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의 극치 중용(中庸)
하늘과 인간을 하나로 조화시킨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정명도(程明道)는 “중(中)의 이치는 지극하다.
음(陰)으로도 생성되지 않고, 양(陽)으로도 생성되지 않는다.
치우치면 금수가 되고, 중이면 사람이 된다.
중(中)은 치우치지 않음이요, 용(庸)은 바뀌지 않음이다.
그런즉 중으로는 그 의미를 다하지 못함으로 중용(中庸)이라고 했다”라고 했다.

중용사상의 기원은 요순시대로 올라간다.
『서경』에는 요가 순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윤집기중(允執其中)하라”, 즉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 했고 순이 우에게 선양할 때에도 같은 말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순의 중용을 높이 평가했다.

순은 대지(大智)였다.
순은 묻기를 좋아했고 천한 말에도 살피기를 좋아했다.
나쁜 점은 숨겨주고 좋은 점은 선양해 주었으며, 양극단을 파악하여 그 중을 백성에게 적용했으니 순이 순된 소이(所以)인저! ●『중용』

순은 농부, 도공, 어부의 경력을 밟아 제위에 올랐다.
공자는 그가 민심을 잘 파악해서 정치를 했으며 나쁜 점은 숨겨주고 좋은 점은 선양해주어 중용의 도를 지켰다고 칭찬했다.
이 중용사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이며 인본주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이천(程伊川)은 “중(中)은 천하의 정도(正道)요, 용(庸)은 천하의 정리(定理)다”라고 했다.

공자는 『중용』에서 “안회의 사람됨은 중용을 택하여 한가지 선을 얻으면 받들어 가슴속에 지니고 잃지 않는다”라고 했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의 학문과 덕행은 그의 스승에 접근했다.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우리 마을에 직궁(直窮)이라는 자가 있어 마음이 바르고 곧아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로서 스스로 고발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공자는 “우리 고향의 정직한 자는 그와 같지 아니하니,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아비를 위해 숨깁니다. 진실로 정직이란 그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했다.
자기 아버지를 관가에 고발하는 것은 인류에 떳떳하지 못함이요, 인도에 어긋나며, 자연을 역행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중용의 도에도 어긋난다. 중용의 도는 음과 양의 양극단을 조화시키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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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집기중(允執其中)
중(中)은 천하의 정도(正道)요, 용(傭)은 천하의 정리(定理)이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으로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 날을 뜻 깊게 기념할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전해 길이길이 기념하도록 해야 한다.
삼일절은 일제에 국권을 뺏긴 우리 민족이 울분을 참을 수 없어 국내외에서 거국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날이다.

같은 해 5월에는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는데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우리나라 대표로 김규식을 파견하고 국제적인 외교 채널을 통하여 우리나라가 독립국가임을 선포했다.
국내에서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는데, 기독교에서는 이승훈, 천도교는 손병희, 불교에서는 한용운을 선두로 한 종교단체를 비롯하여 각 사회단체들이 일치 협력하여 지방의 모임을 조직했다.
3월 3일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앞두고 33명의 민족대표가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일제히 총궐기했던 것이다.

국외에서는 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재미교포, 일본 유학생 그리고 만주 서간도 교포와 독립군이 동시에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호소했다.
독립운동의 유일한 무기는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었다.
질서정연한 무저항 평화시위는 일본 관헌을 놀라게 했다.

운동에 참가한 인원은 2백만을 넘었고, 운집한 횟수는 1천 5백 회, 전국 방방곡곡에 가담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일본 관헌에 체포된 자는 46,948명, 피살자는 7,509명, 부상자는 15,961명이었고, 일본 관헌에 의하여 불살라진 민가가 715동, 교회당이 47동, 학교가 2동이었다.
수원의 삼일교회는 수십 명 교인을 감금해놓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는 참혹한 사건까지 있었다.
이를 미루어보아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기백, 『한국사 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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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이직보원(以直報怨)
원수를 정의로써 갚아라 공자의 이직보원(以直報怨)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以愛報怨] ●예수
원수를 정의로써 갚아라 [以直報怨] ●공자
원수를 덕으로써 갚아라 [以德報怨] ●노자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원수를 은덕으로 갚음이 어떠하리요?”라고 묻자, 공자는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으랴, 정의로써 원수를 갚으며 은덕은 은덕으로 갚아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논어』, 「헌문」편

공자는 원수를 정의로써 갚으라고 가르쳤다.
즉 원수를 공평무사한 정의로써 공정한 심판에 의하여 갚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의 율법이요, 원수를 갚는 데는 오직 준엄한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노자는 『도덕경』에서 “원수를 덕으로써 갚아라[以德報怨]”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굶주리면 먹이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4절)고 가르쳤다.

