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
옛 학문을 배워서 새로운 지식을 알라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이사야 42장 3절)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리 풍우가 몰아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요즘 사람들이 동양고전을 외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는 동양고전을 더듬어본다.
폭군 진시황은 육국(六國)을 병탄(倂呑)하고 천하를 호령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는 선비들, 불의에 저항하는 만 권의 시서(詩書)가 걸림돌이 되었다.
이 지성인들과 만 권의 시서는 당시의 암흑세계를 비추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
그는 5백여 명의 유생을 생매장하고 모든 서적을 모아 불태워버렸다.
이것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한다.
그러나 이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박사 복생(伏生)이 몰래 한 벌씩을 벽 사이에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흩어졌던 서적들이 다시 모아졌다.
동양문학이 흔히 귀족문학이요, 어용문학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깊이 상고해보면 동양문학은 귀족적이기보다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은유적인 진리와 불의에 대한 풍자적인 저항의식을 숨기고 있어서 우매하고 억눌린 민중 속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시경』에는 풍(風), 아(雅), 송(頌) 세 종류가 있는데 풍에 대해서는 서문에 “위정자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이로써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아와 송은 군주와 귀족을 찬양하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선정(善政)을 찬양하고 악정(惡政)을 경계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풍은 황하를 중심으로 한 각 지방의 민요인데 이를 풍(風), 즉 바람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누가 지었는지도,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가르치는 이도 없이 널리널리 바람과 같이 퍼져가는 노래, 그리고 평범한 듯한 노래 속에 민중의 모든 생활과 사랑과 아픔과 한숨과 눈물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것을 풍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매우 슬기로운 일이다.
양적으로 볼 때 풍은 전체 시 300편 중 160편으로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적 가치 면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가>, <심청전>, <춘향전> 등은 저자 없이 민중의 입으로 전해 내려온 민중문학이라는 점에서 좋은 비교가 된다.
공자가 그의 정치이상을 수행해줄 명군(明君)을 찾아서 열국을 순회한 것처럼, 희랍의 플라톤도 현명한 왕후를 찾아서 시실리의 군주 디오니소스의 고문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비교가 된다.
하지만 플라톤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시민을 위한 귀족계급의 민주주의여서 그의 관념적인 사랑은 노예에게 자유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공자의 군자사상은 귀족적이면서도 실천적이어서 선(善)은 천민의 자녀에게도 인(仁)을 베풀 수 있었다.
그는 빈부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인도적인 입장에서 파악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근심이 그치지 않음을 슬퍼했다.
시인 괴테도 고전주의자였다.
그는 “고전을 건강이라고 부르고 낭만을 병적이라고 하자”라고 했다. 우리는 항상 고전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