가 없다고 권고한다. 그렇다면 쾌락주의의 견해를 따라야 할까? 삶 가운데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것이 정말 쾌락뿐일까?

이 주장이 옳은지를 가리기 위해 이제 두 가지 사고에 관한 실험을 볼 터이다. 첫 번째 실험은 인간의 생물학적 탄생과 성장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미래사회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시험관을 통해 인간을 대량 생산한 다음 성장 과정을 통제하여 이들의 지능과 독창적 사고력의 정도를 조절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쾌락을 찾는 인간을 길러내어 사회에서 쾌락의 총량을 극대화하고 괴로움의 총량을 극소화하려 하기 위해서다. 쾌락주의자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인간의 삶에 강요된 좌절을 문제로 삼을 터이다. 인간은 성공 전망이 불투명한 데서 쾌락을 찾으려 한다. 인간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일,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을 배워 숙달하는 일, 또는 그 밖의 갖가지 경쟁 마당에서 이기는 일 따위에 눈길을 빼앗긴다. 이런 것들을 쾌락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들 가운데 온전히 성공을 거둔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좌절에 부딪히고 말 터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을 운명에 길들여놓는 것이 해법이다. 아무리 지루하고 답답한 일일지라도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쾌락을 누리도록 조절해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는(이 사회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대본으로 삼고 있음을 알 것이다) 다양한 등급의 인간을 길러 내어 다양한 직무에 배정한다. 그 결과, 아무리 비천한 직무라하더라도 즐겁게 수행한다. 여가를 즐길 기회를 맞이하면 훨씬 더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경험을 즐기게 된다.
이 같은 사회에서 주어진 쾌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세계를 천국으로 여기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꿈의 실현이 아니라 악몽일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최대의 쾌락과 최소의 괴로움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헉슬리의 소설에서 주인공 격인 존 더 새비지John the Savage는 셰익스피어 작품 한 권을 들고 이 기괴한 세계에 등장하지만, 문학과 예술, 음악 따위에 관한 의식은 그만두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주인공을 움직이게 한 열정이나 야망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랑, 기쁨, 성취,탐구, 야망, 질투, 분노……. 이 모든 것은 평균적인 쾌락의 요소로 포장되어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짓눌려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대인의 모략” 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유대인과 서방세계의 십자군을 엮는 것은 종종 마르크스와 레닌으로 비화되며 이들은 “마스터플랜” 이 내장된 유대인으로 밝혀졌다.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는 좀 더 원초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둘러싼 유대인의 기원은 인정하나, 사실 유대인은 “공산주의를 두고 비유대인을 겁주기 위해” 볼셰비즘을 상대로 벌이는 피상적인 “유대인의 선전용 전쟁” 을 통해 훨씬 교묘한 계략에서 관심을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의 모략” 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이 모략은 서로 대립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창출하고 나서 “유대인이 지배하는 세계 국가” 를 건설해 세계를 통치한다는 쪽으로 쏠렸다.

