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네시아의 입문의례적 해체




남미에서도 영신들의 부름에 대한 자의적恣意的 응소應召나 자발적 입문 수탐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시베리아에서처럼 까닭 모르는 신병神病을 앓는다거나 자기 몸이 해체당한다거나 자기 내부 장기가 새것으로 갈리게 된다거나 하는, 다분히 신비적神秘的인 죽음을 상징하는 의례儀禮가 들어있습니다.

칠레 남부와 아르헨티나 남부의 토착민Mapuche(칠레 인구의 4%))으로 스페인에게 아라우카니족Araucanians(araucanos)으로 알려진 종족의 경우, 무당 후보자가 영신들에 의해 택함을 받았다는 소식은 갑자기 후보자가 앓게 되는 신병神病을 통해 전해집니다.
젊은 여인이 갑자기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가 깨어나 여무女巫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한 어부의 딸은 암초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에 가슴을 몹시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내면에서 목소리가 똑똑하게 “여무가 되어라! 이것이 내 뜻이니라!”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부의 딸은 심한 복통을 느끼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인류의 주主로서 질서와 정의를 주관하는 신 응에네첸Ngenechen이 내린 것이 분명하다고 깨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당의 상징적 죽음의 체험은 후보자의 장시간에 걸친 혼수상태昏睡狀態와 긴 잠을 통해 이뤄집니다.
칠레의 야마나족Yamana 무당 후보자는 제2의, 심지어 제3의 살갗, 즉 새 살갗이 나올 때까지 자기 얼굴을 문지릅니다.
그러나 새 살갗은 입문자 자신에게만 보입니다.
아라우카니족의 무당 성별식에서 의례의 집행자와 후보자는 맨발로 불 위를 걷는데도 화상을 입기는커녕 옷자락에도 불이 붙지 않습니다.
이들은 코를 쥐어뜯거나 눈알을 파내기도 합니다.
의례 집행자는 속인俗人인 청중聽衆에게 입문자의 혀와 눈을 뽑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것과 교환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집행자는 또 막대기로 입문자를 찌르는데, 이 막대기는 입문자의 배로 들어가 등으로 나오지만 여기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문자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북아메리카 샤머니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북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중앙에 거주하는 인디언 마이두족Maidu(마이두는 ‘사람person’이란 뜻)의 입문의례 집행자는 입문자를 독이 있는 약이 가득 든 구덩이에 밀어 넣습니다.
의례가 끝나면 입문자는 맨손으로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돌을 만지는데도 화상을 입지 않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포모족Pomo의 무속적인 망령제Ghost Ceremony 결사結社에 입단하는 후보자는 고문, 죽음, 부활을 체험합니다.
통과의례에서 후보자가 죽은 듯이 누워 있으면 집행자들은 후보자를 짚으로 덮습니다.
인디언들인 유키족Yuki, 후치놈족Huchnom, 해안 미워크족Coast Miwok에게서도 같은 의례가 발견됩니다.
해안 인디언 포모족 무당이 치러야 하는 일련의 입문의례 전 과정에는 절개cutting라는 명칭이 붙어있습니다.
쿡수Kuksu 결사에 가입하려는 강변 파트윈족River Patwin의 무당 후보자는 쿡수 자신이 손수 창이나 화살로 후보자의 배를 꿰뚫는 것으로 믿습니다.
후보자는 이로서 죽었다가 무당에 의해 부활하는 것입니다.
인디언 루이제노족Luiseno의 무당들은 화살로 서로를 찔러 죽입니다.
바다표범, 돌고래, 수달 등의 수렵과 조개류, 초목의 뿌리 등의 채집에 바탕을 두고 생활하는 틀링깃족Tlingit의 경우 무당 후보자가 탈혼망아脫魂忘我에 빠져들면 이 후보자가 영신靈神에 들린 것으로 압니다.
인디언 메노미니족Menomini의 무당 후보자는 입문의례의 집행자가 던진 주물呪物에 맞아죽었다가 소생합니다.
북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 무당 후보자 역시 무속이든 아니든 비밀결사秘密結社에 입문할 때마다 죽음과 부활復活의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까닭 모르게 앓게 되는 신병神病의 형태를 취하든, 무속적인 입문의례를 치르든 이러한 죽음과 부활의 상징체계는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수단Sudan의 남부 누바 산맥Nuba Mountains에 사는 수단 무당의 경우 최초 입문 성별의식은 머리head로 불립니다.
이들의 입문의례에서 집행자들은 영신이 들어설 수 있도록 후보자의 머리를 열어줍니다.
하지만 무속적 접신몽이나 뜻밖의 사건이 무당의 입문의례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이가 서른 살 가까이 되면 무당은 일련의 의미심장한 꿈을 꿉니다.
한 무당은 배가 빨간 백마를 꿈꾸는가 하면, 자기 어깨에 발톱을 박는 표범, 자기를 무는 뱀을 꿈꾸기도 합니다.
무속적 접신몽에서 이런 동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뒤 그는 갑자기 심하게 몸을 떨고는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서는 예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그가 영신들로부터 택함을 입었다는 첫 번째 표징이 됩니다.
그러나 후보자는 쿠주르kujur로 성별되기까지 12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접신몽, 신병 혹은 입문적인 의례의 중심 요소는 늘 동일합니다.
후보자의 몸이 해체되든가 깊은 상처를 입든가 해부를 당하든가 하는 식의 방법은 달라도 육신의 잘림을 통한 후보자의 죽음과 상징적인 재생 체험이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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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무당의 입문의례




