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습격은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습격은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경시청은 무슬림 젊은이의 공격을 피하려면 유대인 신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종용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스웨덴에서는 아예 반유대주의인 이슬람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지에 거주하는 유럽계 유대인들은 이민을 고려해볼 만큼 굴욕을 당하고 있다며 하소연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정치적 불만을 정당하게 표출하는것” 이라며 이를 되레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아랍계 이슬람교의 유입을 통해 유럽에 반유대주의를 퍼뜨리게 하려는 위장막에 불과했다. 소위 잘못을 뉘우쳤다는 유럽인은 다른 문화를 누릴 권리를 인정하다 못해 아랍계 무슬림의 반유대주의 사상까지 눈감아주고 있다. 또한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무슬림일지라도, 이슬람혐오증을 비롯하여— 무슬림 이민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갈등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욕을 먹고 있다.
소수 이교도 집단의 문화를 분석하려면 문화적 정체성의 구조와 꾸며진 배경을 먼저 다뤄야 한다. (이를테면, 유럽에서 불신자로 비쳐질 때 적대적인 환경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람주의의 여파로, 소수 이슬람 집단의 하층민은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세워나가고 있다. 베를린에서 간행되는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지에 따르면, 아랍계 무슬림 지역(이를테면, 노이퀼른)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유대인 입학금지라는 반유대주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까지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문화주의는 현지 주민의 정체성 방침을 “우익 급진주의” 라거나 “반이민주의” 라 헐뜯으면서도 이 같은 정책을 허용하고 있다. 급진주의 우익 이슬람주의자들도 무임승차권을 받은 셈이다. 유럽 문화의 상대주의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베푼 난잡한 관용정신은 정체성 방침을 어처구니없는 지경에까지 몰고 갔다. 이슬람주의 사상이 소수 이교도 집단의 기관에서 전파되자— 하니프 쿠레이시가 밝혔던 상황이 런던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유럽 전역의 젊은 무슬림이 소싯적부터 급진파로 길러진 것이다. 새로운 반유대주의 사상을 부추길 속셈으로 말이다.
이슬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그들은 시민권을 십분 활용했다. 예컨대, 종교의 자유권을 들먹이면서, 비무슬림의 권리를 배격하고 무슬림을 시민으로 통합하려는 방침을 저해하는 배타적 신분 개념을 신앙학교에서 가르친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 유럽에서 무슬림이 받고 있는 처우를 간과하진 않겠지만, 분명 무슬림을 유럽 사회에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은 유럽인뿐 아니라 무슬림에게도 있다. 유럽의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이슬람교를 유럽형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유럽을 이슬람교화하자는 데 동조하고 있다.
독일 속담에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반유대주의를 확신시킨다는 이유로 이슬람주의자를 비난하다면 그들은 당신을 이슬람혐오증 환자로 몰아세울 것이다. 그러고는 반이슬람주의를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며 무슬림을 상대로 하는 제2의 홀로코스트를 운운할 것이다. 이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증오심에 찬동하는 쪽은 무고한 사람이 되고, 이를 반대하는 쪽은 되레 대량살상을 도모한 꼴이 되고 만다. 바로 타리크 라마단이 이처럼 주객을 전도하여 이중언어를 일삼는다는 비난을 되받아친 인물이
다. 그는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무슬림 유대인이오” 라며 자신의 신분을 강조했다. 알랭 핀키엘크라우트를 비롯한, 프랑스계 유대인과의 마찰을 감안해볼 때 그의 주장은 선전과 다르지 않았다. 라마단은 프랑스의 유대인 지식층의 불신을 샀다. 그들을 반유대주의자들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스퍼드나 미국의 일부 계층에서 그는 유럽에서 이슬람교를 대변하는 인물로 추앙받았다.80 그의 이슬람주의 사상에는 유럽적인 면이 없으나, 일부 유럽계 무슬림은 타리크 라마단과 대립된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