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Subway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지하철은 색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예컨대 지하철에서는 시민들이 실제로 입고 다니는 의복의 색들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도시 시민이 일상적으로 입고 있는 의복 색과 쇼윈도나 잡지에서 보는 요란한 의복 색 사이의 큰 차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도 지하철이다.
디자이너가 뭐라 하더라도 서양의 대도시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파란색(이 다른 색을 크게 제치고) 옷을 제일 많이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도 지하철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사회학자, 기자들도 자주 지하철을 타야 할 것이다.

2) 색에 의한 표지도 열차나 비행기보다 지하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선도는 많은 정보량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행선지를 정할 때 도움이 되도록 엄밀한 지도제작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노선도에서 여러 색을 사용하는 것은 이용자가 잘못 타지 않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선이 많은 복잡한 도시(런던, 모스크바, 파리)의 노선도가 다양한 색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어느 색이 할당되었는가(나는 어떤 표시도 규칙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용자가 자신이 자주 타는 노선의 색을 알고 있는가 또한 흥미로운 질문이다.
또 가까이 있는 노선에 비슷한 색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남북의 색이나 동서의 색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을까.
또는 부르주아 지구를 통과하는 색과 빈민지구를 통과하는 색(갈색, 주황, 보라)이 따로 있는가.
특히 지도제작에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어느 노선에 할당된 색(런던 등에서는 때로는 백 년 이상 전부터 같은 색)을 갑자기 변경할 수 있을까?
이용자는 이러한 변경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싫다고 아우성을 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연구해볼 만한 문제이다.

3) 지하철이나 기타 교통수단의 1등석과 2등석(어쩌면 3등석)의 구별을 색의 역사로 연구하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구별을 위해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는 어떤 색이 조합되었는가.
1등석과 2등석에는 어떤 색이 제일 많이 사용되는가.
같은 체계가 여러 도시에서 여러 교통수단으로 공히 사용되고 있는가.
차표의 색과 차량의 등급색이 연결되는가.
이러한 규격이(오늘날에는 좀 흐려졌지만)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소라도 악영향을 미쳐 어떤 색의 가치를 변화시킬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파리 교통국의 새로운 파랑과 녹색의 표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4) 지금까지 객차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것들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이런 것들도 색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즉 색이 얼마나 이념적이고 상징적이며, 숨겨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이 상징적 의미들이 생리적 효과뿐 아니라 우리의 선택, 행동 방식까지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 파리의 교외 급행전차(R.E.R.) 13호선에 새로운 차량이 도입되었을 때의 일이다.
2등석에는 빨강과 파랑 좌석이 번갈아가며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출퇴근 시간이 아닐 때, 말하자면 승객이 자유로이 좌석을 택할 수 있는 시간에 대부분 빨간 좌석을 피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그 색이(위험, 금지를 알리는 색, 금기의 색 ― 그러나 금기를 침범하는 색이기도 하다)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적어도 파랑보다는 중립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때 나는 한가한 시간대에 일부러 빨간 좌석에 앉는 사람들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적극 관찰하지 못했다.
이러한 조사는 절대로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후회가 되는 것은 빨간 좌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가 끼거나 낡고 망가져서 일반 승객이 색을 알아볼 수 없을 경우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 관찰하지 못한 점이다.
그랬더라면 기존문화를 파괴하고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지하철 안에서의 색채 민족학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 「파랑」, 「빨강」, 「옷」, 「교통법규」, 「스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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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Car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실시된 몇 차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동차를 구매할 때 선택기준으로서 색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가격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에게 제조사와 모델, 성능, 그 밖의 다른 품질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의 색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러한 조사결과에 놀랐지만 1950년대 초에는 이것을 거의 무시했다.
그 후 소비자의 수요에 떠밀려, 색에 관한 방침을 약간 수정하여 대중의 요구와 변덕스러운 유행을 고려해야 했다.
마지못해서라고 하기엔 좀 지나치지만, 그럼에도 제조사들의 이런 방침 전환은 언제나 망설임 속에서 행해졌다.
기술자들에게 차체의 색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제조공정 중에서 도장(塗裝)은 마지막 공정이다.
판매 전략에서 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알아야만 한다) 것은 ‘영업사원’뿐이었다.
그런데 자동차산업에서 영업은 중요한 영역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그것을 유감스럽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에도 새 차를 구입할 때 여전히 색을 고르는 데 어려운 이유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이지만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물론 영업사원은 다양하고 풍부한 색 견본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어떤 색은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어떤 색은 초과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든가, 어떤 색은 그가 선택한 모델에는 없다든가, 그 옵션에 그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든가이다.
따라서 이 색 저 색을 그렇게 빼고 나면 재고에 있는 고작 3~4종의 색에서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마음에 드는 색이 아니라 싫은 색을 제외해가면서 가장 덜 싫어하는 색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마음에 드는 색을 선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제외해가는 방식 또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참는 선택방식은 옷을 살 때와 매우 비슷한 문제다.)
차의 색을 실제 자신의 기호대로 선택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아직 이론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사회학자와 사회심리학자(!)가 지역, 국가, 시대, 사회 환경에 따른 자동차 색에 대한 선호도 통계조사에서 이끌어낸 교묘한 결론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수치들은 실제 대중들의 선호도보다 제조사의 상상력 부족, 한심한 미적 감각, 도덕적 복고성향, 기술혁신에 대한 유치한 욕망을 표현할 뿐이다.