이처럼 돌연 발작한 과대망상을 제쳐두고라도, 유대인의 의혹을 파헤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자리샤와 자이바크는 견해가 다른 무슬림을 겨냥해, 『시온주의 의정서』의 핵심 몇 가지를 나름대로 고쳐 말했을 뿐이다. 그들은 좀 더 신중하고 균형에 신경을 썼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슬람 개혁주의자들을 모두 유대인의 모략을 대행한 자” 로 싸잡는 대신, 이슬람교와 “유대인이 장악한” 서방세계의 간극을 메우려 했던 리파아 라피 알타타위와 무함마드 압두와 같은, 진보주의 무슬림 사상가들의 문헌을 무지하고도 순
진한 발상이라고 비평했다. 또한 그들은 “개혁주의와 합리주의 무슬림” 이 자신의 “천진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문명의 교량을 잇는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음을 밝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및 유대교를 잇는 교량은 이슬람교의 희생 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된 종교는 이슬람교뿐이므로 다른 종교를 그것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교에는 해로운 일이다. 타 종교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이슬람주의식 절대우월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우월성을 주장한 탓이고, 프리메이슨은 그 우월성을 뒤집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모략에 뛰어난 유대인의 보이지 않는 손” 은 누구든
다시금 맞닥뜨리게 될 것이며, 유대인이 프리메이슨리가 가장 두각을 나타낼 “비밀결사대” 에 힘입어 세계를 지배할 거라는 것이다.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에 따르면, 프리메이슨은 “아주 오래된 유대인 조직 중 하나로, 프리메이슨과 유대교의 커넥션을 밝힐 증거는 『시온주의 의정서』만으로 충분하다. … 프리메이슨은 유대교에서 태동했다 고” 한다. 그들은 서너 페이지 뒤에서 프리메이슨리를 “유대인 아젠다를 추구하는” 도구로 규정한 반면, 무슬림이 프리메이슨리의 “사악한 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화를 거부하고 “유대인”과, 그들의 동맹인 “십자군”을 상대로 성전을 감행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모략에 능란하다는 유대인 이미지는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에서 회자된 반시온주의 및 반유대주의의 차이를 드러냈다. 정치적 이슬람교를 둘러싼 대화는 이슬람교와 신도를 겨냥한 음모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슬람문명은 현재 포위된 상태로 간주되며, 역사가 시작된 622년 이후 이슬람교에 타격을 입힌 상상 속의 유대인이 이를 포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줄곧 “이슬람교와 세계의 유대인” 의 전쟁을 믿게 된 것이다. 결국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는 중동 분쟁에서 발생하지도 않은 데다, 분쟁
이 해결된 후라도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다.

범아랍 민족주의식 반유대주의와는 달리,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는 진정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분쟁으로 이어지는 갈등을 종교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정치, 즉 종교색을 띠지 않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٧가 가자지구에 소재한 하마스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식의 이슬람교의 색깔을 띠게 된 것55과 일맥상통한다.
쿠웨이트에 본거지를 둔 팔레스타인 이슬람 학술회 대표로 쓴 소책자 『유대인과의 화평을 거부하는 이유Why We Reject Peace with the Jews』에서 팔레스타인계 이슬람주의자 무센 안타바위는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에 평화란 없다” 는 쿠틉의 주장을 직접 거론했다. 반유대주의를 반시온주의로 위장한 이란 대통령 마무드와는 달리, 그는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즉 모든 유대인을 가리켜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며 이슬람교와 세계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반이슬람 시온주의자의 실체” 라고 불렀다. 따라서 “코란과 총기로 유대인과 맞서는 세대가 팔레스타인에 해결책을 제시한
다” 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56 이는 인종을 말살하라는 주문과 동떨어진 발언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쿠틉은 반유대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이슬람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문화 및 역사에 근간을 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종교로 승화하면서, 유럽과 범아랍 민족주의를 크게 벗어난 반유대주의를 내세웠다. 쿠틉이 주변인물이 아니라는 점과 그의 사상이 하마스 헌장에 명시되어 있다는 점은 재차 언급해둘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삶이 무의미할 수도 있을까

 

 

 

 

