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Water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물은 오염되거나 깨끗하거나, 맑거나 흙탕물이거나, 혹은 바닷물이거나 샘물이거나, 수돗물이거나간에 어떻든 결코 푸르지는 않다.
심지어 ‘그랑 블루(Grande Bleue, 거대한 파랑)’라고 부르는 지중해도 푸르지 않으며, 그림엽서나 관광 팜플렛에서 보는 “남쪽 바다” 또한 실제로는 푸르지 않다.
그렇지만 상상력, 표현체계, 색을 둘러싼 서구적 상징에서 모든 물은 반드시 푸르다.
부엌이나 욕조의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냉수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회색, 갈색, 황색인 많은 물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물은 푸르다.
아이들은 동화책이나 지도, 바다, 호수, 하천, 또는 비를 그린 그림 등에서 모든 물을 푸른색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세에서는 물을 녹색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파랗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옛날 서구인들이 모든 사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던 4원소(검은 흙, 빨간 불, 파란 공기, 녹색 물) 중 하나인 공기 즉, 하늘이 파랑이기 때문에 다른 세 원소와 같은 색을 사용할 수 없어서 물은 녹색이 된 것이다.

물의 색이 녹색에서 파랑으로 변한 것은 15~17세기 사이로 생각된다.
이는 지도제작에서 표시방식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16세기 대부분의 해도에서는 물이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미 한 세기 전부터 간혹 물을 파랗게 표시한 지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그러나 해도를 채색하고 지도에 색을 입힐 때 왜 바다, 호수, 강물을 가리키기 위해서 종래 사용해 왔던 녹색을 대신해서 파랑을 택한 것일까.
녹색이 같은 지도나 혹은 다른 지도에 특별한 요소, 즉 숲을 표시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 경우 또한 소거법에 의한 선택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 「자동차」, 「쓰레기」, 「욕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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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Night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밤(夜)은 무슨 색인가?
물론 여러 가지 색일 것이다.

프랑스어에서는 대부분 색의 형용사가 밤에 첨가되어서 누구나 이해할 만한 정확한 의미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얀 밤”은 한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지새운 밤을 나타낸다.
“검은 밤”은 달이 뜨지 않는 밤으로, 너무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어느 고양이나 다 회색으로 보인다(상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 악몽에 시달리는 밤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분홍 밤”은 잘 잘 수 있고, 상쾌한 꿈을 꿀 수 있는 밤을 의미한다.
(이전 세기의 문장에서는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데도 “푸른 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녹색 밤”이 17~18세기에는 섹스, 도박, 즉 쾌락에 빠지는 밤을 의미했다.
“붉은 밤”은 유혈의 밤, 범죄와 위험의 밤이다.
“푸른 밤”이 지금은 충돌이 난무하는 밤, 갱들이 날뛰는 밤, 범인의 차·열차·건물을 폭파시켜 날려 버리는 밤이 되었다.
다만 “노란 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이 빛나고 별이 반짝이는 밤을 노란 밤이라 하지 않고 “밝은 밤”이라고 한다.

그러나 밤이 상상과 도상체계에서는 어휘만큼 다채롭지 않다.
대부분 어두운 색으로 검정, 회색, 갈색, 더 흔하게는 파랑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밤은 검정보다 파랑인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중세의 채색법과 회화가 그랬고, 현재는 광고용 포스터나 아동용의 책(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는 그렇지 않고,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노란 점이 찍혀 있는 검정이다), 만화에서 밤은 한결같이 파랑이다.
그것은 파랑이라도 짙은 청색으로 “밤의 파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검정과는 확실히 다른 파랑이다.
더욱이 밤과 파랑의 관계는 “밤의 파랑(bleu nuit)”이라는 표현에 매우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어(nachtblau)나 영어(night blue)에서도 같다.
그러나 밤을 다른 색과는 함께 쓰지 않는다.
예컨대 “밤의 빨강”이라든가, “밤의 녹색”이라고 하는 표현을 만들지는 않는다.
짙은 녹색이나 갈색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밤의 검정”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에는 거의 검정에 가까운 짙은 회색을 “밤의 색”이라고 했고, “황혼”을 “갈색”(a la brune 또는 sur la brune)이라고 표현했다.
(18세기의 시인 라퐁텐느가 잘 사용했으나 이 표현들은 오늘에도 로맨틱한 시에 인용되고 있다.)
갈색이 여기서는 마치 검정에 이르는 극히 자연스러운 계단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블루(bleu)를 발음하면서 여성적인 형용사 브륀(brune, 갈색)과 비슷한 소리의 울림을 듣는다.

