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 것이 인仁입니까?

 

 

 

이 질문은 번지樊遲가 공자에게 한 것입니다. 번지는 공자의 제자로 <논어>에는 공자와 그의 문답이 모두 일곱 번 나옵니다. 번지의 질문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궁仲弓도 공자에게 인에 관해 물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기 집 문을 나서서 사람을 대할 때에는 큰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것처럼 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바가 아니면 남에게 행하지 말아라. 그래야 제후의 나라邦에 원怨이 없어지고 대부의 채읍家에도 원이 없어진다.

 

“자기가 원하는 바가 아니면 남에게 행하지 말아라”라는 말은 동양의 황금률입니다. 예수는 “대접을 받고자 하면 남에게 먼저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서양의 황금률입니다. 이 둘은 최고의 도덕률입니다. 공자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행하라는 뜻으로 5백 년 이상 후에 출현한 예수의 말과 일치합니다. 공자가 예수에 비해 5백 년 이상 앞서 태어난 것을 감안하면 동양의 도덕률이 서양을 앞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衛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뛰어난 열 명의 제자들, 즉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재아宰我와 더불어 언어에 뛰어난 자공子貢(기원전 520?~456?)이 공자에게 “평생에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서恕(용서할 서)라고 할까?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면 남에게도 행하지 말아라!

 

자공이 “만일 여기에 백성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인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 인仁하다고만 하겠는가? 그 사람은 성인聖人이라 할 수 있다. 요순堯舜과 같은 위대한 통치자들도 그런 면에서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인仁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세우고, 자기가 이르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이르게끔 하는 것이다. 범사에 가까운 데서부터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이 인仁을 실현하는 방도라고 할 것이다.

 

공자는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생명에 연연하여 인仁을 해침이 없고 오히려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인仁을 목숨보다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가 말하는 군자는 곧 인을 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군자가 인을 버리면 어디에서 군자라는 이름을 이루겠는가?” 하고 말한 것입니다. 공자는 “군자이면서 인하지 못한 자는 있었으나 소인이면서 인한 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고 하여 소인이란 인이 결여된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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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흰 사람은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고 음부에 이상이 있다

 

 

“코 때문에 왔습니다. 한동안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했는데 이젠 축농증이 되어버렸어요. 수술도 여러 번 했는데 계속 코가 막히고 콧물과 재채기가 멈추질 않아요.”

37세의 조시가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에게 한 말입니다. 조씨는 피부색이 희고 얼굴형이 사각형이었습니다. 조씨는 레이저 수술까지 세 번이나 받았다고 했습니다. 조씨는 20년 전부터 맨바닥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오른쪽 늑골 아래가 결러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허리는 괜찮으냐고 물으니 “허리도 뻐근하게 아픕니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 더부룩한 느낌이 들구요. 콧속뿐만 아니라 입이 잘 마르기도 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조씨의 콧물과 재채기 증상은 찬 곳에 있을 때 더 심해지고, 하루 중에선 기온이 가장 낮은 이른 아침에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이는 추위와 바람 등 외기外氣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조씨처럼 피부색이 흰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조씨는 입이 잘 마른다고 했는데, 입이 마르는 증상은 진액이 부족하는 뜻입니다. 따라서 진액을 보충하는 약을 처방해야 합니다. 조씨는 진찰 도중에 계속해서 콧구멍을 움직이고 있는데, “코는 폐의 구멍”이라 하여 콧구멍을 움직이는 사람은 폐가 좋지 않습니다.

조성태는 조씨에게 가미보폐탕加味補肺湯을 처방했습니다. 가미보폐탕은 오래된 해수 관련 증상에 처방하는 약입니다.

