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과 맹자
플라톤은 맹자보다 37, 8세 연장자이다.
맹자는 왕도정치를 주장했는데 민주를 우선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유사하다.
맹자는 통치자에게 있어 仁과 義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맹자는 통치자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라는 데는 과거 중국인들의 사고를 따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통치자가 仁과 義를 저버릴 경우에는 그 통치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공리를 전제로 왕을 천명을 받은 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은나라 탕의 하 나라에 대한 걸토벌과 주나라 무왕의 은 나라에 대한 주토벌(기원전 11세기)은 하극상이지만 맹자는 이를 정당화했다.
그는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일개 필부를 죽인 것이라고 말했는데 仁과 義를 상실한 왕을 일개 필부로 보기 때문이다.
梁惠王章句下 제8장에 보면 선왕이 맹자에게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괞습니까 하고 묻는다.
맹자가 말했다.
賊仁者를 謂之賊이오 賊義者를 謂之殘이오 殘賊之人을 謂之一夫니 聞誅一夫紂矣오 未聞弑君也케이다.
번역하면,
인을 해치는 자는 도적이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학하고
흉포한 자를 일부라 하니
일부인 주를 죽엿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임금이라도 인과 의를 잃으면 신하에 의해 살해되어도 하극상으로 보지 않겠다는
혹은 때에 따라서는 하극상을 추인하는 말이다.
이는 왕도정치에 민주정치를 가미시킨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민을 위한 민본주의 정치이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다른 면이 있지만 민을 위한 정치임은 분명하다.
통치자는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중국인의 생각이나
통치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이야 한다는 그리스인의 생각 모두 그 바탕은 민을 위하는 데 있다.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자란 뜻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仁과 義가 결여되었다면 이는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늘의 부름을 받은 사람에게 仁과 義가 결여되었다면 이는 진정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공자와 맹자의 왕도정치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문제는 누가 철인을 알아보고 그에게 나라를 맡기느냐 하는 것이다.
맹자의 문제 역시 누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인지 식별해서 나라를 맡기느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