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굵은 사람에게는 뼈 쪽으로 병이 온다

 

 

“이렇게 된 지는 한두 주쯤 됐어요. 등산 갔다 와서 바로 김장을 했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오금을 못 펼 정도로요.”

51세의 여자 박씨가 아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에 들어서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에게 한 말입니다. 방금 정형외과에 들러 검사 결과를 보고 오는 길이라는데, 아무 이상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리의 어느 부위가 아프냐고 묻자 “앉았다 일어날 때 굉장히 아프니까 구부리는 것보다 펴는 게 더 힘들다고 봐야죠” 하고 대답했습니다.

박씨는 뼈가 굵은 사람이므로 원래 뼈 쪽으로 병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뼛속까지는 병이 들지 않았습니다. 구부렸다 펴지 못하는 것은 근육에 병이 든 것이고, 폈다가 구부리지 못하는 것은 뼈에 병이 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골zygomatic bone(광대뼈 혹은 협골頰骨이라고 함)이 불그스름한데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물으니 “전 폐경이 굉장히 빨리 왔거든요, 한 7, 8년쯤 되는데 그때부터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광대뼈 부위가 불그스름해지는 건 대개 조열潮熱 증상이므로 조성태는 얼굴에 열이 훅 났다 식었다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씨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성태는 그릴 리가 없다 싶어 무슨 약을 복용하는 것이 틀림없어 물으니 “3년 전에 산부인과에서 갱년기 검사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호르몬제를 줘서 계속 먹고 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박씨는 나이에 비해 폐경을 너무 일찍 맞았으므로 다른 사람보다 노화가 빨리 왔고, 그로 인해 조열 증상이 생겨 광대뼈 부위가 불그스름하게 변했던 것입니다.

조열은 피를 말리는 것이므로 매우 좋지 않은 증상입니다. 피를 저장해두는 간이 근육을 주관하므로 피가 마르면서 근육에 이상이 온 것입니다. 조성태는 박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호르몬제를 끊으세요. 조열은 피를 말릴 뿐만 아니라 뼈에 있는 진액을 말리기도 합니다. 호르몬제는 조열 증상이 나타나는 걸 임시로 꺼주는 기능을 할 뿐입니다. 일종의 진통제라 할 수 있죠. 그러니 병을 치료하는 것과는 상관도 없을 뿐더러, 호르몬제를 끊으면 바로 조열 증상이 나타날 겁니다. 물론 증상이 전보다 더 심해지지요.”

조성태는 호르몬제를 끊게 한 뒤 허로로 인한 조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박씨에게 가미인삼양영탕加味人蔘養榮湯을 처방했습니다. 가미인삼양영탕은 몸이 허虛한 것이 오래되어 사지四肢에 기운이 없어 무기력하고 몸이 여위고 마르며 얼굴이 작아지고 안색이 좋지 않으며 숨을 짧게 들이마시며 음식의 맛을 모르는 데 치료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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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의 왕도정치와 성선설은 무엇입니까?

 

 

맹자孟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철기의 확산으로 인한 생산력의 급격한 발달로 제후들 사이에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벌어지던 전란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맹자는 제후국을 주유하며 각국의 군주들에게 인정仁政을 역설하고 이의 근거로 성선설性善說을 제시했습니다. 맹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한 <중용>의 내용을 계승해 성性을 만물에 내재된 하늘의 작용, 즉 천명天命으로 파악함으로써 만물이 일체라는 만물일체사상萬物一體思想을 확립했습니다. 그는 하늘의 작용이 자연의 조화調和를 연출하므로 하늘의 작용을 성으로 이어받은 인간도 사회에서 절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법가法家나 병가兵家와 같은 당대의 지배적 사조思潮는 인간을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고,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하거나 억압함은 물론,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각국의 군주들은 병가와 법가의 사상가를 재상으로 임용하여 군사력의 강화와 조세의 효율적 수취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민중들은 과도한 부역과 무거운 조세 그리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맹자가 제시한 정치 이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윤리적 처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가 제시한 성선설은 약육강식을 인간 본성의 전부로 여기려는 당대의 지배적 사조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공자가 타계한 지 100년 정도 후에 태어났습니다. 맹자나 정확하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논어>나 <맹자>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로 기원전 372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89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맹자의 성은 맹孟이며 이름은 가軻입니다. 추鄒라는 지방 출신인데 추는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에 속한 지방이라는 설도 있고 독립된 나라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교육에 열심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거나 중도에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들에게 명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짜던 베를 잘랐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옵니다. 이른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와 맹모단직지교 이야기는 전한 시대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에 나오는 것으로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가깝습니다.

