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모략” 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유대인과 서방세계의 십자군을 엮는 것은 종종 마르크스와 레닌으로 비화되며 이들은 “마스터플랜” 이 내장된 유대인으로 밝혀졌다.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는 좀 더 원초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둘러싼 유대인의 기원은 인정하나, 사실 유대인은 “공산주의를 두고 비유대인을 겁주기 위해” 볼셰비즘을 상대로 벌이는 피상적인 “유대인의 선전용 전쟁” 을 통해 훨씬 교묘한 계략에서 관심을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의 모략” 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이 모략은 서로 대립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창출하고 나서 “유대인이 지배하는 세계 국가” 를 건설해 세계를 통치한다는 쪽으로 쏠렸다.

이처럼 돌연 발작한 과대망상을 제쳐두고라도, 유대인의 의혹을 파헤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자리샤와 자이바크는 견해가 다른 무슬림을 겨냥해, 『시온주의 의정서』의 핵심 몇 가지를 나름대로 고쳐 말했을 뿐이다. 그들은 좀 더 신중하고 균형에 신경을 썼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슬람 개혁주의자들을 모두 유대인의 모략을 대행한 자” 로 싸잡는 대신, 이슬람교와 “유대인이 장악한” 서방세계의 간극을 메우려 했던 리파아 라피 알타타위와 무함마드 압두와 같은, 진보주의 무슬림 사상가들의 문헌을 무지하고도 순
진한 발상이라고 비평했다. 또한 그들은 “개혁주의와 합리주의 무슬림” 이 자신의 “천진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문명의 교량을 잇는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음을 밝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및 유대교를 잇는 교량은 이슬람교의 희생 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된 종교는 이슬람교뿐이므로 다른 종교를 그것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교에는 해로운 일이다. 타 종교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이슬람주의식 절대우월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우월성을 주장한 탓이고, 프리메이슨은 그 우월성을 뒤집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모략에 뛰어난 유대인의 보이지 않는 손” 은 누구든
다시금 맞닥뜨리게 될 것이며, 유대인이 프리메이슨리가 가장 두각을 나타낼 “비밀결사대” 에 힘입어 세계를 지배할 거라는 것이다.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에 따르면, 프리메이슨은 “아주 오래된 유대인 조직 중 하나로, 프리메이슨과 유대교의 커넥션을 밝힐 증거는 『시온주의 의정서』만으로 충분하다. … 프리메이슨은 유대교에서 태동했다 고” 한다. 그들은 서너 페이지 뒤에서 프리메이슨리를 “유대인 아젠다를 추구하는” 도구로 규정한 반면, 무슬림이 프리메이슨리의 “사악한 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화를 거부하고 “유대인”과, 그들의 동맹인 “십자군”을 상대로 성전을 감행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모략에 능란하다는 유대인 이미지는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에서 회자된 반시온주의 및 반유대주의의 차이를 드러냈다. 정치적 이슬람교를 둘러싼 대화는 이슬람교와 신도를 겨냥한 음모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슬람문명은 현재 포위된 상태로 간주되며, 역사가 시작된 622년 이후 이슬람교에 타격을 입힌 상상 속의 유대인이 이를 포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줄곧 “이슬람교와 세계의 유대인” 의 전쟁을 믿게 된 것이다. 결국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는 중동 분쟁에서 발생하지도 않은 데다, 분쟁
이 해결된 후라도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다.

범아랍 민족주의식 반유대주의와는 달리,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는 진정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분쟁으로 이어지는 갈등을 종교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정치, 즉 종교색을 띠지 않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٧가 가자지구에 소재한 하마스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식의 이슬람교의 색깔을 띠게 된 것55과 일맥상통한다.
쿠웨이트에 본거지를 둔 팔레스타인 이슬람 학술회 대표로 쓴 소책자 『유대인과의 화평을 거부하는 이유Why We Reject Peace with the Jews』에서 팔레스타인계 이슬람주의자 무센 안타바위는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에 평화란 없다” 는 쿠틉의 주장을 직접 거론했다. 반유대주의를 반시온주의로 위장한 이란 대통령 마무드와는 달리, 그는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즉 모든 유대인을 가리켜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며 이슬람교와 세계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반이슬람 시온주의자의 실체” 라고 불렀다. 따라서 “코란과 총기로 유대인과 맞서는 세대가 팔레스타인에 해결책을 제시한
다” 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56 이는 인종을 말살하라는 주문과 동떨어진 발언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쿠틉은 반유대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이슬람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문화 및 역사에 근간을 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종교로 승화하면서, 유럽과 범아랍 민족주의를 크게 벗어난 반유대주의를 내세웠다. 쿠틉이 주변인물이 아니라는 점과 그의 사상이 하마스 헌장에 명시되어 있다는 점은 재차 언급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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