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이직보원(以直報怨)
원수를 정의로써 갚아라 공자의 이직보원(以直報怨)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以愛報怨] ●예수
원수를 정의로써 갚아라 [以直報怨] ●공자
원수를 덕으로써 갚아라 [以德報怨] ●노자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원수를 은덕으로 갚음이 어떠하리요?”라고 묻자, 공자는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으랴, 정의로써 원수를 갚으며 은덕은 은덕으로 갚아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논어』, 「헌문」편
공자는 원수를 정의로써 갚으라고 가르쳤다.
즉 원수를 공평무사한 정의로써 공정한 심판에 의하여 갚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의 율법이요, 원수를 갚는 데는 오직 준엄한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노자는 『도덕경』에서 “원수를 덕으로써 갚아라[以德報怨]”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굶주리면 먹이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4절)고 가르쳤다.
공자의 인의사상은 율법정신이 강하다.
남을 용서하라는 충서(忠恕)사상을 가르친 공자가 원수에 대해서만은 정의로써 심판하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공자의 인(仁)이 예수님의 사랑을 따를 수 없는 한계인 것 같다.
그러나 노자는 “원수를 덕으로써 갚아라”라고 했으므로 노자의 이덕보원은 예수의 사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수를 덕으로 갚아서 균형의 조화를 이룰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올 수 있다.
인도 정치지도자의 두 거두인 마하트마 간디와 모하메드 지나는 오랫동안 정적으로 지냈다.
간디가 살해당했을 때 지나가 기뻐할 줄 알고 지나의 부하 중 한 사람이 그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지나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념은 다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덕으로써 원수를 갚는 마음이다.
옛날 일본에 백은선사(白隱禪師)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 마을에 선사를 짝사랑하던 처녀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를 낳았다.
노한 부모는 딸에게 아이의 아비가 누구냐고 추궁하자 딸은 백은선사라고 대답했다.
분노에 찬 그녀의 부모는 선사를 찾아가서 욕설을 퍼붓고 아이를 맡기고 돌아왔다.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맡아서 길렀다.
그는 중이 아이를 낳았다고 사람들에게 위선자라는 모욕도 당하고 조롱거리도 되었다.
그러나 선사는 묵묵히 아이를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젖동냥으로 아이를 길렀다.
이 일을 후회하던 아이 어미는 아기 아버지가 백은선사가 아니고 이웃집 청년이라고 고백했다.
그녀의 부모는 송구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면서 선사를 찾아가서 사과했다.
선사는 “그런가, 그러면 아이를 데리고 가라” 하고 아이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사의 덕망은 한층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덕으로써 원수를 갚는 길이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라고 했다.
악은 악으로 갚으란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라고 가르쳤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 하나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께서는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맡겨라.
친구가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
원수가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까지 주어라.
또 바울은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아주리라. 원수가 배고파 하면 먹이고 목마르다 하면 마실 것을 주어라”(로마서 12장 19-20절)라고 가르쳤다.
톨스토이는 일찍이 『안나 카레리나』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 속의 남편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아내가 부정한 행동을 해도 끝까지 용서한다.
결국 아내는 불륜의 관계에서 아이를 낳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철도자살을 한다.
인간은 원수라 하더라도 사랑해야 하고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인의 신앙이며, 노자의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