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Subway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지하철은 색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예컨대 지하철에서는 시민들이 실제로 입고 다니는 의복의 색들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도시 시민이 일상적으로 입고 있는 의복 색과 쇼윈도나 잡지에서 보는 요란한 의복 색 사이의 큰 차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도 지하철이다.
디자이너가 뭐라 하더라도 서양의 대도시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파란색(이 다른 색을 크게 제치고) 옷을 제일 많이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도 지하철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사회학자, 기자들도 자주 지하철을 타야 할 것이다.
2) 색에 의한 표지도 열차나 비행기보다 지하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선도는 많은 정보량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행선지를 정할 때 도움이 되도록 엄밀한 지도제작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노선도에서 여러 색을 사용하는 것은 이용자가 잘못 타지 않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선이 많은 복잡한 도시(런던, 모스크바, 파리)의 노선도가 다양한 색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어느 색이 할당되었는가(나는 어떤 표시도 규칙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용자가 자신이 자주 타는 노선의 색을 알고 있는가 또한 흥미로운 질문이다.
또 가까이 있는 노선에 비슷한 색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남북의 색이나 동서의 색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을까.
또는 부르주아 지구를 통과하는 색과 빈민지구를 통과하는 색(갈색, 주황, 보라)이 따로 있는가.
특히 지도제작에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어느 노선에 할당된 색(런던 등에서는 때로는 백 년 이상 전부터 같은 색)을 갑자기 변경할 수 있을까?
이용자는 이러한 변경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싫다고 아우성을 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연구해볼 만한 문제이다.
3) 지하철이나 기타 교통수단의 1등석과 2등석(어쩌면 3등석)의 구별을 색의 역사로 연구하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구별을 위해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는 어떤 색이 조합되었는가.
1등석과 2등석에는 어떤 색이 제일 많이 사용되는가.
같은 체계가 여러 도시에서 여러 교통수단으로 공히 사용되고 있는가.
차표의 색과 차량의 등급색이 연결되는가.
이러한 규격이(오늘날에는 좀 흐려졌지만)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소라도 악영향을 미쳐 어떤 색의 가치를 변화시킬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파리 교통국의 새로운 파랑과 녹색의 표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4) 지금까지 객차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것들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이런 것들도 색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즉 색이 얼마나 이념적이고 상징적이며, 숨겨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이 상징적 의미들이 생리적 효과뿐 아니라 우리의 선택, 행동 방식까지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 파리의 교외 급행전차(R.E.R.) 13호선에 새로운 차량이 도입되었을 때의 일이다.
2등석에는 빨강과 파랑 좌석이 번갈아가며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출퇴근 시간이 아닐 때, 말하자면 승객이 자유로이 좌석을 택할 수 있는 시간에 대부분 빨간 좌석을 피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그 색이(위험, 금지를 알리는 색, 금기의 색 ― 그러나 금기를 침범하는 색이기도 하다)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적어도 파랑보다는 중립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때 나는 한가한 시간대에 일부러 빨간 좌석에 앉는 사람들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적극 관찰하지 못했다.
이러한 조사는 절대로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후회가 되는 것은 빨간 좌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가 끼거나 낡고 망가져서 일반 승객이 색을 알아볼 수 없을 경우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 관찰하지 못한 점이다.
그랬더라면 기존문화를 파괴하고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지하철 안에서의 색채 민족학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 「파랑」, 「빨강」, 「옷」, 「교통법규」, 「스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