먼저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삶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에게 혜택이란 무엇일까? 혜택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강력한 까닭이 있을까? 이 혜택을 후대와 더불어 공유해야 할 까닭이 있을까(후손을 남김으로써)? 삶이 진정 하나의 혜택임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된 이유부터 살펴보자.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바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에 대한 지적이다. 이 사상은 시시포스Sisyphus 신화의 이미지에서 결정체를 이루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인간적 삶의 불합리와 무의미를 집대성하면서 이 사상을 널리 퍼뜨렸다.4) 그리스 고전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는 신의 노여움을 산 나머지 바윗덩어리를 굴려 산꼭대기에 올려놓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이르는 순간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서 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다시 밀어 올렸지만,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보람 없는 무의미한 일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시시포스의 신화를 떠올려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인간의 삶을 왜 이와 같은 것으로 보려 할까? 이 문제에 다가가기에 앞서, 먼저 동물의 삶을 살펴보자. 동물은 왜 살까? 이는 엉뚱하기 짝이 없는 물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대자연의 거대하고 복잡한 체계가 마치 시시포스의 노역을 흉내 내듯이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무심한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은 생존 경쟁을 벌이며 번식한다. 자손을 남기는 것으로 타고난 사명을 다하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순간 삶을 마친다. 새로운 세대는 다시 자라나 생존 경쟁 속에서 생식을 마친 뒤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또 다른 세대가 나타나기를 거듭하는데, 이 모든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목적이 무엇일까? 미래를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삶의 형태에 깃들어 있는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생존 경쟁이라는 마당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연을 바라보면, 뚜렷한 목적없이 세대 간의 계승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허무한 광경만이 있을 뿐이다.
현대 과학의 특정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진화를 하면서 온갖 지혜를 익혀왔지만, 신체와 행동은 대체로 동물을 닮았다.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그리고 인간이 기본적으로는 별 수 없이 물질적이며 자연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면, 시시포스의 이미지는 누군가가 지적한 대로 인간의 모습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는 바로 무신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견해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신앙 없는 삶의 끝자락을 경고하려는 유신론자이거나 갑작스럽게 무신론에 빠진 사람들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동물의 그것처럼 허무하고 반복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자손을 남기고 죽기를 거듭할 뿐이다. 따라서 시시포스의 모습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끝없이 태어나고 생식하고 죽기를 거듭하는 모든 자연체계로 투영된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만족해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이 모든 일의 의미를 누구의 궁극적 의도와 조화에서 찾아야 할까? 이야말로 끝없이 광대한 우주 공간에 하염없이 떠도는 하나의 바위 조각 위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벌이는 기괴한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자백가諸子百家란 무엇입니까?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기원전 770-기원전 221)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합친 말로 춘추시대는 서방의 유목민인 견융이 호경을 공략한 이듬해에 주周나라가 수도를 동쪽의 낙양으로 옮기고 난 기원전 770년부터 진晉나라가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로 분열할 때인 기원전 403년까지를 말하고, 그 뒤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대라 합니다. 주나라 왕실이 명목상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던 춘추시대에는 오패五覇, 즉 제나라의 환공桓公, 진秦나라의 문왕文王,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오吳나라의 부차夫差, 월越나라의 구천句踐이 등장했으며, 다음의 전국시대에는 칠웅七雄, 즉 진秦나라, 초楚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 한漢나라가 힘을 겨루었습니다. 이 사이에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해체되었으며, 새로운 질서 형성의 길을 찾아 사상계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전통 사회의 기본 성격이 형성된 시기였습니다. 약육강식의 정복전쟁으로 여러 제후국들이 칠웅의 강국에 통합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종래의 목재나 석재의 농기구 대신에 새로 등장한 철제의 농기구가 경작 능률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초지를 농지로 개간할 수 있게 했으며, 이에 따른 관개수로의 설치 및 개선은 농업생산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토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부의 증가는 급기야 토지의 사유화를 현실화했으며, 지주계층이 성립되고 잉여생산물의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시장경제도 상대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에 따른 교통수단인 수레와 배는 물론 도로의 개선과 관개수로의 개설과 정리는 봉건제후들의 군사적 목적과 함께 더욱더 가속되었습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발전과 변화는 우선 군주 중심의 중앙권력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는 물질적 여건이 성숙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당대의 사회적 변화는 서주西周시대의 행동양식인 예禮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새로운 사회규범인 법法의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당대의 사상가들 가운데 종래의 종법사회 내부에서 귀족(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행위규범인 예禮를 부정하고 새로운 중앙집권적 국가의 절대군주권력의 창출을 목적으로 모든 자율계층의 독립적 언사와 행위들을 새로운 공권력, 즉 법法에 의해 규제하려는 사상가 집단을 법가法家라 부르며, 유가儒家 및 다른 사상가 집단 예를 들면 묵가墨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등은 새롭게 상승하던 농상공農商工 등의 자율계층의 주체적, 자율적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한 지식인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를 총칭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합니다. 제자諸子란 여러 학자들이라는 뜻이고, 백가百家란 수많은 학파들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음을 말합니다. 한대漢代 이후 제자백가를 유가, 묵가, 법가, 도가, 명가, 병가, 종횡가, 농가, 음양가, 잡가 등으로 분류하며, 이들의 활동을 단지 사회 정치사상만이 아니라 지리나 농업, 문학 등의 학술활동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가운데 공자孔子의 유가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를 수립하였고, 다음으로 묵적墨翟이 겸애兼愛를 주창하여 묵가를 일으켰으며, 이윽고 노자老子, 장자莊子를 위시한 도가와 기타 제파들이 출현하여 사상계는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 만큼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