맹자는 인의仁義의 덕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당시의 정치적 분열 상태를 극복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왕도정치를 시행하라고 제후들에게 유세하고 다녔습니다. 기원전 320년경에 양梁나라에 가서 혜惠왕에게 왕도에 대해 유세했으나, 일이 년 뒤에 혜왕이 죽은 뒤, 아들인 양襄에게 실망해서 산동에 있는 제齊나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제나라의 선宣왕에게 기대를 걸고 칠팔 년을 머물렀으나, 역시 자신의 이론이 채용되지 않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문공文公의 초대를 받아 등藤으로 갔지만, 역시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자 노魯나라를 거쳐 고향 추로 돌아왔습니다.

맹자는 잔혹한 군주는 왕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폭군은 왕의 자리에서 내쳐버려도 좋다는 폭군 방벌론을 제시함으로써 저항권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는 군주의 덕을 결여한 폭군을 시해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말했습니다. 그는 백성의 위상을 군주보다 상위에 위치시킴으로써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제창하고, 영토를 넓히려는 군주의 욕망보다 백성의 삶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위민爲民 정치의 효시를 열었습니다. 맹자는 왕도王道와 인정仁政을 주장하여, 군주가 인애한 마음으로 온 천하의 백성을 대할 때 천하가 통일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크고 힘센 나라고 작고 힘없는 나라를 쳐부수고 합병하는 겸병전쟁을 반대하고, 백성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여 배고픔과 추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즉 만생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인정을 베푼 뒤에 그들을 교화하고 예의를 가르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관한 맹자의 주장은 인간의 마음이 인의예지仁義禮智 각각의 실마리에 해당하는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측은지심의 구체적인 예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측은지심을 맹자는 선善이라 했습니다. 성선설은 논리적 논변이나 구조를 갖춘 학설이라기보다는 맹자의 신념을 밝힌 것에 가깝습니다. 성선을 주장하는 맹자의 의도는 결국 각 개인에 대해 도덕적 각성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부단하게 수양할 것을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맹자를 가리켜 유학에서 ‘마음의 본래 이치를 밝혀 도덕 수양을 하는 학문’, 즉 심학心學의 사실상의 제창자로 일컫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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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는 근과 육을 달리 본다

 

 

근육筋肉이 아프다 땅긴다 해서 하나로 보는데, 한의학에서는 근과 육을 달리 봅니다. 근筋(힘줄 근)은 말 그대로 힘줄이고 육肉은 말 그대로 살입니다.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하지 못하거나, 이른바 ‘쥐가 났다’고 하여 경련이 일어나는 것은 근의 작용이 좋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뚱뚱하고 마른 것은 육의 문제입니다.

힘줄과 살의 구분은 다이어트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운동을 하면 살은 약간 빠지겠지만 힘줄이 상하고 맙니다. 무릎을 비롯하여 관절들이 아프고 땅기며 경련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손발을 잘 놀리지 못하면서 걷는 것조차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한의학에서 근과 육을 달리 보는 까닭은 근과 육을 주관하는 장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근을 주관하여 몸의 힘줄을 생기게 하는 곳은 간이고, 육을 주관하는 곳은 비위입니다. 따라서 간이 병들면 힘줄이 경련을 일으키거나 아픕니다. 비위에 나쁜 기운이 들어가면 육에 병이 생겨 고통을 받습니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힘줄이 땅기면서 불편한 것은 간기肝氣에 열이 있어서이며, 이때에는 담즘膽汁(간에서 만들어져 십이지장十二指腸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이 나오므로 입맛이 쓰다고 말합니다. 이런 증상은 주로 생각은 많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심하는 사람이나 성생활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흔히 ‘쥐가 났다’고 말하는 증상은 힘줄에 혈액이나 진액이 부족해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으로, 혈액을 저장하고 공급하는 장기가 간입니다. 힘줄과 육이 푸들거리는 현상도 혈이 부족하여 힘줄에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생기는 것입니다.

