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디족Goldi, 야쿠트족Yakut의 선무選巫




중국 헤이룽강黑龍江 주변 지역인 아무르Amur의 골디족은 여느 사람들 중에서 무당을 선택選擇하는 수호영신ayami과 수호영신守護靈神의 명을 받고 수호영신에 의해 무당에게 파견된 보조영신syvén을 뚜렷이 구별해서 생각합니다.
골디족은 무당과 무당의 수호영신의 관계를 복합적인 성적性的 정조情調(단순한 감각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로 설명합니다.
다음은 어느 골디족 무당의 보고입니다.

하루는 병상에 누워있는데 한 영신이 내게 다가왔다. 몸이 날씬했고 키는 반 아르신(71cm)밖에 되지 않았다. 얼굴 모양이나 차림새가 골디족 여자의 얼굴과 차림새에서 같았다. 영신이 내게 말했다.
나는 무당들인 그대 조상들의 아야미ayami(守護靈神)이다. 내가 그대 조상들을 무당으로 세운 것이다. 이제 나는 그대를 가르치고자 한다. 늙은 무당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 여기에는 병자를 고칠 무당이 없다. 그러니 그대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마침 내게는 서방이 없으니 그대를 내 서방으로 삼겠다. 나는 그대에게 보좌영신들assistant spirits을 보내주겠다. 그대는 이 보좌영신들의 시중을 받아 병자들을 고쳐야 한다. 내가 그대에게 병 고치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대를 도우리라. 우리가 먹을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줄 것이다.

이때부터 여영신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내 아내와 그러듯이 여영신과 동침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식은 없다. 여영신은 산 위에 있는 오두막에서 혼자 살지만 자주 거처를 옮긴다. 때로는 노파의 모습을 하고 오고 때로는 이리의 모습을 하고 온다. 날개 달린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올 때도 있다. 날개 달린 호랑이 모습을 하고 오면 나는 호랑이 잔등에 오른다. 그러면 영신은 나를 등에 태우고 다니면서 많은 나라를 구경시켜준다. 나는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만 사는 산도 보았으며, 온통 젊은 남녀들만이 사는 마을도 보았다. 이들은 우리 골디족과 같아 보였다. 말도 골디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호랑이로 둔갑하기도 했다.

이제 내 아야미(수호영신)는 전같이 자주 오지 않는다. 내 아야미는 내게 세 보좌영신補佐靈神을 보내준 바 있다. 쟈르가jarga(표범), 둔토doonto(곰), 암바amba(호랑이)가 바로 이 영신들이다. 이들은 꿈을 통해 내게 왔는데, 요즘은 무업巫業 중에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타난다. 이들 중 하나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아야미가 그로 하여금 내게 복종하게 만든다. 내가 무업을 행할 때 아야미와 이 보좌영신들이 내게 깃들인다. 크든 작든 이들은 연기나 안개처럼 나를 뚫고 들어와 내게 깃들인다. 아야미는 내 안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내 입을 빌려 말한다. 나는 숙두sukdu(제물)를 먹거나 돼지 피(이것은 무당만이 마실 수 있고 속인은 여기에 범접치 못한다)를 마시지만 실제로 이런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야미 혼자서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 무당의 진술에서 성적性的 요소가 중요한 몫을 차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야미가 단순히 무당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서방인 무당에게 몇 년 동안에 걸쳐 비의를 가르칩니다.
접신여행接神旅行을 통해 서방에게 종교적 직능을 가르쳐 무업을 단계적으로 준비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여영신女靈神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고, 성적 관계와 상관없이 주술적呪術的, 종교적宗敎的 무력巫力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샤머니즘의 기본 요소는 성적性的 정조情調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적 정조貞操의 교환交換이 있은 다음에 영신에 의한 무력巫力의 세습적世襲的 전달이 있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골디족 무당이 아야미에게 먹을 것을 바치는 행위로 추는 제의적인 춤을 통해 무당이 자기의 아야미가 바로 그때 자기에게 깃든다고 말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무녀는 입문 시련 중에 성적 느낌을 체험했다고 말합니다.
야쿠트족의 설화說話에는 천상계天上界의 젊은 영신들인 태양, 달, 별들의 자식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어느 여자와 혼인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야쿠트족의 말에 따르면 선남선녀의 모습을 한 영신abassy은 젊은 이성의 육체로 들어가 이 육체를 잠재우고 성적 관계를 맺습니다.
일단 영신에 들린 청년은 더 이상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청년들 중에는 평생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영신이 기혼 남자에게 깃들면 기혼 남자는 성기능을 잃어 아내와 동침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일은 야쿠트족에게 흔한 일이며 무당들에게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야쿠트족에게 선남선녀들과 영신들의 성적 관계는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다른 많은 종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샤머니즘처럼 매우 복잡한 종교적 현상을 일으키는 원초적인 체험을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야쿠트족의 샤머니즘에서 영신들이 맡는 역할은 부차적입니다.
무당이 꿈에 영신을 만나고 이 영신과 성적 관계를 맺으면 그 무당은 이를 매우 기분 좋게 여기고 바로 그날 자신이 환자의 치병治病 굿에 불려 나가게 될 것이며, 그 환자의 병을 고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에 피투성이가 되어 환자의 영혼을 빨아먹는 영신을 보면 무당은 그 환자가 살지 못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환자 쪽에서 사람이 와서 불러도 온갖 핑계를 댈 뿐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꿈을 꾸지 못한 채 주름을 받을 경우, 무당은 정신을 집중시킬 수 없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해 허둥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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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야트족Burjat, 텔레우트족Teleut의 선무



