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차이 
 
플라톤의 철인정치
공자와 맹자의 왕도정치 혹은 천명정치
교황의 신정정치

이런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에도 윤리가 문제이다.
중국의 왕도정치에서 얼마나 많은 잘못이 저질러졌는가!
교황 또한 얼마나 많은 잘못을 범했는가!

소크라테스는 죄를 무지의 탓으로 돌렸다.
지혜를 사랑하면, 즉 철학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보았다.
교육을 통해 지식을 배우면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므로 소크라테스보다 약 80살 손위 사람이다.
공자는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고를 갖고 있었다.
공자는 배워서 행함으로서 군자가 되지만 배우지 않더라도 사람에게는 타고난 천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도덕적인 인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노자의 인간관과도 같으며 맹자의 성선설은 이런 공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천성을 부정했다.
윤회설을 믿은 그는 인간에게 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 배운 교육의 덕택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현세에서는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전생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기억으로 통해 지식을 회복하여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칸트 역시 인간에게는 천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맹자가 말한 성선설과도 같은 순수이성a prior reason이 있어 도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기독교의 양심사상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양심이 신의 의지를 닮아 선한 것으로 본다.

도덕적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가?
선과 악을 구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떻게 선과 악을 구별할까?
선과 악은 비교적인 관계의 개념이지 절대적인 선이란 존재하지 않고 절대적인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최초의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더이상 완전히 선을 추구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의 명령을 절대적인 선으로 정하고 명령불복종을 악이란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선과 악의 개념은 그러니까 계명에 대한 복종과 불복종을 말하는데 계명은 신이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문제가 있는 논리이다.
스스로 드러내는 신의 계명을 누가 분별한단 말인가!
예언자? 교황? 모교회 목사?

맹자의 성선설로 말하더라도 본래 선한데 어째서 악하게 될까.
순자의 성악설로 말하더라도 본래 악한데 어째서 선하게 될까.
선은 악의 부재이고 악은 선의 부재이다.
이 둘이 본래 따로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것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의 개념은 있을 수 없다.

본래 선하다면 그 천성에는 악이 부재해야 한다.

본래 악하다면 그 천성에는 선이 부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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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에 대한 탐색

근래 한국학의 대두와 주체성의 확립 등 일련의 정신 구조의 개발이 활발해짐에 따라서 한국미의 탐색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해졌다.
한국미에 대한 탐색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가운데 김원룡은 『한국 미술사』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한국 미술품의 미가 선과 형의 미에 있다고 하는 말은 우리가 흔히 듣는 바이다.
이 말은 확실히 일면의 진리를 가지고 있으나 주의해야 할 점은 그 선이나 형의 미가 없이는 어느 나라의 미술품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으로써 한국 미술의 미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하고 문제의 핵심을 놓친 감이 있다.
한국 미술의 바닥을 흐르고 있는 것은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추상이나 변하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이조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족의 기조가 되고 있는 것은 이 자연주의이다.
그것은 예를 들면 문양면에 있어서도 느낄 수 있고 조각에 있어서는 변화가 생기고 있는 듯이 보이니 이것이 실은 기술의 퇴화에서 오는 현상이며 그 정신에 있어서는 대상의 외형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제작하는 마음이 순수하고 순진하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한국 미술의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장인이라고 불리던 한국의 예술가들은 작품 만드는 데 있어서 가능한 한 인공의 흔적을 줄이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비록 사람의 손으로 만들기는 하였지만 거기에서 사람의 냄새를 빼고 형이나 색이나 모두 자연 그 자체의 것으로 남기려는 의도가 있다.
아니 여기에 의도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될지 모른다.
이 장인들은 그러한 의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백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며, 그 원인에 대해서는 국상國喪에서 시작되었느니 백색을 숭상하느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것은 필경 인공을 꺼려하는 한국인의 어쩔 수 없는 습성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명주건 무명이건 직물로 짠 그대로를 사용하여 시문施文이나 염색을 하지 않으면 빛은 흴 수밖에 없다.
백색에의 애착은 한국인들에게는 인공의 배제요 자연에 대한 동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분청자기에서는 회청색灰靑色을 감추기 위하여 백토를 한 꺼풀 씌우고 있는지 모른다.
인공이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며 인위이면서 인위 이전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조 시대 미술인들의 독특한 경지였으며 나아가서는 한국의 미술이 가지는 가장 강력하고 뚜렷한 특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라고 할까 결과에의 도달은 이조 미술인들의 허신탄회한 제작태도, 철두철미한 자연주의적 태도에 의한 것이 틀림없고 여기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의 자연 환경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 자연 현상의 순수한 수용, 이것이 한국 민족의 특성이요 또 한국 미술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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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맹자 
 
플라톤은 맹자보다 37, 8세 연장자이다.
맹자는 왕도정치를 주장했는데 민주를 우선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유사하다.
맹자는 통치자에게 있어 仁과 義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맹자는 통치자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라는 데는 과거 중국인들의 사고를 따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통치자가 仁과 義를 저버릴 경우에는 그 통치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공리를 전제로 왕을 천명을 받은 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은나라 탕의 하 나라에 대한 걸토벌과 주나라 무왕의 은 나라에 대한 주토벌(기원전 11세기)은 하극상이지만 맹자는 이를 정당화했다.
그는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일개 필부를 죽인 것이라고 말했는데 仁과 義를 상실한 왕을 일개 필부로 보기 때문이다.