피부색이 희고 얼굴에 밝은 빛이 없고 수심에 가득 찬 30세의 미혼 여성 송씨는 조성태에게 조금만 신경을 쓰면 목에서 가슴까지 꽉 막힌 것 같으며, 소화도 안 되고 어지러우면서 메스꺼움을 많이 느낀다고 했습니다. 팔다리에 기운이 없어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뒷목과 등뼈가 아플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변을 잘 보느냐고 물으니 “아뇨. 아랫배가 굉장히 찬데다 배꼽 주변이 아프면서 설사를 자주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성태는 송씨의 장이 원래부터 나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특히 목이 아프다고 했는데, 한의학에서는 목을 자궁에 해당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음부에 뭐가 나거나 가렵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런 얘길 하기는 좀 뭣하지만 의사 선생님 앞이니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사실 질 주변에 뾰루지가 하나 있거든요. 그런데 산부인과엘 가서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질 않아요. 원인도 모르겠다고 하구요. 가금 물집이 잡힐 때도 있고 가렵기도 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통증이 없느냐는 질문에 벌레가 쏘는 것 같기도 하고 집게벌레가 무는 것 같기도 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조성태는 송씨처럼 미혼 여성이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자궁에 음혈이 충만한데 양기를 받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늦게까지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로 보았습니다. 그는 송씨에게 귀비탕歸脾湯,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시호억간탕柴胡抑肝湯을 번갈아 처방했습니다.

귀비탕은 생각이 많거나 신경을 지나치게 써서 생기는 여러 증상에 쓰이는 한의학 상의 처방으로 여성들에게 자주 사용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대표적으로 건망증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를 언급하고 있으나 그 밖에도 불면이나 소화와 관련된 증상 및 월경과 관련된 증상 등에도 널리 응용되고 있습니다. 보중익기탕은 결핵증, 여름타는 병, 병후의 피로, 허약체질 개선, 식욕부진, 허약자의 감기·치질·탈항脫肛·자궁하수·위하수·다한증多汗症 등에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이 처방은 중국의 <동원십서東垣十書>에 첫 기록이 보인 이래 우리나라의 기록으로는 <동의보감>의 ‘제중신濟衆新’편, ‘방약합方藥合’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등에 전재되어 있습니다. 시호억간탕은 혼자 사는 과부가 음陰만 성하고 양陽이 없어서 성욕이 싹트나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여 학질같이 오한惡寒과 발열發熱이 나는 데 처방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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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무슬림 사이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된 것은

 

 

 

 

 

 

유럽의 무슬림 사이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된 것은 유럽인이 이슬람주의자들의 선전에 귀를 닫은 만큼이나 관심에서 멀어진 현상인데,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미국 논객들 가운데 일부는 서구의 무슬림 청년이 극단주의로 치닫는 형국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이슬람 관련 서적 중, 2006년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서 펴낸 책을 보면 조나단 로렌스가 “반유대주의 운동이라야 대수롭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라며 반유대주의의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이 있다. 책의 서문을 쓴 프랑스 학자 올리비에 로이는 포스트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며 이슬람주의 조직체를 “길을 잃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타크피리٩9 부대takfiri pockets” 라고 일축했다.
여기서 요지는 부대가 아니라 기원으로 돌아가는 반유대주의라야 옳을 것이다. 유대인은 유럽 사회의 무슬림 이민자들이 통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희생양이었다. 독일에서 무슬림 여성을 변호해온 터키 출신의 세이란 아테스 변호사는 소수 무슬림 집단의 반유대주의를 종종 비판했다. 그녀는 다문화주의자들이 편협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들을 비난했다. 그들이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시인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베를린에서 총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진 아테스는 베를린의
반유대주의 터키인들을 규탄했다. 2006년 히브리 대학의 비달사순 반유대주의 연구센터Vidal Sassoon Center for the Study of Antisemitism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주요 쟁점들 가운데 하나는 이슬람교 원리주의와 서양 다문화주의의 소통이었다. 다문화주의자들은 이슬람교를 비롯한 비유럽 문화를 미화하면서 유럽 내 이민자들의 문화를 험담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세우게 되었고, 결국 유럽에 산재한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유대인혐오증은 무도하지만 멸시받던 그들이 박해자를 직접 겨냥한 것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타당성을 얻게 되었다. 이를 두고 제프리 허프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유대인혐오증은 유럽의 신나치주의에서 비롯된 도덕적 반감과는 다른 것 이” 라고 밝혔다.
지금껏 주장해왔듯이, 반유대주의는 극악무도한 인종차별주의를 일으키고 급기야는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유럽의 폐단을 드러낸다. 독일 국민은 이 같은 범죄를 재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정치 문화의 기초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이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묵인하거나, 이를 “멸시받던 자” 의 적법한 대응으로 치부하고 있으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2007년 3월, 예일 대학에서 반유대주의를 강연하던 나는 시대를 막론하고 유럽보다는 현지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물론 유럽의 무슬림이 사회적으로 소외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차별이 자행되는 유럽에서 빈곤한 하류 민족으로 존속해왔고, 이슬람주의 정체성 정치를 통해 반감을 표출했다. 물론 대체로 정당성을 인정해주긴 했지만 그들이 유대인에게 적개심을 품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슬람주의를 비판할 생각은 없으나, 그들이 겪어온 고통의 일부는 유럽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꼭 일러두고 싶다. 유럽에서 중산층으로 산다는 무슬림도 문화적 차별공세를 면하지는 못하고 있다. 즉 다문화주의와 문화의 상대주의가 인종차별주의와 공존하는 까닭에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유럽의 하류층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무슬림은 교육의 기회는커녕 다문화주의가 뭔지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테지만, 유럽인이 비서양 문화들을 허용한다는 차별적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개선하기보다는 주로 (독일) 여성의 취업을 보장하는 데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유대인은 이 같은 유럽의 관행에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교가 유대인과 십자군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이른바 “포위된 이슬람교” 선전으로 유대인에게 선동자의 역할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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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만디아스의 문제