몽고의 부르야트족Burjat 무당의 무업은 조상무祖上巫로부터 무당으로 택함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조상무는 이런 소식을 전한 뒤 이 무당의 영혼을 수습,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 무업을 가르칩니다.
무당과 조상무는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세계 중심의 신들을 잠깐 방문하는데, 이들이 방문하는 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은 춤과 풍요 그리고 부의 신인 테카 샤라 마츠칼라Tekha Shara Matzkala입니다.
테카는 새벽의 신인 솔보니Solboni의 딸 아홉 자매와 함께 삽니다.
이런 신들은 무당들만이 모시는 특이한 신들이고 오직 무당들만이 이들에게 제물을 바칩니다.
젊은 무당 후보자 영혼은 테카의 아홉 아내와 성적 관계를 갖습니다.
무당으로서의 교육과정이 끝나면 무당 후보자의 영혼은 하늘에서 미래의 천상계 아내를 만납니다.
무당 후보자의 영혼은 천상계 아내와도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2, 3년 동안에 걸쳐 이런 접신체험을 두루 마치면 정식 성무의례가 베풀어집니다.
성무의례에는 무당의 천계로의 상승의례도 들어있습니다.
상승의례가 끝나면 사흘간에 걸쳐 다소 음란한 잔치가 베풀어집니다.
이 의례가 있기 전에 무당 후보자는 이웃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성혼예물의 성격을 지닌 선물을 받습니다.
성무의례에 사용되는 나무는 신혼인 이 무당의 집 앞에 세워지는 나무와 그 모양이 비슷한데, 이 나무는 천상계天上界에 속하는 무당의 신처神妻를 상징합니다. 천막 안에 세워지는 이 나무와 마당에 세워지는 무당의 나무를 연결하는 끈은 결혼으로 인한 무당과 신처의 유대를 상징합니다.
부르야트족 무당의 성무의례는 무당과 천상계에 속하는 신처와의 결혼을 나타냅니다.
이 성무의례를 치르는 동안 사람들은 여느 결혼식에서 그러듯이 춤을 추고 마시고 노래를 부릅니다.

부르야트족의 경우 선무과정에 예외 없이 매우 복잡한 접신 체험이 뒤따릅니다.
접신接神을 체험하는 동안 무당 후보자는 심한 고통을 당하고 육신이 토막토막 잘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무당이 성별되는 것은 바로 이 입문적인 죽음과 재생을 통해서입니다.
영신들이나 늙은 스승 무당으로부터 받는 교육은 이 첫 번째 성별에 대한 보충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입문의례에는 무당 후보자의 천상계 여행과 당당한 지상계 귀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당 후보자가 당당하게 지상계로 귀환할 때 베풀어지는 잔치가 결혼식 잔치를 방불케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천상계 신부의 역할은 부차적인 것으로 무당의 보호령과 영감의 원천에 지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텔레우트족Teleut 무당에게는 제7천天에 사는 천상계天上界 신처神妻가 있습니다.
무당은 접신상태에서 천신天神 바이 윌갠Bai Ülgän으로 여행하다 신처를 만나는데, 이 신처는 무당에게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함께 살자고 말합니다.
신처는 무당을 위해 성대한 찬치를 벌이고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젊으신 캄kam이여! 더불어 푸른 밥상 앞에 앉아 ... 사랑하는 내 서방님, 젊으신 캄이여, 휘장의 그늘 뒤에 함께 숨어요.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어요. 우리 함께 즐겨요. 내 서방님, 젊으신 캄이여!

