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무슬림 사이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된 것은

유럽의 무슬림 사이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된 것은 유럽인이 이슬람주의자들의 선전에 귀를 닫은 만큼이나 관심에서 멀어진 현상인데,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미국 논객들 가운데 일부는 서구의 무슬림 청년이 극단주의로 치닫는 형국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이슬람 관련 서적 중, 2006년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서 펴낸 책을 보면 조나단 로렌스가 “반유대주의 운동이라야 대수롭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라며 반유대주의의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이 있다. 책의 서문을 쓴 프랑스 학자 올리비에 로이는 포스트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며 이슬람주의 조직체를 “길을 잃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타크피리٩9 부대takfiri pockets” 라고 일축했다.
여기서 요지는 부대가 아니라 기원으로 돌아가는 반유대주의라야 옳을 것이다. 유대인은 유럽 사회의 무슬림 이민자들이 통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희생양이었다. 독일에서 무슬림 여성을 변호해온 터키 출신의 세이란 아테스 변호사는 소수 무슬림 집단의 반유대주의를 종종 비판했다. 그녀는 다문화주의자들이 편협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들을 비난했다. 그들이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시인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베를린에서 총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진 아테스는 베를린의
반유대주의 터키인들을 규탄했다. 2006년 히브리 대학의 비달사순 반유대주의 연구센터Vidal Sassoon Center for the Study of Antisemitism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주요 쟁점들 가운데 하나는 이슬람교 원리주의와 서양 다문화주의의 소통이었다. 다문화주의자들은 이슬람교를 비롯한 비유럽 문화를 미화하면서 유럽 내 이민자들의 문화를 험담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세우게 되었고, 결국 유럽에 산재한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유대인혐오증은 무도하지만 멸시받던 그들이 박해자를 직접 겨냥한 것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타당성을 얻게 되었다. 이를 두고 제프리 허프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유대인혐오증은 유럽의 신나치주의에서 비롯된 도덕적 반감과는 다른 것 이” 라고 밝혔다.
지금껏 주장해왔듯이, 반유대주의는 극악무도한 인종차별주의를 일으키고 급기야는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유럽의 폐단을 드러낸다. 독일 국민은 이 같은 범죄를 재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정치 문화의 기초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이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묵인하거나, 이를 “멸시받던 자” 의 적법한 대응으로 치부하고 있으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2007년 3월, 예일 대학에서 반유대주의를 강연하던 나는 시대를 막론하고 유럽보다는 현지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물론 유럽의 무슬림이 사회적으로 소외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차별이 자행되는 유럽에서 빈곤한 하류 민족으로 존속해왔고, 이슬람주의 정체성 정치를 통해 반감을 표출했다. 물론 대체로 정당성을 인정해주긴 했지만 그들이 유대인에게 적개심을 품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슬람주의를 비판할 생각은 없으나, 그들이 겪어온 고통의 일부는 유럽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꼭 일러두고 싶다. 유럽에서 중산층으로 산다는 무슬림도 문화적 차별공세를 면하지는 못하고 있다. 즉 다문화주의와 문화의 상대주의가 인종차별주의와 공존하는 까닭에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유럽의 하류층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무슬림은 교육의 기회는커녕 다문화주의가 뭔지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테지만, 유럽인이 비서양 문화들을 허용한다는 차별적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개선하기보다는 주로 (독일) 여성의 취업을 보장하는 데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유대인은 이 같은 유럽의 관행에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교가 유대인과 십자군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이른바 “포위된 이슬람교” 선전으로 유대인에게 선동자의 역할을 떠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