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자(田成子)와 도둑
좀도둑은 잡히고 큰 도둑은 제후가 된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장자(莊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면서 인간에게는 도덕만이 있을 뿐, 인의(仁義)라는 인위적인 윤리는 악인에게 악용되기 쉬운 것이라고 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 인위적인 법규와 도덕으로 백성의 천성을 무너뜨리고 훌륭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토기장이나 목수가 천성을 손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인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이 본능을 잃지 않으면 음악과 예식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장자는 「거협」편(외편 제10편)에서 소위 인의를 엄격히 시행한다 하더라도 악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인들의 도구로 이용되어 인의는 세상에 더욱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통렬히 비난했다.
도둑이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재물을 훔치는 것을 막으려면 노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로 잠그면 된다.
이것이 세상에서 지(知)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강도는 돈 상자와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도망친다.
그 도둑은 동여맨 노끈이 끊어질까 염려할 뿐이다.
그러니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은 도둑이 들고 가기 좋게 한 것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도둑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옛날에 제(齊)나라는 성인이 마련한 법규대로 잘 다스려서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런데 전성자(田成子)라는 자가 왕을 죽이고 왕국을 훔쳤다.
그는 왕국만 도둑질한 것이 아니라 성지(聖智)의 법과 제도까지 도둑질했다.
그래서 전성자는 도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몸은 요순 때같이 편하게 지내며 12대를 누렸는데 소국은 감히 비방도 못하고 대국은 감히 토벌도 못했다.
이는 제나라가 성인의 지로 만든 제도를 도둑질하여 도둑의 몸을 지킨 것이 아닌가?
나는 묻고자 한다.
세상에서 소위 지식이란 것은 큰 도둑을 위해 쌓아둔 것이 아닌가?
도둑의 부하가 도둑에게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도둑은 “무엇에는 도가 없겠는가. 방 속에 감춰져 있는 물건을 알아맞히는 것은 성(聖)이요,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勇氣)요, 뒤에 나오는 것은 의리(義理)이다. 성공을 예상함은 지(知)요, 장물을 골고루 나누는 것은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아직 없었다”고 답했다.
이러한 것들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선인(善人)도 성인(聖人)을 얻지 않고서는 설 수 없고, 악인도 성인의 도를 얻지 않고서는 도둑질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성인의 도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천하에 선인이 적고, 악인이 많은 것을 보면, 성인이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적고 천하를 해롭게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과 큰 도둑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아니나 성인이 나오지 않았다면 큰 도둑이 성지(聖智)를 훔쳐서 악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인이 나타나고 큰 도둑이 생겨나 성인을 뒤집어엎고 큰 도둑을 놓아주면 천하의 질서는 잡힐 것이다.
시냇물이 마르면 골짜기도 마를 것이다.
성인이 죽을 때는 큰 도둑도 모이지 않을 것이니 천하는 평화스러울 것이다.
이것은 장자가 역설적으로 인의를 논박한 것이다.
되와 말로 곡식을 잰다면 되와 말까지 함께 도둑맞고, 물건을 저울에 달아 판다면 저울까지 도둑맞는다.
도의상 인의를 베푼다면 인의까지 도둑맞는다.
작은 물건을 도둑질하면 잡혀 가고, 왕국을 도둑질하면 제후가 되어 그 나라에는 인의가 남는다.
그러면 사실 그들은 인의의 도둑이며 성인의 지를 도둑질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큰 도둑의 방식을 따르는 이는 제위에 오른다.
인의와 아울러 되와 말, 저울, 도장을 도둑질하는 자는 현상금을 내걸어도 잡을 수 없고 형벌의 위험도 겁내지 않는다.
옛말에 생선은 물속에 놓아두고 날카로운 무기는 보이지 않게 감추어야 한다고 했듯이 성인은 날카로운 무기를 세상에 보이면 안 된다.
이것은 공맹(孔孟)의 인의사상에서 나오는 위선과 교만에 대한 도전이다.
장자의 주장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도덕만 지키면 되지 인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공자와 노자가 만났을 때, 노자는 공자에게 “당신의 위선과 교만을 버리라”고 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동양에는 유교사상과 노장사상이 양극단에 있다.
『중용』의 저자인 자사는 중용사상은 양극단을 잘 조화시키는 지도사상이라고 했다.
장자는 인의를 부정하기보다는 악인들이 인의를 도용하여 악행에 이용하는 것을 통박하고 인의의 남용에 대한 부조리를 풍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맹자가 공자를 설명한 사람이라면, 장자는 노자를 설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거협」에 나오는 이야기는 가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장이 훌륭하며 진지하게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학설을 공격했으므로 당시의 석학들도 공격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웠다.
초(楚)나라 위 왕은 장자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예물로 후하게 대우하고 재상으로 삼겠다는 뜻을 전했다.
장자는 웃으면서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이라면 돈으로는 큰돈이며, 재상이라면 높은 벼슬이다.
그대는 아마 제사에 바치는 희생제물인 소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수년 동안 잘 먹고 잘 길러지지만 태묘(太廟)에 바치는 제물로 희생된다.
그때가 되어 하찮은 돼지를 부러워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나를 더럽히려 했으면 나는 차라리 더러운 가운데 함부로 놀아서 스스로 쾌락으로 삼지 않았겠는가?
나라의 주권자에게는 구속되고 싶지 않다.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신의 뜻을 살려 스스로 쾌적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