신처는 무당에게 천상계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당은 신처의 말을 믿지 않고 천계상승의 여행을 계속할 것을 고집합니다.
무당은 천상계 여행을 끝내고 지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제14천에는 윌갠의 딸 아홉 자매가 있습니다.
무당에게 빨갛게 단 석탄 덩어리를 삼킨다든가 하는 마력을 베푸는 것은 이 아홉 자매입니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지상으로 내려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수습해 천상계로 올라갑니다.

천상계天上界 신처神妻가 무당에게 음식을 함께 먹자고 꾀는 대목은 저승의 여영신女靈神들이 저희 영역에 이른 지상의 인간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꾀는 유명한 신화의 주제를 상기시킵니다.
지상의 인간이 이 음식을 먹으면 지상에서 있었던 일을 깡그리 잊고 이들 여영신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렇게 지상의 인간을 꾀는 것은 저승의 반여신半女神들이나 요정妖精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계를 여행하는 동안 무당이 신처와 나누는 대화는 길고 복잡한 극적 시나리오를 구성하지만, 이것 자체가 본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처와 나누는 대화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굿거리 도중에 청중의 흥미를 끌기에 적당한 극적 요소에 불과합니다.
본질은 무당의 천계상승 여행에서 윌갠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입니다.
제14천에서 음식을 장만해주고 동침해주는 천상계의 신처가 있다는 사실은 무당이 반신적인 존재로서 어느 정도 신처와 관련을 맺음을 확증해줍니다.
즉 무당은 죽음과 재생을 경험한 영웅이므로 천상계에서 두 번째 아내를 희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몽고의 우리안카이족Uriankhai의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무당인 뵈 칸Bö Khân은 천상계의 처녀를 사랑했습니다.
요정의 신분인 이 처녀는 뵈 칸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땅으로 하여금 뵈 칸과 그의 아내를 삼키게 했습니다.
그런 뒤 이 처녀는 아들을 낳아 자작나무 아래에 버려 자작나무의 수액을 빨아먹으며 자라게 했습니다.
바로 이 아이가 무당이라고 하는 족속 뵈 하 내큰Bö Khâ näkn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요정妖精(사람의 모양을 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마력魔力을 지닌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존재)인 아내가 인간인 지아비를 떠나보낸 뒤에 자식을 낳아 보낸다는 모티프는 세계에 널리 전파되어 있습니다.
지아비가 요정 아내를 찾아 나서는 에피소드는 입문의 시나리오로서 천상계로의 상승이나 지하계로의 하강 등을 반영합니다.
요정이 인간 세상에 있는 지아비의 아내를 질투한다는 것도 민담에서는 종종 발견되는 테마입니다.
정령精靈(사자死者의 혼백魂魄), 요정, 반여신半女神들은 저희 땅에 온 인간 세상 지아비의 아내를 질투하여 이들 사이에서 난 자식을 빼돌리거나 죽이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령과 요정 그리고 반여신은 인간 조건을 초월하여 신적인 영원불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세의 삶이라고 하는 특권을 획득한 영웅의 어머니, 아내 혹은 스승으로 묘사됩니다.
영웅英雄의 모험冒險에서 정령, 요정 혹은 반신적인 여성이 맡는 본질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신화와 전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영웅의 모험에서 영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영웅을 가르치고 도와주며 불사不死나 기적의 약초, 마법의 사과, 젊어지게 만드는 샘 등의 영생의 상징을 손에 넣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바로 이들입니다.
여성의 신화는, 영웅이 불사를 얻고 입문의 시련에서 무사히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것은 늘 여성이라는 점을 보여주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할애합니다.

이런 신화적 모티프가 후기 모권제母權制 신화의 흔적을 내비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권제matriarchy 신화에서 여자(=어머니)의 전지전능에 대한 남성의(영웅의) 반응은 일목요연一目瞭然합니다.
변형된 신화의 경우, 영웅의 모험에서 요정이 맡는 역할이 거의 무시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길가메시Gilgamesh(여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으로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신화의 영웅) 전설의 고대판본에서는 영웅으로부터 직접 불사의 은혜를 요구받던 요정 시두리Siduri가 고전 텍스트에서는 별로 주의를 끌지 못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때로 영웅은, 율리시즈와 요정 칼립소의 경우에서처럼, 반신적인 여성이 지복의 은총과 불사의 은혜까지 함께 하자고 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고 지상의 아내와 동아리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반신적인 여성의 사랑은 영웅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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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수호하는 여영신들



