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의 왕도정치와 성선설은 무엇입니까?
맹자孟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철기의 확산으로 인한 생산력의 급격한 발달로 제후들 사이에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벌어지던 전란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맹자는 제후국을 주유하며 각국의 군주들에게 인정仁政을 역설하고 이의 근거로 성선설性善說을 제시했습니다. 맹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한 <중용>의 내용을 계승해 성性을 만물에 내재된 하늘의 작용, 즉 천명天命으로 파악함으로써 만물이 일체라는 만물일체사상萬物一體思想을 확립했습니다. 그는 하늘의 작용이 자연의 조화調和를 연출하므로 하늘의 작용을 성으로 이어받은 인간도 사회에서 절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법가法家나 병가兵家와 같은 당대의 지배적 사조思潮는 인간을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고,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하거나 억압함은 물론,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각국의 군주들은 병가와 법가의 사상가를 재상으로 임용하여 군사력의 강화와 조세의 효율적 수취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민중들은 과도한 부역과 무거운 조세 그리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맹자가 제시한 정치 이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윤리적 처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가 제시한 성선설은 약육강식을 인간 본성의 전부로 여기려는 당대의 지배적 사조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공자가 타계한 지 100년 정도 후에 태어났습니다. 맹자나 정확하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논어>나 <맹자>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로 기원전 372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89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맹자의 성은 맹孟이며 이름은 가軻입니다. 추鄒라는 지방 출신인데 추는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에 속한 지방이라는 설도 있고 독립된 나라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교육에 열심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거나 중도에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들에게 명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짜던 베를 잘랐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옵니다. 이른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와 맹모단직지교 이야기는 전한 시대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에 나오는 것으로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가깝습니다.
맹자는 인의仁義의 덕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당시의 정치적 분열 상태를 극복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왕도정치를 시행하라고 제후들에게 유세하고 다녔습니다. 기원전 320년경에 양梁나라에 가서 혜惠왕에게 왕도에 대해 유세했으나, 일이 년 뒤에 혜왕이 죽은 뒤, 아들인 양襄에게 실망해서 산동에 있는 제齊나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제나라의 선宣왕에게 기대를 걸고 칠팔 년을 머물렀으나, 역시 자신의 이론이 채용되지 않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문공文公의 초대를 받아 등藤으로 갔지만, 역시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자 노魯나라를 거쳐 고향 추로 돌아왔습니다.
맹자는 잔혹한 군주는 왕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폭군은 왕의 자리에서 내쳐버려도 좋다는 폭군 방벌론을 제시함으로써 저항권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는 군주의 덕을 결여한 폭군을 시해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말했습니다. 그는 백성의 위상을 군주보다 상위에 위치시킴으로써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제창하고, 영토를 넓히려는 군주의 욕망보다 백성의 삶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위민爲民 정치의 효시를 열었습니다. 맹자는 왕도王道와 인정仁政을 주장하여, 군주가 인애한 마음으로 온 천하의 백성을 대할 때 천하가 통일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크고 힘센 나라고 작고 힘없는 나라를 쳐부수고 합병하는 겸병전쟁을 반대하고, 백성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여 배고픔과 추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즉 만생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인정을 베푼 뒤에 그들을 교화하고 예의를 가르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관한 맹자의 주장은 인간의 마음이 인의예지仁義禮智 각각의 실마리에 해당하는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측은지심의 구체적인 예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측은지심을 맹자는 선善이라 했습니다. 성선설은 논리적 논변이나 구조를 갖춘 학설이라기보다는 맹자의 신념을 밝힌 것에 가깝습니다. 성선을 주장하는 맹자의 의도는 결국 각 개인에 대해 도덕적 각성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부단하게 수양할 것을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맹자를 가리켜 유학에서 ‘마음의 본래 이치를 밝혀 도덕 수양을 하는 학문’, 즉 심학心學의 사실상의 제창자로 일컫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