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諸子百家란 무엇입니까?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기원전 770-기원전 221)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합친 말로 춘추시대는 서방의 유목민인 견융이 호경을 공략한 이듬해에 주周나라가 수도를 동쪽의 낙양으로 옮기고 난 기원전 770년부터 진晉나라가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로 분열할 때인 기원전 403년까지를 말하고, 그 뒤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대라 합니다. 주나라 왕실이 명목상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던 춘추시대에는 오패五覇, 즉 제나라의 환공桓公, 진秦나라의 문왕文王,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오吳나라의 부차夫差, 월越나라의 구천句踐이 등장했으며, 다음의 전국시대에는 칠웅七雄, 즉 진秦나라, 초楚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 한漢나라가 힘을 겨루었습니다. 이 사이에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해체되었으며, 새로운 질서 형성의 길을 찾아 사상계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전통 사회의 기본 성격이 형성된 시기였습니다. 약육강식의 정복전쟁으로 여러 제후국들이 칠웅의 강국에 통합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종래의 목재나 석재의 농기구 대신에 새로 등장한 철제의 농기구가 경작 능률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초지를 농지로 개간할 수 있게 했으며, 이에 따른 관개수로의 설치 및 개선은 농업생산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토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부의 증가는 급기야 토지의 사유화를 현실화했으며, 지주계층이 성립되고 잉여생산물의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시장경제도 상대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에 따른 교통수단인 수레와 배는 물론 도로의 개선과 관개수로의 개설과 정리는 봉건제후들의 군사적 목적과 함께 더욱더 가속되었습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발전과 변화는 우선 군주 중심의 중앙권력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는 물질적 여건이 성숙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당대의 사회적 변화는 서주西周시대의 행동양식인 예禮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새로운 사회규범인 법法의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당대의 사상가들 가운데 종래의 종법사회 내부에서 귀족(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행위규범인 예禮를 부정하고 새로운 중앙집권적 국가의 절대군주권력의 창출을 목적으로 모든 자율계층의 독립적 언사와 행위들을 새로운 공권력, 즉 법法에 의해 규제하려는 사상가 집단을 법가法家라 부르며, 유가儒家 및 다른 사상가 집단 예를 들면 묵가墨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등은 새롭게 상승하던 농상공農商工 등의 자율계층의 주체적, 자율적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한 지식인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를 총칭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합니다. 제자諸子란 여러 학자들이라는 뜻이고, 백가百家란 수많은 학파들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음을 말합니다. 한대漢代 이후 제자백가를 유가, 묵가, 법가, 도가, 명가, 병가, 종횡가, 농가, 음양가, 잡가 등으로 분류하며, 이들의 활동을 단지 사회 정치사상만이 아니라 지리나 농업, 문학 등의 학술활동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가운데 공자孔子의 유가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를 수립하였고, 다음으로 묵적墨翟이 겸애兼愛를 주창하여 묵가를 일으켰으며, 이윽고 노자老子, 장자莊子를 위시한 도가와 기타 제파들이 출현하여 사상계는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 만큼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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