梁惠王章句下 제8장에 보면 선왕이 맹자에게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괞습니까 하고 묻는다.
맹자가 말했다.
賊仁者를 謂之賊이오 賊義者를 謂之殘이오 殘賊之人을 謂之一夫니 聞誅一夫紂矣오 未聞弑君也케이다.

번역하면,

인을 해치는 자는 도적이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학하고
흉포한 자를 일부라 하니
일부인 주를 죽엿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임금이라도 인과 의를 잃으면 신하에 의해 살해되어도 하극상으로 보지 않겠다는
혹은 때에 따라서는 하극상을 추인하는 말이다.

이는 왕도정치에 민주정치를 가미시킨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민을 위한 민본주의 정치이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다른 면이 있지만 민을 위한 정치임은 분명하다.
통치자는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중국인의 생각이나
통치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이야 한다는 그리스인의 생각 모두 그 바탕은 민을 위하는 데 있다.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자란 뜻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仁과 義가 결여되었다면 이는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늘의 부름을 받은 사람에게 仁과 義가 결여되었다면 이는 진정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공자와 맹자의 왕도정치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문제는 누가 철인을 알아보고 그에게 나라를 맡기느냐 하는 것이다.
맹자의 문제 역시 누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인지 식별해서 나라를 맡기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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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

한편 한국화의 정체성 논란은 전통의 문제와 외래문화의 선별적 수용에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런 논지를 정연하게 편 사람은 윤희순이었다.
그는 일찍이 1933년 『신동아』 6월호 에 ‘조선미술의 당면과제’란 제목의 글에서 이런 견해를 피력했으며 조선미술동맹의 위원장이 되던 해인 1946년 『조선미술사연구』란 제목의 단행본을 발간하면서 ‘조형예술의 전통과 그 계승발전의 문제’에 관해 적었다.
“조형예술에 나타난 특수성은 민족의 예지를 대변한다.
따라서 세계문화사에 비추어 고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전통으로서 생생한 혈맥이 통하게 된다.
미개인종의 독특한 조형예술은 현대 학자에게 예술의 시원에 대한 연구대상이 되어 있지만 과연 그것을 예술의 전통으로 볼 수 있을까?
전통은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종속과 시대의 단편적인 특수성이 해소 여과되면서 높은 감성으로 앙양되고 계승·발전하는 독자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유한 종족 혹은 민족양식을 그대로 전통이라는 개념 속에 집어넣기 위하여는 양식의 고수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의 발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내는 장본인이 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서 전통을 가장 존중한답시고 실상은 전통을 우상골동화偶像骨董化하야 생기를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자가당착의 모순은 그 원인이 퇴폐취미에도 있지만 세계 문화 발달사에 대한 무관심과 현실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무기력한 독선주의 등에서 오는 것이다.
이와는 따로히 새로운 시대의 창조를 위하여는 전통에 구애할 것 없다는 생각을 과도하게 추진하여 민족성을 무시하려는 사람도 있다.
세계 문화의 교류는 어느 민족이고 민족 고유의 문화만을 긍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즉 고구려 문화는 육조六朝의 문화이며 신라의 석굴암은 당唐 문화 혹은 희랍 문화의 파생으로 보려고 든다.
이리하여 선진문화의 세계성으로 모든 것을 유형화하려고 든다.
과거유산은 박물관 목록으로만 값이 있을 뿐이고 건설기에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세계문화사의 노선 위에서 새로 창조할 따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저돌적인 태도는 세계문화 섭취라는 당면한 현실의 육박肉迫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역사의 비약적 발전단계를 마치 역사의 기적적 창생創生으로 착각하는 데서 생긴 것으로서 전자와 함께 역사의 관련성을 방기放棄하므로 연쇄連鎖의 환륜環輪을 절단하는 무모한 획책이라 하겠다.
이상의 두 가지 전통에 대한 편견된 관찰은 충분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을 극복함으로써 전통의 정당한 고찰과 계승·발전이 논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문제가 세계문화 섭취 및 신문화 건설과 결코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병행적으로 연관되어 토의될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동양화가들은 두 고민이 있을 것이니 그 하나는 이 일본화 기법이고 또 하나는 서양화에 대한 추종적 강박관념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첫 수단으로 우선 오랫동안 매몰되고 중단되었던 역사의 연쇄를 더듬어 들춰내어서 자기반성의 자극제를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외래문화 배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실상은 외래문화의 교류에서 빚어진 독자적인 민족성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전통을 세계문화 진출 때문에 방기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회고回顧의 감상에 빠지므로 해서 답습하는 것으로만 일삼으려는 두 점을 경계하여 건설적인 계승과 발전으로 민족문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현대작가에게 부과된 사명일 것이다.”