 

 

 

 

이번에는 인간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인지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반대하는 마지막 견해를 살펴본다. 퍼시 셸리6는 그의 시 「오시만디아스에서 폐허의 사막을 지나는 어느 길손을 그린다. 길손은 한때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던 지배자 오시만디아스의 입상立像이 무너져 내려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 위를 밟고 걸어간다. 그 둘레의 땅은 일찍이 오시만디아스 제국의 영토였을지 모르지만, 이젠 모든 것이 쓰레기더미에 묻힌 채 황량한 사막이 되었다. 오시만디아스가 누리던 영광의 자취 또한 세월과 더불어 남김없이 사라졌다. 오시만디아스가 입상의 밑바닥에서 “내가 이룩한 업적을 보라. 너희 강대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하고 외치는 듯하다. 그러나 오시만디아스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모든 물상이 처참히 널려 있는 벌판에서 거창한 부르짖음은 독자의 귓전을 공허하게 스칠 뿐이다.
오시만디아스는 인간 자만심의 거대한 상징이다. 자신이 이룩한 것과 그 값어치를 과대 포장하면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비춰볼 줄 모르는 인간의 성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먼 앞날을 바라볼 때, 우리가 현재 삶에서 추구하는 일들이 과연 의미 있는 것으로 비치겠는가?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에는 틀림없이 성취하려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터이다. 그러나 ‘왕 중의 왕’ 오시만디아스의 업적조차 한갓 티끌이 되어 바람에 씻겨 가거늘, 우리가 지금 벌이는 모든 문제가 먼 앞날에도 그리 중요할까? 그럼에도 중요한 일을 하는 데 걸린 만큼 그 삶은 의미가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우리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을 지녀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이나 견해를 지니면, 정말 중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삶을 가꾸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다 결국 죽고 만다. 가까이에서 더불어 살던 사람들도 결국 모두 죽는다. 몇 세대 안 가서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고 만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는 사람(헤겔은 이들을 가리켜 ‘세계-역사적 개인world-historical individuals’이라 했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마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들어서 결국 아무 자취도 남지 않게 된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것이 이렇게 시들어갈 운명을 안고 있음을 생각할 때, 신이라도 있어서 우리가 하는 일을 굽어보고 기억해두지 않는 한, 우리 삶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역시 옳지 않을까?
내가 볼 때 이런 식의 비평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모든 사람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름없어진다는 사상이다. 이런 식의 사고에 맞설 때, 진정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고수할 수 있을까? 시간의 영원함에 비추어볼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삶을 돌아볼 때, 내가 어찌 살고 있는가가 그리 중요한 일일까? 당장 자살하지 않고 생존하거나 그렇지 않거나가 그리 중요한 일일까? 나는 내 삶의 문제를 중요하고 또 긴급한 일로 생각하며, 그렇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온갖 노력을 기울여 삶을 꾸려간다. 하지만 영원한 시간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모든 게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나는 광대한 우주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말할 수 없이 작은 배역을 맡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이렇게 물을 터이다. 우리는 영원한 시간의 관점을 과연 어느 만큼이나 참되고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현재 몰입한 모든 관심사를 내던진 채, 우리처럼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염려한다면, 그러한 관심이야말로 황당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라야 모름지기 삼라만상의 두터운 장막 속에서 모든 사물의 실상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할까? 현재 몰입한, 더 없이 중요한 활동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는 왜 생각지 않을까? 나는 이런 아리스토텔레스 식 반응이 별로 설득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활동에 몰두할수록 영원한 시간의 관점에 깃들어 있는 우울함에서 멀어진다는 주장은 심리적인 문제로서는 어느 정도 옳은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두 관점을 비교해보면서 이러한 심리적 분석이 과연 어느 정도나 중요한 사실을 밝혀주는지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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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무슬림은 “제2의 유대인” 인가?