암마살리크 에스키모Ammasalik Eskimo의 경우 늙은 무당이 여섯 살에서 여덟 살쯤 되는 아이들 중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현존하는 최고의 권능을 보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재능을 가진 아이를 골라 입문의례의 은혜를 베풉니다.
특별한 천부적天賦的 재능才能이 있는 아이, 몽상적夢想的인 아이, 기질적으로 신경증적神經症的(노이로제)이어서 환상을 자주 대하는 아이라야 이런 후보자로 택함을 입습니다.
늙은 무당은 재목材木을 찾아내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같은 데서 극비리에 아이를 교육시킵니다.
그는 아이에게 숲속이나 호숫가 같은 한적한 곳에서 독거獨居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곳에서 돌 두 개를 문지르며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게 하면서 말합니다.
“그러면 호수나 내륙 빙하에 사는 곰이 나타난 네 살을 먹고 너를 형해形骸(사람의 몸과 뼈)로 만든다. 그러면 너는 죽는다. 그러나 네 살은 다시 차오를 것이고 너는 다시 살아난다. 네가 입었던 옷도 네 몸으로 돌아온다.”

라브라도르 에스키모Labrador Eskimo의 경우 거대한 백곰의 모습으로 나타나 후보자의 살을 먹는 것은 통게르소아크Tongarsoak로 불리는 큰 영신靈神입니다.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Greenland 서부에서는 영신이 나타나면 후보자는 사흘 동안 죽어 있게 됩니다.

후보자 아이가 한동안 의식을 잃은 채로 있어야 하는 이 제의적祭儀的 죽음과 재생의 체험은 접신체험接神體驗입니다.
늙은 무당의 제자인 아이가 형해로 되었다가 다시 살을 받는 사례는 에스키모 입문의례의 특징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후보자는 새로운 스승을 찾는데, 그래야 많은 경험을 쌓고 영신군靈神軍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늙은 무당은 한꺼번에 대여섯 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이때 제자들은 그에게 월사금을 바쳐야 합니다.

다른 에스키모인의 경우 자기 오두막 안에서 의자에 앉아 오래 기다리며 영신들에게 줄기차게 기도한 뒤 신비스러운 빛을 획득합니다.
무당 후보자가 처음 빛을 체험하는 순간 그 자신이 들어앉아 있는 집이 갑자기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맛봅니다.
이때부터 그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투시透視하여 너른 들판을 보는 것처럼 먼 앞길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멀리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먼 나라, 이상한 나라에 있든지 사자死者의 나라에 올라가 있거나 내려가 있거나 간에 이 땅을 떠난 영혼靈魂을 모조리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에스키모 무당의 무업巫業을 가능하게 하는 내부의 빛 체험은 다양한 고급 신비주의神秘主義와 가깝게 닿아있습니다.
고대 인도의 철학서 『우파니샤드Upanisads』(산스크리트어로 우파니샤드는 ‘스승 가까이 다가앉는다’는 뜻)는 ‘내부의 빛antar jyotih’을 아크만atman(자아)의 정수精髓로 규정합니다.
요가 술術에서, 특히 불교의 여러 유파에서 색깔이 다른 여러 가지 빛은 특정 명상에서 성공을 의미합니다.
티베트의 『사자死者의 서書』도 죽어가는 사람의 영이 죽음의 고통을 당할 때나 죽은 직후에 경험하는 듯한 빛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해탈解脫이라든가 윤회재생輪廻再生 같은 인간의 사후운명死後運命은 청정한 빛을 선택하는 부동심不動心에 달려있습니다.
기독교의 신비주의와 신학에서도 내부의 빛이 떠맡는 역할은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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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형해의 관조




