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
나를 알아주는 벗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공자는 논어에서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을 칭찬했다.
자로가 “환공(桓公)이 공자(公子)인 규(糾)를 죽였을 때, 소홀(召忽)은 규를 따라 죽고, 관중은 죽지 아니하니 그는 어질지 못하다 하오리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되 군사를 쓰지 아니함은 관중의 힘이니 누가 관중의 어짊을 따르리요”라고 답했다.
다시 자공이 “관중은 인자(仁者)가 아니오이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을 때, 규를 위하여 죽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재상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공자는 답했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고 천하를 한번 바로잡았으니 백성이 이제까지 그 은혜를 입고 있느니라. 관중이 없었던들 우리는 머리를 헤치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풍습을 좇았으리라. 필부필부가 소절(小節)을 지켜 스스로 개천에 목매어 죽는다면 누가 그를 알리요.”
제나라의 환공이 동생인 공자 규를 죽였을 때, 스승인 소홀은 자살했다.
하지만 그를 섬기던 관중은 죽지 않고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관중은 주군을 잊고 두 주인을 섬겼으니 어진 자라고 할 수 없다’는 자로의 질문에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의 왕실이 쇠하고 제후가 할거하여 천하가 어지러울 때, 제나라 환공이 수습하여 무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복종케 하고 백성의 괴로움을 덜게 한 것은 관중의 공로였다’고 했다.
이는 관중이 인덕(仁德)으로 백성의 생명을 구제했으니 누가 관중의 인(仁)을 따를 것인가 하는 뜻이다.
공자는 관념적인 절개보다도 실리적인 공적을 찬양한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의 재상이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관중은 젊었을 때부터 포숙(鮑叔)의 친구였다.
포숙은 관중이 현명한 사람임을 알았다.
포숙과 장사를 하던 관중은 가난했으므로 항상 포숙을 속였으나 포숙은 언제나 이해해 주었고 이러니저러니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포숙은 제나라의 둘째 공자 소백(小白)을 섬기고 관중은 소백의 형 규(糾)를 섬겼는데, 동생 소백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환공이 되자 경쟁자 규는 싸움에 져서 죽고 관중은 잡히게 되었다.
포숙은 끝까지 관중을 밀어주어 그 덕분으로 관중은 제의 재상이 되었다.
환공은 국정을 잘 다스리는 관중에 힘입어 패자(覇者)의 지위에 이르고 제후(諸侯)들과 화합하여 평화적으로 천하를 평정했다.
이것이 모두 관중의 지모(智謀)에 의해서 된 일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관포지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찍이 내가 곤궁하였을 때 포숙과 같이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이 남을 때에 나의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했는데도
포숙은 나를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포숙을 위해 사업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곤궁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포숙은 나를 우매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성패가 있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 벼슬에 나갔다가
세 번 다 임금님에게 쫓겨나고 말았는데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 싸웠다가
세 번 다 패하여 달아나고 말았는데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줄을 알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였을 때 동료 소홀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잡혀서 욕된 몸이 되었는데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낳으신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환공에게 천거한 후, 자신은 관중의 아래로 들어가서 일을 했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의 녹(祿)을 받았고 이름 있는 대부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포숙의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은 것을 더 칭찬하게 되었다.
이것을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하는데,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의 아름다운 우정과 좋은 비교가 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부왕이 경쟁자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항상 다윗을 도와서 생명을 구해주고, 친구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그 다음이 되리라”고 했다.
요나단은 사울과 다윗의 싸움에서 전사했는데, 다윗은 친구 요나단의 죽음을 통곡하고 그의 아들을 찾아서 자기 궁중에 들여 후히 대접하고 평생을 한 식탁에서 식사했다.
요나단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았던 것이다.
관포지교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담은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불후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