 

 

 

 

 

유럽에서 소수 이슬람교 집단이 종족화되는 과정67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맞닥뜨리는 차별 및 이슬람혐오증과 관계가 있긴 하나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유럽의 제2의 유대인” 68을 자처할 자격이 없는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무슬림이 유럽 시민으로 통합되기보다는 유럽 안에서 이슬람식 반체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다. 유럽 이슬람주의자들이 유대인을 증오한다면 왜 홀로코스트를 도용하고 유대인과 동일시하며, 그들이 “제2의 유대인” 이란 말에 급작스레 무슬림을 차별하는 유럽인들은 이슬람주의의 관심사를 무슨 까닭으로 포용하는가? 그리고 이슬람주의 및 이슬람교의 차이가 유럽에 산재된 이슬람교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이에 대한 의문을 푸는 데 마코비츠가 크게 일조했다. 이민자들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유럽 국가 전역에서 고약한 외국인공포증을 무엇보다 먼저 일깨우면서 이중적인 반유대주의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첫째는 이민자를 증오하여 그들을 경멸하는 자들이고, 둘째는 증오의 대상으로서, 공교롭게도 아랍・이스라엘 분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반유대주의가 널리 퍼진 문화 출신자들에게서 말이다.

발칸반도에서 세르비아계 파시스트당이 보스니아 무슬림을 학살할 때 대부분 잠잠했던 유럽 좌파들이 돌연 태도를 바꿔 “미국이 개입하자 발칸 전쟁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은 무도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반미주의 탓에 미국의 개입을 반대한 것이지, 전쟁이나 살상에 대한 인륜적인 명분 때문은 아니었던 듯하다.
3장의 주제는, 반미주의라기보다는 반시온주의70와 반미주의가 걸핏하면 위장전술을 구사하는, 이슬람주의가 도모하려는 반유대주의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영국의 무슬림 민주당원 하니프 쿠레이시는 영국의 사원을 방문한 소회를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내가 찾은 사원은 열성적이고도 선동적인 설교자가 장악했다. 열렬한 설교
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은 서방세계와 유대인에 맞서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했다. … 사원에서뿐 아니라, 신앙학교를 비롯한 종교기관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다문화 영국이 프랑스와 사뭇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 7월 지하디스트가 공격을 감행하기 전까지 영국은 유럽의 여느 국가들과는 달리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72 일부 다문화주의자들은 영국의 관용적인 태도를 높이 평가했으나 혹자는 이를 유럽과 문화가 분열되는 화근으로 치부했다. 좀 민감할 수도 있으니 문화의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고 유럽의 인종차별주의에 있어서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는 나의 입장을 서둘러 밝혀야겠다. 내가 주장하고픈 이야기는 런던
이라는 개방적인 분위기에서도 자칭 소수 이슬람교 집단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사람— 대개는 유대인을 혐오하는— 이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홀로코스트를 규탄하면서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은 부인하고, 유럽의 무슬림을 두고는 (벌어진 적도 없다는)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만큼 박해를 받고 있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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