무당과 무당의 천상계天上界 신처神妻의 관계를 설정해두어야 할 곳은 신화적 지평 안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무당을 성별하는 것은 이들 천상계의 신처가 아닙니다.
천상계 신처의 역할役割은 무당의 교육과정에서 그리고 접신체험 과정에서 무당을 돕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무당의 신비스런 체험에 등장하는 천상계 신처와 무당 사이에 성적 감정이 개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접신체험에는 그런 탈선이 있기 마련이고 신비적神秘的인 사랑과 육체적肉體的 사랑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이 변화의 메커니즘에서는 오해받기 쉬울 정도로 익히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무속巫俗의 제의祭儀에 나타나는 에로틱한 요소는 무당과 천상계 신처와의 단순한 관계를 넘어선 것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천상계의 아내 혹은 남편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아야미ayami(守護靈神)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역할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제의적祭儀的 죽음과 재생再生의 입문적 드라마입니다.
재생再生이란 신병神病, 해체解體, 천상계상승天上界上昇, 지하계하강地下界下降 등을 말합니다.
무당이 아야미와 나누는 것으로 믿어지는 성적 관계는 무당이 수행하는 무업巫業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 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꿈속에서 성적으로 영신들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무당들만이 하는 경험이 아니고, 둘째, 특정 무의巫儀에 등장하는 성적 요소는 무당과 아야미와의 관계를 뛰어넘어 공동체의 성적 능력을 고무하기 위한 너무나도 유명한 제의祭儀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시베리아 무당에 대한 아야미의 보호행위保護行爲는 신화에서 영웅을 가르치거나 영웅에게 입문의례入門儀禮를 베푸는 요정妖精이나 반여신半女神들의 역할을 연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보호행위는 분명히 모권제母權制와 관련된 사고체계를 반영합니다.
여성 수호신은 무당에게 접신상태의 천상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조영신들을 보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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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령의 역할



미래 무당이 무당으로 택함을 입었다는 소식은 꿈속에서 혹은 신병神病 중에 반신적半神的인 존재, 조상의 영 혹은 동물의 영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전해지거나 벼락, 치명적인 사건 등의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전해집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만남은 미래 무당과 그의 무업巫業을 결정하는 영신들 사이에 친교親交의 문門을 엽니다.
젊은 무당은 흔히 조상들의 영에 들리고, 그래서 조상의 영을 통해 입문의례를 치릅니다.
이런 식으로 조상영祖上靈이 무당을 미리 선택하는 현상은 극북 및 북아시아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이 최초의 영에 들림(빙령憑靈possession)을 통해 그리고 이어지는 입문의례에서의 성별을 통해 무당은 다른 영신들을 무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영신들의 그릇이 됩니다.
그러니 이때 우리가 말하는 영신은 사자령死者靈 혹은 늙은 무당을 보살피던 다른 영신들입니다.
유명한 야쿠트적의 무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는 멀리 북쪽에 있는 산속을 헤매던 나는 먹을 것을 끓이려고 나뭇더미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나뭇더미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그 나뭇더니 밑에 퉁구스족의 무당이 묻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영신에 들리고 말았다.
그 무당이 굿 중에서 퉁구스어를 내뱉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몽고 등의 영신들도 받아들였으므로 그 영신들의 나라말도 할 수 있습니다.