2) 그렇다 하더라도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에 관계없이 우리가 가진 차(차뿐 아니라 그 밖의 물건도)의 색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고, 계급과 서열이 정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색과 우리 본래의 취향이 일치하지도 않으며, 우리들 스스로가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이미지와도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차 색의 선택은 일회성 사건에 불과하다.
눈에 튀는 화려한 색의 차를 탄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도발적인 운전자가 되는 것이다.
빨간 차를 탄 사람은 위험하고 난폭한 사람이고, 검정색 차의 소유주는 엄격한 성격이거나 공적인 인물이 된다.
흰색 차, 베이지색 차를 타는 사람들은 여성적이며, 녹색 차를 타는 사람은 더 젊고, 밤색, 겨자색, 주황색 차를 타는 사람은 미적 감각이 한심한 사람이 된다.
반면 회색, 파랑 계열의 차를 타는 사람은 절도 있고 우아한 인물로 보인다.
적어도 1992년의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형편이었다.
그런데 독일, 이탈리아, 미국에서는 차체의 색에 부여하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프랑스에서조차 현재 감성적으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20년 전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으며, 5년이나 10년 후에는 진부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색채의 상징적 의미는 어느 시대에나 문화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장소와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그 때문에 이 의미는 역전되기도 하고 파기되기도 하며, 새로운 가치체계가 출현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좋은 아버지나 지방에서 존경받는 명사가 분홍색이나 주홍색 차를 운전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가치체계를 뛰어넘는 사치를 즐길 만한 명예와 존경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3)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관리규정과 계급에 따라서 미리 정해진 색의 상표를 운전자의 등에 붙이게(행운인 경우는 드물지만) 된다.
이 상표를 떼어내기는 어렵다.
나에게도 또렷한 기억이 있다.
예를 들면 60년대 초, 몇몇 보험회사는 빨간색 차의 소유주에게 특별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었다.
차가 빨간색인 이유가 아니라 빨간색일 경우 소유주가 거의 대부분 젊고 평균보다 더 많은 사고를 일으킨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 세대 정도 이전일 뿐인데도 이러한 행태는 오늘날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한 일은 없었다고 보험회사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랬다.

나 자신도 빨간색 차에 관한 그와 같은 경험을 특별한 추억으로 가지고 있다.
80년대 초 중고차를 사려던 무렵 흔해빠진 보통 차를(물론 소거법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매우 싼 가격의 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차의 본체가 발랄한 빨간색이었다.
판매원은 나에게 이 모델은 중년이나 품행이 방정한 사람, 스피드나 성능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데 막상 그 사람은 이 색을 싫어하고, 반대로 젊은 사람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이 색은 좋아하겠지만, 모델이 ‘한물간’ 것인데다 엔진도 ‘털털거리는’ 힘없는 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은 그 차는 아주 낮은 가격이 아니면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해서 내 차지가 되었다.