에스키모 무당 후보자는 새로운 신비적 기관들과 같은 보조영신補助靈神을 찾으러 떠나기 전 혹독한 입문의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체험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후보자는 자신을 형해形骸로 관조觀照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경지를 향해 길고도 험한 육체적 고난과 정상적 명상瞑想의 단계段階를 거쳐야 합니다.
이에 대해 어느 무당은 말했습니다.
어느 무당도 왜, 어떻게 그런 능력을 얻게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당은 초자연적인 것에서 나온 듯한 자기 두뇌의 힘으로, 마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처럼, 자기 몸에서 살과 피를 분리시키고 오직 뼈만 남게 할 수 있다. 그런 뒤 무당은 자기 뼈마디마다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자기 뼈를 불러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서도 무당은 인간의 언어를 써서는 안 된다. 오로지 스승으로부터 배운 특수하고 신성한 무당의 언어로만 이 뼈마디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죽으면 썩을 덧없는 살과 피에서 해방된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봄으로써, 무당은 무당의 신성한 언어로서 자신을 성별하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태양과 풍상에 가장 오래 견딜 수 있는 육신의 바로 이 부분에 걸고 위대한 무업에 몸 바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보조영신을 접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이 의례의 성패에 좌우하므로 입문의례入門儀禮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한 이 중요한 명상중의 수련은 묘하게도 시베리아 무당의 접신몽接神夢을 상기시킵니다.
차이가 있다면 시베리아 무당의 경우 조상무祖上巫나 신비적인 존재에 의한 수술의 결과로 형해상태가 되지만, 에스키모의 경우 이 수술은 정신적입니다.
에스키모의 경우는 정신집중이라는 개인적인 노력과 금욕생활을 통해 이런 형해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두 지역 모두 이런 신비적인 환상상태의 본질적인 요소가 육탈肉脫된 존재가 되고 육탈된 뼈에 차례를 매기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에스키모 무당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준비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이런 환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시베리아 무당은 신비적인 존재로부터 택함을 입어 수동적으로 이런 해체상태를 목격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례는 형해상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세속적인 인간 조건의 초월, 이로서 해탈의 경지에 드는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수렵민狩獵民과 유목민遊牧民의 정신적 지평에서 뼈는 인간과 짐승의 생명의 원천입니다. 한 인간이 형해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원초적인 삶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에 해당합니다.
즉 갱생, 신비적인 재생의 완성인 것입니다.
불교적 혹은 『탄트라 Tantra』적 중앙아시아의 명상체계瞑想體系 안에서 형해상태로 환원된다는 것은 금욕적이며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닙니다.
『탄트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지식을 넓히다’라는 뜻입니다.
경전은 『베다 Veda』 이후 7세기경에 나왔으며 신화와 전설을 백과사전식으로 담았습니다.
형이상학적 가치란 시간의 덧없음을 미리 내다본다는 것, 실체의 관조를 통해 생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환원시킨다는 것, 이로서 모든 행위가 무상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관조가 기독교의 신비주의에도 생생하게 남아있으며, 이런 사실은 고대인의 최초의 의식적 깨달음으로써 도달한 궁극적인 것이 하나도 변함없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합니다.
내용에 있어 이런 종교적 체험이 다른 종교적 체험과는 다르지만, 관조적 체험 자체는 동일합니다.
속의 경계와 개인적인 존재의 조건을 뛰어넘으려는 의지, 초월적인 전망을 획득하려는 욕망은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자기 전 존재의 영적 재생을 획득하기 위한 원초적인 생명으로의 재몰입을 통해서이든 육신이라는 환상에서의 해탈을 통해서이든 이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둘 다 진실이자 생명인 정신적 실존實存의 원천源泉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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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입문의례와 비밀결사