미래 무당을 선택해 세우는 사자령死者靈의 역할役割은 시베리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중요합니다.
에스키모인, 오스트레일리아인 그리고 그 밖의 종족들의 경우에도 주의呪醫가 되고자 하는 자는 무덤 옆에 눕습니다.
주의呪醫은 주약呪藥, 주구呪具, 주물呪物 등을 가지고 병의 치료治療를 맡아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풍습은 켈트족Celts(서양 고대에 활약한 인도 유럽어족의 일파)에게도 남아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경우 사자령에 의한 입문의례가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보편적입니다.
브라질의 보로로족Bororo 무당은 자사의 영이란 영신에 의해 택함을 입습니다.
브라질의 아피나예족Apinaye의 경우 무당을 성무시키는 것은 친족親族의 영혼靈魂입니다.
친족의 영혼이 무당과 영신들과의 관계를 주선합니다.
그러니까 무당에게 무속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친족이 아니라 영신들인 것입니다.
무당이 화성 같은 행성의 모습을 본다든가 하는 자연발생적인 접신체험을 통해 성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존의 캄파족Campa과 아마후아카족Amahuaca의 경우 무당 후보자는 살아 있는 무당 혹은 죽은 무당으로부터 훈련을 받습니다.
아마존의 우카얄리Ucayali의 코니보족Conibo의 무당 후보자는 영신으로부터 의학적인 지식을 얻습니다.
이 영신과 인연을 맺기 위해 무당 후보자는 담배를 달인 물을 마시고 완전히 밀폐된 방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담배를 피웁니다.
멕시코의 카시나와족Cashinawa 무당 후보자는 숲속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이 후보자를 가르치는 영은 그에게 주술呪術에 필요한 주물呪物을 주고 이 주물을 그의 몸에도 주입시킵니다.
베네수엘라의 야루로족Yaruro 무당은 신들로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무업에 필요한 기술은 다른 무당들에게서 배웁니다.
남아메리카의 아파포쿠바 구아리니족Apapocuva Guarani의 경우 무당 후보자는 먼저 무가巫歌를 배워야 합니다.
후보자는 꿈속에서 죽은 친족들로부터 이 무가를 배웁니다.
무당으로 택함을 입었다는 계시啓示가 어떤 식으로 전해지든 무당의 무업은 그 종족의 전통적인 규범規範을 따릅니다.
무업은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로부터의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인 것입니다.
이런 점은 다른 모든 샤머니즘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시베리아, 알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죽은 무당의 영은 무당 후보자로 하여금 영신들과 인연을 맺게 하거나 후보자를 천상계 여행에 동반하거나 합니다.
무당 후보자는 이 첫 번째 접신체험을 마친 뒤 늙은 무당으로부터 무업을 배웁니다.
아르헨티나의 셀크남족Selk'nam 무당의 경우 자연발생적으로 무당이 되는 젊은이는 기이한 행동을 통해 자신이 무당의 소명을 받았음을 드러냅니다.
잠자면서 노래를 부르는 등 기행을 합니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이런 상태에 이르는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무당 후보자에게 필요한 것은 영신을 보는 일입니다.

꿈속에서 혹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영신을 본다는 것은 그것이 자연발생적自然發生的이든 자의적恣意的이든 무당 후보자가 무당의 소명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징표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자死者의 영을 접촉한다는 것은 본인이 죽은 상태가 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모르는 것이 없으므로 남아메리카의 샤머니즘에서 사자의 영을 만나 그로부터 배움을 얻으려면 무당 후보자가 그런 식으로 죽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남아메리카의 선무選巫와 성무의례聖務儀禮는 제의적祭儀的 죽음과 재생再生의 일반 양식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다른 상태, 즉 극도의 피로, 고문, 단식, 구타 등의 상태를 통해 암시되는 데 그치는 수도 있습니다.
무당 후보자의 의식을 잃게 하는 고문, 약물주입 그리고 매질은 제의적 죽음을 체험하게 하는 한 방편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무당 후보자의 입문의례나 소명의 고지단계에서 하는 역할役割이 무엇이든 사자령死者靈은 후보자가 사자령에 들리든 들리지 않든 임재presence를 통해 소명 자체를 창조하지는 않습니다.
사자령이 하는 일은 천상계天上界와 지하계地下界로의 접신적接神的인 여행을 통해 무당 후보자를 사자들의 존재양식을 가르쳐주는 일에 그칩니다.
이런 사례를 오스트레일리아 요술사妖術師들이 얻는 주력呪力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계시를 내리는 주체가 사자령일 경우에도 순수한 영신은 무당 후보자를 죽인 다음에 재생시키거나 천상계로의 접신여행을 시키거나 하는 입문의례, 즉 독특한 무속적巫俗的 테마를 감당합니다.
이 무속 특유의 테마에서 조상영신은 후보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맡는데, 이런 과정에서는 이 과정의 구조상 후보자가 이 조상영신에 들리는 상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무당 후보자가 무력巫力을 얻는 과정에서 사자령이 맡는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후보자로 하여금 빙령憑靈(영신靈神에 들리는)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보다는 후보자를 도와 사자死者가 되게 하는, 요컨대 후보자를 도와 영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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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을 본다는 것