4) 이러한 관찰을 통해, 차체의 색에 대한 사회문화적 조사의 한계를 인식한 이후, 19세기 말에 출현한 자동차 색의 역사를 큰 흐름으로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차가 탄생하고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대부분 차의 색은 검은색이나 회색, 또는 하얀색이나 크림색이었다.
‘색다운 색’이 없었던 이유는 도료 화학과 결부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도덕 때문이었다.
자동차가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자 프로테스탄티즘 가치관의 부산물이기도 하다는 이유에 의해, 자동차는 ― 기타 많은 제품과 마찬가지로 ― 색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었다.
즉 신중하면서도 결백하고 정직하며 존경할 만한 시민과 고결한 기독교도의 이름에 부끄럼 없는 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서 헨리 포드를 생각해보자.
이 자동차왕국의 창시자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의 신조에 따라서 검정색 차밖에 팔 수 없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중엽에 걸쳐서 이 경향은 역전된다. 검정색과 흰색의 차는 적어지고, ‘컬러’ 자동차가 많아졌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부터 복고주의에 의해 수수한 어두운 색, 특히 회색이 다시 세력을 회복했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얼마나 지속될까?

이 긴 사이클 안에 훨씬 짧은 사이클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기에도 또 유행과 속물주의에 의한 특유의 어떤 시계추운동이 작동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검은 차를 타면 ‘세련된 멋쟁이’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차를 타게 된다.
또 모든 사람이 화려한 색의 차를 타면 첨단의 첨단은 회색 차를 탄다.
20세기 말에 가까워지면서 차에 한정되지 않고, 패션으로부터 일상의 자질구레한 물건, 책이나 잡지의 표지, 담뱃갑에 이르기까지 이 시계추운동의 리듬은 점점 빨라져 색을 둘러싸고 구축되어 온 가치체계가 전면적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 「옷」, 「담배」,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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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ovie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영화는 천연색 세계와 흑백 세계의 대비가 가장 예민하게 느껴지는 예술 분야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는 서구문화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출현한 것으로, 고대나 중세사회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미 초기 단계부터 영화는 색채화를 시도했는데, 당시는 양화 필름(film positives)에 스텐실을 사용하거나 손으로 착색했다.
이 착색 방식은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약간의 색을 띠게 하기 위해(녹색 계통이나 갈색 계통의 단색 또는 담채화풍) 조색제와 매염제25의 화학이 응용되었고, 곧 이어 고도의 염색기술이 사용되었다.
1차 세계대전 후에는 연구가 진전되어 이른바 ‘3원색’(노랑 jaune, 시안 cyan, 마젠타 magenta)의 중첩 원리에 근거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났다.
이리하여 본격적인 ‘천연색’ 영화는 1930년대에 들어와 서서히 성립되었다.

1938년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 감독의 작품 ‘로빈후드의 모험’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얼마간은 이 영화가 채용한 테크니컬러(technicolor)26 방식이 우위를 차지했다.
당시는 현실의 색과 상관없이 강렬한 색채 대조와 선명한 색채가 추구되었던 것이다.
그 후 천연색 영화의 제작편수가 흑백영화의 편수를 능가하게 되자 영화의 영상에서 ‘그림엽서’같은 바랜 색조를 제거하려고 시도했는데, 그리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미학자와 영화제작자들도 천연색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비현실적임을 비난했다.
오늘날의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와 같이, 사실 영화에서의 천연색 영상은 실제로 자연 풍경 속의 색처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흑백 영화로의 회귀(진정한 영화애호가들이 특정한 장르의 작품을 위하여 추구한)를 거부했다.
최근에는 일찍이 흑백으로 촬영된(그렇게 구상되었던) 작품을 ‘채색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일반 대중이 얼마나 천연색을 추구하고 있는가 ― 확실히 이러한 수요는 상업주의에 의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문화적 욕구도 있다 ― 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그리고 얼마 안 있어 유럽까지도) 텔레비전 시청자에게 옛날 영화를 흑백으로 보여주는 일은 매우 드물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영화작품은 ‘착색’(이 자체가 교활한 말이다)되어야 한다.
1980년대 이후로 착색이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 많은 법적, 도덕적, 예술적 논의가 야기되었다.

