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불원천 하불우인(上不怨天 下不尤人)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말고, 아래로 사람을 허물치 말라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군자의 도는 광대하면서도 은미(隱微)하다.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우매함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지극한 데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역시 알지 못할 바가 있다.
필부필부의 불초함으로도 넉넉히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또한 능히 해내지 못할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그토록 위대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불만스러운 바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그 크기로 말하면 천하도 이를 쪼개어낼 수 없다.
시에 이르기를, ‘솔개는 하늘을 비상하는데, 고기는 못에서 뛰어오르는구나’라고 했는데, 이것은 도가 위와 아래로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
군자의 도는 필부필부에서부터 발단되지만 그 지극한 데 이르러서는 천지에 나타난다.
●『중용』, 「도론(道論)」편

도의 광대함은 천하도 실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작기로 말하자면 천하도 이를 쪼갤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이는 도가 우주 전체를 운행하는 질서에서 원자(原子), 전자(電子)의 세밀한 데까지 적용되는 법칙을 말한 것이다.
또 “솔개는 하늘을 비상하는데, 고기는 못에서 뛰논다”는 말은 도의 체용(體用)이 상하로 드러나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말한다.
이는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도를 행하고, 백성은 백성으로서의 도를 행하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도리를 행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행하여 질서를 지키고 각자 자기 위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충서(忠恕)는 도에서 멀지 않나니 나에게 베풀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라.

군자의 도 넷 가운데 구(丘, 공자의 이름)는 한 가지도 잘하지 못한다.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아버지 섬김을 잘하지 못하고,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 섬김을 잘하지 못한다.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형 섬김을 잘하지 못하고, 벗들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먼저 베풀어 주기를 잘하지 못한다.
●『중용』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겸허함을 고백한 것인데, 항상 나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다하지 못하고 뉘우칠 때 불초한 우리가 어찌 따를 수 있으랴!
첫째, 나는 자식들에게 본이 되도록 부모를 잘 섬겼는가?
둘째, 동포들에게 본이 되도록 국가와 사회에 공헌을 했는가?
셋째,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서 화목에 힘을 썼는가?
넷째, 친구에게 신의를 잘 지켰는가?
이러한 것은 누구에게나 평생 좌우명이 될 수 있는 훌륭한 교훈이다.

군자는 자신의 처지에 마땅하게 처신할 뿐이요, 처지 밖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에 마땅하게 처신하고, 비천에 처해서는 비천에 마땅하게 처신하고, 오랑캐에 처해서는 오랑캐에 마땅하게 처신하며, 환란에 처해서는 환란에 마땅하게 처신하나니 군자에겐 들어가 자득하지 못할 데가 없다.
●『중용』, 「도론」편

군자는 부귀, 비천, 오랑캐, 환란에 언제 어떻게 처하더라도 그에 맞게 처신하는 중용과, 그 같은 외적인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달관한 줄 아는 처세관을 지닌다.

윗자리에 있어서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서 윗사람을 잡아당기지(아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바로잡고 남에게 구하지 아니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없나니,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며 아래로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탄에 처하여 명(命)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에 처하여 다행을 바란다.
공자는 ‘활쏘기는 군자의 태도와 유사한 점이 있다.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고 했다.
●『중용』, 「도론」편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윗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 것이 중용의 도이다.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
공자는 군자의 도는 활쏘기와 같다는 좋은 예를 들었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면 자신을 반성하여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는 듯, 형제 간에 뜻이 맞아 즐겁고 즐거우나니
너희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 너희 처자를 즐겁게 하라.

공자는 『시경』에 있는 이 시를 읊고 “부모는 참으로 안락하시겠다”고 했다.
맹자의 다음 말도 중용에서 나온 사상이다.

나의 부모 섬기는 마음을 남의 부모에게 미치게 하고, 나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남의 자식에게 미치게 하면 천하를 다스림은 손바닥 뒤집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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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자(田成子)와 도둑
좀도둑은 잡히고 큰 도둑은 제후가 된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장자(莊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면서 인간에게는 도덕만이 있을 뿐, 인의(仁義)라는 인위적인 윤리는 악인에게 악용되기 쉬운 것이라고 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 인위적인 법규와 도덕으로 백성의 천성을 무너뜨리고 훌륭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토기장이나 목수가 천성을 손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인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이 본능을 잃지 않으면 음악과 예식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장자는 「거협」편(외편 제10편)에서 소위 인의를 엄격히 시행한다 하더라도 악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인들의 도구로 이용되어 인의는 세상에 더욱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통렬히 비난했다.