무당 후보자에게 부활復活이 전제前提된 죽음이 그 모습이야 어떻든 간에 입문적인 본질의 구성이 됩니다.
한 연령층年齡層에서 다른 연령층으로 이행 혹은 어떤 비밀결사secret society에의 가입의식은 늘 후보자의 죽음과 재생이라는 편리한 공식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일련의 의례儀禮를 전제로 합니다.
공통적인 의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초월적超越的인 곳의 상징으로서의 숲속으로의 격리, 죽은 상태와 다름없는 유충적幼蟲的 실존의 체험. 마땅히 사자死者와 비슷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부여되는 무당 후보자에 대한 금제禁制.

2. 망령亡靈의 낯색을 모방하기 위해 무당 후보자의 얼굴이나 몸에 재 혹은 석회성 물질을 바름. 창백한 색조의 장의용 가면 착용.

3. 사원寺院이나 잡신雜神 사당祠堂에서의 상징적인 피장被葬.

4. 지하계地下界로의 상징적 하강下降.

5. 최면催眠에 의한 수면睡眠. 혼수상태昏睡狀態에 빠지게 하는 약물藥物의 복용復用.

6. 매질을 당하거나, 불 가까이 놓인 발 때문에 심한 고통을 당하거나, 공중에 매달리거나,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그 외의 잔혹한 행위를 당하는 등의 견디기 어려운 시련試鍊.

이런 것들은 모두 무당 후보자로 하여금 과거를 잊게 하기 위해서 계획된 의례儀禮와 시련試鍊입니다.
이런 의례와 시련이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을 체험하고 마을로 돌아온 후보자는 기억이 깡그리 없어진 것처럼, 걷고 먹고 입는 것조차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과정을 거친 후보자는 말을 새로 배우고 새 이름으로 행세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 후보자가 숲속에 있는 동안 죽어서 땅에 묻혔거나 괴물 혹은 신의 먹이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후보자가 돌아오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망령이라도 나타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면 미래의 무당이 겪는 입문의 시련은 통과의례라고 하는 큰 절차 그리고 이 비밀결사에 입문하는 의식과 동일합니다.
종족적種族的 입문의례와 비밀결사秘密結社에의 입문의례, 혹은 비밀결사에의 가입의례와 무속적巫俗的 입문의례를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후보자에 의한 능력能力과 탐색探索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의식에는 종족적 입문의례와 무속적 입문의례 두 가지가 공존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모든 남성은 그 종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격을 얻기 위해 입문의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고, 또 주의呪醫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입문의례도 있습니다.
주의呪醫를 위한 입문의례는 후보자에게, 종족적 입문의례에서 후보자에게 부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권능權能을 부여합니다.
이런 사례는 성聖을 다루는 고도로 전문화된 단계를 보여줍니다.
두 가지 입문의례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의를 지망하는 후보자의 내적, 접신체험接神體驗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고려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주의는 소명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소명을 받은 사실은 후보자에게 예사롭지 않은 접신 체험 능력으로 확인됩니다.
이런 점이 샤머니즘을 특징지으며, 종족적 입문의례나 비밀결사 입문의례의 유형과 샤머니즘의 입문의례의 구별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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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기원에 관한 시베리아 신화



미래의 무당으로 선택되는 가장 흔한 양식 중 하나는 신적神的 혹은 반신적半神的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신적, 반신적 존재는 꿈이나 신병神病 혹은 그 밖의 상황을 통해 미래의 무당에게 나타나 택함을 입었음을 고지하고 새로운 삶의 규범을 좇을 것을 강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무祖上巫의 영혼이 미래의 무당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무당에게 이런 것을 고지하려면 조상무들 역시 아득한 옛날에 신적인 존재로부터 택함을 입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부르야트족Burjat의 전승에 따르면 무당들은 천상계天上界의 영신靈神들로부터 직접 무당의 신권神權(Utcha)을 받았습니다.
미래의 무당이 조상들로부터 이런 권능權能을 받는 것은 우리시대에 들어와서부터입니다.