평론에서 탁월했던 윤희순은 일본 회화의 묘법描法이 “일본적 정서를 토대로 형성된 것이므로 비약적인 탈각”이 요구된다고 했으며 그의 주장에 많은 지식인들이 동조했다.
한국화 정체성에 관한 담론이 지속되지 못한 것은 6·25동란으로 타계하거나 많은 화가와 평론가들이 월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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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Aristopanes는 저서 <구름 The Clouds>에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anes는 저서 <구름 The Clouds>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우스Zeus의 존재를 부인했다고 적고 있어 그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과학자도 아니고 물리적인 공론speculations에는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먼저 자신은 돈을 받고 가르친 적이 없으므로 자신은 교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소피스트sophist가 아니란 뜻이다.
그는 우회적으로 소피스트들을 비난한 것이다.

델포이 사원의 신탁the Oracle of Delphi에 의하면,
소크라체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없다고 해서 그가 가장 지혜로운 자임을 선언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신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면서 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현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구하려고 했다.
그는 정치가를 찾아 갔지만 실망했고 시인을 찾아 갔지만 또한 실망했다.
그는 시인들이 지혜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우수한 영감으로 쓴다는 걸 알았다.
그는 예술가들을 찾아 갔지만 마찬가지로 그들이 현인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는 신만이 오로지 지혜롭다God only is wise는 걸 깨달았으며 신은 현인들이 무가치하거나 조금밖에는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점을 지적해서 자신들을 부끄럽게 만든 소크라테스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의 적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장본인 멜레터스Meletus는 소크라테스가 무신론자라면서 "그는 태양이 돌로 되어 있으며 달이 땅과 같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멜레터스에게 그가 자신을 기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들을 수 있는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의 견해를 기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태양을 돌로 달을 땅으로 본 것이 그의 견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드라마는 유리피데스Euripides의 드라마를 가리키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후반부는 종교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그는 한때 군인이었다.

그는 말했다.
"신은 내게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찾는 철학자의 임무를 주문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면서 누구도 죽음이 최선인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말했다.
"아테네 시민이여,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노라.
하지만 나는 너희들보다는 신에게 복종하여 아직 내가 살아 있는 한 철학을 실행하며 가르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훈계해야 만한다.
...
이는 신의 명령이며 신에 대한 나의 봉사로서 이보다 더욱 훌륭한 임무가 이 나라에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또 말했다.
"너희들이 부르짖으려고 하는데 난 너희들에게 좀더 할 이야기가 있으며 너희들에게 유익한 말이 될 것이므로 제발 부르짖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들이 자각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너희들이 나와 같은 사람을 살해한다면 난 해하는 것보다 더 너희들은 너희들 자신들을 해하는 것이 된다.
누구도 날 해할 수 없으며 멜레터스Meletus(소크라테스를 기소한 사람) 또는 아니터스Anytus도 날 해할 수 없는데 사악한 사람에게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살해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위해 변론했다기보다는 자신이 판단한 이야기를 했으며,
자신은 신에 의해 국가에 귀찮은 사람의 역할을 맞게 되었는데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장담하라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내 감히 말하는데 너희들이 정신이 번쩍들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너희들이 아니터스가 주장하는 대로 날 쉽게 죽일 수 있을 걸로 생각하겠지만 신이 너희들을 가련히 여겨 또 다른 귀찮은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을 너희들은 편히 자게 될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대낮에 말하는 것을 들었고,
다른 장소에서 신탁oracle 또는 표적이 내게 임하는 걸 보았으며,
이런 신성을 멜레터스는 기소장에서 우수꽝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 표적은 어떤 소리처럼 내가 어렸을 적 처음 나에게 들렸으며 항상 금하는 말을 했지만 내가 하려고 하는 어떤 것들도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이것이 왜 내가 정치가가 안 된 이유인 것이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정치에는 정직한 사람은 장생하지 못하더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피할 수 없었던 대중을 위한 두 가지 일을 예로 들었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반대했고 다른 하나는 30명의 독재자들이 각각 불법을 행할 때 반대했다고 했다.

여기서 30명의 독제자란 30인의 정치로서 30명이 아테네를 통치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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