힘줄에 경련이 일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열火熱을 없애는 약만 쓰면 금방 낫는 병입니다. 이는 열이 너무 지나쳐서 풍風이 온 것으로, 풍風과 화火가 서로 억눌러서 정신을 잃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육은 비위에 속합니다. 그래서 비장이 허하면 살이 많이 빠집니다. 비장은 위에서 받아들인 음식물을 소화 흡수하여 인체 곳곳에 운반하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 기능이 원활치 못하므로 살이 빠지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마른 체질을 한의학에서는 혈허유화형血虛有火形이나 음허형陰虛形, 혹은 담체擔體라 합니다. 선천적으로 마른 체질은 비위도 튼튼하고 강단이 있어 평소에는 잘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병들어 아프기 시작하면 큰 병이 오기 쉽습니다.

뚱뚱한 체질은 기허습담형氣虛濕痰形 혹은 양허형陽虛形이라 해서 양기陽氣가 허하고 습기에 잘 상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체질상 잠이 많으며 낮에도 꾸벅꾸벅 잘 졸고, 관절염이나 담음증 등에서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무력증gastric atony도 있어서 평소 과식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자기 양보다 조근 더 먹었다 싶으면 금방 거북해지고 소화가 안 됩니다. 위무력증은 위벽의 근긴장이 감소된 상태를 말하고 연동운동도 또 다소 쇠약합니다. 원인으로서는 아토니성 체질(선척적 근육박약), 과잉 식사가 습관화된 사람, 설사, 모르핀, 아트로펀 등의 남용 외에 전신신경증(신경쇠약, 히스테리 등)의 한 증후, 또 반사성 신경증, 각종 위장질환의 속발증續發症으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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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습격은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습격은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경시청은 무슬림 젊은이의 공격을 피하려면 유대인 신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종용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스웨덴에서는 아예 반유대주의인 이슬람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지에 거주하는 유럽계 유대인들은 이민을 고려해볼 만큼 굴욕을 당하고 있다며 하소연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정치적 불만을 정당하게 표출하는것” 이라며 이를 되레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아랍계 이슬람교의 유입을 통해 유럽에 반유대주의를 퍼뜨리게 하려는 위장막에 불과했다. 소위 잘못을 뉘우쳤다는 유럽인은 다른 문화를 누릴 권리를 인정하다 못해 아랍계 무슬림의 반유대주의 사상까지 눈감아주고 있다. 또한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무슬림일지라도, 이슬람혐오증을 비롯하여— 무슬림 이민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갈등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욕을 먹고 있다.
소수 이교도 집단의 문화를 분석하려면 문화적 정체성의 구조와 꾸며진 배경을 먼저 다뤄야 한다. (이를테면, 유럽에서 불신자로 비쳐질 때 적대적인 환경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람주의의 여파로, 소수 이슬람 집단의 하층민은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세워나가고 있다. 베를린에서 간행되는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지에 따르면, 아랍계 무슬림 지역(이를테면, 노이퀼른)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유대인 입학금지라는 반유대주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까지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문화주의는 현지 주민의 정체성 방침을 “우익 급진주의” 라거나 “반이민주의” 라 헐뜯으면서도 이 같은 정책을 허용하고 있다. 급진주의 우익 이슬람주의자들도 무임승차권을 받은 셈이다. 유럽 문화의 상대주의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베푼 난잡한 관용정신은 정체성 방침을 어처구니없는 지경에까지 몰고 갔다. 이슬람주의 사상이 소수 이교도 집단의 기관에서 전파되자— 하니프 쿠레이시가 밝혔던 상황이 런던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유럽 전역의 젊은 무슬림이 소싯적부터 급진파로 길러진 것이다. 새로운 반유대주의 사상을 부추길 속셈으로 말이다.
이슬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그들은 시민권을 십분 활용했다. 예컨대, 종교의 자유권을 들먹이면서, 비무슬림의 권리를 배격하고 무슬림을 시민으로 통합하려는 방침을 저해하는 배타적 신분 개념을 신앙학교에서 가르친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 유럽에서 무슬림이 받고 있는 처우를 간과하진 않겠지만, 분명 무슬림을 유럽 사회에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은 유럽인뿐 아니라 무슬림에게도 있다. 유럽의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이슬람교를 유럽형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유럽을 이슬람교화하자는 데 동조하고 있다.
독일 속담에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반유대주의를 확신시킨다는 이유로 이슬람주의자를 비난하다면 그들은 당신을 이슬람혐오증 환자로 몰아세울 것이다. 그러고는 반이슬람주의를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며 무슬림을 상대로 하는 제2의 홀로코스트를 운운할 것이다. 이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증오심에 찬동하는 쪽은 무고한 사람이 되고, 이를 반대하는 쪽은 되레 대량살상을 도모한 꼴이 되고 만다. 바로 타리크 라마단이 이처럼 주객을 전도하여 이중언어를 일삼는다는 비난을 되받아친 인물이
다. 그는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무슬림 유대인이오” 라며 자신의 신분을 강조했다. 알랭 핀키엘크라우트를 비롯한, 프랑스계 유대인과의 마찰을 감안해볼 때 그의 주장은 선전과 다르지 않았다. 라마단은 프랑스의 유대인 지식층의 불신을 샀다. 그들을 반유대주의자들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스퍼드나 미국의 일부 계층에서 그는 유럽에서 이슬람교를 대변하는 인물로 추앙받았다.80 그의 이슬람주의 사상에는 유럽적인 면이 없으나, 일부 유럽계 무슬림은 타리크 라마단과 대립된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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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제안

