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El Greco(1541~1614)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의 이름은 그리스인을 뜻하지만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copoulos이다.
그는 주로 종교적 주제를 다루었으며 신화적 주제의 <라오콘 Laocoon>은 예외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만년에 그린 <톨레도 풍경 Toledo Landscape>(1595~1610)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순수 풍경화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그는 탁월한 초상화가로서 현재 40여 점이 알려져 있다.
많은 대가들이 따뜻한 적색과 갈색 계통의 색채를 선호하던 당시 그는 차갑고 푸른 색채와 은회색조를 선호했다.
차가운 색조, 거친 광선 효과, 지유분방한 붓질, 전통 규범에 대한 경시와 고통을 겪는 인물상의 정신성을 작품 속에 나타낸 엘 그레코의 천재성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엘 그레코의 회화에 대한 관심이 부활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그의 극도로 반자연주의적인 양식은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는데, 예를 들어 티치아노와 혼동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양식을 바꾸었다든지, 또는 단순히 그가 광인이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좀 더 최근에는 그의 형태 왜곡은 난시 때문이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매너리즘적인 비례 관계의 불균형화, 즉 가늘고 길게 늘인 인체 형태의 데포르메는 그가 의도적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
<성모 승천>이 이런 점에서 비난받았을 때 엘 그레코는 인물상을 망치는 최악의 것은 왜소화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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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Simon Peter
 

시몬 베드로Simon Peter는 그리스어로 페트로스Petros인데 반석rock이란 뜻으로 예수가 부쳐준 시몬의 별명이다.
그를 게파Cephas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아람어 Kepha로서 마찬가지로 반석의 뜻이다.
요나Jona의 아들 시몬은 동생 안드레Andrew와 함께 고향 베사이다Bethsaida로부터 가버나움Capernaum으로 와서 어업에 종사했으며 그곳에서 예수의 부름을 받아 동생과 함께 제자가 되었다.
베드로는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급했고 곧 요한과 야고보(야고보는 예수의동생 야고보와 동명이인인데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의 동생이다)와 더불어서 예수가 가장 가가운 측근이 되었다.
베드로는 예수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는 그를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라고 부르면서 그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으며 요한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옥에 갇힌 적도 있고 요한과 함께 유다와 사마리아로 가서 개종한 크리스천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베드로는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바울을 이해했으며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안디옥의 첫 주교가 되었다 하고 로마의 첫 주교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는 말년에 로마에 거주했으며 네로 황제 때 그곳에서 순교했다.
바티칸시의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Church은 그의 무덤 위에 건립된 교회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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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 는 특유의 주제들, 즉 예쁜 어린이, 꽃, 아름다운 장면, 특히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주제 자체가 본능적인 호소력을 지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들을 통해 자신이 가진 즐거움을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1890년대에 관절염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고 1897년 자전거를 타다 팔이 부러져 병이 더 악화되었다.
1912년부터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유롭지 못한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우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후기 작품에서는 인상주의 시기의 작품에서보다 더욱 따듯한 색채가 사용되었으며 형태도 충만하고 둥글며 부드럽게 처리되었다.
르누아르의 아들로 유명한 영화감독인 장 르누아르는 1962년 매우 생생하고 감동적인 저서전 『르누아르, 나의 아버지 Renoir, My Father』를 썼고 이는 그 해에 영어로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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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고대 이탈리아 조각들은 좀더 사실주의로 달라졌는데 기원전 1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라린가토레 L'Arringatore>를 보면 에트루리아인의 솜씨로 로마 고위공무원을 묘사한 작품으로 보인다.
청동으로 제작한 작품의 모델은 아우루스 메텔루스Aulus Metellus로서 그는 오른손을 들어 군중에게 답례하는 제스추어를 취하고 있는데 정치가들의 상투적인 모습이다.
특기할 점은 이 조각에서 로마인의 고유한 제작방법이 나타난 점이고, 조각가들은 사람을 진지하고 개성적인 모습으로 제작하면서 모델의 나이와 인품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정교하게 했으며 조각을 실제 사람의 크기로 제작했으므로 이런 느낌은 더욱 더 힘있게 나타났다.

로마인의 흉상이라고 단정해 말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한다면 기원전 80년에 대리석으로 제작한 <로마인의 흉상 Portrait of a Roman>이다.
이 조각은 로마인의 고유한 건축이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인의 진전된 조각과 비교할 만했으며 조각가는 심리적인 요소까지도 얼굴에 섬세하게 묘사할 줄 알았다.
로마인은 사람의 얼굴을 진지하고 엄숙하며 개성있게 제작할 줄 알았다.
이런 인간의 신체에 대한 그들의 세심한 관찰은 르네상스 대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르네상스 주역들은 해부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사실주의의 정상에서 운동에 의한 근육의 형상까지도 묘사할 줄 알았는데 미켈란젤로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했다.

조각뿐 아니라 회화에서도 놀라울 만한 진전이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로마의 에스퀼리네Esquiline의 집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소위 말하는 오디세이 풍경화들Odyssey Landscapes로서 8쪽으로 나눠진 그림에는 율리시즈Ulysses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묘사되었으며, 바다와 공간의 엷은 색은 입체감을 주고 관람자로 하여금 따사로운 지중해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 자신 놀라움을 금치 못한 작품은 50년경에 그려진 정물화 <복숭아와 유리항아리 Peacjes and Glass Jar>이다.
유리항아리에 반쯤 들어있는 물을 작자미상의 화가는 실제처럼 묘사하면서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주제로 사용했다.
그림이 낡아 보수한 정물화에서 색들의 적절한 대비를 볼 수 있는데 마치 오늘날의 화가가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화가의 명암에 대한 부적당한 묘사가 그림에 나타나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2천 년 전에 그려진 것을 감안한다면 주제와 채색의 뛰어남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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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드니Maurice Denis(1870~1943)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는 나비 그룹의 창설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 그룹의 이론적 지도자이며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림은 그것이 전쟁터의 말이나 누드의 여인, 또는 일화적인 것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일정한 질서에 따라 조합된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드니는 이론적 박식함에 순수함과 세련된 감수성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1908년 아카데미 랑송이 설립될 때 교수가 되어 1919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제작한 공공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912년 샹젤리제 극장의 천장에 그린 그림이다.
종교적 신앙이 깊었던 드니는 종교화를 혁신하고 부흥시키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1917년 제네바의 생 폴 성당에 프레스코화를 그렸고,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들이 사망하자 종교 미술에만 전념한 조르주 데스발리에르George Desvallieres(1861~1950)와 함께 종교 미술 아틀리에Ateliers d’Art Sacre를 세웠다.
그는 미술과 종교 미술에 관한 많은 이론을 남겼는데, 1920년에 『이론, 1890~1910 Theories, 1890~1910』, 1922년에 『새로운 이론 Nouvelles Theories』, 1939년에 『종교 미술사 Histoire de l’Art religieux』, 1943년에 『세뤼지에의 생과 작품 Serusier, sa vie, son oeuvre』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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