도둑이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재물을 훔치는 것을 막으려면 노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로 잠그면 된다.
이것이 세상에서 지(知)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강도는 돈 상자와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도망친다.
그 도둑은 동여맨 노끈이 끊어질까 염려할 뿐이다.
그러니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은 도둑이 들고 가기 좋게 한 것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도둑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옛날에 제(齊)나라는 성인이 마련한 법규대로 잘 다스려서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런데 전성자(田成子)라는 자가 왕을 죽이고 왕국을 훔쳤다.
그는 왕국만 도둑질한 것이 아니라 성지(聖智)의 법과 제도까지 도둑질했다.
그래서 전성자는 도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몸은 요순 때같이 편하게 지내며 12대를 누렸는데 소국은 감히 비방도 못하고 대국은 감히 토벌도 못했다.
이는 제나라가 성인의 지로 만든 제도를 도둑질하여 도둑의 몸을 지킨 것이 아닌가?
나는 묻고자 한다.
세상에서 소위 지식이란 것은 큰 도둑을 위해 쌓아둔 것이 아닌가?

도둑의 부하가 도둑에게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도둑은 “무엇에는 도가 없겠는가. 방 속에 감춰져 있는 물건을 알아맞히는 것은 성(聖)이요,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勇氣)요, 뒤에 나오는 것은 의리(義理)이다. 성공을 예상함은 지(知)요, 장물을 골고루 나누는 것은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아직 없었다”고 답했다.

이러한 것들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선인(善人)도 성인(聖人)을 얻지 않고서는 설 수 없고, 악인도 성인의 도를 얻지 않고서는 도둑질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성인의 도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천하에 선인이 적고, 악인이 많은 것을 보면, 성인이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적고 천하를 해롭게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과 큰 도둑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아니나 성인이 나오지 않았다면 큰 도둑이 성지(聖智)를 훔쳐서 악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인이 나타나고 큰 도둑이 생겨나 성인을 뒤집어엎고 큰 도둑을 놓아주면 천하의 질서는 잡힐 것이다.
시냇물이 마르면 골짜기도 마를 것이다.
성인이 죽을 때는 큰 도둑도 모이지 않을 것이니 천하는 평화스러울 것이다.
이것은 장자가 역설적으로 인의를 논박한 것이다.

되와 말로 곡식을 잰다면 되와 말까지 함께 도둑맞고, 물건을 저울에 달아 판다면 저울까지 도둑맞는다.
도의상 인의를 베푼다면 인의까지 도둑맞는다.
작은 물건을 도둑질하면 잡혀 가고, 왕국을 도둑질하면 제후가 되어 그 나라에는 인의가 남는다.
그러면 사실 그들은 인의의 도둑이며 성인의 지를 도둑질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큰 도둑의 방식을 따르는 이는 제위에 오른다.

인의와 아울러 되와 말, 저울, 도장을 도둑질하는 자는 현상금을 내걸어도 잡을 수 없고 형벌의 위험도 겁내지 않는다.
옛말에 생선은 물속에 놓아두고 날카로운 무기는 보이지 않게 감추어야 한다고 했듯이 성인은 날카로운 무기를 세상에 보이면 안 된다.
이것은 공맹(孔孟)의 인의사상에서 나오는 위선과 교만에 대한 도전이다.
장자의 주장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도덕만 지키면 되지 인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공자와 노자가 만났을 때, 노자는 공자에게 “당신의 위선과 교만을 버리라”고 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동양에는 유교사상과 노장사상이 양극단에 있다.
『중용』의 저자인 자사는 중용사상은 양극단을 잘 조화시키는 지도사상이라고 했다.
장자는 인의를 부정하기보다는 악인들이 인의를 도용하여 악행에 이용하는 것을 통박하고 인의의 남용에 대한 부조리를 풍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맹자가 공자를 설명한 사람이라면, 장자는 노자를 설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거협」에 나오는 이야기는 가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장이 훌륭하며 진지하게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학설을 공격했으므로 당시의 석학들도 공격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웠다.

