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 교회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항공편으로 이즈미르 공항에 도착했는데 한 시간 정도의 비행이었다.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가 곧바로 우리를 에페소로 안내했다.
옛날의 순례자들은 배를 타고 와 에페소 항구에 첫발을 디뎠을 것이다.
항구에는 아직도 폭이 21m나 되는 대리석 도로가 있고, 도로 양편에는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돌기둥들이 줄을 서있다.

요한 묵시록에 일곱 교회가 언급되는데 에페소,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이아 교회이다.
요한 묵시록 2장은 앞의 네 군데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며, 3장은 뒤의 세 군데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다.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에는 이런 경고가 나온다.

너는 잘 참고 내 이름을 위해서 견디어냈으며 낙심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만일 그렇지 않고 뉘우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너의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버리겠다. 【요한 묵시록 2:3-5】

한편 사도 바울로는 50년대에 에페소를 두 번이나 방문하면서 포교활동을 벌였는데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그곳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은 순조롭지 못했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의 방해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무렵에 에페소에서는 그리스도교 때문에 적지 않은 소란이 일어났다.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가 은으로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당 모형들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큰 돈벌이를 시켜주고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 직공들과 동업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이런 말을 하였다.
“여러분,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 사업으로 잘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로라는 자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 에페소에서 뿐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마음을 돌려놓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사업이 타격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여신 아르테미스 신당이 괄시를 받게 되고 마침내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상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터이니 참으로 위험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격분하여 “에페소의 여신 아르테미스 만세!” 하고 아우성치는 소리와 함께 온 도시가 소란해졌다.
사람들은 바울로의 동행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타르고를 붙들어가지고 떼를 지어 극장으로 몰려갔다. 【사도행전 19:23-29】

바울로는 에페소에서 고별설교를 했다.

밀레도스에서 바울로는 에페소에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 원로들을 불렀다.
원로들이 오자 바울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의 음모로 여러 차례 시련을 겪으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온갖 굴욕을 참아가며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공중 앞에서나 여러분의 가정에서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똑같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우리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애써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나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거기에 가면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투옥과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나에게 일러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20:17-23】

바울로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고별설교를 마치자 에페소 사람들은 바울을 끌어안고 울었다.

바울로는 이 말을 마치고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들은 모두 많이 울었으며 바울로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 바울로의 말이었다.
그들은 바울로를 배에까지 전송하였다. 【사도행전 20:36-38】

바울로는 신앙이 있는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았고 또 아들처럼 사랑한 디모데의 협력 덕택에, 에페소에서의 포교활동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바울은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건내 주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으므로 로마 황제로부터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었다.
그는 순교하기 전에 옥중에서 에페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썼는데 그것이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로가 그리스도 예수를 진실하게 믿는 (에페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1-2】

아폴로도 에페소에서 전도활동을 했다.
한편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대인이 와있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사도행전 18:24-25】

에페소의 그리스도교인 숫자가 늘어나자 에페소는 예루살렘, 안티오키아(안디옥)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아시아에 흩어진 여러 교회들의 본부가 되어 순례자들이 그곳을 방문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이 함께 에페소로 갔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의 복음서 19:26-27】

예수님께서 어머님의 여생을 부탁한 제자가 바로 요한이며,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소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 안드레아, 필립보도 요한을 따라 에페소로 와서 살았다고 하며 마리아는 에페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그곳에서 타계했다고 한다.
431년 에페소에서 개최된 에페소 종교회의는 이와 같은 전설을 교회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했다.

