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 기념교회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 기념교회’ 유적지로 갔다. 요한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던 곳에 건립된 교회로 500년대 중엽에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건립했다고 한다.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 밧모 섬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요한 묵시록을 썼다.
황제가 사망하자 풀려난 요한은 에페소로 와서 활약한 것 같다.
교회 입구에 ‘박해의 문’이라고 불리는 웅장한 돌문이 있는데 에페소에서 순교한 성도들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문을 들어서니 십자가 형태로 된 ‘요한 교회’와 ‘성모 마리아 교회’의 유적이 있다.
요한 교회 중심에 요한의 무덤이 있으며 그가 세례를 주던 곳도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에페소를 방문했을 때 에페소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한은 죽지 않았다면서 요한의 무덤이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는 벽돌과 돌을 섞어 쌓아올린 사각형 기둥 네 개의 폭이 4m 정도인 것이 특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정문은 그러한 기둥들을 아치형으로 세워 만들었다.
아마 지진을 대비해 그런 방법으로 건립한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므로 지반은 매몰되었고 터의 기초는 약 3m 아래로 주저앉았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원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이 보인다.
그 신전은 본래 ‘아시아의 어머니 신전’이었는데 훗날 그리스에서 이민 온 자들이 아르테미스 신과 관련시켜 ‘아르테미스 신전’이라고 불렀다.
앞서 말했듯이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에 있는 여덟 개의 청색 대리석 기둥들이 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옮겨진 것이다.

에페소 사람들은 제우스 신의 딸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이 풍년의 여신을 위해 그들은 신전을 건립했지만 기원전 356년에 어느 정신병자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에페소 사람들은 어째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자기 신전을 방화하는 것도 몰랐을까 의아해 했다.
혹시 여신이 무력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에페소의 현인들은 이런 말로 사람들의 의심을 풀어주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때 외출 중이었다. 여신은 마케도니아에서 탄생한 알렉산드로스를 축하하려고 그곳으로 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에 탄 해에 태어났다.
그리스-마케도니아 제국을 건설하고 ‘아시아의 왕’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에페소를 방문하고는 자신이 신전을 복구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페소 사람들은 자신들을 수호할 신전이 다른 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건립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불복종죄에 해당하므로 현인들은 알렉산드로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십니다. 신이 다른 신을 위해서 신전을 짓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에페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신전을 재건하면서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욱 웅대한 규모로 건립했다.
신전 전면의 폭은 70m였고 길이가 130m였으며 높이는 20m나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127개의 이오니아 양식의 돌기둥들로 인해 우아했다.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여덟 개의 청색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기둥의 굵기만 해도 장정의 다섯 아름 정도나 된다.

‘아르테미스 신전’ 서쪽으로는 에페소 항구의 유적이 있다.
웅장했던 대도시의 면모를 아직도 뽐내는 것 같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고, 도로 양옆에는 둥근 돌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수처럼 정렬되어 있다.
기둥 위는 가로등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접시처럼 조각되어 있다.
우리는 ‘에페소 성’에도 갔는데 안내원의 말로는 에페소가 기원전 11세기부터 있었던 도시라고 한다.
성은 원래 가이스텔 강 하구에 있었다는데 오랫동안 강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점토가 침적되어 지금은 10km 가량 내륙으로 들어와 있어 항구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길 양편에는 대리석으로 된 귀족저택의 잔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웅장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과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는 2층으로 된 도서관이 보인다.
로마는 목욕탕 문화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있듯이 에페소에도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문란했던 생활상을 알려주는 공중목욕탕, 연회장, 화장실, 오락실, 창녀촌 등의 유적이 있어 그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판단되었다.
에페소에는 큰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과 운동 경기장도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산기슭에 잔해만 남아 있는 루가의 무덤을 탐방했는데, 에페소에 거주하는 한인교회 교인들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 그곳을 명승지로 개발하겠다고 울타리를 쳐놓았다.
우리말 간판까지 세워놓은 교포들의 의욕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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