오늘날에는 천연색 영화보다 흑백 영화를 촬영하는 데 더 큰 비용이 든다(사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복고주의 성향이 만연하여 보다 아름답고, 보다 진실하게 보이고, 보다 분위기 있고, 보다 ‘영화적’인 흑백 영화가 재평가되고 있다.
영화애호가들 가운데는 모종의 속물근성으로 영화관에서 천연색 영화를 보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나는 이러한 속물주의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의 신념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영화가 역사적으로 문장학(紋章學)적으로, 또 신화적으로 흑백의 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은 설령 옛 영화 모두를 ‘착색했다’ 하더라도 금명간에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 「공해」, 「세피아」, 「프로테스탄티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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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Cloth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색과 섬유는 특별한 관계다.
섬유는 언제 어디서나 색의 ‘최초의’ 매체였으며, 어떤 사회 안에서 색의 지위와 기능을 파악하려는 연구자들에게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했다.
옷과 옷감의 세계는 물질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경제와 미의 문제가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색에 관한 문제는 모두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즉 안료의 화학, 염색기술, 경제적 한계, 상업적 의도, 미의 탐구, 상징적 의미에 대한 배려, 모든 성질의 사회규범의 메커니즘에 관한 문제이다.
옷과 옷감은 색에 대한 다양한 학제간의 연구가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필요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의복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역사가와 사회학자가 색에 대해 논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 원인은 우선 자료의 문제(그들은 몇 십 년 동안이나 흑백사진을 기초로 연구하는 버릇이 들어버렸다)가 있다.
다음은 ‘인식론(과장된 표현을 두려움 없이 사용해버리는)’의 문제이다.
의복에 대한 연구는 종종 양태적 고고학으로 귀결되어 버리며, 의복의 기초를 제공하는 사회적인 제도와 문제점은 무시하든가 은폐해버린다.
그러나 색은 의복에 관한 모든 체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이다.
심리적, 미적 요소 이전에 색에는 분류의 기능과 상표의 기능이 있다.
(개인을 가지각색의 다른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 그룹을 다시 사회 전체 속에 위치시킨다.)
의복은 결코 개인적인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의복은 규범에 따르고, 계급적 구조에 복종하며, 분류의 원칙을 감수하고 넓히는, 제도적 현실인 것이다.
의복은 모든 사회학적 연구를 위한 훌륭한 관찰의 장을 제공한다.

옛날의 의복에서는 옷감(재료, 직조방식, 제조지, 무늬), 여러 부속품과 형태, 바느질과 재단의 방식, 장식(액세서리), 옷을 입는 방식, 그리고 당연히 색까지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각각의 시대에 따라 많든 적든 관습적인 표시방식에 따라 의복이 자신의 출신지라든가 사회 환경, 무엇인가의 가치를 표현하며, 그것에 상응하는 규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처지 또는 지위에 맞는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현대의 의복에서도 거의 마찬가지다.
어느 곳에서든 의복의 분류 기능은 실용성이라는 역할이나 감정적, 미적 배려보다도 상위에 있다.
의복은 계층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우선 색에 의해서 행해진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기호 따위는 전적으로 이차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학자에게든 역사가에게든 순수하게 심리학적 또는 현상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거의 아무런 근거도 없다.
사춘기의 아이들이나 사회의 비주류 사람들, 문제아 등은 자신의 나이, 환경, 시대, 국가의 모든 습관, 유행, 규칙(특히 색에 대한)에 반발하여 도발적인 옷을 입는다.
그런데 의복의 유행과 관습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구속력을 갖는 제도로서, 이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더 이 유행과 관습에 사로잡힌 셈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고 싶다고 생각하고, 유행 따위는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과 전연 다르지 않고, 전적으로 유행의 노예임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2) 유행과 관습은 옛 사회에도 역시 있었다.
14세기부터 서유럽에서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많든 적든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18세기 말까지?)은 사회적으로 혜택 받은 특권계급에 한정되어 나타났다.
의복사학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은 유행이라는 현상에 대한 현대의 우리들의 개념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과거에는 투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유행은 가치, 규범, 새로움, 차별성, 변화 등의 개념에 기초하여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과 특히 색을 포함한 의복의 모든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색의 개념은 그 모든 영역에서 받아들여야 하며, 색상부터 명도, 채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색조라도 낮은 채도의 파랑이 승리하는 순간에 짙은 파랑은 시대에서 밀려나고 만다.