⊙ 「돼지」, 「밤색」, 「술 취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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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Synonymes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완전히 의미가 같은 동의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색에 관한 어휘에서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빨강”이라는 말을 다른 어떤 동의어로 바꿀 수는 없다.
어떤 문맥에서 “빨강” 대신에 다른 말을 사용하더라도 그 의미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석류석(Garnet)”, “카민(Carmine)”, “버밀리온(Vermilion)”도 빨강 계열의 특정 색조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빨강”을 대체할 수도 없고, 이 단어들을 서로 바꿔 쓴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색을 나타내는 말은 모두 다의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말이 나타내는 의미와 색조는 (대단히 드물게) 부분적으로 교차하기는 해도 완전히 중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색채어간의 동의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된다.
모브(mouve)색은 보라와는 다르며 (이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라일락색도 아니다.
자두색, 자주색, 가지색과는 더욱 다르다.
그러므로 색을 나타내는 어휘(가장 시적인 어휘들일 것이다)에서는 여러 단어를 같이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번역하기도 힘든가 보다.

⊙ 「색 이름」, 「은어」, 「말(馬)」, 「환유(換喩)」, 「철자법」, 「스타킹과 팬티스타킹」, 「베이지」, 「밤색」, 「포도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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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Slang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기묘하게도 ‘은어’를 프랑스어로는 ‘녹색 언어(langue verte)’라고 하지만 색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프랑스어에서는 은어와 색은 아무 관련이 없다.
색의 어휘는 은어적 표현에 거의 기여하지 못할 뿐 아니라(예를 들면 ‘흰 여자 la blanche’는 여주인공, ‘홍역에 걸리다 avoir la rougeole’는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다) 여러 가지 색을 대체할 수 있는 은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접미어를 붙이거나 자바 어법 혹은 베를랑(Verlan) 등의 방식으로 일반 어휘를 은어화 하는데, 이러한 은어생성법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녹색 언어’는 은어라는 어법양식을 형용하기에 그다지 적당치 못한 것 같다.

녹색 언어라는 말의 기원은 16~17세기의 도박사, 특히 카드 도박사들이 쓰던 천하지는 않지만 상징성을 가진 표현을 일컫는 데서 비롯되었다.
녹색은 행운과 불운의 색이며 행운의 여신과 운명의 신의 색이어서, 중세 말기 이후 서구에서는 도박과 관계가 깊은 색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15세기에 이미(이탈리아에서) 도박판은 녹색이었으며 오늘날까지 마찬가지다.

서구의 다른 지역에서도 은어와 색은 거의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겨우 영어에서나 은어적 표현이 비교적 중요한 어휘로 있을 뿐인데, 겁쟁이를 누렁이(a yellow dog), 경험이 적은 사람을 새파란 당나귀(a green ass), 알코올 도수가 매우 높은 음료를 빨간 홍차(a red tea)라고 한다.
그러나 영어든 또 다른 서구 언어든 특정 은어가 어떤 색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은 전혀 없고, 일반적이지 않은 어떤 이상한 색조를 나타내는 경우 정도뿐이다.
(예컨대 노르스름하다는 의미로서 위드 weed)

⊙ 「말(馬)」, 「돈」, 「환유(換喩)」, 「철자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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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비밀 - 색의 상징성과 사회적 의미
미셸 파스투로 지음, 전창림 옮김 / 미술문화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환유 換喩, Metonymy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실제의 색과 색 이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떤 문장에서 빨갛다고 한 사물이 진짜로 빨갛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사물이 빨갛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물의 색과 그 색 이름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수사법에서 환유라고 불리는 비유의 형식에서 유래하는 것이 많다.
특히 환유를 통해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려고 할 때 그 차이가 생겨난다.
예를 들면 모든 방이 파란 벽지로 도배되어 있는 집에서 하나의 방을 ‘노란 방’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
그것은 그 방의 벽에 걸린 파란색 큰 양탄자 위에 달려 있는 노란색 작은 장식 끈으로서 다른 파란 방과 구별해서 부른 것뿐이다.
여기서 ‘노란 방’이라는 표현이 진짜로 전면적으로 노란색 방을 가리킨다고 믿어버리면 안 된다.
나도 이와 흡사한 일이 있었다.
옛날 내 부친이 ‘녹색 가방’이라고 불렀던 가방이 있었다.
그것은 부친이 갖고 있던 천으로 만든 두 개의 파란 가방 가운데 하나로, 폭이 좁은 보강용 녹색 밴드가 걸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의 가방에는 푸른 바다색의 밴드가 달려 있었다.)

일상생활, 편지 왕래, 사무, 법률, 문학, 광고 등이 엄청난 양의 문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거기에 사용된 사물의 색은 아주 부분적으로만 실제의 색과 일치한다.
(어떤 때는 전연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는 어떤 하나의 정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그릇되게 해석하지 않기 위하여 이 점을 명심해둘 필요가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정보(또는 진실을 다른 식으로 말하는 정보)도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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