초(楚)나라 위 왕은 장자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예물로 후하게 대우하고 재상으로 삼겠다는 뜻을 전했다.
장자는 웃으면서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이라면 돈으로는 큰돈이며, 재상이라면 높은 벼슬이다.
그대는 아마 제사에 바치는 희생제물인 소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수년 동안 잘 먹고 잘 길러지지만 태묘(太廟)에 바치는 제물로 희생된다.
그때가 되어 하찮은 돼지를 부러워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나를 더럽히려 했으면 나는 차라리 더러운 가운데 함부로 놀아서 스스로 쾌락으로 삼지 않았겠는가?
나라의 주권자에게는 구속되고 싶지 않다.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신의 뜻을 살려 스스로 쾌적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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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3강령 8조목
동양의 교육헌장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교육의 목적은 완전한 선에 이르게 하는 데 있다.
『대학(大學)』의 첫머리에는 “큰 배움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친애하는 데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고 나와 있다.
대학의 3강령 8조목은 동양의 교육헌장이었다.

3강령(三綱領)은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어버이같이 사랑하고, 지극한 선에 머문다는 세 가지 강령이다.
주자(朱子)는 친민(親民)의 친(親)자를 새롭다는 의미로 “백성을 새롭게 하라”고 가르쳤다.
『씨알의 소리』에서 함석헌은 그의 스승 유영모 선생으로부터 “백성을 어버이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8조목(八條目)은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바로잡았고, 그 집안을 바로잡으려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고, 그 몸을 닦으려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였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자는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앎에 이르게 했나니, 앎에 이르게 함은 사물을 구명(究明)함에 있느니라”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8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정심(正心), 성의(誠意),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명명덕(明明德)에 대해서는 『중용』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친민(親民)에 대해서는 『맹자』에 설명되어 있고, 『논어』에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이 강조되어 있다.
이와 같이 교육의 목적이 다만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선에 이르는 인격의 완성에 있다고 가르쳤다.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안회라는 사람이 매우 학문을 좋아하며 함부로 노여움을 옮기지 아니하며 허물을 깨달으매 이를 되풀이 아니하더니 불행하게도 단명하여 죽은지라. 이제는 이 세상에 그와 같이 학문을 좋아하는 자 있음을 듣지 못하였소이다”라고 답하였다. ●『논어』, 「옹야(雍夜)」편

공자는 착하고 덕행을 좋아하던 제자 안회를 학문을 사랑하는 자라고 극구 칭찬했다.
『논어』의 「공치장(公冶長)」편을 보면 원래 학문은 “민첩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敏而好學 不恥下問]”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학문관은 소크라테스의 애지(愛知)정신에 가깝다.
논어에 호학(好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로 학문을 사랑한다는 말이요, 덕을 행한다는 것이며,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학문은 곧 선행이요 덕행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학문은 종교인 동시에 철학이었던 것이다.

어진 사람을 어질게 대하며 색을 경시하고, 부모를 섬기되 능히 힘을 다해야 할 것이며, 임금을 섬기되 몸을 바쳐서 하고, 벗과 사귀는 데 말에 신의가 있으면 비록 배움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학문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리라.
●『논어』, 「학이(學而)」편

학문의 목적은 성현의 말씀을 어질게 대하고 색을 경시하며, 부모를 섬기되 지성으로 하며, 임금을 섬기되 몸을 바쳐서 하고, 벗과의 언행에 신의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모든 교육의 목적은 인격의 완성에 있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집에 들면 부모에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사람을 공경하되 믿음으로 하고 모든 민중을 사랑하되 친애하고 사랑으로 할 것이니 행하고 남음이 있으면 곧 글을 배울지니라.

子 弟1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논어』, 「학이(學而)」편

주> 1 제(弟)는 아우라는 의미 외에 ‘공경 제(悌)’의 약자로 쓰인다.
이는 집에서는 부모에 효도하고 나가서는 모든 사람들의 아우가 되어 형을 공경하듯 겸손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를 말한 것으로 동양의 효제(孝悌) 사상이다.
효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람을 공경하라”는 것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에 필적하는 사상이다.
동양에서는 부모를 하나님과 같이 섬겼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져오는 전쟁무기로 등장하고 있고, 교육은 도의교육이 사라지고 오로지 지식전달의 방법으로 기업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옛 성현들이 가르치신 학문의 근본정신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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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탁하불정(上濁下不淨)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정(政)은 정(正)이니이다. 그대가 솔선하여 몸을 바르게 하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않으리요. ●『논어』, 「안연(顔淵)」편

‘바르게 한다’는 말은 정의를 구현하여 도의정치(道義政治)를 한다는 말이며, 불의를 물리치고 백성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뜻이다.
위정자가 솔선하여 정의로 다스리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면 국민은 감화되어 저절로 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위정자가 바르게 하는데 누가 감히 바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옛날에 어떤 재상이 아들을 두었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날마다 친구와 어울려 술집에만 다녔다.
꾸짖어도 아니 듣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조용히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글을 써서 아들에게 전하고 관가에 출근을 했다.