19세기 말부터 패션은 반년마다 유행하는 색을 변형 또는 변화시켜 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의상디자이너는 원단 제조사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재단사나 디자이너, 원단 도매상은 3~4년 전부터(때로는 훨씬 전부터) 준비하여 3~4년 후 소비자에게 제공될 색에 대해 원단 제조사와 의견을 교환하는 식이다.
색에 관한 한 유행은 결코 자연발생적 현상이었거나 뜻밖의 현상이었던 적은 없다.
대중의 의견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이 여러 해 전부터 준비되어 왔던 것이다.
구입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하나의 경향을 강조할 수 있을 뿐이며, 특히 여름철에는 의류 제조사와 원단 제조사가 판매하는 3~4색 가운데서 한 색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자신이 구입하는 옷의 색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일은 더없이 어리석은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색의 옷을 사려고 생각하며 가게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거의 언제나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나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나, 정해 놓은 예산 내의 옷 중에는 그 색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색으로 교체하고, 거기에 있는 색 가운데서 ‘소거법’으로 선택하기에 이른다.
불만이 가장 적은 색을 고르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사거나 자전거, 가구, 욕실 용품 등을 살 때처럼, 재고 부족이라든가 물품 반입이 지연되었다라는 따위의 핑계 때문에 우리는 거의 언제나 차선의 선택, 다른 색보다는 좀 낫다고 하는 색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 사회를 연구할 미래의 역사가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우리의 취향이나 기호가 아닌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 「자동차」, 「속옷」, 「심판」, 「스포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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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Underware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지난 몇 세기 동안 몸에 닿는 옷과 섬유는 모두 흰색이거나 염색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은 위생과 물리적 이유(삶으면 색이 빠졌다)와 더불어 도덕적 이유(선명한 색은 불순하거나 음침하다고 생각되었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속옷과 몸에 닿는 무명, 이불, 매트리스, 수건, 이불보 등은 처음엔 흰색이었으나 점차 파스텔조의 색이나 체크무늬(어떤 색의 띠와 흰색 띠를 교차시킨 부분은 옅은 파스텔 색조로 표현하는 특수한 줄무늬의 일종)로 옮겨가며 서서히 색이 첨가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1세기 후에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푸른 페티코트와 녹색 와이셔츠를 입는 것, 분홍 속옷을 입는 것, 노란색 타올로 몸을 닦는다든가 줄무늬 이불을 덮는 일 등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흰색은 오히려 드물어져 버렸다.
파스텔조 외에 더 나아가 진한 파랑이나 강렬한 빨강, 짙은 녹색, 검정 등 선명한 색과 흰색의 조합까지 나타났다.

속옷의 새로운 색채는 빠르게 사회적·도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어떤 색은 여성적(또는 남성적)이고, 어떤 색은 얌전하며, 어떤 색은 에로틱하고, 어떤 색은 아주 도발적이다.
종종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치마나 바지 속에 입고 있는 색을 말해보라.
그러면 그대가 어떤 인간인지 말해주리라”(또는 적어도 자신의 이미지나, 어떤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하는지) 이러한 체계를 연구하는 데 쉽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감성과 사회계급에 관련되어 있고, 시대나 나라, 사회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남자와 여자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상반신에 어울리는 색이 하반신에도 항상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세부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여성의 속옷을 예로 들어보자.
이전에는 흰색이 점잖고 위생적인 색이었다면, 검은색 속옷은 음란하고 부도덕한 색으로서 직업적인 매춘부나 윤락녀가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약간 “방탕한” 감이 남아 있어서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거의 입히지 않지만, 옛날처럼 매춘이라든가 음탕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검은 치마나 검은 블라우스를 입을 때 속옷도 검은색을 많이 입는다.
검은색이 자신의 피부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
요즘의 합성 섬유에는 검은색이 빈번한 세탁에 가장 잘 견딘다고 현실적인 이유를 대는 이도 있다.
요즘 여성의 속옷으로는 검은색보다도 빨강색이 훨씬 유혹적이고 도발적이다.
반대로 흰색은 옛날과 같은 순진하고 청순한 느낌이 사라진 것 같다.
남자들에게 여성의 속옷 색 중에서 가장 성욕을 일으키는 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흰색을 첫 번째로 꼽는다.
순수하지 못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순수 자체가 아닐까….

남자들에게도 역사적·사회적 색체계가 의미를 갖는다.
예전에는 남성 속옷 중에서 흰색이 가장 중립적이고,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신 푸른색(하늘색이나 감청색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만일 남자가 분홍 속옷을 입는다면 추잡하다 못해 무슨 죄를 짓는 것 같을 것이다.
역시 갈색이나 주황색, 또는 겨자색을 입는다면 그의 미적 감각이 끔찍할 지경이고 그의 속옷도 비위생적으로 생각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성적 매력이 있고 분방하게 보인다고 표범무늬 속옷을 입기도 한다.
나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이지만.

⊙ 「육류」, 「이불보」, 「화장지」, 「욕조」, 「프로테스탄티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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