오늘날의 무당이 쇠퇴衰退의 길을 걷는 것은 최초의 무당이 교만해서 신과 겨루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부르야트족의 전승에 따르면 최초의 무당 카라 기르갠Khara Gyrgän이 자신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말하자 신이 이를 시험했습니다.
신은 소녀의 영혼을 병에다 넣고 봉했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신은 소녀의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병의 아가리를 막고 있었습니다.
무당은 자기의 무고巫鼓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가 소녀의 영혼을 발견하고는 이를 풀어주기 위해 스스로 거미로 변신하여 신의 얼굴을 물었습니다.
신이 기겁을 하고 병의 주둥이에서 손가락을 떼는 순간 소녀의 영혼은 병속에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진노한 신은 카라 기르갠의 권능 중 일부를 빼앗아버렸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무당의 마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부르야트족의 전승에 따르면 태초太初에 신들(텡그리tengri)은 서쪽에만 있었고 악령들은 동쪽에 있었습니다.
신들은 인간을 창조했는데, 악령들이 온 땅에 질병과 죽음을 퍼뜨릴 때까지 인간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끝나고 악령의 행패가 극심해지자 신들은 무당을 인간에게 보내 질병과 죽음에 맞서 싸우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은 독수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독수리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새에 지나지 않는 독수리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는 신들에게로 돌아가 자기에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든지, 인간에게 부르야트족 무당을 보내주든지 요구했습니다.
신들은 독수리를 다시 인간의 땅으로 내려 보내면서 지상에서 처음 만나는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를 무당으로 세우라고 명했습니다.
지상으로 돌아온 독수리는 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독수리는 이 여인과 교접했으며 얼마 후 여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이 최초의 무당이 되었습니다.
독수리와 교접한 뒤 여인은 영신들을 만나 스스로 무녀巫女가 되었다는 전승傳承도 있습니다.

다른 전설에서 독수리의 출현을 무당이 소명 받았다는 징표로 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부르야트족의 한 소녀는 발톱으로 양을 채어 날아가는 독수리를 보고 자기가 소명 받은 것을 알고 무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무녀의 경우 성무과정은 7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무녀는 죽어서 영신 혹은 우상sayan이 되어 지금도 악령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러시아의 투르칸스크Turukhansk의 야쿠트족Yakut(언어는 알타이어족의 하나인 터키어에 속하며, 야쿠티아Yakutia의 주종족)도 이와 비슷하게 독수리가 최초의 무당을 창조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독수리 역시 지상적인 존재, 즉 ‘창조자 Ai’ 혹은 ‘빛의 창조자 Ai Tiyon’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빛의 창조자’의 자식들은 세계수世界樹의 가지에 앉아 있는 조령신bird spirit으로 표현됩니다.
가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쌍두의 독수리인 토욘 쾨퇴트Toyon Kötör(‘새들의 주主’란 뜻)는 아이 토욘(빛의 창조자) 자신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시베리아의 여러 종족과 마찬가지로 야쿠트족 또한 독수리와 성수聖樹, 특히 자작나무와의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아이 토욘은 무당을 창조하면서 천상에 있는 자기 삶터에다 가지가 여덟인 자작나무를 한 그루 심고는 창조자의 자식들이 깃들일 둥지도 바로 이 나뭇가지 위에 두었습니다.
아이 토욘은 이 자작나무를 심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땅 위에도 세 그루의 나무를 더 심었습니다.
무당에게는 자기 삶을 의지하는 나무가 있는데, 무당은 이 나무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그런 나무를 상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입문의례적인 꿈을 통해서 무당이 꼭대기에 세계의 주가 있는 우주수宇宙樹로 갔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합니다.
절대자는 독수리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미래 무당의 영혼인 우주수의 가지에 깃들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기할 점은 무당이 택함을 얻는 과정에서 조상영신祖上靈神들이 맡는 역할役割은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조상들은 독수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절대자에 의해 직접 창조된 신화적인 최초의 무당의 자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당의 소명이 조상영신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사실은 신화시대 이래의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소식이 조상영신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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