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한편 한국화의 정체성 논란은 전통의 문제와 외래문화의 선별적 수용에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런 논지를 정연하게 편 사람은 윤희순이었다.
그는 일찍이 1933년 『신동아』 6월호 에 ‘조선미술의 당면과제’란 제목의 글에서 이런 견해를 피력했으며 조선미술동맹의 위원장이 되던 해인 1946년 『조선미술사연구』란 제목의 단행본을 발간하면서 ‘조형예술의 전통과 그 계승발전의 문제’에 관해 적었다.
“조형예술에 나타난 특수성은 민족의 예지를 대변한다.
따라서 세계문화사에 비추어 고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전통으로서 생생한 혈맥이 통하게 된다.
미개인종의 독특한 조형예술은 현대 학자에게 예술의 시원에 대한 연구대상이 되어 있지만 과연 그것을 예술의 전통으로 볼 수 있을까?
전통은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종속과 시대의 단편적인 특수성이 해소 여과되면서 높은 감성으로 앙양되고 계승·발전하는 독자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유한 종족 혹은 민족양식을 그대로 전통이라는 개념 속에 집어넣기 위하여는 양식의 고수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의 발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내는 장본인이 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서 전통을 가장 존중한답시고 실상은 전통을 우상골동화偶像骨董化하야 생기를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자가당착의 모순은 그 원인이 퇴폐취미에도 있지만 세계 문화 발달사에 대한 무관심과 현실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무기력한 독선주의 등에서 오는 것이다.
이와는 따로히 새로운 시대의 창조를 위하여는 전통에 구애할 것 없다는 생각을 과도하게 추진하여 민족성을 무시하려는 사람도 있다.
세계 문화의 교류는 어느 민족이고 민족 고유의 문화만을 긍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즉 고구려 문화는 육조六朝의 문화이며 신라의 석굴암은 당唐 문화 혹은 희랍 문화의 파생으로 보려고 든다.
이리하여 선진문화의 세계성으로 모든 것을 유형화하려고 든다.
과거유산은 박물관 목록으로만 값이 있을 뿐이고 건설기에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세계문화사의 노선 위에서 새로 창조할 따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저돌적인 태도는 세계문화 섭취라는 당면한 현실의 육박肉迫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역사의 비약적 발전단계를 마치 역사의 기적적 창생創生으로 착각하는 데서 생긴 것으로서 전자와 함께 역사의 관련성을 방기放棄하므로 연쇄連鎖의 환륜環輪을 절단하는 무모한 획책이라 하겠다.
이상의 두 가지 전통에 대한 편견된 관찰은 충분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을 극복함으로써 전통의 정당한 고찰과 계승·발전이 논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문제가 세계문화 섭취 및 신문화 건설과 결코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병행적으로 연관되어 토의될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동양화가들은 두 고민이 있을 것이니 그 하나는 이 일본화 기법이고 또 하나는 서양화에 대한 추종적 강박관념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첫 수단으로 우선 오랫동안 매몰되고 중단되었던 역사의 연쇄를 더듬어 들춰내어서 자기반성의 자극제를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외래문화 배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실상은 외래문화의 교류에서 빚어진 독자적인 민족성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전통을 세계문화 진출 때문에 방기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회고回顧의 감상에 빠지므로 해서 답습하는 것으로만 일삼으려는 두 점을 경계하여 건설적인 계승과 발전으로 민족문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현대작가에게 부과된 사명일 것이다.”


평론에서 탁월했던 윤희순은 일본 회화의 묘법描法이 “일본적 정서를 토대로 형성된 것이므로 비약적인 탈각”이 요구된다고 했으며 그의 주장에 많은 지식인들이 동조했다.
한국화 정체성에 관한 담론이 지속되지 못한 것은 6·25동란으로 타계하거나 많은 화가와 평론가들이 월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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