공자의 인의사상은 율법정신이 강하다.
남을 용서하라는 충서(忠恕)사상을 가르친 공자가 원수에 대해서만은 정의로써 심판하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공자의 인(仁)이 예수님의 사랑을 따를 수 없는 한계인 것 같다.
그러나 노자는 “원수를 덕으로써 갚아라”라고 했으므로 노자의 이덕보원은 예수의 사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수를 덕으로 갚아서 균형의 조화를 이룰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올 수 있다.

인도 정치지도자의 두 거두인 마하트마 간디와 모하메드 지나는 오랫동안 정적으로 지냈다.
간디가 살해당했을 때 지나가 기뻐할 줄 알고 지나의 부하 중 한 사람이 그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지나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념은 다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덕으로써 원수를 갚는 마음이다.

옛날 일본에 백은선사(白隱禪師)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 마을에 선사를 짝사랑하던 처녀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를 낳았다.
노한 부모는 딸에게 아이의 아비가 누구냐고 추궁하자 딸은 백은선사라고 대답했다.
분노에 찬 그녀의 부모는 선사를 찾아가서 욕설을 퍼붓고 아이를 맡기고 돌아왔다.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맡아서 길렀다.
그는 중이 아이를 낳았다고 사람들에게 위선자라는 모욕도 당하고 조롱거리도 되었다.
그러나 선사는 묵묵히 아이를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젖동냥으로 아이를 길렀다.
이 일을 후회하던 아이 어미는 아기 아버지가 백은선사가 아니고 이웃집 청년이라고 고백했다.
그녀의 부모는 송구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면서 선사를 찾아가서 사과했다.
선사는 “그런가, 그러면 아이를 데리고 가라” 하고 아이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사의 덕망은 한층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덕으로써 원수를 갚는 길이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라고 했다.
악은 악으로 갚으란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라고 가르쳤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 하나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께서는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맡겨라.
친구가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
원수가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까지 주어라.
또 바울은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아주리라. 원수가 배고파 하면 먹이고 목마르다 하면 마실 것을 주어라”(로마서 12장 19-20절)라고 가르쳤다.

톨스토이는 일찍이 『안나 카레리나』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 속의 남편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아내가 부정한 행동을 해도 끝까지 용서한다.
결국 아내는 불륜의 관계에서 아이를 낳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철도자살을 한다.
인간은 원수라 하더라도 사랑해야 하고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인의 신앙이며, 노자의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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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
나를 알아주는 벗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공자는 논어에서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을 칭찬했다.
자로가 “환공(桓公)이 공자(公子)인 규(糾)를 죽였을 때, 소홀(召忽)은 규를 따라 죽고, 관중은 죽지 아니하니 그는 어질지 못하다 하오리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되 군사를 쓰지 아니함은 관중의 힘이니 누가 관중의 어짊을 따르리요”라고 답했다.
다시 자공이 “관중은 인자(仁者)가 아니오이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을 때, 규를 위하여 죽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재상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공자는 답했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고 천하를 한번 바로잡았으니 백성이 이제까지 그 은혜를 입고 있느니라. 관중이 없었던들 우리는 머리를 헤치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풍습을 좇았으리라. 필부필부가 소절(小節)을 지켜 스스로 개천에 목매어 죽는다면 누가 그를 알리요.”

제나라의 환공이 동생인 공자 규를 죽였을 때, 스승인 소홀은 자살했다.
하지만 그를 섬기던 관중은 죽지 않고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관중은 주군을 잊고 두 주인을 섬겼으니 어진 자라고 할 수 없다’는 자로의 질문에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의 왕실이 쇠하고 제후가 할거하여 천하가 어지러울 때, 제나라 환공이 수습하여 무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복종케 하고 백성의 괴로움을 덜게 한 것은 관중의 공로였다’고 했다.
이는 관중이 인덕(仁德)으로 백성의 생명을 구제했으니 누가 관중의 인(仁)을 따를 것인가 하는 뜻이다.
공자는 관념적인 절개보다도 실리적인 공적을 찬양한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의 재상이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관중은 젊었을 때부터 포숙(鮑叔)의 친구였다.
포숙은 관중이 현명한 사람임을 알았다.
포숙과 장사를 하던 관중은 가난했으므로 항상 포숙을 속였으나 포숙은 언제나 이해해 주었고 이러니저러니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포숙은 제나라의 둘째 공자 소백(小白)을 섬기고 관중은 소백의 형 규(糾)를 섬겼는데, 동생 소백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환공이 되자 경쟁자 규는 싸움에 져서 죽고 관중은 잡히게 되었다.

