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의미할 수도 있을까

 

 

 

 

먼저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삶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에게 혜택이란 무엇일까? 혜택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강력한 까닭이 있을까? 이 혜택을 후대와 더불어 공유해야 할 까닭이 있을까(후손을 남김으로써)? 삶이 진정 하나의 혜택임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된 이유부터 살펴보자.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바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에 대한 지적이다. 이 사상은 시시포스Sisyphus 신화의 이미지에서 결정체를 이루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인간적 삶의 불합리와 무의미를 집대성하면서 이 사상을 널리 퍼뜨렸다.4) 그리스 고전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는 신의 노여움을 산 나머지 바윗덩어리를 굴려 산꼭대기에 올려놓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이르는 순간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서 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다시 밀어 올렸지만,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보람 없는 무의미한 일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시시포스의 신화를 떠올려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인간의 삶을 왜 이와 같은 것으로 보려 할까? 이 문제에 다가가기에 앞서, 먼저 동물의 삶을 살펴보자. 동물은 왜 살까? 이는 엉뚱하기 짝이 없는 물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대자연의 거대하고 복잡한 체계가 마치 시시포스의 노역을 흉내 내듯이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무심한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은 생존 경쟁을 벌이며 번식한다. 자손을 남기는 것으로 타고난 사명을 다하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순간 삶을 마친다. 새로운 세대는 다시 자라나 생존 경쟁 속에서 생식을 마친 뒤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또 다른 세대가 나타나기를 거듭하는데, 이 모든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목적이 무엇일까? 미래를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삶의 형태에 깃들어 있는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생존 경쟁이라는 마당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연을 바라보면, 뚜렷한 목적없이 세대 간의 계승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허무한 광경만이 있을 뿐이다.
현대 과학의 특정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진화를 하면서 온갖 지혜를 익혀왔지만, 신체와 행동은 대체로 동물을 닮았다.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그리고 인간이 기본적으로는 별 수 없이 물질적이며 자연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면, 시시포스의 이미지는 누군가가 지적한 대로 인간의 모습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는 바로 무신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견해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신앙 없는 삶의 끝자락을 경고하려는 유신론자이거나 갑작스럽게 무신론에 빠진 사람들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동물의 그것처럼 허무하고 반복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자손을 남기고 죽기를 거듭할 뿐이다. 따라서 시시포스의 모습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끝없이 태어나고 생식하고 죽기를 거듭하는 모든 자연체계로 투영된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만족해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이 모든 일의 의미를 누구의 궁극적 의도와 조화에서 찾아야 할까? 이야말로 끝없이 광대한 우주 공간에 하염없이 떠도는 하나의 바위 조각 위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벌이는 기괴한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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