에페소에는 성모 마리아 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에페소 종교회의가 열렸던 장소에 건립되었던 교회라고 전해온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집을 찾았다.
에페소 남산 험한 산길을 30분 정도 굽이굽이 돌아서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올라갔다.
우리말로 쓴 간판이 있어 반가웠다.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 산속에 폐허로 남아 있는 작은 교회가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고 한다.
에페소에서 열린 제3차 종교회의의 기록에 의하면 요한이 마리아를 위해서 산 위에 집을 한 채 지어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 마리아의 집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1878년 독일의 캐더린 에머리히(Catherine Emmerich)라는 수녀가 꿈속에서 그곳이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에머리히 수녀는 한 번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데 계시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계시의 내용을 담은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마리아의 집터를 지적했다.
나자렛 신부가 1891년에 탐사대를 구성하여 마리아의 집터를 찾았으며, 가톨릭이 그 자리에 교회를 복원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1년에 마리아의 집터를 가톨릭의 성소로 지정했다.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가 그곳을 방문한 후로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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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기념교회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 기념교회’ 유적지로 갔다. 요한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던 곳에 건립된 교회로 500년대 중엽에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건립했다고 한다.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 밧모 섬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요한 묵시록을 썼다.
황제가 사망하자 풀려난 요한은 에페소로 와서 활약한 것 같다.
교회 입구에 ‘박해의 문’이라고 불리는 웅장한 돌문이 있는데 에페소에서 순교한 성도들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문을 들어서니 십자가 형태로 된 ‘요한 교회’와 ‘성모 마리아 교회’의 유적이 있다.
요한 교회 중심에 요한의 무덤이 있으며 그가 세례를 주던 곳도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에페소를 방문했을 때 에페소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한은 죽지 않았다면서 요한의 무덤이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는 벽돌과 돌을 섞어 쌓아올린 사각형 기둥 네 개의 폭이 4m 정도인 것이 특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정문은 그러한 기둥들을 아치형으로 세워 만들었다.
아마 지진을 대비해 그런 방법으로 건립한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므로 지반은 매몰되었고 터의 기초는 약 3m 아래로 주저앉았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원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이 보인다.
그 신전은 본래 ‘아시아의 어머니 신전’이었는데 훗날 그리스에서 이민 온 자들이 아르테미스 신과 관련시켜 ‘아르테미스 신전’이라고 불렀다.
앞서 말했듯이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에 있는 여덟 개의 청색 대리석 기둥들이 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옮겨진 것이다.

에페소 사람들은 제우스 신의 딸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이 풍년의 여신을 위해 그들은 신전을 건립했지만 기원전 356년에 어느 정신병자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에페소 사람들은 어째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자기 신전을 방화하는 것도 몰랐을까 의아해 했다.
혹시 여신이 무력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에페소의 현인들은 이런 말로 사람들의 의심을 풀어주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때 외출 중이었다. 여신은 마케도니아에서 탄생한 알렉산드로스를 축하하려고 그곳으로 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에 탄 해에 태어났다.
그리스-마케도니아 제국을 건설하고 ‘아시아의 왕’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에페소를 방문하고는 자신이 신전을 복구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페소 사람들은 자신들을 수호할 신전이 다른 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건립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불복종죄에 해당하므로 현인들은 알렉산드로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십니다. 신이 다른 신을 위해서 신전을 짓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에페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신전을 재건하면서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욱 웅대한 규모로 건립했다.
신전 전면의 폭은 70m였고 길이가 130m였으며 높이는 20m나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127개의 이오니아 양식의 돌기둥들로 인해 우아했다.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여덟 개의 청색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기둥의 굵기만 해도 장정의 다섯 아름 정도나 된다.