 

 

 

 

당신이 빚 때문에 고생한다고 가정하자. 친지들에게서 돈을 빌려 사업에 투자했지만 기대하던 수익을 내지 못한다. 여러 친지를 설득하여 투자하게 했으나, 불행히도 당신의 구상은 빗나간다.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되도록 지급을 늦춰 왔지만, 빚 갚을 돈이 없어 파산할 때가 닥쳐왔다.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파산선고를 당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자 놀라운 방법을 하나 알려준다. 어려움을 벗어날 유일한 길은 채권자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채권자도, 채무도, 모두 사라지리라. 보라, 책상 서랍 여닫이를 뜯어내면 무기 하나를 간단히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원한다면 내가 해주마. 이름을 알려줘, 그리고 말을 해. 내가 그런 행동을 해도 소송은 하지 않을 거라고.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자, 나는 어느 집안의 작은 비극을 이야기한 것인데, 이 이야기는 더 암울한 희곡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 생활이 아닌,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서나 이런 사건을 볼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충격적인 까닭은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가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럴까?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단순하게 사는 길일 것이다. 당신은 왜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자.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런 행위는 의심할 여지없이 나쁜 일이다. 내가 궁금해하는 건 왜 그런가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혼자서 반대할 때 나머지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달리 말하면, 아주 특이한 예를 설정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무엇이 나쁜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의 기본적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루던 문제로 돌아가자. 당신은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봐!” 총을 잡은 사내가 소리친다. “좀 놀랐을 거야. 나더러 옳다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내가 하는 ‘게임’이 뭔지를 알게 되면(하지만 당신은 그 ‘게임’이 뭔지를 묻지 않는다) 너도 꽤잘하게 될 걸. 이게 우리가 사는 방법이야.” 사내가 노려보며 낄낄대더니, “내 말을 못 알아듣겠으면, 차라리 죽어” 하고 말한다. 잠시 조용하다가 사내는 다시 당신을 노려본다. “이봐, 내가 약속하지. 이 일에 관해서는 아무도 몰라. 난 입술을 꿰맬 거야. 네가 내 말에 동의하면 나도 함께할 거라고. 난 네가 궁지에 빠져 있게 하고 싶지 않거든. 됐어?” 당신은 이 친구가 하는 말이 꽤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음을 점점 깨닫게 된다. 그런 방법으로 빚을 깡그리 털어낸 뒤, 달아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여러 달 동안 당신을 짓누르던 어둠이 가시고, 상쾌한 아침에 자유롭게 깨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여러 해 동안 돈 걱정에 시달리며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창한 계획을 세워가며 고심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진정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렸을 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많은 돈을 꾸어댔다. 그로부터 쉴 새 없이 달려왔지만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빚은 줄지 않았고 한쪽의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쪽에서 돈을 빌렸다. 이 불행한 생존을 더 이어갈 까닭이 있을까? 이제 당신 앞에 출구가 나타났다. 사람은 결국 한 번 살다가 가는 것.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이, 왜 나만 불행한 삶을 이어가는가? 그들을위해 나의 삶을 정녕 희생하려 하는가? 아니다. 총을 든 저 사내는 정말 옳은 말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 잠긴 사이, 당신은 또 다른 생각을 떠올린다. 저 사내의 말대로,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총을 든 저 사내는 이 일을 안다. 사내가 살인을저지른 다음, 입을 다물고 있을 테니 돈을 더 내놓으라고 협박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빚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저 무자비한 괴물에게 새로운 빚을 지게 되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저 사내가 나를 위해 살인을 한 다음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저 친구가 살인을 하고 나면, 나는 저 친구를 죽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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