포숙은 끝까지 관중을 밀어주어 그 덕분으로 관중은 제의 재상이 되었다.
환공은 국정을 잘 다스리는 관중에 힘입어 패자(覇者)의 지위에 이르고 제후(諸侯)들과 화합하여 평화적으로 천하를 평정했다.
이것이 모두 관중의 지모(智謀)에 의해서 된 일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관포지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찍이 내가 곤궁하였을 때 포숙과 같이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이 남을 때에 나의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했는데도
포숙은 나를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포숙을 위해 사업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곤궁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포숙은 나를 우매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성패가 있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 벼슬에 나갔다가
세 번 다 임금님에게 쫓겨나고 말았는데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 싸웠다가
세 번 다 패하여 달아나고 말았는데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줄을 알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였을 때 동료 소홀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잡혀서 욕된 몸이 되었는데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낳으신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환공에게 천거한 후, 자신은 관중의 아래로 들어가서 일을 했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의 녹(祿)을 받았고 이름 있는 대부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포숙의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은 것을 더 칭찬하게 되었다.

이것을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하는데,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의 아름다운 우정과 좋은 비교가 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부왕이 경쟁자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항상 다윗을 도와서 생명을 구해주고, 친구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그 다음이 되리라”고 했다.
요나단은 사울과 다윗의 싸움에서 전사했는데, 다윗은 친구 요나단의 죽음을 통곡하고 그의 아들을 찾아서 자기 궁중에 들여 후히 대접하고 평생을 한 식탁에서 식사했다.
요나단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았던 것이다.
관포지교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담은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불후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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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서사상(忠恕思想)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같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한마디로 종신(終身)토록 행함직한 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그것은 서(恕)함이니 내가 원치 아니하는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고 답했다. ●『논어』, 「위령공(衛靈公)」편

서(恕)는 같을 여(如)자 아래 마음 심(心)자가 합쳐진 것으로, 용서한다는 말은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같다는 말이다.
공자는 제자의 물음에 용서하는 길이 있을 뿐이라며,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을 충서(忠恕)사상이라고 하는데 기독교에서도 황금률에 해당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의 정신이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인자(仁者)는 자기가 서고자 하는 곳에 남을 세우고,
자기가 도달하려고 하는 곳에 남을 도달하게 한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논어』, 「옹야」편

공자가 증자에게 말했다.
“참(參, 증자의 이름)아!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하느니라.”
공자가 나가자 문인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논어』, 「이인(里仁)」편

충(忠)은 가운데 중(中)자 아래 마음 심(心)자로 나를 다하는 마음을, 서(恕)는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마음을 말한다.
공자가 자공에게 “너는 내가 많이 배우며 많이 기억해서 모든 도리를 아는 것으로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자공은 “그러 하외다”라고 답했다.
공자는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의 도로써 만사를 일관하느니라[一以貫之]”라고 했다.

맹자는 “만물의 이치는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자신을 반성하여 성실히 해나가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대우하는 데 힘써 나가면 인(仁)을 구하는 것은 이보다 더 가까운 길이 없다”라고 했다.
남을 용서함으로 남을 깨우칠 수 있고, 자기가 간직한 것이 서(恕)가 아니고서는 남을 깨우칠 수 없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림에는 먼저 자기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근본이다.

인애는 자연과 인생을 조화시킨다.
공자는 가정의 화목에 대하여 대학에서 다음과 같이 시경을 인용했다.

복사나무 앳되고 고음이여, 그 꽃이 떨기떨기 피었네.
시집가는 이 아가씨 그 집안 화목케 하리.
복사나무 앳되고 고음이여, 그 열매 탐스럽네.
시집가는 이 아가씨 그 집안의 복덩이.
복사나무 앳되고 고음이여, 그 잎 짙푸르네.
시집가는 이 아가씨 그 집안 화목케 하리.

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 桃之夭夭 有賁其實
之子于歸 宜其家室 桃之夭夭 其葉召召 之子于歸 宜其家人
●『시경』, 「주남」편

사람이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복숭아꽃같이 아름다운 것이며, 시집가는 신부는 그 집안의 화목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결혼은 복숭아 열매처럼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 그 집안에 짙푸른 잎사귀와 같이 건강한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활짝 핀 복사꽃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그 탐스러운 열매와 그 무성한 잎사귀로 흥을 돋우면서 아리따운 처녀의 결혼을 축복한다.
그것은 확실히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비유이며 표현 기법도 소박하고 힘찬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서에 호소하기보다도 시각적이며 인상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같은 구절이 반복되는 것은 이 노래가 무도곡임을 말해주며, 젊은 남녀가 신부 집 뜰에 모여 발맞춰 춤을 추며 노래했을 것이다.

공자는 충서의 도와 인을 가르쳤고, 석가는 자비로써 중생을 구원하려 했고, 예수는 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자기를 희생하여 사랑을 실천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길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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