‘아르테미스 신전’ 서쪽으로는 에페소 항구의 유적이 있다.
웅장했던 대도시의 면모를 아직도 뽐내는 것 같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고, 도로 양옆에는 둥근 돌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수처럼 정렬되어 있다.
기둥 위는 가로등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접시처럼 조각되어 있다.
우리는 ‘에페소 성’에도 갔는데 안내원의 말로는 에페소가 기원전 11세기부터 있었던 도시라고 한다.
성은 원래 가이스텔 강 하구에 있었다는데 오랫동안 강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점토가 침적되어 지금은 10km 가량 내륙으로 들어와 있어 항구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길 양편에는 대리석으로 된 귀족저택의 잔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웅장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과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는 2층으로 된 도서관이 보인다.
로마는 목욕탕 문화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있듯이 에페소에도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문란했던 생활상을 알려주는 공중목욕탕, 연회장, 화장실, 오락실, 창녀촌 등의 유적이 있어 그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판단되었다.
에페소에는 큰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과 운동 경기장도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산기슭에 잔해만 남아 있는 루가의 무덤을 탐방했는데, 에페소에 거주하는 한인교회 교인들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 그곳을 명승지로 개발하겠다고 울타리를 쳐놓았다.
우리말 간판까지 세워놓은 교포들의 의욕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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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 일행은 파묵칼레(Pamukkale) 온천지의 콜로새(Colossea)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 안에 있는 온천탕에서 온천을 즐겼다.
석회질이 많은 파묵칼레 온천수는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해서 옛날부터 로마 황제와 귀족들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백색 석회수가 함유된 온천수가 수천 년 동안 절벽으로 흘러내려 온 산과 절벽이 빙산 같고 흰 눈으로 덮인 듯한 장관을 이루었다.
파묵칼레는 목화 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돌가루로 만든 안약이 유명하다.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3:18)라는 구절은 돌가루로 만든 안약을 사용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아침에 우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루카스 강 계곡에 있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로 갔다.
히에라폴리스는 ‘거룩한 도시’라는 뜻으로 예전의 명칭은 파묵칼레였다.
히에라폴리스, 골로사이, 라오디게이아, 이 세 도시는 서로 경쟁하던 도시로서 모두 약 6km 거리 안에 모여 있다.
히에라폴리스에는 1만 5천 명의 관람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과 온천수를 이용한 비잔틴 목욕탕이 있다.
목욕탕 옆에는 생수가 솟는데 약수이다.
웅장한 모습의 히에라폴리스 개선문과 비잔틴 문도 있으며, 문 안에는 성터가 남아 있어 당시 번영했던 역사를 말해준다.
히에라폴리스의 공동묘지에는 석관, 가옥 형, 분묘 형으로 된 약 2,000개의 묘가 있다.
그곳 사람들은 부활신앙을 가졌으므로 석관을 따로 밖에 진열했다.
사도 필립보가 87년에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하는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세운 ‘필립보의 추모관’이 성벽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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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이아 교회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다음 행선지는 라오디게이아(Laodikya) 교회였다.
라오디게이아는 안테오쿠스 왕의 부인 이름이라고 한다.
요한은 라오디게이아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면서 먼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 3:15-17】

파묵칼레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시냇물이 되어 라오디게이아까지 내려온다.
온천수가 흘러내려오는 동안 식어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기 때문에 요한은 온천수에 비유해서 라오디게이아 사람들을 책망한 것이다.
라오디게이아는 60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며, 근처에 새로 건설한 도시는 데니즐리(Denizli)라고 부른다.
라오디게이아 교회는 페허가 된 빈 터에 간판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바울로에게는 에바프라라고 하는 골로사이 사람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는 라오디게이아, 골로사이, 히에라폴리스를 두루 다니면서 포교에 힘썼다.

그 복음을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료 에바프라였습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실히 일한 일꾼이며,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사랑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준 사람입니다.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1:7-8】

여러분의 동향인인 에바프라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에바프라는 여러분이 성숙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온전히 헌신할 수 있도록 언제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여러분을 위해서 또 라오디게이아와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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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교회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요한은 ‘필라델피아 교회’ 교인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앞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네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너는 내 말을 잘 지켰으며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너를 위해서 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 사탄의 무리에 속하는 자들이 자칭 유대인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나와서 네 발 앞에 엎드려 너를 경배하게 하겠으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요한 묵시록 3:8-9】

‘필라델피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요한에게 칭찬을 받은 교회이다.
필라델피아는 기원전 138년 베르가모의 왕 아탈러스 필라델피스가 세운 도시로 왕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언제부터 그곳에 교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찍부터 순교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교인들 열한 명은 폴리캅과 함께 스미르나에서 순교하였다.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네 앞에 열린 문”은 프리기아를 향한 전도의 전초기지를 가리킨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터만 남아 있고 간판만이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주로 포도주를 생산했는데 지금도 광막한 평야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그들은 농산물들을 이웃에게 나눠주기를 좋아했으며, 지금도 소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300군데 교회에 성만찬에 사용하는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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