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Cloth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색과 섬유는 특별한 관계다.
섬유는 언제 어디서나 색의 ‘최초의’ 매체였으며, 어떤 사회 안에서 색의 지위와 기능을 파악하려는 연구자들에게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했다.
옷과 옷감의 세계는 물질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경제와 미의 문제가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색에 관한 문제는 모두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즉 안료의 화학, 염색기술, 경제적 한계, 상업적 의도, 미의 탐구, 상징적 의미에 대한 배려, 모든 성질의 사회규범의 메커니즘에 관한 문제이다.
옷과 옷감은 색에 대한 다양한 학제간의 연구가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필요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의복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역사가와 사회학자가 색에 대해 논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 원인은 우선 자료의 문제(그들은 몇 십 년 동안이나 흑백사진을 기초로 연구하는 버릇이 들어버렸다)가 있다.
다음은 ‘인식론(과장된 표현을 두려움 없이 사용해버리는)’의 문제이다.
의복에 대한 연구는 종종 양태적 고고학으로 귀결되어 버리며, 의복의 기초를 제공하는 사회적인 제도와 문제점은 무시하든가 은폐해버린다.
그러나 색은 의복에 관한 모든 체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이다.
심리적, 미적 요소 이전에 색에는 분류의 기능과 상표의 기능이 있다.
(개인을 가지각색의 다른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 그룹을 다시 사회 전체 속에 위치시킨다.)
의복은 결코 개인적인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의복은 규범에 따르고, 계급적 구조에 복종하며, 분류의 원칙을 감수하고 넓히는, 제도적 현실인 것이다.
의복은 모든 사회학적 연구를 위한 훌륭한 관찰의 장을 제공한다.

옛날의 의복에서는 옷감(재료, 직조방식, 제조지, 무늬), 여러 부속품과 형태, 바느질과 재단의 방식, 장식(액세서리), 옷을 입는 방식, 그리고 당연히 색까지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각각의 시대에 따라 많든 적든 관습적인 표시방식에 따라 의복이 자신의 출신지라든가 사회 환경, 무엇인가의 가치를 표현하며, 그것에 상응하는 규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처지 또는 지위에 맞는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현대의 의복에서도 거의 마찬가지다.
어느 곳에서든 의복의 분류 기능은 실용성이라는 역할이나 감정적, 미적 배려보다도 상위에 있다.
의복은 계층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우선 색에 의해서 행해진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기호 따위는 전적으로 이차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학자에게든 역사가에게든 순수하게 심리학적 또는 현상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거의 아무런 근거도 없다.
사춘기의 아이들이나 사회의 비주류 사람들, 문제아 등은 자신의 나이, 환경, 시대, 국가의 모든 습관, 유행, 규칙(특히 색에 대한)에 반발하여 도발적인 옷을 입는다.
그런데 의복의 유행과 관습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구속력을 갖는 제도로서, 이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더 이 유행과 관습에 사로잡힌 셈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고 싶다고 생각하고, 유행 따위는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과 전연 다르지 않고, 전적으로 유행의 노예임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2) 유행과 관습은 옛 사회에도 역시 있었다.
14세기부터 서유럽에서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많든 적든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18세기 말까지?)은 사회적으로 혜택 받은 특권계급에 한정되어 나타났다.
의복사학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은 유행이라는 현상에 대한 현대의 우리들의 개념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과거에는 투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유행은 가치, 규범, 새로움, 차별성, 변화 등의 개념에 기초하여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과 특히 색을 포함한 의복의 모든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색의 개념은 그 모든 영역에서 받아들여야 하며, 색상부터 명도, 채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색조라도 낮은 채도의 파랑이 승리하는 순간에 짙은 파랑은 시대에서 밀려나고 만다.

19세기 말부터 패션은 반년마다 유행하는 색을 변형 또는 변화시켜 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의상디자이너는 원단 제조사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재단사나 디자이너, 원단 도매상은 3~4년 전부터(때로는 훨씬 전부터) 준비하여 3~4년 후 소비자에게 제공될 색에 대해 원단 제조사와 의견을 교환하는 식이다.
색에 관한 한 유행은 결코 자연발생적 현상이었거나 뜻밖의 현상이었던 적은 없다.
대중의 의견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이 여러 해 전부터 준비되어 왔던 것이다.
구입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하나의 경향을 강조할 수 있을 뿐이며, 특히 여름철에는 의류 제조사와 원단 제조사가 판매하는 3~4색 가운데서 한 색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자신이 구입하는 옷의 색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일은 더없이 어리석은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색의 옷을 사려고 생각하며 가게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거의 언제나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나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나, 정해 놓은 예산 내의 옷 중에는 그 색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색으로 교체하고, 거기에 있는 색 가운데서 ‘소거법’으로 선택하기에 이른다.
불만이 가장 적은 색을 고르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사거나 자전거, 가구, 욕실 용품 등을 살 때처럼, 재고 부족이라든가 물품 반입이 지연되었다라는 따위의 핑계 때문에 우리는 거의 언제나 차선의 선택, 다른 색보다는 좀 낫다고 하는 색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 사회를 연구할 미래의 역사가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우리의 취향이나 기호가 아닌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 「자동차」, 「속옷」, 「심판」, 「스포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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