학생의 직분이 글 읽는 데 있거늘
낮에는 술집에 가고 밤에는 청루에 노니
이 어찌 학생의 직분이리요.學生之職 在於讀書 晝酒舍 夜靑樓 是豈 學生之職耶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와 보니 아들의 회답이 있었다.

재상의 직분이 음양을 바르게 하고
사시를 고르게 하는 데 있거늘
작년에는 비가 많아 홍수가 나고,
금년에는 가물어 흉년이 드니
이 어찌 재상의 직분이리까

宰相之職 理陰陽 順四時1 昨年雨 今年旱 是豈 宰相之職耶

주> 1 이음양 순사시(理陰陽 順四時)는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따르게 한다는 말로 이상적인 정치를 뜻한다.
작년에는 홍수가 나고 금년에는 가물다는 말로 정치가 고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부친의 부패한 정치를 규탄하는 글이었다.
공부는 게을리 하고 술만 마시는 탕아인 줄 알았던 아들이 이처럼 정의감에 불타는 현명한 아들임을 알게 된 재상은 뉘우치고 정치를 바로잡고 도의정치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적절한 교훈이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 위정자들은 학생들의 시위를 폭력으로 막지만 말고 양심의 외침을 받아들여 도의정치를 구현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사명임을 알아야 한다.

법령으로 지도하고 형벌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은 법망을 뚫고 형을 피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도덕으로 지도하고 예법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은 부정을 수치로 알고 정의를 찾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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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
옛 학문을 배워서 새로운 지식을 알라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이사야 42장 3절)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리 풍우가 몰아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요즘 사람들이 동양고전을 외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는 동양고전을 더듬어본다.
폭군 진시황은 육국(六國)을 병탄(倂呑)하고 천하를 호령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는 선비들, 불의에 저항하는 만 권의 시서(詩書)가 걸림돌이 되었다.
이 지성인들과 만 권의 시서는 당시의 암흑세계를 비추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
그는 5백여 명의 유생을 생매장하고 모든 서적을 모아 불태워버렸다.
이것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한다.
그러나 이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박사 복생(伏生)이 몰래 한 벌씩을 벽 사이에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흩어졌던 서적들이 다시 모아졌다.

동양문학이 흔히 귀족문학이요, 어용문학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깊이 상고해보면 동양문학은 귀족적이기보다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은유적인 진리와 불의에 대한 풍자적인 저항의식을 숨기고 있어서 우매하고 억눌린 민중 속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시경』에는 풍(風), 아(雅), 송(頌) 세 종류가 있는데 풍에 대해서는 서문에 “위정자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이로써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아와 송은 군주와 귀족을 찬양하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선정(善政)을 찬양하고 악정(惡政)을 경계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풍은 황하를 중심으로 한 각 지방의 민요인데 이를 풍(風), 즉 바람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누가 지었는지도,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가르치는 이도 없이 널리널리 바람과 같이 퍼져가는 노래, 그리고 평범한 듯한 노래 속에 민중의 모든 생활과 사랑과 아픔과 한숨과 눈물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것을 풍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매우 슬기로운 일이다.

양적으로 볼 때 풍은 전체 시 300편 중 160편으로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적 가치 면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가>, <심청전>, <춘향전> 등은 저자 없이 민중의 입으로 전해 내려온 민중문학이라는 점에서 좋은 비교가 된다.

공자가 그의 정치이상을 수행해줄 명군(明君)을 찾아서 열국을 순회한 것처럼, 희랍의 플라톤도 현명한 왕후를 찾아서 시실리의 군주 디오니소스의 고문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비교가 된다.
하지만 플라톤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시민을 위한 귀족계급의 민주주의여서 그의 관념적인 사랑은 노예에게 자유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공자의 군자사상은 귀족적이면서도 실천적이어서 선(善)은 천민의 자녀에게도 인(仁)을 베풀 수 있었다.
그는 빈부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인도적인 입장에서 파악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근심이 그치지 않음을 슬퍼했다.

시인 괴테도 고전주의자였다.
그는 “고전을 건강이라고 부르고 낭만을 병적이라고 하자”라고 했다. 우리는 항상 고전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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