수마트라의 멘타웨이족Mentaweians의 경우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것이든 후보자가 자의적으로 그런 상태를 야기했든 영신의 모습 자체가 무당의 무력巫力(케레이kerei)과 동일시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타이와 미얀마 서쪽 해상의 안다만족Andaman의 주술사呪術師는 이런 환상幻想을 접하기 위해 밀림으로 들어가 은거합니다.
이런 환상을 꿈속에서 본 주술사의 주력呪力은 영험이 덜한 것으로 대접받습니다.
수마트라의 메낭카바우족Menangkabau의 경우 두쿤dukun(주의呪醫)은 산꼭대기에서 무당 수업을 완성합니다.
두쿤은 여기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기술과 밤중에 사자령死者靈을 보는 기술을 익힙니다.
밤중에 사자령을 보는 것은 스스로 영신이 되는 것, 사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야랄데족Yaralde의 무당은 영신들과 사자령들이 나타날 때 느끼는 입문적인 공포를 생생하게 기술했습니다.
특정 영신靈神의 모습을 보려고 누워있을 때 두려워하면 안 된다. 영신의 모습이 무시무시한 것이기는 하나 두려워하면 안 된다. 이런 영신의 모습은 필설로 나타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영신은 내 마음에, 내 정신력(미위miwi) 안에 있다. 누구든 수련을 쌓으면 나처럼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영신들 중에는 악령惡靈들도 있다. 뱀의 모양을 한 악령도 있고, 사람의 머리를 가진 말 같은 괴물怪物도 있다. 타오르는 불꽃모양을 한 악마의 영신도 있다. 여기에 누워있으면 내 집이 불타는 것이 보인다. 핏물이 용솟음치고 번개가 번뜩이면서 비가 내리고 벼락이 떨어지고 땅이 요동하며 산이 흔들리고 물에는 험한 물결이 일고 가만히 서 있던 나무가 흔들린다. 그러나 두려워하면 안 된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런 광경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누워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런 광경이 보인다. 할 수만 있으면 이런 광경이 비치는 거미집(혹은 거미줄)을 걷어버릴 수도 있다. 사자死者가 걸어오고 그들의 뼈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을 볼 수 있으면 앞으로 무엇이든지 볼 수 있다. 이런 사자들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력이 그만큼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본 자는 막강한 힘을 얻게 된다. 사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의呪醫는 무덤 근처에서 사자령을 볼 수 있고 쉽게 붙잡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붙잡히면 이런 사자령은 그 주의의 보조영신이 됩니다.
주의는 병자를 치료할 때 이 보조영신을 멀리 보내 자기가 치료하고 있는 사람의 길 잃은 영혼을 불러오게 합니다.

멘타웨이족의 경우 영신들에게 납치당함으로써 영신을 보는 사람, 즉 선견자先見者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남선녀善男善女가 병에 걸려 혹은 꿈속에서 혹은 짧은 기간의 정신병精神病을 통해 소명을 받고 선견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의 병이나 꿈은 천계영신이나 밀림영신이 보낸 것입니다.
꿈을 꾸는 당사자는 천상계로 상승하는 상상을 하거나 원숭이 같을 것을 잡으러 밀림密林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꿈을 꾸거나 병에 걸리게 되거나 당사자는 대개 짧은 기간 동안 정신을 잃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렇게 되면 스승 선견자는 젊은 선견자에게 입문의례를 베풉니다.
두 사람은 마법의 약초를 모으러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때 스승 선견자는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호부護符(신불神佛의 힘이 숨어 있다는 부적)의 영신들이여, 모습을 보이소서. 영신을 뵐 수 있도록 이 아이의 육신의 눈을 맑게 하소서.

스승 선견자의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스승 선견자는 또 영신들을 부릅니다.
눈을 맑게 하소서. 하계에 계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뵐 수 있도록 눈을 맑게 하소서.” 
 

이렇게 기원하고 나서 스승 선견자는 제자의 눈을 약초로 문지릅니다.
두 사람은 사흘 밤낮을 마주 앉아서 노래를 부르거나 방울을 울리거나 합니다.
제자의 눈이 맑아지지 않으면 스승이나 제자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약속된 사흘이 지나면 두 사람은 다시 약초를 모으러 밀림으로 들어갑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 제자가 밀림의 영신들을 보게 되면 이 의례는 종료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이레 동안의 의례가 되풀이됩니다. 



무당巫堂의 입문의례에서 영신靈神의 환상幻想은 매우 중요합니다.

꿈속에서든 깨어 있는 상태에서든 영신을 본다는 것은 본 사람이 영적靈的 상태에 들었음을 뜻합니다.
이는 세속적世俗的인 인간조건을 초월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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