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만디아스의 문제

 

 

 

 

이번에는 인간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인지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반대하는 마지막 견해를 살펴본다. 퍼시 셸리6는 그의 시 「오시만디아스에서 폐허의 사막을 지나는 어느 길손을 그린다. 길손은 한때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던 지배자 오시만디아스의 입상立像이 무너져 내려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 위를 밟고 걸어간다. 그 둘레의 땅은 일찍이 오시만디아스 제국의 영토였을지 모르지만, 이젠 모든 것이 쓰레기더미에 묻힌 채 황량한 사막이 되었다. 오시만디아스가 누리던 영광의 자취 또한 세월과 더불어 남김없이 사라졌다. 오시만디아스가 입상의 밑바닥에서 “내가 이룩한 업적을 보라. 너희 강대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하고 외치는 듯하다. 그러나 오시만디아스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모든 물상이 처참히 널려 있는 벌판에서 거창한 부르짖음은 독자의 귓전을 공허하게 스칠 뿐이다.
오시만디아스는 인간 자만심의 거대한 상징이다. 자신이 이룩한 것과 그 값어치를 과대 포장하면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비춰볼 줄 모르는 인간의 성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먼 앞날을 바라볼 때, 우리가 현재 삶에서 추구하는 일들이 과연 의미 있는 것으로 비치겠는가?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에는 틀림없이 성취하려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터이다. 그러나 ‘왕 중의 왕’ 오시만디아스의 업적조차 한갓 티끌이 되어 바람에 씻겨 가거늘, 우리가 지금 벌이는 모든 문제가 먼 앞날에도 그리 중요할까? 그럼에도 중요한 일을 하는 데 걸린 만큼 그 삶은 의미가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우리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을 지녀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이나 견해를 지니면, 정말 중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삶을 가꾸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다 결국 죽고 만다. 가까이에서 더불어 살던 사람들도 결국 모두 죽는다. 몇 세대 안 가서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고 만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는 사람(헤겔은 이들을 가리켜 ‘세계-역사적 개인world-historical individuals’이라 했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마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들어서 결국 아무 자취도 남지 않게 된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것이 이렇게 시들어갈 운명을 안고 있음을 생각할 때, 신이라도 있어서 우리가 하는 일을 굽어보고 기억해두지 않는 한, 우리 삶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역시 옳지 않을까?
내가 볼 때 이런 식의 비평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모든 사람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름없어진다는 사상이다. 이런 식의 사고에 맞설 때, 진정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고수할 수 있을까? 시간의 영원함에 비추어볼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삶을 돌아볼 때, 내가 어찌 살고 있는가가 그리 중요한 일일까? 당장 자살하지 않고 생존하거나 그렇지 않거나가 그리 중요한 일일까? 나는 내 삶의 문제를 중요하고 또 긴급한 일로 생각하며, 그렇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온갖 노력을 기울여 삶을 꾸려간다. 하지만 영원한 시간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모든 게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나는 광대한 우주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말할 수 없이 작은 배역을 맡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이렇게 물을 터이다. 우리는 영원한 시간의 관점을 과연 어느 만큼이나 참되고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현재 몰입한 모든 관심사를 내던진 채, 우리처럼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염려한다면, 그러한 관심이야말로 황당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라야 모름지기 삼라만상의 두터운 장막 속에서 모든 사물의 실상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할까? 현재 몰입한, 더 없이 중요한 활동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는 왜 생각지 않을까? 나는 이런 아리스토텔레스 식 반응이 별로 설득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활동에 몰두할수록 영원한 시간의 관점에 깃들어 있는 우울함에서 멀어진다는 주장은 심리적인 문제로서는 어느 정도 옳은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두 관점을 비교해보면서 이러한 심리적 분석이 과연 어느 정도나 중요한 사실을 밝혀주는지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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