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ovie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영화는 천연색 세계와 흑백 세계의 대비가 가장 예민하게 느껴지는 예술 분야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는 서구문화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출현한 것으로, 고대나 중세사회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미 초기 단계부터 영화는 색채화를 시도했는데, 당시는 양화 필름(film positives)에 스텐실을 사용하거나 손으로 착색했다.
이 착색 방식은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약간의 색을 띠게 하기 위해(녹색 계통이나 갈색 계통의 단색 또는 담채화풍) 조색제와 매염제25의 화학이 응용되었고, 곧 이어 고도의 염색기술이 사용되었다.
1차 세계대전 후에는 연구가 진전되어 이른바 ‘3원색’(노랑 jaune, 시안 cyan, 마젠타 magenta)의 중첩 원리에 근거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났다.
이리하여 본격적인 ‘천연색’ 영화는 1930년대에 들어와 서서히 성립되었다.

1938년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 감독의 작품 ‘로빈후드의 모험’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얼마간은 이 영화가 채용한 테크니컬러(technicolor)26 방식이 우위를 차지했다.
당시는 현실의 색과 상관없이 강렬한 색채 대조와 선명한 색채가 추구되었던 것이다.
그 후 천연색 영화의 제작편수가 흑백영화의 편수를 능가하게 되자 영화의 영상에서 ‘그림엽서’같은 바랜 색조를 제거하려고 시도했는데, 그리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미학자와 영화제작자들도 천연색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비현실적임을 비난했다.
오늘날의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와 같이, 사실 영화에서의 천연색 영상은 실제로 자연 풍경 속의 색처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흑백 영화로의 회귀(진정한 영화애호가들이 특정한 장르의 작품을 위하여 추구한)를 거부했다.
최근에는 일찍이 흑백으로 촬영된(그렇게 구상되었던) 작품을 ‘채색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일반 대중이 얼마나 천연색을 추구하고 있는가 ― 확실히 이러한 수요는 상업주의에 의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문화적 욕구도 있다 ― 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그리고 얼마 안 있어 유럽까지도) 텔레비전 시청자에게 옛날 영화를 흑백으로 보여주는 일은 매우 드물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영화작품은 ‘착색’(이 자체가 교활한 말이다)되어야 한다.
1980년대 이후로 착색이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 많은 법적, 도덕적, 예술적 논의가 야기되었다.

오늘날에는 천연색 영화보다 흑백 영화를 촬영하는 데 더 큰 비용이 든다(사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복고주의 성향이 만연하여 보다 아름답고, 보다 진실하게 보이고, 보다 분위기 있고, 보다 ‘영화적’인 흑백 영화가 재평가되고 있다.
영화애호가들 가운데는 모종의 속물근성으로 영화관에서 천연색 영화를 보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나는 이러한 속물주의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의 신념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영화가 역사적으로 문장학(紋章學)적으로, 또 신화적으로 흑백의 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은 설령 옛 영화 모두를 ‘착색했다’ 하더라도 금명간에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 「공해」, 「세피아」, 「프로테스탄티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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